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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이대로 가면 틀림없이 빙산에 부딪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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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이대로 가면 틀림없이 빙산에 부딪힌다" [녹색평론 김종철 약전] ⑧ 외로운 예언자, 김종철
<녹색평론>이 창간된 지 만 30년이 돼가지만 김종철은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외로운 예언자'에 머물러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구생태계가 처한 위기상황을 김종철만큼 절실하게 느끼는 사람이 소수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지구 위 뭇 생명의 공생공락을 위해서는 근대 산업문명이라는 기존의 지배적 생활방식을 탈피해야 한다고 깨달은 사람은 더더욱 적다.

예컨대 정부는 지난해 10월 고(故) 김종철에게 "<녹색평론>을 통해 근대문명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새로운 대안을 모색했다"는 이유로 은관 문화훈장을 수여했지만, 현재 대한민국을 이끌겠다고 나선 대선 주자들 중 기후위기를 핵심 정치과제로 꼽은 후보는 단 한 명도 없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지구 최대의 위기상황으로 받아들여지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한국의 유력 정치인들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관련 기사 : <프레시안> 7월 8일 자 [장석준 칼럼] '가장 위험한 시대'에 나온 '허깨비' 주자들)

▲ 故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프레시안
지난 30년간 김종철의 외침을 대부분의 한국인이 그저 '듣기 좋은 얘기, 하지만 현실성은 없는 주장'으로 받아들였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녹색평론> 100호(2008년 5/6월호) 좌담에서 "<녹색평론>은 아직도 이 사회의 변방에 있는 아주 조그만 목소리"라는 김종철의 고백은 정확한 자기진단이었고, 이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권력집단뿐만 아니라 주류 지식계에서도 <녹색평론>은 여전히 변방에 머물러 있다. 예컨대 2008년 당시 김종철은 <녹색평론>을 잘 안다는 독자들 사이에서도 이 잡지가 지나치게 이상주의적, 심지어 근본주의적이라는 '오해'가 계속되는 데 대해 다음과 같이 답답함을 표시했다.
"내가 그동안 끊임없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생각"이었음에도 불구하고("이대로 가면 틀림없이 빙산에 부딪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징후들이 갈수록 짙어지는 상황에서 배의 항로를 바꾸어야 한다는 논리보다도 더 상식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생각이 있을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흔히 <녹색평론>이라면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거나 심지어 근본주의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잡지라고 믿는 경향이 아직도 있다. (중략) <녹색평론>에 어느 정도 친숙한 독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왜 이런 선입관이 계속 유포되고 있는지 나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중략) 궁극적으로는 가장 기본적인 상식이 상식으로서 통용되기를 허용하지 않는 우리시대의 '근원적인 어둠' 탓일지 모른다."(<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 6쪽)
이러한 '오해'는 <녹색평론> 독자들뿐만 아니라 김종철과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있는 것 같다. 김종철과 함께 20년 이상 영남대 교수로 일했고, <녹색평론> 필자로도 참여했던 염무웅, 정지창 두 분의 발언을 살펴보자. 염무웅 교수는 자신의 산문집 <지옥에 이르지 않기 위하여> 발간과 관련한 지난 7월 2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난 25일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1주기 추모모임에서 발제와 토론을 들으면서도 저는 답을 찾기 힘들더군요. 자본주의 산업문명은 어떤 악당이 만든 게 아니라 '필연'이라는 게 제 생각이에요. 이제 와서 소농 위주의 자급자족 사회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한 개인의 종말 즉 죽음을 당연한 귀결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인류 문명의 종말도 자연사처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그게 너무 급격하게 진행되지 않도록 하려는 노력은 필요하겠지요."(☞ 관련 기사 : <한겨레> 7월 2일 자
다음은 정지창 교수의 김종철 추모 글.
"김종철 형의 녹색사상을 흔히 녹색 근본주의라고 부른다. 경제성장을 전제로 한 자본주의체제 자체를 포기하지 않는 한 인류의 미래는 없다는 그의 단호한 태도는 비타협적인 원리주의자의 모습과 흡사하다. 그가 대안으로 내세우는 소농 중심의 농본사회와 '자발적 가난'도 시대착오적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나는 그의 녹색사상이 급진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본질은 모든 생명을 존중하며 좀 불편하더라도 같이 돕고 살자는 농민들의 소박한 생명사상이라고 본다."(정지창 '존경하는 벗 김종철 형을 보내며' 창비 189호, 2020년 가을, 323~324쪽)
원로 지식인의 발언을 비판하는 것이 무척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김종철이 "소농 위주의 자급자족 사회" "(염무웅)나 소농 중심의 농본사회"(정지창)를 추구했다는 규정은 김종철 사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거나, 그의 사상의 진화 과정을 간과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우선 김종철은, 적어도 내가 읽은 김종철은, '농적(農的) 순환경제', 그리고 소농의 중요성을 강조하긴 했지만 "소농 위주의 자급자족 사회"를 대안으로 내세운 적이 없다. 일례로 그는 1998년 5월 26일 부산 한살림 강연('보살핌의 경제'를 위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들 전부가 농촌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우리들이 되돌아갈 땅이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어차피 우리들 대부분은 계속해서 도시에서 살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결국 도시의 삶이라 하더라도 좀더 흙냄새 나는 삶으로 가꾸고 전환할 도리밖에 없는 거예요."(<녹색평론> 1998년 7/8월호, <간디의 물레>에 재수록 156쪽)
김종철이 줄곧 농업을 강조한 것은 식량 안보라는 이유와 함께 농업을 통한 자연세계와의 교감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우애와 연대, 그리고 인간 내면의 평화에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남한의 식량 자급률은 25% 미만이다. 그런데 우리가 선진국으로 떠받드는 서유럽과 미국은 식량 자급률 100% 이상을 유지하고 있으며, 무역협상 때마다 자국의 농업보호를 위해 격렬하게 대립해 왔다는 사실은 기이하게도 한국의 정책당국자나 지식인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다. 둘째, 2008년 9월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김종철은 치열한 모색 끝에 현대 자본주의 문명의 핵심은 금융권력이며, 자본의 독재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본소득과 은행의 공공화가 핵심이고, 이를 실현하려면 시민의회 등 시민들의 참여가 보장되는 직접민주주의가 도입돼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해법을 마련했다. 2011년 11월 <녹색평론> 20주년 인터뷰에서 김종철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성장 경제'를 지양하고 '순환 경제'로 가야 하는데, 그 순환 경제의 모습은 무엇인가? <녹색평론>은 몇 년 전까지 '농업 중심 사회'라는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농업 중심 사회'에서 먹고사는 문제는 어떤 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그런 사회로의 이행은 어떻게 하는가, 이렇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바로 그런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해요. 그 답을 찾느라 오랫동안 고민을 해왔고 최근에야 그 가닥을 잡은 느낌입니다. 저는 우리의 삶을 옥죄는 핵심 원인이 바로 돈(화폐), 즉 금융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여기는 강의를 하는 자리가 아니니까, 길게 설명을 할 수는 없습니다만, '이자 놀이'로 유지되는 금융 권력을 해체하지 않고서는 어떤 대안도 무기력한 독백일 따름입니다."(☞ 관련 기사 : <프레시안> 2011년 11월 15일 자 [<녹색평론> 20년 : 1991-2011] "모든 시민에게 100만 원씩! 세상이 안 바뀌나 보자!")

2008년은 김종철의 삶과 사상에서 하나의 전환기였다. 2000년 이후 그의 삶의 궤적을 간략하게 살펴본다.

* '녹색평론 김종철 약전'은 앞으로 1~2회 연재한 후 끝내고, 이후 '녹색평론 김종철 읽기' 연재로 이어갈 계획입니다. <녹색평론>이나 김종철 선생에 얽힌 일화나 추억, <녹색평론>을 통해 배웠거나 느끼고 깨달은 바가 있으신 분은 [email protected]으로 글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녹색평론 김종철 읽기' 연재를 통해 보다 보다 인간적인 사회를 위한 생각과 느낌을 서로 나눠 가지시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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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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