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노동과 그 규모
뭔가 새로운 것을 '정의'한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다. 이걸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논의 방향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좀 쉽게 가보도록 하자. 여러 논자에 따라 플랫폼, 그리고 플랫폼 노동을 정의하는 방식, 분류하는 기준이 많이 다르지만, <인사이드경제>는 2020년 말에 한국 정부가 정한 정의와 분류를 따라가 보려 한다. 우선 플랫폼이란 업무나 상품, 일할 사람을 연결해주는 디지털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과거에는 이런 것들을 찾으려면 직접 가게에 찾아가거나 직업소개소 등 구인·구직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에 전화를 해야 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이제 디지털 방식으로, 특정한 알고리즘에 입각해서 연결해주는 것이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플랫폼 노동' 또는 '플랫폼 종사자'는 이런 플랫폼을 통해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을 일컫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그럼 플랫폼 노동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이것 역시 2019~2020년 노동연구원이 다양한 설문조사 등을 통해 분석을 해왔고 지난해 말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바 있다. 넓은 의미에서 플랫폼 노동 규모는 한국 취업자 대비 총 7.4%, 숫자로는 179만 명에 달한다. (아래 표 참조)
광의의 플랫폼 노동, 협의의 플랫폼 노동?
자, 여기서부터 아주 약간씩 복잡해진다. 위 표는 지난해 말 정부 보도자료에 나온 수치인데, 여기 '광의(廣義, 넓은 의미)'와 '협의(狹義, 좁은 의미)' 개념이 나온다. 사실 어떻게 보면 '플랫폼'이나 '플랫폼 노동'에 대한 정의는 오히려 쉬운 편이다. 플랫폼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려면 정부가 규정한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의 플랫폼 노동이 뭔가에 대해 알아봐야 한다. 우선 플랫폼으로 일을 구하는 모든 사람이 플랫폼 종사자인 것은 아니다. 전자상거래, 온라인 쇼핑몰, 임대업 목적의 플랫폼에서는 노동이 매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숙박시설 공유서비스로 유명한 에어비앤비(Airbnb)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내가 가진 공간을 잠시 대여하고 요금을 받는 것일 뿐 고객에게 특별히 필요한 노동이나 용역을 제공하진 않는다. 전자상거래를 위한 플랫폼을 제외하면 대부분 모종의 노동이나 용역이 거래되기에 '넓은 의미의 플랫폼 노동(종사자)'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그중에서 압도적 다수는 알바천국이나 알바몬처럼 단순한 구인·구직 매칭 서비스를 통해 일자리를 구하는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플랫폼은 대개 거래되는 일자리나 노동의 임금수준(가격)을 결정하진 않는다. 특정 자격과 조건을 갖춘 사용자에게 일자리 배정의 우선권을 주지도 않는다. 글자 그대로 '중개만 할 뿐'이다."우리는 그저 중개만 할 뿐"
단순 구인·구직 서비스만이 아니라 일자리나 노동의 가격을 미리 정하거나 일의 배정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플랫폼도 있다. 음식배달, 대리운전, 가사서비스, 모빌리티 서비스 등 어쩌면 우리가 아주 자주 접하고 훨씬 익숙한 플랫폼들이 그러하다. 이런 플랫폼을 통해 일을 얻는 이들을 정부는 '좁은 의미의 플랫폼 노동(종사자)'으로 분류한다.면책특권 노리는 좁은 의미의 플랫폼
오히려 이런 변명을 밥 먹듯이 사용하는 쪽은 분류상 좁은 의미의 플랫폼에 해당하는 기업들이다. 이건 사실상 스스로에 대한 정의를 부정하는 꼴이다. 왜냐면 좁은 의미의 플랫폼 정의 자체가 '일자리 중개 이상의 역할'을 하는 플랫폼, 그러니까 '중개만 하는 플랫폼'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개 이상의 역할을 하는 기업이 중개만 한다니? 전국대리운전노조가 대리운전 앱 분야 점유율 1위를 달리는 카카오모빌리티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자 카카오 측이 교섭을 사실상 거부하며 보내온 공문 내용이다.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에서도 모두 노조의 교섭 요구에 응하라는 판정을 내렸지만 카카오모빌리티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끝까지 자신들은 중개만 할 뿐 사용자가 아니라며 버티고 있다. 하지만 카카오모빌리티는 단순 중개 플랫폼이 아니다. 우선 가격을 결정하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대리운전 기사가 '자율적으로' 수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곤 하지만 배정된 콜을 거부하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일감 배정에서 불이익을 줄 수 있다. 진짜 중개만 할 거라면 콜 배정 불이익도 줘선 안 되고 가격은 대리기사와 고객이 직접 흥정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플랫폼 기업, 어떤 책임과 의무를 져야 할까
알고 보면 '플랫폼 노동'과 관련한 사회적 쟁점은 대부분 이 영역, 좁은 의미의 플랫폼 부문에서 발생한다. 쿠팡, 배달의민족, 카카오모빌리티, 타다, 마켓컬리…. 한국만 그런 게 아니라 전세계가 그렇다. 비록 종사자 규모는 단순 일자리 중개 플랫폼의 1/7에 불과하지만, 중개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지워야 할 책임과 의무의 무게도 커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 플랫폼 기업은 어떤 책임과 의무를 져야 하는 걸까? 우선 '플랫폼 노동'이 등장하는 영역, 특히 좁은 의미의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얻는 이들은 노동관계법상 노동자로 인정해 이들 플랫폼 기업이 '사용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지도록 해야 한다. 일감의 배정과 가격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 자체가 노동자-사용자로서의 관계를 추정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그런데 문제는 적지 않은 플랫폼이 이보다 훨씬 복잡한 사업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를테면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음식배달 앱은 보통 음식점과 고객을 중개한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하고 결재하면 그때 음식점은 다시 배달대행 앱을 통해 라이더를 호출한다. 주문하고 배달하는 간단한 과정 같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플랫폼은 '주문중개 앱'과 '배달대행 앱' 2가지다. (아래 그림 참조)
노동법과 반독점법 상 책임과 의무
그래서 플랫폼 산업은 노사관계를 다루는 노동법 쟁점만이 아니라 공정거래법을 비롯한 반독점법 쟁점이 동시에 등장시킨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E-커머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쿠팡을 통해 물건을 주문하면 이를 배달하는 택배노동자에게는 노동법 쟁점이 제기되지만, 쿠팡을 통해 물건을 판매하는 업체들의 경우 수수료와 거래조건 등 공정거래법 쟁점이 등장한다. 바로 이 지점 때문에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플랫폼 기업에 대한 주된 규제기관이 공정거래위원회 또는 반독점 당국이나 경쟁 당국이 되는 이유이다. 앞으로 <인사이드경제>는 먼저 플랫폼 산업에서 등장하는 노동법 관련 쟁점을 먼저 살펴본 후, 공정거래법 내지 반독점 이슈에 대한 내용을 차근차근 살펴볼 예정이다. 다음 글에서 다루게 될 노동법 관련 쟁점을 위해서는 우선 이번에 다룬 '넓은 의미의 플랫폼 노동'과 '좁은 의미의 플랫폼 노동' 정도의 개념만 숙지하고 있으면 된다. 이제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비대면 사업이 팽창하며 거대화되기 시작한 플랫폼 산업의 세계로 본격적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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