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관련해서 지난 23일까지 의견서를 받는 기간을 가졌다. 이 법은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했고, 내년 1월27일 시행한다.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법 적용을 3년간 유예됐고,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하지 않기로 했을 뿐만 아니라, 책임자 처벌 강도도 약해 논란이 됐다. <프레시안>은 이 법의 직‧간접적인 당사자인 유족들과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는 이들이 생각하는 이 법의 문제는 무엇인지 등을 담은 글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바로가기 : [중대법, 무엇이 문제인가] "저는 하나뿐인 동생을 '과로자살'로 잃었습니다", "어느날, 자식 하나 못 지킨 못난 부모가 되었다")
중대재해 방치한 기업과 경영책임자
지난해 12월과 올 1월은 유난히 혹심한 한파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계속되는 추위 속에서 국회 본관 앞 대리석 바닥에서 30일간의 단식농성을 강행하고 수십만 노동자가 14년간 투쟁한 끝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었지만 반쪽짜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참담한 심정으로 기자회견을 마치고 병원으로 이송되고 1월 27일 법이 공포되었습니다. 7개월이 지난 8월에 정부가 입법 예고한 시행령을 보니 또다시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법을 제정할 당시에도 노동자의 생명 안전보다는 기업의 이윤을 중요하게 여기는 거대한 장막과 같은 카르텔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난도질하여 5인 미만 사업장 제외, 50인 미만 사업장 유예, 공무원 처벌 조항을 빼는 등 그야말로 반쪽짜리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 거대한 장막과 같은 카르텔은 바로 경제 논리를 앞세운 재계와 기업집단, 그 재계와 기업집단에 포섭된 정치인과 국회의원, 정부 고위관료와 공무원입니다. 그들의 민낯을 지난 국회 앞 단식투쟁과정에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시행령을 가지고 장난질하고 있는 기업과 재계의 카르텔에 포섭된 정부 관료의 장막 앞에서 분노를 금할 수 없습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핵심은 기업과 경영책임자를 처벌해서 모든 기업이 노동자의 생명 안전을 가장 우선시하는 기업의 윤리와 문화를 바꾸고 예방대책을 세워 산업재해와 재난 참사를 예방하는데 취지였습니다. 정부 시행령안은 경영책임자에게 어떻게든지 면죄부를 주기 위해 별의별 꼼수를 다 동원하고 있습니다.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기 위해 적정한 인력과 예산확보 방안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았고 유명무실하게 만들거나 안전관리를 외주화하여 민간기업에 위탁하고 경영책임자는 처벌에서 빠져나가게 하려고 합니다. 기업과 경영책임자의 처벌을 최소화하거나 처벌하지 않기 위해 과로사와 과로 자살, 일터 괴롭힘으로 인한 사망은 적용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직업성 질병의 적용 범위를 축소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일터 괴롭힘과 과로사, 명백한 기업에 의한 살인
과로에 의한 사망자 수가 통계에 잡힌 것만 매년 520여명입니다. 일터 괴롭힘과 부당해고 등으로 죽어간 노동자는 그 통계조차 잡을 수 없습니다. 이들도 산업현장에서 사고로 죽은 노동자와 똑같이 기업에 의한 살인입니다. 장시간 노동과 과도한 업무에서 비롯한 과로사와 과로 자살도 산업재해입니다. 2016년 tvN 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로 일하던 이한빛 PD는 자신은 비정규직 스태프를 관리하는 정규직 관리자로서 드라마 촬영현장에서 비정규직과 프리랜서, 일용직 스태프들에게 가해지는 장시간 노동과 폭력적인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싸우다가 오히려 자신이 탄압받고 배제되었습니다. 이한빛 PD는 비정규직의 장시간 노동과 부당한 해고 등 아픔을 폭로하고 고발하며 죽음으로 항거했습니다. 그는 "카메라 뒤에 사람이 있다"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신하여 외치며 죽음으로 항거했습니다. 그 뒤 2년이 지난 뒤에 CJB 청주방송 이재학 PD는 14년간 일했던 일터에서 동료들의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고 하루아침에 해고시켰습니다.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부당해고 되어 소송하다가 너무 억울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이었던 김동준 군은 일터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죽음으로 항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기업이 이윤추구에만 몰두하고 노동자의 삶과 생명에는 안중에도 없는 기업의 윤리와 문화가 만들어낸 기업에 의한 살인입니다. 그럼에도 고용노동부는 재계를 대변하는 역할을 자임한 듯 근로기준법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적용 법령이 아니라고 주장하여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 일터 괴롭힘도 처벌하지 않겠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정부의 시행령안으로는 과로사, 일터 괴롭힘 등으로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더라도 경영책임자는 의무 위반이 없으므로 처벌 대상에서 제외됩니다.중대재해, 남의 일 아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통과했는데도 지난 6개월간 일터에서 끼이고, 다치고, 떨어지고, 불에 타서 죽고, 직업병으로 죽고, 장시간 노동과 과로, 일터 괴롭힘으로 죽어가는 노동자가 여전합니다. 그 반쪽짜리 법마저도 시행령을 통해 기업과 경영책임자는 몽땅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을 송송 뚫어주려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빠져나갈 구멍을 조문마다 만들어 놓은 법과 시행령으로 애초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의 취지와 목적은 퇴색되어 이 법이 시행된다 해도 그 실효성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스럽습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적용 범위에 과로사와 일터 괴롭힘을 배제한 것은 기업과 경영책임자에게 면죄부를 주어 일터에서 계속되는 노동자의 죽음을 방치하는 것입니다. 이래서는 죽음의 행렬을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비정규직, 일용직,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노동자는 대부분 죽음의 외주화로 내몰려 안전하지 않은 일터에서 목숨을 걸고 일해야 하는 직종에 몰려있고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정 노동에 시달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일터에서 일하다 기업에 의한 살인을 당하고도 그 누구도 책임지거나 처벌도 할 수 없다니 비정규직과 취약 노동자는 죽음마저도 차별하는 법과 시행령을 만들다니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정부는 반쪽짜리 법마저 시행령을 통해 기업과 기업책임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장난질을 당장 중단하고, 일터 괴롭힘, 과로사, 모든 직업병 목록을 시행령에 포함하는 시행령을 제정해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중대재해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 내 가족이나 내 주변에 지인이 일터나 공공장소에서 생떼 같은 목숨을 앗아갈지도 모릅니다. 저도 이한빛 PD가 죽기 전에는 행복하고 단란한 우리 가정에 이런 일이 일어나고 유가족이 되리라고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청천벽력이 내리치며 내 목숨보다 소중한 아들을 잃었습니다. 다시는 저와 같은 유가족이 나오지 않도록 국민 여러분이 나서서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놓고 장난질하는 재계와 정부 관료들을 저지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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