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및 LCD 사업장에서 건강 유해인자에 의한 위험에 대해 충분하고 완벽하게 관리하지 못했습니다. 소중한 동료와 그 가족들이 오랫동안 고통 받았는데 이를 일찍부터 성심껏 보살피지 못했습니다. 병으로 고통 받은 근로자와 그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로 거듭나겠습니다."
2018년 11월,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전자 김기남 사장이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고개를 숙였다. 2007년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던 황유미 씨가 급성백혈병으로 사망한 지 11년 만에 삼성이 직업병을 인정하고 보상에 나선 것이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에 따르면, 그동안 접수된 삼성전자의 직업병의심 노동자 320명 중 116명이 이미 사망한 뒤다. 대한한국을 떠받치는 최고의 산업으로 자랑하고 있는 반도체 뒤에는 이 같은 직업병 희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서울 중랑구에서 가까운 경기도 구리 역에서 북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원진녹색병원'이 자리 잡고 있다.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있는 녹색병원과 달리, 이 병원 앞에는 '원진'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이곳은 한국 직업병의 메카라고 할 수 있다. 즉 원진은 한국 직업병 투쟁의 첫 단추를 끼운 원진레이온에서 따온 것이다.
박흥식. 보신각 건너편에 있었던 화산백화점 사장으로, 일제 말에 일본에 군용기를 헌납하는 등 노골적인 친일 행각으로 반민특위 재판에 회부됐지만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해체하면서 기사회생한 기업인이다. 그는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자 일본에서 중고 기계를 들여와 경기도 남양주시에 인조비단실(레이온사)을 생산하는 흥한화섬을 지었다. 합성섬유의 인기가 높아지며 3000여 명의 노동자를 고용할 정도로 번창했지만 인기가 떨어졌고 원진산업이 인수하여 원진레이온으로 이름을 바꿨다. 레이온 생산은 간과 신장 손실, 신경장애, 말과 행동 장애, 불안‧환청과 같은 정신질환 등을 유발하는 치명적인 유해물질인 이황화탄소를 배출한다. 그러나 원진레이온은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아 노동자들은 이에 중독됐다. 정부 역시 이황화탄소가 유해기준의 2.6배가 배출되고 있었음에도 '25,000시간 무재해기록증'을 발급해주는 등 감시감독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 1988년 7월, 서울 구로동 온도계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15세 소년 문송면 군이 수은 중독으로 사망했다. 이 뉴스를 본 원진레이온 직업병 피해자와 가족들이 의료운동단체 '노동과 건강연구회'를 찾아갔다. 이들은 당시 초선의원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 등의 도움을 받아 조사를 실시, 1989년 1차로 29명이 직업병 판정을 받았다.
1990년, 1977년 입사해 7년 근무했던 김봉환이 이황화탄소 유해판정을 받아 회사에 산재신청을 했지만 거부당했고, 다음 해 직업병 증세인 뇌출혈로 사망했다. 원진 피해 노동자들은 사인조사 등을 요구했지만 검사를 의뢰받은 고려대의 비협조 등으로 이를 이루지 못했고 공장 정문 앞에서 시신투쟁을 벌이고 거리투쟁을 벌였다. 이 투쟁이 언론에 보도되며 137일 만에 정부와 회사가 백기를 들었다. 이황화탄소에 대한 업무상재해인정기준을 만드는 등 성과를 얻어냈다.
원진 투쟁은 직업병의 심각성을 우리 사회에 알리고 직업병 예상자에 대한 특수건강검진의 주기적 실시, 직업병 전문병원 설립 등 여러 대책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 구체적으로, 1990년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 직업병 인정기준 변경, 녹색병원 건립 등 직업병 투쟁의 신기원을 이루었다. 원진 산업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투쟁을 도와준 진보적인 의료계 인사 등과 함께 1993년 원진재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원진재단은 1999년 원진녹색병원을 건립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열린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 추모행사에 보낸 기념사에서 "산업재해의 가장 큰 피해는 재해 전으로 노동자의 건강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라며 "3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은 여전히 투병중이거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삼성전자의 백혈병 사례 등이 보여주듯이, 원진레이온과 같은 직업병은 줄어들었는지 모르지만, 직업병 자체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특히 요즈음 컴퓨터 관련 업무가 늘어나면서 허리와 어깨의 통증을 호소하는 근골격계 질환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오늘은 420개 물량을 싣고 나왔다", "어제도 새벽 2시까지 일했다". 2020년 추석을 앞두고 이 같은 문자로 과로를 호소하던 건장한 택배기사 김모 씨는 며칠 뒤 추석 연휴동안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대표적인 과로사 증상인 허혈성 심장질환이었고, 근로복지공단은 그의 죽음을 산재(과로사)로 인정했다. 최근 들어 온라인쇼핑이 늘어나면서, 이처럼 과로사로 쓰러지는 택배기사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일찍이 마르크스는 사람들이 미국 남부의 노예농장주를 비판하지만, 노예농장제가 새벽 서너시에 "어린이들이 더러운 침대에서 끌려나와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밤 10, 11, 12시까지 노동을 강제당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완만한 학살에 견줘 더 참혹하기야 했겠는가?"고 반문했다. 그의 비유를 빌리자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든 계기가 된 서부발전의 청년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처럼 순식간에 온몸이 갈가리 찢긴 '중대재해'와 달리, 원진과 삼성전자, 근골격계 질환과 같은 직업병은 '완만한 학살'이다(중대재해에 대해서는 ). 특히 직업병은 중대재해와 달리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2003년에 문을 연 중랑구의 녹색병원은 외관부터 구리의 첫 병원보다 밝고 쾌적하다. 특히 제일 전망이 좋은 7층에 재활치료실을 만들어 직업병에 걸린 노동자들이 쾌적한 분위기에서 재활을 하도록 배려했다. 대신 원장실은 볕도 잘 들지 않는 지하 2층에 배치했다. 초대 원장이었던 양길승 원진직업병관리재단이사장이 '병원 임직원들이 낮은 자세로 일하라'는 뜻에서 그리했다고 한다. 녹색병원은 직업병만이 아니라 세월호에 대한 철저한 투쟁을 촉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48일 간 단식농성을 하다 쓰러진 '세월호 최후의 생존자' 김성묵 씨 등 각종 시위의 단식투쟁자들에 대한 의료지원 등을 아끼지 않고 있다.
임옥상. 한국을 대표하는 민중미술가다. 녹색병원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다. 엘리베이터 외벽에 그가 다양한 폐품들을 그려 놓았다. 헌데 제목이 '노동을 위하여'다. 폐품들이 미술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듯이, 노동자의 건강이야 어찌되든 이윤만 추구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의해 폐품으로 버려진 직업병 노동자들이 이 병원의 재활치료를 통해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는 녹생병원을 떠나며 빌었다. 빨리 직업병이 없어져 녹색병원은 환자가 없어 문을 닫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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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화가를 꿈꾸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로 진학했다. 독재에 맞서다 제적, 투옥, 강제 징집을 거쳐 8년 만에 졸업했다. 어렵게 기자가 됐지만, '1980년 광주 학살'에 저항하다 유학을 갔고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일하며 진보적 학술 활동과 사회운동을 펼쳐왔다. <국가와 민주주의>, <한국과 한국 정치>, <촛불혁명과 2017년 체제> 등 이론서와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보다>, <레드 로드-대장정 13800KM 중국을 보다> 등 역사 기행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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