독점으로 거머쥔 기부왕 타이틀
지금은 이혼했지만 당시 부부였던 두 게이츠가 2000년에 설립한 빌앤멀린다게이츠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 BMGF, 이하 게이츠 재단)은 오늘날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비영리 자선재단이다. 게이츠 재단은 빌 게이츠를 단순히 '세계 최고 부자' 따위의 속물적 타이틀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자선가 몇 위'와 같은 긍정적인 명단에 올려놓고 매년 유력한 노벨상 후보에 오르내리게 하는 일등 공신이다. 글로벌 보건의료와 기후변화뿐만 아니라 저개발국에서의 농업, 빈곤, 교육, 젠더 등 다방면에 역점 두고 있다는 점, 세계 9곳에 지부를 운영하며 웬만한 국가 원조 규모보다 액수가 큰 재정 규모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회계 내역을 공개하고 있다는 점 등을 볼 때, 이제 젊은 게이츠를 따라다니던 '실리콘 밸리의 악마'라는 오명은 씻긴 듯하다. 이제는 많은 이들의 기억 속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게이츠는 1970년대 오픈소스(open source, 소프트웨어나 프로그래밍에 사용된 소스 코드를 공개하는 것)에 반대했을 때부터 특허와 저작권 등 각종 유형의 배타적 재산권과 독점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였다. 빌 게이츠에겐 '마르지 않는 샘'인 작금의 마이크로소프트 왕국도 독점으로 인해 가능하다. IT 업계에서 그는 아직까지도 '악마'라는 별명으로 불린다(영화 <패스워드>(원제는 '반(反)독점'을 뜻하는 'Antitrust')는 그와 마이크로소프트를 겨냥하고 있다).3)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백신과 치료제에 대한 게이츠의 기부 혹은 투자는 멈추지 않고 있다. 한국의 경우, 게이츠 재단은 SK 바이오사이언스사에 투자하고 있기도 하고, 한국의 보건복지부 및 제약·바이오 기업들과 공동으로 2018년 설립한 글로벌헬스기술연구기금(Right Fund, 라이트 펀드)에 대한 기부금 규모를 늘리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공익과 사익 사이의 'Mr. 애매모호'?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기부왕으로서의 빌 게이츠에 대한 보건의료계의 엇갈린 평가 역시 이 기부와 투자에서 비롯된다. 물론 자선을 행하지 않는 다른 억만장자에 비하면 빌 게이츠의 선행은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게이츠 재단은 전대미문의 팬데믹 상황에서도 백신과 치료제에 대한 보편적 접근성보다는 단기적이고 기술적인 시각으로만 지원하는 등의 행보로 인해 자선의 목적에 대해 의문점을 제기하게 만들고 있다. 지구적 위기인 코로나19 상황을 가장 빨리 종식시키는 방법은 현재 상용화된 백신들이나 앞으로 개발될 치료제들이 전 세계 동시다발적으로 최대한 생산되어 보편적으로 공급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기술들이 세금과 국가 지원으로 이뤄낸 결과물이라면, 연구내용을 공개, 공유하여 연구의 중복을 예방하고 보다 빠르고 효율적인 개발과 생산을 위해 전 세계적으로 협력하는 것이 자연스럽다.[4] 현재 코로나19 기술들에 대한 연구개발의 결과물은 민간 제약사의 손에 쥐어졌으나, 그것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은 물론이고 연구개발에 대한 공적 지원을 보더라도 분명히 공적인 성격이 있다. 때문에 많은 국가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백신과 치료제 등의 코로나19 기술들에 대한 지식을 공유하고(코로나19 기술 접근 공동관리, C-TAP), 지적재산권을 한시적으로 유예하자는 제안(트립스 유예안)을 지지하고 있다. 그런데 빌 게이츠는 오로지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대한 투자나 후원에만 초점을 두며, 이마저도 백신을 상품으로만 취급하는 비즈니스적 시각으로 다룰 뿐 접근성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는 코로나19 기술들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공유되고 기술이 이전되는 것에 대해서는 초지일관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오고 있다. 코로나19 초반 팬데믹이 될 것임을 예견하고 세계 보건 관계자들이 C-TAP의 설립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던 시점, 빌 게이츠는 굉장히 공격적인 속도로 코로나19 도구 접근성 가속화기구(ACT-A)를 제안하고 설립을 주도하였다.(2)와 5) 참조) 또한 게이츠 재단이 후원하고 결정권이 큰 기관들(세계백신면역연합, 전염병대비혁신연합, 글로벌 펀드, 코로나19 치료법 가속화기구)이 ACT-A를 후원하며 의사결정을 주도하도록 만들었다.6) 이쯤 되면 지적재산권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민간 제약사들이 입을 모아 ACT-A의 발족을 환영한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는 점까지 쉽게 이해가 되고, C-TAP이 지금까지 지지부진한 이유도 짐작이 간다. 이 외에도 옥스퍼드대학교 제너연구소가 직접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권리를 공공의 것으로 보고 코백스에 넘기려 했을 때, 전염병대비혁신연합(CEPI)을 통해 제너연구소에 투자해온 게이츠의 압력으로 인해 공동 구매 플랫폼인 코백스 대신 민간 제약사인 아트라제네카사와 계약을 맺은 것도 이제는 유명한 일화이다.7) 가장 최근인 지난 5월 미국 정부가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지적재산권 유예를 지지하고 나선 이후에도 빌 게이츠는 현재와 같은 독점 구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뜻에 반하면서까지 그가 지적재산권에 대한 강경한 지지의 뜻을 보이는 근거는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지적재산권이 유예되면 이곳저곳에서 무분별하게 백신들이 생산될 것이고, 따라서 백신의 품질이 보장되지 않거나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8) 그러나 '현재와 같이 지적재산권을 유예하지 않으면 저소득국은 2024년이 되어야 코로나19 백신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되는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와 같은 질문에 대해서 그는 답하지 않는다. 세계 최대 규모의 자선재단을 통해 여러 질병에 대한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주도해온 인물이 백신의 보편적 접근성에 대해 부정하는 모습이라니…. * 참고문헌1) tg. 2017.11.14. Bill Gates invests into Alzheimer's R&D. European Biotechnology.
링크:
2) Zaitchik, A. 2021.4.12. How Bill Gates impeded global access to COVID vaccines. The New Republic.
링크:
3) Rarson, R. 2020.4.5. Bill Gates's philanthropic giving is a racket. Jacobin.
링크:
4) Nature. Editorial: A patent waiver on COVID vaccines is right and fair. Nature, 593 (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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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Gleckman, H. 2021.4.7. COVAX: A global multistakeholder group that poses political and health risks to developing countries and multilateralism. Friends of the Earth International and Transnational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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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코로나19 치료법 가속화기구(COVID-19 Therapeutics Accelerator, CTA)는 빌 게이츠가 몇 몇 기업들 및 민간단체들과 함께 2020년 3월 발족한 코로나19 치료제 투자 플랫폼이다. 게이츠는 WHO가 코로나19를 팬데믹으로 선언하기도 전에 이 기구를 만들었다.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기구가 하고 있는 많은 부분이 ACT-A와 중복되는데 왜 굳이 민간투자기구를 따로 운영하는지 의문이다. 현재 CTA는 독자적인 투자 활동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ACT-A에 후원금을 내고 있는데, 이는 '국제 보건 거버넌스를 무시한다'는 비판을 피해가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CTA 홈페이지 링크 :
7) Hancock, J. 2020.8.25. They pledged to donate rights to their COVID vaccine, then sold them to pharma. Kaiser Health News.
링크:
8) Cheney, C. 2021.5.7. Gates Foundation reverses course on COVID-19 vaccine patents. 'Devex.
링크:
*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대유행을 맞아 많은 언론이 해외 상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 백신을 얼마나 확보했는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국가별 '순위표'로 이어집니다. 반면 코로나19 이면에 있는 각국의 역사와 제도적 맥락, 유행 대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경제·사회적 역동을 짚는 보도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코로나와 글로벌 헬스 와치'를 통해 격주 수요일, 각국이 처한 건강보장의 위기와 그에 대응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모두의 건강 보장(Health for All)'을 위한 대안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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