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천지에 의혹의 먼지가 자욱하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여권과 야권의 가장 유력한 두 대선후보가 동시에 수사를 받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대장동 개발 의혹'과 '고발 청부' 사건. 지금으로서는 그 결말을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시계(視界) 제로'다. 양쪽 사건의 핵심 인물에 대한 수사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장동 개발 의혹의 키맨 중 한 사람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배임 및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고발 청부 사건의 핵심인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에 대해서도 공수처가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면서 사법처리가 초읽기에 들어간 분위기다. 지금까지 드러난 물증들을 볼 때 제3의 인물을 시켜 고발장을 작성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한 일이 아니다"고 발뺌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관심의 최대 초점은 이재명 경기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직접적 연루 여부다. 만약 대장동 개발과 관련한 불법 자금이 이 지사에게 흘러 들어간 정황이 드러나거나, 윤 전 총장이 고발 청부에 직접 개입한 사실이 확인되면 '상황 끝'이 된다. 하지만 수사 결과가 그 정도로 딱부러지게 나올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결국 '측근' 내지는 '부하 직원'의 일탈행위에 대한 책임과 정치적 타격이 어느 수준에 이를 것인가가 관전 포인트다. '아랫사람의 과오는 윗사람의 허물'임은 상식이다. '모범적 공익사업' 치적이라고 자랑했던 대장동 개발의 추악한 이면이 드러나면서 유권자들이 느끼는 실망감, 조직 관리 소홀에 따른 행정 능력의 신뢰 상실 등은 이 지사가 감내해야 할 '정치적 치명상'이다. 그런데 측근의 일탈행위라는 측면에서만 볼 때 책임의 무거움은 윤 전 총장 쪽이 훨씬 더해 보인다. 지자체 산하기관 간부와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의 위상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이 지사와 유 전 본부장의 관계가 '가는 점선'이라면, 윤 전 총장과 손 검사의 관계는 '굵은 실선'으로 연결돼 있다.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은 검찰 안팎의 정보를 모아 검찰총장에게 전달하는 눈과 귀요, 총장의 내밀한 지시를 수행하는 손발이다. 눈과 귀, 손발이 한 일을 머리와 몸통이 몰랐다는 것 자체가 수사 결과와 상관없이 상식적으로는 신빙성이 떨어진다. 더욱 중요한 차이는 '범죄이익의 귀속' 문제다. 지금까지 드러난 수사 결과만으로 볼 때는 유 전 본부장의 일탈행위는 본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고발 청부 사건의 '범죄이익'은 애초부터 윤 전 총장을 위한 것이었다. 고발장의 명예훼손 피해자가 윤 전 총장과 부인 김건희씨 등인 것만 봐도 그렇다. 검찰총장과 부인이 명예훼손 피해자로 적시된 고발장이 본인도 모르게 야당 쪽에 전달됐다는 것부터가 상식적으로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게다가 윤 전 총장이 그동안 줄곧 "정치공작"을 주장해온 점을 감안하면 간단히 "유감 표명'만으로 끝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대장동 개발 의혹을 관통하는 또 다른 핵심 단어는 '설계'다. 국민의힘은 대장동 개발의 '설계자'가 결국 이 지사라며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야당 쪽에서 대장동 개발의 설계 문제를 들고나오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애초 LH가 공영개발을 하기로 한 대장동 땅을 민간개발로 '설계'를 바꾼 당사자는 바로 국민의힘이다. 초과이익 환수는 고사하고 원천적으로 '기초이익'도 환수하지 못하도록 밀어붙인 자신들의 행위부터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는 것이 순서다. 사실 대장동 땅만이 아니라 '부동산 개발이익 환수 반대'는 야당이 유구하게 지켜온 '국가 설계 지도'다. 민간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분양가상한제 도입 등에 대해 "시장 원리에 맞지 않는 사회주의적 발상" "자본주의가 붕괴된다"는 등의 주장까지 펼치며 반대한 게 지금의 야당이다. "국민보다는 건설업계를 대변하는 정당"이라는 시민사회단체들의 비판이 무성했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국민의힘을 지탱하는 기본 이념과 철학은 '시장'과 '민간 자율'이다. "시장 논리에 충실해야 한다" "민간이 하는 일에 정부는 가급적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흔들리지 않는 신조다. 이런 철학에 기반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도, 분양가상한제 도입도, 대장동의 공영개발도 반대한 것이다. 그런 철학이라면 민간인들이 대장동 개발에 뛰어들어 막대한 수익을 올린 것은 '민간인들의 노력 + 시장 상황의 변화 결과'이니 비난할 일도 아니다. 국민의힘이 한편으로는 '민간개발의 당위성'과 '시장의 논리'를 부르짖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초과이익 환수 미비'를 비판하는 것은 이율배반이고 자기모순이다. 이런 코미디와 같은 상황을 국민의힘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번 두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교훈과 과제는 분명하다. 고발 청부 사건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인 검찰개혁의 당위성을 다시 일깨워준다. 제왕적 검찰총장 지배 아래 고착된 검찰의 사조직화,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는 탈법·위법도 서슴지 않는 오만함, 정치적 독립성 가면 뒤에 숨은 정치권과의 은밀한 결탁 등 검찰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야 한다. 대장동 사건의 교훈과 과제 역시 자명하다. 땅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없애고 그 이득을 온전히 공공의 몫으로 돌리는 일이다. 부패·비리 연루자를 낱낱이 찾아내 엄벌에 처하는 것은 마땅하지만 이 사건이 일회성 에피소드나 '정치적 소비' 대상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번 기회에 땅의 경제학, 땅의 윤리학을 새롭게 가다듬고 획기적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마주한 과제다. 보수정당은 '시장'을 맹신한다. '보이지 않는 손'의 힘을 믿는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애초 그런 손이 없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듯이, 시장만능주의자들이 믿는 이상적 시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탐욕스러운 손'의 농간이 더 횡행하는 것이 현실의 시장이다. 땅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땅은 불로소득의 가장 손쉬운 원천이자 부패의 최대 온상이라는 사실을 온 국민이 이번 기회에 생생히 체험학습을 하고 있다. 이제 땅 문제에 대한 '원초적 설계'를 새롭게 할 때다. 여야 대선후보들은 땅과 부동산 정책에 대한 확고한 정책적 지향점을 밝히고 구체적 설계도면을 공약으로 제시해야 한다. 특히 야당 후보들은 자기모순적 태도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정책 방향이 어느 쪽인지 솔직히 밝혀야 한다. 부동산공화국을 해체할 근본적인 정책을 놓고 여야 간, 각 정당의 대선후보들 간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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