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장 없이 일하는지 전상화 변호사는 직접 전화를 받았다. "판사 여러 명과 극한대결을 하시는데..." 전화 건 이유를 다 설명하기도 전에 전 변호사가 말을 끊었다.
"그 문제는 제 인터넷카페에 자세~히 정리해 놨습니다. 그걸 읽으면 금방 이해가 될 겁니다. 그래도 혹시 이해 안 되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다시 연락 주십시오."
높은 톤, 빠르고 단호한 경상도 말투. 전 변호사는 자신을 만나기 전 넘어야 하는 ‘장벽’을 안내하고 전화를 끊었다. 인터넷카페 링크가 담긴 문자메시지가 그의 말투처럼 빠르게 도착했다. 링크를 타고 카페에 들어갔다.
'어쩌면 검찰보다 법원이 더 문제입니다.'
'법관특권 관련 헌법소원.'
'대법원 판례가 위헌입니다.'
법원, 판사, 심지어 대법원장과 싸우는 변호사. 엉터리 재판을 한 판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도 모자라,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소까지 한 인물 전상화. 그의 캐릭터를 확실히 알려주는 듯한 제목, 실제 사례로 소개된 ‘법원도 조폭 집단인가’를 클릭했다.
"대한민국 법관들, 자기들이 지켜야할 규정은 다 훈시규정(임의규정)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것도 모자라, 법률의 강행규정(강제규정)을 위반해서 판결해도 법관은 아무런 책임이 없답니다. (중략) 법관의 면책특권은 헌법에도 근거가 없고 법률에도 없습니다. 자기들이 권한도 없이 임의로 판결로 만들었습니다. 주권자인 국민에 대한 반역입니다."
뒤이어 나오는 '실제 사례'를 읽었다. 이게 과연 '조폭'에 '반역'까지 붙여가며 판사와 수년째 싸울 만한 일일까? 전 변호사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의 목소리 톤이 한 옥타브 더 올라갔다.
"벌써 다 읽었어요? (잠시 침묵) 뭐 굳이 저를 만나고 싶다면 제 사무실로 오십시오. 종로5가역 6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보입니다."
무더위가 절정이던 지난 7월 말, 그의 사무실로 향했다. 서울지하철 1호선 종로5가역 6번 출구로 나오자 바로 보이는 건 변호사 사무실이 아니라 노상에서 떡을 파는 할머니였다. 그 뒤로 신발 깔창, 고무줄, 편지봉투, 면봉 등을 파는 노인이 보였다. 길 건너편은 광장시장입구, 그 너머는 농약과 쪽파, 달래 씨앗과 모종 등을 파는 가게였다. 어딜 봐도 변호사 사무실은 없었다. 스마트폰 지도로 ‘전상화 변호사’를 검색했다. 내가 서 있는 곳, 6번 출구 앞이 정확히 찍혔다. 뒤돌아 낡은 건물을 살폈다. 지은 지 36년 된 흥일빌딩. 출입구 양옆으로 건물보다 오래 그 자리를 지킨 듯한 좌판이 보였다. 오른쪽 좌판에선 2000원 짜리 호박엿과 편강, 천년초 분말, 생 알로에가 땡볕에서 손님을 기다렸다. 왼쪽 좌판에는 때비누, 누룽지, 갱엿, 뻥튀기 봉지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날 더운데 어디 찾아오셨어?"
알로에 파는 중년 여성이 부채질 하며 물었다. “변호사 사무실을 찾는다”고 하자 그는 부채로 뻥튀기 봉지를 가리켰다. 뻥튀기 봉지 뒤쪽, 파란색 바탕에 흰색으로 크게 적힌 ‘변호사 전상화’ 간판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 흥일빌딩 꼭대기 쪽을 바라봤다.
'법률'
어떤 수식어도 없이 붉은색으로 5층 창문에 적힌 두 글자, 전상화 변호사 사무실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5층까지 걸어 올라갔다. 땀이 줄줄 흘렀다. 전 변호사는 박카스 한 병을 따서 나에게 내밀었다.
"존경하는 판사님은 책임지지 않는다, 그 기획 아주 훌륭합니다! 확신을 갖고 밀어붙이세요. 판사도 잘못했으면 책임을 져야죠! 말로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면서, 정작 법 위에 있는 군림하는 게 바로 대한민국 판사들입니다."
사무실 소파에 앉자마자 전 변호사는 훅 들어왔다. 그의 높고 빠른 목소리가 30평 쯤 되는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국가배상법 2조1항! 공무원이 고의 또는 과실로 법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면 국가는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 근데, 왜 판사는 예욉니까? 내 사건은 아주 기가 막혀요. 판사가 법률 조항도 모른 채 엉터리 판결을 했습니다. 아니, 판사가 법도 모르고 법전 한 번 들춰보지 않고 판결할 거면 왜 법대 위에 앉아 있습니까? 차라리 재판 AI한테 맡기지."
전 변호사의 입 양쪽 끄트머리에 하얗게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확신에 찬 그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입가의 침방울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침 닦을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그의 높아진 감정도 낮출 겸 내가 질문으로 말을 끊었다.
"고작, 자영업자 한 명 때문에 법관들이랑 그렇게 심하게 싸우면 변호사님 손해 아닌가요? 변호사님 성공보수 손해 본 것도 400만 원밖에 안 되고..."
날 바라보는 전 변호사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는 오른손으로 입가의 침을 천천히 닦았다. 나는 이마의 땀을 닦았다.
"고작 자영업자 한 명이요? (잠시 침묵) 제가 돈 400만 원 아까워서 몇 년째 이러는 걸로 보입니까?"
전상화 변호사는 이전과 달리 낮고 느리게 말했다.
"판사가 잘못된 판결을 하면 힘없는 서민이 어떻게 되는지 박 기자님이 직접 확인해 보세요. 제가 그 자영업 하는 세입자 분 연락처 알려드리겠습니다."
첫 만남은 이렇게 끝났다. 다시 1층까지 걸어 내려왔다. 지하철 타고 강북구 미아동으로 향했다. 전상화 변호사가 스스로 ‘바위 깨는 계란’이 되길 다짐하면서 판사들과 극한대결을 시작하게 된 ‘실제 사례’, 그 주인공 A 씨를 만나야 했다. A(67년생) 씨가 찾아오라고 알려준 곳은 식당 등 자영업 간판이 빽빽한 미아동의 한 건물 지하였다. 본격적인 저녁 장사를 할 시간인데 지하에선 음식 냄새가 안 났다. 해산물 요리를 파는 200평 쯤 되는 식당에 사장 A 씨가 혼자 앉아 있었다.
"문 열어봤자, 손님도 없고... 코로나 때문에 문을 열어도 적자예요. 또 망한 거죠 뭐."
몰락이 익숙한지 A 씨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치킨, 국밥, 보쌈, 참치, 초밥, 복어 등 34년간 다양한 식당을 운영했다. 때로는 흥하고 종종 망했다. A 씨는 “그 흥망의 역사가 책 한 권 분량 정도 된다”고 말했다. 정말로 책을 써도 되는 문제의 사건은 2016년 11월에 벌어졌다. 그때 A 씨는 건물주로부터 식당을 비워달라는 내용증명을 받았다. 계약 기간이 아직 1년 더 남은 때였다. 그해 12월 건물주는 “임대료 밀렸으니 건물을 비워달라”는 명도소송을 제기했다. 이상한 일이다. A 씨와 건물주는 “임대료 3개월을 연체하면 임대인(건물주)은 계약을 해지 할 수 있다”고 계약했고, 당시 밀린 임대료가 3개월치가 안 되기 때문이다. A 씨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임대인이 소송을 제기했으니 대응을 해야 했다. 지인 소개로 전상화 변호사를 만났다. 전 변호사도 확신에 차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계약서에 딱 적혀 있고,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10조의8(차임연체와 해지)에도 ‘연체액이 3기(3개월)의 차임액에 달할 때’에만 임대인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습니다. 이길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A 씨는 이 말을 믿었다. 하지만 서울북부지방법원 임창현 단독 판사는 “2기 이상의 차임을 연체하여 임대차계약 해지의 요건은 갖추어졌다”면서 A 씨에게 건물을 비우라고 2017년 11월 15일 판결했다. "2개월 연체했으니 건물을 비워야 한다"는 건 계약서에도 법에도 없는 내용이다. 임창현 판사가 엉터리 판결을 한 셈이다. A 씨는 어떻게 됐을까?
"제 자영업 역사에서 치명타였죠. 그 판결로 가게를 비워줘야 했고, 권리금 3억 원도 못 받았습니다. 법대로 판결이 나왔으면 이렇게 힘들진 않았겠죠."
이 패배로 전상화 변호사는 성공보수 400만 원을 못 받았다. A 씨는 자신을 대리했던 전 변호사에 대해 “사람은 참 좋은데, 능력은 없다”고 평가했다. 왜 이렇게 생각할까.
"어쨌든 재판에서 졌잖아요."
A 씨를 만나고 얼마 뒤인 8월 중순께, 다시 전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전 변호사는 ‘내 말이 맞지?’하는 얼굴로 날 바라봤다. 전 변호사는 A 씨 사건 판결 이후 펼쳐진 판사와의 극한대결, 어쩌면 사법부가 ‘악성 민원인’으로 여길 법한 풀 스토리를 풀어냈다. 그의 목소리는 다시 높고 빨라졌다.
"물론 판사도 사람이니 실수할 수 있죠. 고의든 아니든, 자기 잘못으로 누군가 피해를 봤으면 사과하고 책임을 지는 게 상식 아닙니까? 우리 다 그렇게 살잖아요. A 씨는 무려 3억 원을 손해 봤는데, 임창현 판사는 사과 한마디 없고..."
전 변호사는 국가와 임창현 판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2017년 12월 제기했다. 그는 소장에 이렇게 썼다.
"임창현의 고의 내지 과실에 의한 위법한 판결로 저는 성공보수를 못 받았고, 의뢰인으로부터 신뢰를 잃는 등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입었습니다. 위자료 2000만 원을 청구합니다. 국가만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할까 하다, 향후 국가에서 용이하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임창현도 공동 피고로 합니다."
피고 임창현 판사는 아래 내용의 짧은 답변서를 2018년 1월 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8단독에 냈다.
"원고(전상화 변호사)의 청구원인은 주장 자체로 이유 없음이 명백하므로, 무변론 기각판결을 선고하여 주시거나 직권으로 소송비용담보제공명령(이하 담보제공명령)을 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사건을 맡은 심창섭 판사는 원고 전상화에게 소송비용에 대한 담보로 900만 원을 공탁하라고 그해 6월 26일 결정했다. 이 결정은 전 변호사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담보제공명령은 ‘원고가 대한민국에 주소‧사무소와 영업소를 두지 아니한 때 또는 소장‧준비서면, 그 밖의 소송기록에 의하여 청구가 이유 없음이 명백한 때’에 내려지는 겁니다. 아니, 변호사인 제가 대한민국에 주소가 없습니까, 사무실이 없습니까? 굉장히 이례적인 결정인데, 감히 판사한테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니까 괘씸죄를 적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 변호사는 이 결정에 불복해 항고했다. 재판부 기피신청도 했다. 두 사건 모두 대법원까지 갔다. 하지만 전상화 변호사는 줄줄이 패했다. 국가배상소송에서도 전 변호사는 졌다. 그래도 담보제공명령 항고심 결정문에는 전 변호사의 핵심 문제의식이 담겼다. 바로 자영업자 A 씨 사건을 맡은 임창현 판사가 위법한 판결을 했다고, 항고심 재판부가 인정한 것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등의 개정과 A가 체결한 임대차 계약의 특약 등에 비추어보면 3기분(3개월) 이상의 임대료를 연체한 경우에만 계약 해지가 가능함에도, 임창현이 2기분 이상의 임대료를 연체한 경우에도 계약을 해지 가능한 것으로 오인하는 바람에 A에게 건물의 인도를 명한 것은 잘못이지만..."
판사 임청현의 잘못은 인정. 뒤이어 나오는 내용은 판사들에게 숱하게 면죄부를 준 바로 그 판례, “법관의 재판에 법령의 규정을 따르지 아니한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되려면 법관이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했다”는 게 입증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ᅠ2003. 7. 11.ᅠ선고ᅠ99다24218) 이 대법원 판례를 어떻게든 바꾸는 것. 전상화 변호사의 궁극적인 목표다. 이 판례가 바뀌지 않는 한 법관의 잘못에 책임을 묻는 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전 변호사의 목소리는 이 문제를 지적할 때 최고 높은 옥타브를 찍었다.
"헌법과 민법, 국가배상법을 보세요. 모든 국민은 1)고의 또는 과실 , 2)위법행위 , 3)손해의 발생이라는 세 가지 요건이 구비되면, 불법행위가 성립됩니다. 유독 법관만은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까지 있어야 불법행위가 성립한다는 겁니다. 이는 '법 앞에 평등'을 규정한 헌법에 명백히 반하는 겁니다!"
판사와의 대결에서 모두 진 전 변호사는 사건을 헌법소재판소로 끌고 갔다. 그는 판사에게만 국가배상 책임 요건을 다르게 적용하는 대법원 판례는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심판청구를 작년 1월 제기했다. 헌재는 “법관의 판결은 헌법소원심판 대상이 아니”라며 지난 7월 이 청구를 각하됐다. 전 변호사는 멈추지 않고 임창현 판사 등을 지난 7월 공수처에 고소했다. 공수처가 제대로 수사할지는 의문이다. 패배가 쉽게 보이는 싸움. 전상화 변호사는 왜 그토록 돈키호테처럼 돌진할까. 피곤하진 않을까? 그가 자세를 고치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법의 모순과 맹점은, 그 법으로 인해 피해를 당하는 사람만이 그 모순점을 알고 개선하려고 하는 겁니다. 법과 제도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그걸 분석하거나 깨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다시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했다.
"우리 국민들은 엉터리 수사하는 경찰, 검찰을 비판하고 비난합니다. 그런데 엉터리 판결을 한 법관에 대해서는 비판도 잘 안 합니다. 군사정권 시절에 판사들이 저항했다는 말 들어봤어요? 그 숱한 오판으로 조작사건에 가담한 판사들이 직접 사과하는 거 본 적 있어요?"
전 변호사의 입가에 다시 하얀 침이 다시 고이기 시작했다.
"잘못은 늘 경찰, 검찰에게 돌리고 자기들은 고고한 척 책임도 안 지고! 이런 상황을 계속 가만히 지켜만 봐야 합니까? 수술실 CCTV 설치하고, 의료사고 나면 의사들 책임을 엄중히 묻는데, 판사에겐 언제까지 면책특권을 보장해야 합니까?"
입가에 고인 침은 이번에도 떨어지지 않았다. 전 변호사는 입가를 천천히 손으로 닦았다.
"재판 때 녹음만 신청해도 판사들 태도가 달라집니다. 감시와 견제가 필요한 겁니다. 판사도 실수나 고의로 잘못된 판결을 하면 책임진다는 사례가 쌓여야, 좋은 재판이 이뤄집니다. 그래야 A 씨 같은 어처구니없는 피해자가 안 생기죠. 이런 게 정말 제상을 바꾸는 겁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면서 끝까지 싸울 겁니다."
법관 상대로 숱하게 소송을 제기하고, 수없이 패한 전상화 변호사. 누군가의 눈에 그는 괜한 고집을 부리는 사람, 특히 사법부에겐 악성 민원인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승률로만 따진다면, 전 변호사는 A 씨의 말대로 무능한 변호사일 수도 있다. 속칭 '능력 좋은 변호사'는 때비누, 호박엿, 뻥튀기, 달래 씨앗 등을 팔거나 사는 사람이 많은 종로5가에 없다. 무엇보다 그런 변호사는 임대료 100여만 원 밀려 명도소송을 치러야 하는 임차인을 잘 대리하지 않는다. 인터뷰를 마치고 1층으로 내려오자 주변이 시끄러웠다. 광장시장 쪽 과일가게에선 누가 실수를 했는지, 손님과 주인이 거스름돈 문제로 서로 목청을 키우며 싸우고 있었다. 해질녘, 종로5가 사거리에서 흥일빌딩 쪽을 바라보자 군더더기 없는 두 글자 '법률'이 더 붉게 보였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