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약국' 인도
인도는 세계 백신 생산의 선두주자로, 인도 제약기업은 전 세계 백신 수요의 50% 이상을 공급해왔다. 특히 세계 최대의 백신 제조사인 인도혈청연구소(Serum Institute of India, SII)는 디프테리아, 파상풍, B형간염 등 여러 종류의 백신을 매년 15억 도즈 이상 생산하였으며 전 세계 65%의 아동이 최소 1번 이상 이들이 생산한 백신을 접종하였다.(☞ 관련 기사 : <Deutsche Welle(DW)> 6월 4일 자 '') 인도에서 처음으로 코로나 백신을 생산한 곳 역시 이 인도혈청연구소와 바랏 바이오 테크(Bharat Biotech)라는 두 기업이었다. 인도혈청연구소는 영국 아스트라 제네카의 백신을 위탁 생산하였으며, 바랏은 인도 정부 기관인 인도의학연구협의회(ICMR)와 국립 바이러스 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Virology)에서 자체 개발한 백신 기술을 독점적으로 이전 받아 코백신(Covaxin)을 생산하였다.(☞ 관련 기사 : <NEWS CLICK> 5월 8일 자 '') 이들이 생산한 백신은 코백스 프로그램 등을 통해 중저소득국가에 보급되었다. 인도가 코로나19 백신의 생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의 제네릭 공장 역할을 해 온 역사에서 비롯되었다. 인도의 백신 생산은 1920년대 뭄바이의 하프킨 인스티튜트(Haffkine Institute)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으며, '1970년 특허법(물질이 아닌 제법에만 특허를 부여. 이후 '2005년 특허법'은 무역관련 지적재산권 협정 비준에 따라 물질특허를 도입)' 하에서 정부 출연 연구 기관인 과학산업연구회(CSIR) 산하 연구소와 생산시설들은 다국적 제약사의 독점을 뛰어넘으며 제네릭을 생산하였다. 즉 인도 정부의 공적 지원 하에서 인도는 세계 제네릭 의약품의 공급자, 즉 '세계의 약국'으로 성장하게 되었다.공급 실패의 원인? 뒤늦은 대응과 두 기업의 '백신 복점(vaccine duopoly)'
여타 중저소득국가와 마찬가지로 인도의 백신 공급 실패의 일차적 원인은 고소득 국가가 다국적 제약사의 백신을 선구매하는 백신 제국주의에 있다.(☞ 관련 기사 : <프레시안> 3월 24일 자 '세계는 지금 '백신 아파르트헤이트', '백신 제국주의' 속으로') 그러나 인도의 국내적 차원에서는 모디 정권의 뒤늦은 대응과 두 민간기업이 모든 백신을 생산하는 '백신 복점(vaccine duopogy)'적 생산 구조가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우선 모디 정권은 인도가 코로나 대응에 성공했다고 자체적으로 평가하며 올해 1월 인도혈청연구소로부터 1100만 개의 백신을 구매하는데 그쳤다. 이후 2차 대유행이 발생하며 정부의 대응 실패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3월에 두 기업으로부터 1억 2000만 개의 백신을 추가 주문하고, 공적 생산시설을 가동하고자 하였으나 이미 뒤늦은 대응이었다. 즉 백신 생산을 가속화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에 대한 공적 투자가 아닌 기존 대응에 대한 성공적 평가를 택한 것이다. 그러나 대응 시점보다 구조적인 원인으로 거론된 것은 인도가 기존에 갖추고 있던 공적 생산 역량을 최대한으로 가동시키지 않은 채 두 민간기업이 독점적으로 백신을 생산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는 것이었다. 두 기업은 여러 차례 자신들의 백신이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임을 홍보하였으나, 동시에 '가장 이윤이 많이 남는' 백신이라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인도혈청연구소 백신의 이윤은 도즈당 최대 2000%, 바랏 바이오 테크의 백신은 도즈당 4000%로 알려졌다).(☞ 관련 기사 : <The Intercept_> 6월 19일 자 '') 우선 인도혈청연구소의 경우 인도의 코로나19 최대 수혜자로 손꼽힌다. 인도혈청연구소의 대표이자 인도의 8번째 재벌인 아다르 푸나왈라(Adar Poonawalla)는 세계 백신 불평등에 목소리를 내고, 지난 3월 미국 정부의 백신 원자재에 대한 연방물자법 동원을 강하게 비판하며 '백신 왕자'이자 거대 제약사에 맞서는 '탈식민지적 도전자'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실상 그가 다국적 제약사의 코로나 백신 특허에 반대하는 것은 공평한 백신 보급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격 경쟁에서 우위를 점함으로써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철저한 이윤 추구이다. 정작 그가 인도 내의 다른 백신 제조사의 생산 확대가 필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거나 코로나19를 "일생일대의 기회"라 언급한 것은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관련 기사 : <GQ> 6월 4일 자 '')백신 생산은 공중보건의 목적을 잊지 말아야
한때 백신 허브였던 인도가 세계적 보급은 물론 자국민의 접근성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은 한국의 백신 허브 논의가 어떤 방식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한다. 정부는 '백신 허브화'가 구체적으로 누구를 위한 것인지, 국내외 백신 접근성 보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논의는 흐린 채 '글로벌 백신 허브'라는 포부만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위탁 생산이 백신의 국내 공급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생산을 통한 '국익 극대화'가 백신의 글로벌 공공재화에 기여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인도 저널리스트 팔라구미 사이나스는 인도의 코로나19 상황에 대해 "재난은 굉장한 비즈니스다. 많은 이들의 절망 안에서 언제나 돈이 만들어진다"고 꼬집었다.(☞ 관련 기사 : <THE WIRE> 4월 15일 자 '') 한국의 백신 허브를 향한 포부가 소수 기업의 이윤 창출이 아닌, 글로벌 보건 위기 극복을 위한 책무성 실현이 되기 위해서는 인도의 사례를 곱씹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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