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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차별금지법(평등법)은 여성만을 위한 법도, 성소수자만을 위한 법도, 장애인만을 위한 법도, 인종적 차별을 겪는 자들만을 위한 법도 아니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한 법이다. 사회 각계 각층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시민들이 참여한 '평등의 에코-100(echo-100)' 캠페인의 취지가 그것이다.
디지털 성범죄부터 누구에게나 똑같이 다가오는 죽음, 밥벌이 때문에 견디는 직장갑질, 저 멀리 북극곰의 문제, 미친 부동산 가격 문제 등등. 이것들은 이제 평등에 관한 문제와 연결돼 있다.
<프레시안>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는 100명의 선언 '평등의 에코-100(echo-100)'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각자가 고민한 차별에 대해 물었다. <프레시안>은 '평등의 에코-100(echo-100)'에 참여한 시민들을 릴레이로 인터뷰 해 싣는다.편집자
[차별의 평범성 드러내기]
① "조주빈 처벌하면 만사 끝?…성차별 끊어내는 게 폭력 근절의 전제" (☞바로가기)
② "죽음 마저도 차별당하는 사람들…장례의 차별을 없애야 한다" (☞바로가기)
③ "'저렴한 목숨'은 죽어도 되나…산재와 차별은 같은 뿌리" (☞바로가기)
④ 기후위기 최대 피해자들에 "학교는 어쩌고 왔니"라 묻기 전에 (☞바로가기)
⑤ "대한민국의 부동산 경제, 청년들 등에 빨대를 꽂고 있다" (☞바로가기)
⑥ "'지잡대 나오니 그렇지'?...직장 모욕과 갑질은 차별의 다른 이름" (☞바로가기)
⑦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사업'이 아직도...'매매혼'이 차별을 생산한다" (☞바로가기)
프레시안 : 동물이 당하는 차별은 무엇인가. '종차별'에 대해 설명해 달라.
은영 : 종차별은 인간중심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한 차별이다. 정상성의 기준은 인간 '남성'이고, 정상성에서 벗어나는 모든 것,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청소년 그리고 동물 등 모든 약자성을 하등한 것으로 치부하고 배경으로, 자원으로, 관리하고 다루어야 할 대상으로 본다.
종차별은 모든 곳에 있다. 동물을 감금하여 수탈하고 산채로 꼬리를 자르거나 이빨을 뽑거나 부리를 자르는 등 동물을 '장애화'하고 동물에게서 나오는 모든 수단을 자원화하여 착취하는 우리들의 평범한 식탁에서도 있다.프레시안 : 인간사회 내에서 일어나는 차별이 종차별과는 어떤 관련이 있나.
은영 : 어떤 사람이 겪는 차별은 동물이 겪는 차별과 구체적인 경험이 다를 뿐 본질적으로는 같다. 차별이 정상성을 기준으로 그를 벗어나는 모든 대상을 분리하고 혐오, 지배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예를 들어 성차별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보지 않는 인식이다. 여성이 남성에게 귀속된 존재이며 남성을 위해 돌봄노동을 마땅히 수행해야 하는 존재로 치부된다. 인간이 아닌 동물, 모든 비인간동물은 인간의 생산성을 위해 이용되다 죽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은 성차별적 인식과 다르지 않다.프레시안 : '사람과 동물은 다르지 않느냐'는 항변을 할 것 같다. 이조차도 차별적인 인식이긴 하다.
은영 : 차별은 어느 한 존재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차별은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어떤 인식이다. 우리가 내재화하고 무감각해진 인식. 거기에서 차별적인 제도와 문화, 차별적인 관습, 행동, 문화가 등 모든 것이 첨예하게 만들어진다.
타자에 대한 차별을 분리하면서 내가 겪는 차별만을 이야기한다면 궁극적으로 차별을 극복할 수 없다. 차별의 핵심은 정상성의 지배이데올로기에 있다. 여기에 문제 제기하지 않고 어떤 존재가 계속 대상화되고 착취되는 구조를 내버려 둔다면, 타자에게 나를 분리하여 차별구조를 정당화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프레시안 : DxE의 동물권리장전 운동을 이야기해야겠다. '동물권리장전'은 무엇인가.
은영 : 동물권리장전은 동물복지나 동물보호법처럼 인간의 기준에서 동물의 보호 가치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처럼 동물 자체의 존엄한 권리가 선언돼야 한다는 운동이다.
동물권리장전의 내용은 △고통과 착취로부터 구조될 권리 △보호받는 집, 서식지 또는 생태계를 가질 권리 △법정에서 그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법에 의해 보호받을 권리 △인간에 의해 착취, 학대, 살해당하지 않을 권리 △소유되지 않고 자유로워질 권리, 또는 그들의 권익을 위해 행동하는 보호자가 있을 권리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의 권리장전처럼 동물권리장전을 선언하기 위해 2019년 10월 4일에 전지구적으로 동시에 글로벌 락다운이 이루어졌다. DxE 코리아도 도살장 문 앞을 콘크리트로 막고 행동함으로써 동물권리장전을 선포했다.프레시안 : 락다운 운동이 제일 유명한 것 같다. 도살장을 드러내는 데 집중하는 것 같은데 이유가 있나.
은영 : 락다운은 시민불복종이라고도 하는데, 도살장을 점거해서 잠시나마 도살을 멈추게 하는 행동이다.
서울애니멀세이브라는 이름으로 농장, 도살장에 많이 간다. 농장과 도살장은 폭력이 감추어지는 곳이다. 이곳을 찾아 폭력을 목격하고 기록함으로써 폭력의 증인이 된다. DxE의 이름으로는 도시의 도살장과 농장을 옮겨놓는 작업을 한다.프레시안 : 옮겨놓는다는 게 무슨 뜻인가.
은영 : 연결시키는 작업이라고도 한다. 사람들에게 도살장 앞으로 가서 '여기가 현장'이라고 알려준다. 분리돼있는 도살장을 연결시킴으로써 사람들을 주저하게 만들고 당황스럽게 만든다.
도살장이라는 공간 자체를 사람들에게 인식하게 하는 게 동물권 운동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도살장은 폭력의 행해지는 공간이다. 도살장을 통해 사람들은 동물을 착취하고 음식으로써 소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도 철저하게 감춰진 공간이다. 분명 우리 집 주변에도 있을 것이다. 차를 타고 한 시간 이내 거리에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도살장과 살아간다는 생각을 못 한다. 분명 가까이에 존재하고 그 안에서 엄청난 폭력이 행해지고, 피가 바다처럼 흐르고 비명이 끊이지 않는다. 그것이 또 모든 걸 오염시키고 있는데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이상한 상황이다.
프레시안 : 락다운과 방해시위로 소송도 했다.
은영 : 동물권리장전 락다운과 방해시위로 각각 재판이 있었다. 동물권리장전 락다운은 활동가 네 명이 1200만 원, 방해시위는 저랑 섬나리 활동가가 각각 50만 원씩 선고됐다.
차별을 가시화하고 제도에 저항하기 위한 소송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승소를 바라지 않았다. 이런 소송은 처음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도살장, 농장의 영상을 보여주며 변론을 이어갔다. 두 소송 결과가 달랐다. 동물권리장전 재판은 그래도 유의미한 판결이었다고 생각한다. 동물의 법적 지위에 대한 진일보한 판결이었다. 반면에 방해시위는 인간중심적인 판결이었다. 사회의 인간중심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프레시안 : 인간중심성이라면?
은영 : 동물권리를 고려하지 않았다. 방해시위는 DxE가 3~5분 동안 노래를 부르고 스피치 한 게 전부다. 영업장에 가해진 손실이 없다. 다소 불편했더라도 그 이면에 감춰진 문제의 중요성은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방해시위는 그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목적의 행동이다.
재판에서도 활동가들이 그 중요성을 계속 주장했다. 그런데 법원은 이를 고려하지 않고 '영업장이고 이건 방해다'라고만 했다. 속뜻을 살피려 하지 않았다.프레시안 : 해외에서 비슷한 시위가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유리창을 다 깬다든가, 과격한 걸로 알고 있다.
은영 : 영국이나 미국에서 유의미한 판결이 나오고 있다. 제 생각에는 배심원제도라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영국이나 미국이나 외국의 경우 방해시위에 대한 유의미한 판결이 나오고 있다.
유리창을 깬 건 외국의 기후위기 운동이다. 법원에서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한 행동이고 영업장의 손실에 비해 보호받아야 할 가치가 있다고 봤다.프레시안 : 급진적이라는 비판도 많이 받았다.
은영 : 인권활동가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저항이 강한 이유는 앞선 억압이 그만큼 거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폭력이 당연했기 때문에 처음 시작한 이 운동이 더욱 급진적으로 보이는 것 같다.
철저히 인간중심적인 사회에서 동물권 운동을 이렇게까지 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꿈쩍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내몰린 권리 운동일수록 사회는 더 깔끔하고 간편하게 무시할 수 있다. 그런 한계가 있어서 안 되겠다 싶은 거다. 약자로서 할 수 있는 건 그걸 방해하고 더 이상 문제 자체를 회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프레시안 : 문제를 문제로 드러내기 위한 방식인 셈이다.
은영 : 방해시위가 등장하고 첫 시작부터 목표를 곧바로 달성했다. 일상에서 무시되고 의제로조차 인정되지 않는 동물권 논의를 수면에 끌어 올렸다. 그것이 찬성이든 반성이든. 드디어 모두가 음식이 아니라 폭력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할 당시만 해도 인권활동가들에게조차 동물권 인식이 그리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어진 다양한 방해시위와 새벽이 공개구조 등 액션을 거쳐 2년여가 지난 지금 많은 활동 영역에서 강연요청과 연대작업이 논의되고 있다. DxE의 폭력에 맹렬히 저항하는 비폭력투쟁방식 그리고 분명한 동물의 존재를 보고 많은 활동가가 같은 권리 운동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프레시안 : 어떤 점에서 같은 운동이라고 느끼나.
은영 : 사람들은 이것은 부당하다고 여기에 고통스러운 존재가 있다고 계속 말을 하는데 사회는 마치 못 들었다는 듯이, 안 들린다는 듯이, 별 게 아니라는 듯이 생활한다. 차별을 정당화하여 더욱 편리한 기존의 방식대로 운용하기 위해서다.
동물의 마땅한 권리는 인간중심적인 사회에서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비장애 중심의 세상에서 장애계 운동을 대하는 방식도 그렇다. 예를 들어, 이동권은 장애계에서 매우 중요한 이슈다. 정말 오랫동안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 비장애 중심의 사회에서는 그걸 잘 모른다.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목소리를 굉장히 불필요한 이야기로 치부하고 그런 목소리가 있지도 않은 것처럼 무시하려 노력한다.프레시안 : 보이지 않는 존재의 가시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차별과 배제의 구조에 제동을 거는 방식이다.
은영 : 많은 활동가가 20여 년간 이 문제를 가시화하기 위해 직접행동을 이어왔다. 권리를 무시하고 차별을 용인한 사회에 저항하고 더 많은 시민에게 현실을 알리기 위해 지하철을 막고 버스를 막아섰다. 우리의 몸으로 사회의 차별에 직접 잠시나마 제동을 건다. 폭력적인 세상을 직접 방해해서 무시하지 못하게 하는 방식이다.
DxE의 방해시위가 식당에 들어가 좀처럼 들리지 않았던 동물의 문제를 알려 폭력에 잠시나마 제동을 걸고 논의되지 않았던 중요한 문제를 촉발하는 것과 같다.프레시안 : 비단 장애계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약자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은영 : 차별의 본질적인 구조로 다시 돌아가는데, 인간사회는 차별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차별이 당연하거나 본능이어서가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에서다. 기득권을 유지하는 방법. 지배하고 통제하고 억압하고 편리하게 착취할 수 있는 전략으로서다.
우리가 '정상성'이라고 여기는 속성들이 어떤 모습을 투영하고 있나. 정상성에서 벗어나는 존재는 어떤가. 정상성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용되는가. 우리는 여기에 의문을 가져야 한다.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어떤 변화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나.
은영 : 인간사회 내에서 타자에 대한 차별의식, 차별이 폭력이라는 인식이 퍼지면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기 쉬워질 것이다. 그럼 종차별에 대한 인식도 확산되지 않을까. 인간사회 내의 차별, 폭력, 혐오는 동물에 대한 인식과 본질적으로 같다. 차별은 특정 대상이나 집단을 상대로만 딱 정해서 이뤄지지 않는다. 여성을 차별하면 안 된다 할 때 '여성은 차별하지 않고 장애인만 차별한다' 이러지 않는다. 차별의식은 굉장히 많은 대상을 향해 투영된다. 어떤 사고방식이 정해져 있는 것이다.
타자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면 동물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문화나 법 제도도 달라진다. 그럼 우리는 좀 더 평화롭고 안전한 세상을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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