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는 없고 '4차 산업혁명'은 넘쳐나고
없는 것은 바로 기후 위기다. 지금 지구 곳곳이 이상 고온으로 신음하고 있고, 한반도도 6월 한 달 동안 매일 소나기가 반복되는 '장마 아닌 장마'를 겪었다. 굳이 과학자들의 해석을 기다리지 않아도 지구가 예전 같지 않음을 이제는 세계인이 실감한다. 그래서 2050년 탄소 배출 제로라는 목표를 더 앞당겨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선거에 도전하겠다는 이들의 첫 일성에는 기후 위기의 자리가 없다. 마치 기후 위기 없는 어느 다른 행성의 장면 같다. 아니, 단 한 명의 선언문에 '기후 위기'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의 글에 "백년을 바라보는 넓은 시야를 가지고 기후 위기와 저출생의 위기에 맞서겠습니다"라는 한 줄이 있다. 그러나 어떻게 맞서겠다는 것인지 그 내용은 없다. 오히려 이 문장 바로 앞에서 박용진은 "성장의 나라"를 이야기한다. 기후 위기 시대에 성장의 나라를 만들겠다니, 둘 사이에는 사뭇 복잡한 노력들이 있어야 할 텐데, 박용진의 글에는 그런 게 없다. 그래서 기후 위기를 정말 '위기'로 생각하는지부터 의심스러워진다. 기후 위기를 언급하지 않은 이들 가운데에는 그나마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출마선언문 안에 관련 내용이 좀 있다. 이재명은 "에너지 대전환"을 언급한다. 아니, 이낙연도 있다. "지구를 지키는 그린산업을 활성화"하겠단다. 그런데 이 둘도 박용진이 보이는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이재명은 막상 "에너지 대전환"의 실체는 제시하지 않은 채 "지속적 성장" 이야기만 길게 늘어놓는다. 이낙연도 마찬가지다. "지구는 차갑게, 사회는 따뜻하게"라는 아름다운 문구를 읊지만, '덜 뜨겁게'도 아니고 무려 '차갑게' 할 길이란 그저 그린'산업'뿐이다. 이런 기후 위기의 참담한 부재와 극명히 대비되는 것은 이른바 '4차 산업혁명'과 그 비슷한 언설들이다. 이 점에서 압권은 윤석열이다. 윤석열의 글은 "자유민주주의"를 해치는 현 정권을 공격하느라 다른 주제에 신경 쓸 틈이 없는데, 오직 한 주제만은 예외다. "기술 혁명"이다. 비슷한 성향의 윤희숙 역시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 비판으로 출마선언을 꽉 채우고도 "4차 산업혁명"을 한 번쯤 언급하길 잊지 않는다. 반대 진영도 애정의 강도가 이에 못지않다. 정세균 전 총리는 "4차 산업혁명의 중심"을 역설하고, 박용진은 "4차 산업혁명 선도"를 부르짖으며, 추미애 의원 역시 "4차 산업혁명의 요구"에 뭐라도 하겠다는 입장이다. 물론 좀 다른 말을 하는 이도 있다. 경쟁자들과 똑같은 단어를 쓰는 게 재미없었는지 이광재 의원은 "과학기술혁명"이라는 좀 더 고전적인 용어를 꺼냈다. 아무튼 제6공화국의 양대 진영을 가로지르며 모든 대권 주자들의 동의를 받는 가장 시급한 현안은, 기후 위기가 아니라, 산업혁명이다. 마치 지금이 자본주의가 황혼에 접어든 21세기 어느 때가 아니라 산업혁명이 한창인 자본주의의 여명이나 청춘기라도 되는 듯싶다. 혹시 저들은 200년 전 영국인이나 100년 전 미국인의 분장을 하고 생태계 위기로 심란한 동시대인들을 위로하려는 광대들일까. 그나마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 운운이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으려면, 현재 가장 절실히 필요한 혁신 과제인 에너지체제 전환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러나 이는 이재명의 출마선언문에만 그냥 "에너지 대전환"이라는 한 단어로 등장할 뿐이다. 나머지는 대개 공상과학소설의 허깨비 같은 소리만 늘어놓으며 거기에서 '미래'를 보라고 한다. 정작 미래는 이미 기후 위기로 다가왔는데 말이다.이럴 거면 차라리 대선 보이콧을 ...
물론 이런 평가에 "야박하다"고 할 이들도 많을 것이다. 출마선언문은 선언문일 뿐이다, 그 짧은 글 안에 후보의 정책을 모두 담을 수는 없다, 가장 먼저 유권자에게 호소하고 싶은 바만 추려 정리한 것이니 많은 내용이 빠질 수밖에 없다, 이미 다른 경로로 기후 위기나 에너지체제 전환에 관해 밝힌 구체적인 정책이 많다 등등. 분명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반박에도 불구하고 평가가 달라질 이유는 없다. 정치인이란, 더구나 한국의 정치인은 출마선언문에 담긴 몇 안 되는 공약조차 제대로 지키는 법이 별로 없다. 그런데 출마선언문에도 '덜 중요'하다고 빠질 정도면, 실제로 집권했을 때는 어떨지 빤하다. 출마 현장의 말들에서조차 빠진 것은 집권 5년 내내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이것이 지금 한국 정치에서 '기후 위기'의 신세다. 이 대목에서 앞이 캄캄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2022년에 뽑을 대통령은 현행 헌법대로라면 2027년까지 한국 사회를 이끌게 된다. 한국인들은 2020년대의 대부분을 이 대통령이 책임지는 정부 아래에서 보내게 된다. 그런데 기후 위기는 점점 더 속도를 높이면서 2020년대 내내 파국의 양상을 더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코로나19 팬데믹 같은 비극적 막간극들이 주기적으로 닥칠 것이다. 또한 그럴수록 탈탄소화의 요청은 더욱 절박하고 엄중해질 것이다. 만약 위에 언급한 정치인들 중에서, 혹은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또 다른 어떤 정치인들 가운데에서 대한민국의 제20대 대통령을 선출하게 된다면, 한국 사회는 이런 인류사적 전환기에 그 대부분의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남들이 기후 위기 대응에 나설 때에 산업혁명의 재래라는 신기루나 좇고 북한을 새 시장으로 만들겠다는 야무진 꿈만 꾸다 세월을 다 보내게 된다. 이런 식으로 2020년대를 허비하고 2030년대를 앞둔 시점에 우리 모습이 어떨지 그려보면, '절망'이라는 말도 너무 태평하게 느껴진다. 기후 위기만 문제가 아니다. 후보들이 '4차 산업혁명'만큼이나 애용하는 또 다른 표어가 있는데, 그것은 '성장'이다. 이 글에서 성장이냐 탈성장이냐 같은 심오한 이야기를 풀지는 않겠다. 이는 다른 기회에 해야 할 과제다. 하지만 적어도 '성장'을 그토록 신들려 읊조릴 정도면, 자본주의 중심부 국가들이 거의 다 마이너스 성장을 할 정도로 성장이 어려운 과제가 된 시대에 도대체 어떻게 '지속적 성장'이니 '소득 4만 불 시대'니를 이뤄낼지 믿을만한 근거를 대야 한다. 기후 위기 시대에 지속 성장을 실현할 방법을 확인할 길이 없다는 점은 이미 지적했다. 시야를 그보다 더 낮춰 지상을 향해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지금 전 세계의 뜨거운 현안은 2008년 금융 위기와 2020년 코로나 위기에 대응한다며 각국 중앙은행들이 펼친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대가, 즉 자산 인플레이션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이다. 달리 말하면 자산 거품이고, 이는 2008년을 능가하는 또 다른 금융 붕괴 위험을 내장하고 있다. 그대로 방치했다가 거품이 터지면, 그대로 대공황이다. 그러지 않고 지금 중앙은행들이 논의하듯이 금리 인상으로 선제 대응한다면, 공황은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다시 장기 침체가 이어질 것이다. 제일 문제는 대한민국이다. 특유의 주거/부동산 모순과 얽혀 자산 거품이 가장 빠르게 커가는 나라가 한국이다. 어떤 식으로든 이를 진정시켜야 하는데, 그러면 중산층부터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그토록 피하고 피했던 그 일이 대선 전후하여 터지고 말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한데 '성장'은 말하고 '기술 혁명'은 떠들면서 이 위기에 어떻게 대비할지 답하는 대선 주자는 없다. 그저 뜬 구름 잡는 식의 주거권 관련 개헌이나 책임도 못 질 공공주택 대량 공급만 되뇔 따름이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은 대선판인데, 일말의 기대조차 사라진다. 가장 위험한 시대를 앞두고 이 시대에 대한 어떠한 진지한 비전도 찾아볼 길 없는 대통령선거 ... 영영 다른 목소리가 들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빛나는 6월'의 성과로 성인이 되자마자 행사해온 대통령 선거권을 처음으로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던 선택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 대통령선거 보이콧 운동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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