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자선=정의'라는 빌 게이츠…'게이츠 와치'를 켤 시간이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자선=정의'라는 빌 게이츠…'게이츠 와치'를 켤 시간이다 [코로나와 글로벌 헬스 와치] ② 지구적 건강 정의 관점에서 본 자선가 빌 게이츠

필자들은 지난 1월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한 적이 있다.(☞ 관련 기사 : 팬데믹 시대, '백신 국가주의'를 비판한다) 당시 지면의 한계로 미처 다루지 못했지만, 코백스 퍼실리티가 강제력을 담보하지 않은 채 고소득 국가의 순수한 자발성에 의지하고 있는 점, 개별 국가들의 개별 계약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공동 구매 프로젝트가 결과적으로 유명무실하게 된 점, 초기 설정했던 백신 공급 목표량부터 장기적 안목에서 제시되지 않았던 점, 그리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투명성이 결여된 점 등 상당 부분이 빌 게이츠의 행동대장 격인 세계백신면역연합(Gavi)과 전염병대비혁신연합(CEPI)이 코백스 거버넌스를 주도하게 되면서 생긴 일이다.

▲ 코백스를 이끌어가는 네 기관들 중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 WHO. Gavi 홈페이지 갈무리.1)
Gavi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코백스를 이끌어가는 네 개의 기관들이다. 로고 배치가 WHO의 주변화를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어째서 팬데믹 상황을 지구적으로 관장해야 하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백스 퍼실리티 운영 기관들 중 제일 마지막에 위치하게 되었을까?

막대한 기부금으로 국제 보건의료 거버넌스를 쥐락펴락하는 'Mr. 독점왕'

WHO는 유엔(UN)의 산하기관이자 194개 회원국이 1국 1표를 행사하는 명실상부한 국제기구이고, Gavi와 CEPI는 게이츠 재단에 의해 주도되는 민간 조직이다. 그런데 어떻게 민간 관계자들이 국제 기구의 힘을 능가할 수 있냐고?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많은 것들이 그래왔듯이, 단서는 '돈'에 있다. 단적인 예로 게이츠 재단과 게이츠자선사업파트너들(Gates Philanthropy Partners)은 미국 정부와 독일 정부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후원금을 ACT-A에 지원하고 있다.2) 코백스 조정회의의 의장직은 WHO가 아닌 Gavi와 CEPI의 이사장들이 맡고 있고, 운영 원칙 중에는 'CEPI와 Gavi 이사회의 결정에 반하는 결정은 내려질 수 없다'라는 조항이 명시되어 있다.3) 이 밖에도 연구개발 지원, 구매와 공급, 배분 등 코백스 운영의 모든 면에서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게이츠 재단 혹은 재단의 외주업체 격인 두 기관들이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WHO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겠나.

이 글을 읽는 일부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사실 보건의료계에서 빌 게이츠의 의뭉스러운 자선 행보는 코로나19 이전에도 지속적으로 비판받아왔다. 본 연작의 목적이 '코로나와 글로벌 헬스 와치'인만큼 코로나19 이전의 글로벌 보건 거버넌스 상황에 대해 지면을 자세히 할애할 수는 없지만, 1편 '지식의 공유 관점에서 본 자선가 빌 게이츠'에서 설명했던 빌 게이츠와 게이츠 재단의 양가적 행보가 코로나19 상황에서 짠하고 등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두는 것은 중요하다.(☞ 관련 기사 : 빌 게이츠, 민간 제약사의 코로나19 백신 특허를 옹호하다)

게이츠 재단이 매년 WHO에 미국 정부 다음으로 많은 기부금을 출연해 왔음을 감안하면 코로나19 글로벌 거버넌스에서 WHO의 주변적 위치는 이미 예견된 재앙이다.4) 또한 Gavi는 그 시작부터 게이츠 재단의 기부금으로 세워지고 이후 지속적으로 게이츠 재단이 그 거버넌스의 핵심으로 관여해왔다. 2000년 설립된 시점부터 지금까지 Gavi의 입장은 '지식과 정보의 공유는 연구개발 의지를 저해한다'와 '생명과학분야에서의 혁신을 추동하려면 지적재산을 권리로 보호해야 한다'였다.5) Gavi의 설립 목적은 백신과 의약품의 개발과 구매를 통해 저소득국가에 만연한 질병을 퇴치하자는 취지였지만, 실상은 민간 제약회사들이 독점권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데 일조해왔다. 사실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공평한 접근성이 저해되고 있는 상황을 빌 게이츠 한 사람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수십 년간 지구적 보건의료 거버넌스를 무력화해왔던 게이츠 재단을 제어하기는 커녕 ACT-A와 코백스 운영의 주축이 되도록 방관한 (사실상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WHO, 충분한 자원과 권한을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WHO를 무력화해 온 고소득 국가 정부들도 문제의 주범이다. 무엇보다 개발 과정에서 공적 자원이 들어간 연구 결과물을 전 세계에 공평하게 보급할 생각은 않고 지금과 같은 막대한 이윤이 남도록 만들고, 또 그것이 민간 기업의 호주머니로 가는 것을 조장하거나 돕고 있는 백신 제조사들의 모국 정부들(영국 정부와 미국 정부 등)의 탓이 크다. 나아가 지적재산권과 의약품 접근성 문제에 대해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각국 정부들(예컨대 한국 정부) 모두 코로나19 종식을 늦추고 있는 주범들이다.

자선하는 독점왕이 아닌 독점 않는 자선가로 거듭나야

빌 게이츠가 백신 접종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칩을 이식하려고 한다는 설은 터무니없지만, 그가 정보와 지식의 독점을 통해 부를 축적했고 '기부왕'이 된 지금도 독점을 사랑하는 장사꾼이라는 점은 음모론이 아니다. 빌 게이츠가 게이츠 재단 설립에 착수한 1999년이 바로 에이즈 치료제의 복제 허용 여부에 대한 격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던 시점이었다는 것도, 지적재산권 체제의 수호자인 다국적 제약사들이 매년 게이츠 재단에 엄청난 기부금을 쏟아붓고 있는 점도, 또 게이츠 재단이 많은 제약사들에게 투자를 하거나 이들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6) 예전 그를 억만장자로 만들었던 방법, 즉 지적재산권을 공고화하는 방식으로 현재의 제약사들을 지지해주고 있고, 그 대가로 게이츠는 본인이 직접 보유한 지적재산권 이윤에 더해 또 다른 층위의 '마르지 않는 샘'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전술한 지구적 건강 거버넌스 문제에 덧붙여, 지금 우리는 '파트너십'이라는 명목으로 국제기구에 후원하면서 그 운영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나아가 그 관여로 인해 더 큰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자선가들과 자선 단체들의 '섭정'을 막을 구조적 대안이 시급한 상황에 놓여 있다. 물론 빌 게이츠는 온전히 민간부문 행위자이며, 따라서 그가 국가가 가져야 할 수준의 책무성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의약품 접근성 향상이 그의 의무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록버스터 민간재단(블록버스터 영화처럼 돈을 많이 벌어들이는 재단)을 내세워 '자선=정의' 프레임을 구축해오고 있는 빌 게이츠는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함에 마땅하다. 박애와 인도주의라는 방패 뒤에서 독점 체제를 이용하여 더 많은 돈을 벌고, 또 공적 자금을 통해 개발된 백신과 치료제는 민중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세계시민사회의 목소리에 지금과 같이 찬물을 끼얹는 한, 빌 게이츠는 기부하는 대식가일 뿐 결코 정의로운 사람일 수 없다. 이제 글로벌 헬스 와치를 위해 우리가 '게이츠 와치(감시)'를 켤 시간이다. * 참고문헌

1) Gavi. N.D. COVAX.
링크:

2) World Health Organization. 2021.6.13. Access to COVID-19 tools funding commitment tracker.
링크:

3) COVAX. 2020.11.9. COVAX: The Vaccines pillar of the access to COVID-19 Tools (ACT) Accelerator - Strueture and principles.
링크:

4) World Health Organization. N.D. Our contributors: Partnering for a healthier world.
링크:

5) Global Health Watch. 2017. Section D: Watching. In Global health watch (5th edition): An alternative world health report. Zed Books. pp. 245-365.
링크:

6) Rohit Malpani, R., Baker, B., & Kamal-Yanni, M. 2020.10.20. Corporate Charity – Is The Gates Foundation Addressing Or Reinforcing Systemic Problems Raised By COVID-19? Health Policy Watch.
링크:

*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대유행을 맞아 많은 언론이 해외 상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 백신을 얼마나 확보했는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국가별 '순위표'로 이어집니다. 반면 코로나19 이면에 있는 각국의 역사와 제도적 맥락, 유행 대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경제·사회적 역동을 짚는 보도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코로나와 글로벌 헬스 와치'를 통해 격주 수요일, 각국이 처한 건강보장의 위기와 그에 대응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모두의 건강 보장(Health for All)'을 위한 대안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원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2-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