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가을 미국 발 금융위기가 세계를 강타했을 때, 김종철은 "드디어 성장이 멈췄다, 우리 춤을 추자"고 말했다고 한다. 경제성장의 종언을 축하하자는 그의 이 발언은 우리 시대의 기본적 상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경제성장이 중산층을 만들어내고, 중산층의 확대가 민주주의를 촉진한다'는 서구 사회과학의 오랜 상식, 즉 경제성장이 물질적 번영과 정치적 민주화의 열쇠라는 서구 근대문명의 핵심 전제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김종철은 "경제성장은 민주주의의 발전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나아가 근대 산업문명이 추구하는 "경제발전이나 성장의 논리는 생태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며 "정말 필요한 것은, (중략) 성장 논리와는 무관한 질적으로 전혀 다른 삶, 즉 '비근대적' 방식'으로 방향전환하려는 급진적 노력"이라고 강조한다.(<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15, 24, 27쪽) 그는 "그간의 근대문명이라는 것은 장구한 인간 역사의 맥락에서 볼 때 매우 비정상적인 시기"이며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의 시간은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어리석고 자기파멸적인 시간"이라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지난 2~3세기 동안 이른바 문명세계가 산업문명을 통해서 이룩했다고 하는 높은 생활 수준은 실은 인간사회가 자신의 보금자리를 끊임없이 찢고 할퀴는 난폭한 짓을 되풀이함으로써 얻어진 부산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206, 7쪽) 경제성장이 물질적 번영과 정치적 민주화로 이어진다는 '근대의 상식'을 김종철이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그의 지구적 관점과 민중적 입장에 따른 것이다. 즉 서구 산업문명은 소수의 번영과 자유를 위해 다수의 자유와 인간다운 삶을 희생시켜 왔고, 나아가 이제는 지구 생태계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서구의 풍요와 번영은 기본적으로 비서구 세계에 대한 지배와 정복, 억압과 착취에 의한 것이며 따라서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 또한 산업혁명 이후 석탄, 석유 등 재생 불가능한 화석연료와 지하자원을 약탈적으로 낭비함으로써 지구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파괴했다는 점에서 생태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소수(과거와 현재의 서구세계)의 번영과 자유를 위해 전체(비서구세계와 모든 미래 세대, 지구상 모든 생명)의 존립을 위태롭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서구 자본주의 문명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체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 기후위기 등이 바로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근대문명이라는 것은 근원적으로 타자-동시대의 사회적 약자와 자연 그리고 미래세대-에 대한 무관심 혹은 무책임한 태도를 기초로 해서 전개돼온 극히 비윤리적인 시스템"인 것이다.(<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202쪽) 김종철은 "근대 자본주의가 출현한 이후 (중략) 경제발전이란 것이 과연 세계의 풀뿌리 민중의 삶의 실질적 개선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는 증거가 하나라도 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 500년 동안 자본주의 문명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물질적 혜택을 실제로 누렸던 사람의 수효는 지구 전체 인구 가운데 15퍼센트를 넘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24, 203쪽) 나아가 그는 "지금 세계의 앞날을 위태롭게 하는 근본문제는 후진국의 빈곤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선진국의 번영이라는 인식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 선진국의 번영이라는 게 몇백 년에 걸친 약탈의 산물이라는 것을 똑똑히 인식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한다.(<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194쪽) 서구의 번영이 비서구의 희생을 바탕으로 가능했다는 김종철의 역사 인식은 결코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예컨대 미국 역사학회 회장을 지낸 역사학자 월터 프레스콧 웨브(1888~1963)는 1951년 저서 <거대한 변경>에서 "지난 수백 년간 세계의 주인 노릇을 해온 서구문명은 비서구세계에 대한 경제적, 군사적, 정치적 지배와 정복을 통해서만 번영을 누리고 확장되어 올 수 있었다"고 솔직하게 밝혔다.(<발언1> 253쪽) 웨브에 따르면 지난 450년 동안 유럽인 주도의 근대 자본주의 문명이 승승장구해온 가장 중요한 이유는 1492년 아메리카 발견 이후 아프리카, 호주, 아시아 등 서구인이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었던 '거대한 변경'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거대한 변경에 대한 거침없는 약탈에 의해서 자본주의 경제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고, 성장하고 팽창하는 경제를 근본 토대로 해서 의회제 정당정치 시스템을 비롯한 온갖 사회문화적 시스템, 즉 서구문명의 상부 구조가 존립했다, 요컨대 서구 근대문명의 번영은 거대한 변경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성립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그 번영의 시기는 이제 끝났다. 1950년의 시점에서 (식민시대의 종식으로 서구의 번영을 가능케 한) 거대한 변경이 사라졌기 때문이다.(<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190~193쪽) 물론 이후에도 서구세계의 번영은 최근까지 수십 년 동안 계속됐다. 그것은 2차 대전 이후 자본주의 세계의 패권국가로 등장한 미국이 개발과 성장의 이데올로기를 성공적으로 유포한 때문이다. 1949년 1월 20일 대통령 취임식에서 해리 트루먼이 세계 전역의 경제성장과 번영을 위한 계획을 발표하면서 세계는 경제성장이라는 경주에 뛰어들었다. 트루먼은 "보다 많은 생산이 번영과 평화의 열쇠"라면서 "미국의 과학적 진보와 산업적 선진성이 저개발지역의 개선과 성장을 위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새로운 계획에 대담하게 착수"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은 서구 산업문명을 따라잡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그 결과 서유럽과 미국, 일본 등은 1970년대 초까지 비약적 경제성장을 이룩한 이른바 '영광의 30년'을 경험했고, 1960년대부터는 한국,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을 시작으로 동남아와 중국 등이 경제성장의 과실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중남미와 아프리카, 중동 등 세계 대부분의 지역은 여전히 저개발 상태에 머물렀다. 오히려 이 지역들은 서방세계의 경제발전을 위해 석유 등 자연자원을 착취당하면서 굶주림과 비참함이 증가하고, 자주적인 발전이 저지당하며, 부패한 정권들이 유지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특히 1972년 로마클럽은 <성장의 한계>를 통해 화석연료 등 자원의 부족으로 더 이상의 지속적 경제성장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2012년 3월 미국 스미소니언협회 주최로 열린 <성장의 한계> 40주년 국제심포지엄에서 이 예측이 정확했음이 드러났다. 호주의 물리학자 그레이엄 터너가 2008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1970~2000년 30년간 <성장의 한계>가 예측한 다섯 가지 항목(세계 인구, 재생불가능 가용자원, 1인당 산업생산물, 1인당 서비스, 환경오염)과 실제 추이를 비교한 결과 놀랍게도 예측치와 거의 일치했다는 것이다. 재생불가능 가용자원은 이미 1950년대부터 감소하기 시작했고, 나머지 네 항목은 대략 2030년경부터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는 것이다.(<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183쪽 도표 참조) 즉 지금처럼 대량생산, 대량유통, 대량소비, 대량폐기에 의존하는 성장을 계속해서 추구한다면 지구생태계는 파탄에 직면할 것이란 얘기다. 스미소니언 심포지엄에는 <성장의 한계> 저자 중 생존해 있는 두 명의 학자가 참여했는데, 그중 한 명인 데니스 메도스 전 MIT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이제는 너무 늦었다. 우리가 책을 썼던 1970년대만 하더라도 정치지도자들이 정신을 차리면 방향전환은 가능했다. 그래서 그걸 돕기 위해 책을 썼다. 그런데 40년이 지난 지금은 이미 늦어버린 것 같다. 지금은 인류의 산업 생산과 소비 규모가 지구가 용납할 수 있는 수용능력의 150퍼센트 이상이나 초과해 버렸다."(<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201쪽)
김종철에 따르면 근대 산업문명의 핵심자원은 석유다. 그런데 1860년 미국에서 석유가 본격적으로 채굴되기 시작한 이후 1990년까지 1조 배럴을 사용했고, 이후 2010년까지 1조 배럴을 사용했다. 첫 1조 배럴을 쓰는 데 130년이 걸린 반면 그다음은 고작 20년이 걸린 것이다. 현재 약 1조 배럴이 남아 있다고 한다. 게다가 석유 생산자와 유통업자들의 기구인 국제에너지기구(IPA)는 2009년 보고서에서 석유정점(peak oil)이 2006년에 이미 지나갔다고 밝혔다. 더 이상의 석유가 발견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얘기다. 석유에 기반을 둔 경제성장도 불가능하다. 김종철은 "자본주의가 인간 자신의 능동적인 각성과 단결에 의해서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외적 한계에 봉착하여 무너질 전망이 더 큰 것은 유감"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제부터 인류가 해야 할 일은 새로운 현실 인식에 바탕을 둔 방향 전환이라고 강조한다. "완전히 달라진다!" "앞으로의 세상은 전혀 다른 세상이라는 새로운 인식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180, 185쪽) 즉, 이제 더 이상 경제성장은 불가능하다는 인식 아래, 인류와 뭇 생명과 지구생태계가 공생공락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성장시대의 종언'이라는 김종철의 현실 인식은 아마도 대다수 한국인들에게는 대단히 낯선 주장으로 들리지 않을까 싶다. 지난 196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경험이 경제성장을 지고지선의 가치로 떠받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으로 서유럽이 자유와 번영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 이래 서구 자본주의 근대문명은 세계가 본받고 따라야 할 모범이었다. 특히 한국은 1960년대 이후 엄청난 노력과 희생을 바탕으로 산업화와 민주화, 즉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민주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아마도 일본을 제외하고 비서구 국가로는 가장 먼저 달성했다. 게다가 2016년 가을 이후 촛불시위에 의한 두 번째 민주혁명, '기생충' '미나리' '방탄소년단' 등으로 대표되는 한류 붐, 그리고 코로나19에 효과적으로 대처한 K-방역 등으로 한국은 이제 서유럽, 미국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진국으로 인정받게 됐다. 한국인들도 이러한 스스로의 성취에 커다란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즉, 한국은 서구 따라잡기의 모범생이었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우리가 경제성장을 통해 물질적 번영과 정치적 민주화를 달성했으며 앞으로도 경제성장은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현재 모든 대선 후보들이 기후재앙 등 지구적 위기에 대한 대응은 외면한 채, 성장과 번영만을 약속한 데에서도 이러한 의식구조를 엿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우리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결코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과도한 경제활동으로 지구생태계 자체가 파탄 위기에 직면했다면 선진국, 후진국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특히 지금까지 근대 산업문명을 주도해온 유럽 등이 왜 그린뉴딜 등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 나서고 있는지, 위기에 직면한 지구의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또한 과연 지금 우리의 삶은 행복한가? 코로나19의 창궐과 10년 앞으로 다가온 기후 대재앙이라는 지구생태계의 위기, '헬조선'으로 요약되는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 나아가 미국에서는 트럼프라는 정치적 괴물을 탄생시켰고, 유럽에서는 극우 정치세력과 인종주의를 번성케 했으며, 중남미와 중동과 아프리카 등의 혼란과 비참을 가중시키고 있는 경제적 양극화는 결국 자본주의 산업문명의 불가피한 결과가 아닐까?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근대 자본주의 산업문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경제성장'은 2차 대전 후 미국에 의해 제시된 개념이다. 위에서 말한 대로 1949년 1월 소련과의 체제 대결에서 보다 많은 국가들을 자본주의 진영에 끌어들이기 위한 책략으로서 미국 주도에 의한 세계의 개발과 성장을 약속한 것이다. 19세기 중반까지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극심한 불평등, 이에 대한 기층 민중의 저항에 직면했던 서구 국가들은 19세기 후반 이후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즉 대외 정복으로 국내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었다. 그러나 제국주의적 팽창은 1,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불러와 자본주의 체제는 존망의 위기에 처했었다. 결국 2차 대전 이후 패권국가 미국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복원을 위해 세계에 대해 '더 많은 생산을 통한 번영과 평화'를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서유럽과 동아시아 등 일부 지역은 일정한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으나 여타 지역은 저개발을 벗어날 수 없었고, 이제 팬데믹과 기후위기 등으로 대표되는 지구적 차원의 생태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사실 김종철은 이미 1980년대부터 반(反)경제성장, 반(反)자본주의, 반(反)근대문명이라는 래디칼한 사상을 갖고 있었다. 예컨대 1983년 미국에서 유럽의 생태사상을 접하고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이대로 가면 조만간 멸망을 면치 못한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고 전율을 금치 못했다."(<대지의 상상력> 책머리에) 또 1993년에는 "지금까지 경제학을 지배해온 성장경제 논리가 순환경제의 논리로 전환할 수 있어야만 우리가 생태적, 사회적 위기를 극복하고, 이른바 지속가능한 사회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며 "순환경제를 받아들이자면 무엇보다도 우리가 이 지구상에서 혼자만이 아니라 여럿이서, 다른 생명체들과의 공동체적 연대를 통해서만 생존할 수 있다는 자각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녹색평론선집 1>, 책머리에 7쪽) 따라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그가 20~30년 전부터 예견했던 자본주의적 무한 성장의 불가능함을 드러내는 징표였고, 성장경제에서 순환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계기였다고 할 수 있다. "성장이 멈췄다, 춤을 추자"고 한 이유다. 그동안 성장은 경제적 불평등에 따른 사회적 모순, 계층 간 갈등과 대립 등을 완화해 주는 완충제 역할을 해왔다. 경제적 파이를 키움으로써 하층민의 불만을 달래온 것이다. 그런데 경제성장이 멈춘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김종철은 "'성장시대의 종언'이라는 것은 이제 비로소 인류사회가 '정상적인 상태'를 회복할 수 있는 길로 들어서게 됐음을 알려주는 희망의 신호"이며 "이 희망의 신호를 어떻게 구체적인 현실로 만들 것인가는 우리들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말한다.
* '녹색평론 김종철 약전'은 앞으로 1~2회 연재한 후 끝내고, 이후 '녹색평론 김종철 읽기' 연재로 이어갈 계획입니다. <녹색평론>이나 김종철 선생에 얽힌 일화나 추억, <녹색평론>을 통해 배웠거나 느끼고 깨달은 바가 있으신 분은 [email protected]으로 글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녹색평론 김종철 읽기' 연재를 통해 보다 보다 인간적인 사회를 위한 생각과 느낌을 서로 나눠 가지시길 기대합니다.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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