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노회찬의 기록이야기 제목은 <기록으로 찾아가는,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 칼 마르크스에서 브라질의 룰라까지>이다. 칼 마르크스부터 브라질의 룰라에 이르기까지 '나라 밖 인물' 20여 명과의 직·간접적인 만남과 인연을 주제로 노회찬의 여정과 활동을 재구성한 것이다.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은 11월 1일부터 매주 월·수·금 3번 씩 연재된다. '평등하고 공정한나라 노회찬재단'(노회찬재단)과 <프레시안>이 함께한다.편집자.
삶, 만남, 인연, 그리고 <노회찬 6411>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인연을 만난다. 직접적으로든, 아니면 그 사이를 잇는 매개물을 통해 간접적으로든. 노회찬이 '마음의 스승'으로 모신 신영복 선생은 "우리의 삶은 사람과의 만남이며, 사람과 사람의 작은 만남이 모든 변화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사람'으로 읽어도 좋습니다. '삶'으로 읽어도 좋습니다. '사람'의 준말이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우리가 일생동안 경영하는 일의 70%가 사람과의 일입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의 삶과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일입니다." 신영복
"사람과 사람의 작은 만남이 모든 변화의 시작입니다." 신영복
'우리의 삶은 사람과의 만남'이자 '사람과 사람의 작은 만남이 모든 변화의 시작'이라는 것은 영화 <노회찬 6411>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노동운동가 노회찬', '진보정치가 노회찬', '인간 노회찬'을 담담하게 그린 이 영화에는, 노회찬과 이러저런 사연을 지닌 많은 길동무가 등장한다. 민환기 감독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힌다.
-인터뷰 내용 중에 혹시 영화에 담지 못해서 아쉬웠던 대목이 있나요."많은 분이 우셨어요. 그냥 우는 게 아니었어요. 얼마나 슬퍼하는지 알 수 있는 눈물을 봤어요. 3년이 지났는데도 그랬어요. 그 눈물만 이어놔도 되겠다 싶을만큼요. 노회찬 의원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겠더라고요. 하지만 너무 슬프게 끝나게 될까봐, 영화에는 한분만 넣었지요." -<노회찬 6411>을 만든 감독에게는 노회찬 의원이 어떻게 기억될까요.
"노회찬 의원은 '사람을 사람으로' 본 분이셨던 것 같습니다. 못 배웠다고 해서 가르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들으셨다고 해요. 그리고 다들 노회찬 의원을 만나면 그렇게 즐거우셨대요. 저에게 노회찬 의원은 인간이라는 불안한 존재에 대해 지치지 않는 존중을 보냈던 사람, 인간에 대한 믿음을 거두지 않았던 사람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민환기 ('노회찬 6411' 민환기 감독 "노회찬은 사람을 사람으로 본 정치인", 경향신문, 2021.10.10.)
노회찬과 길동무들의 3여 년만의 영화 속 재회는 특히 청년들에게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 또는 '발견'이라는 뜻밖의 선물을 건넨다.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것의 감동"을 강조하며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선한 영향력'을 이 영화는 가지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중략)… 함부로 재단할 일은 아니지만 오랜 세월을 살아오신 분들은 아무래도 자신이 경험한 수많은 사건의 맥락 속에서 이 영화를 평가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대개는 노회찬의 삶에서 강조해야 할 부분에 대한 판단이다. 그 강조 지점은 자신의 경험과 연결돼 있다.
…(중략)… 하지만 청년들의 반응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영화를 본 청년들의 이야기는 노회찬의 삶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는 느낌을 강하게 전해 준다. '만났다'라는 말보다는 '발견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일은 그 자체로 감동을 준다. 그들에게 이 영화는 해부하고 분석하는 재료로서가 아니라 경험해보지 못했던 세계가 전체로서 새롭게 다가온 듯하다." 김형탁 (王의 정치와 正의 정치, <매일노동뉴스>, 2021.10.22.)
영화 촬영 전까지 '노회찬의 이름만 알았다, 아는 게 거의 없었다'는 20대 청년, 조감독 조유경과 김지수는 1년여에 걸친 촬영 작업을 마친 뒤 이렇게 마음을 전했다.
"약 11개월 동안 다큐를 만들며 노회찬 전 의원과 함께 했음에도 나는 여전히 그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나 동료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그의 마음, 노동자·국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자 했던 한 사람의 꿈과 노력, 진심만큼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영화를 볼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이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조유경 (<노회찬 6411> 조연출이 바라본 '인간 노회찬', <오마이뉴스>, 2021.10.16.)
"개인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노회찬 전 의원에 대한 글이나 기사에 악플을 다는 이들에게 이 영화의 티켓을 선물로 주고 싶다." 김지수 (<노회찬 6411> 조연출이 바라본 '노회찬의 사람들', <오마이뉴스>, 2021.10.19.)
'다섯 번째 기록 이야기' 연재의 구성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인연과 얽히고설키며 만나고 헤어진다. 그리고 그 인연을 통해 배우고 때로는 후회하며 깨닫는다. 때로는 감동받고 때로는 분노하기도 한다. 노회찬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과 직·간접적인 인연을 맺었다. 그런 인연 가운데는 알게 모르게 노회찬의 삶에 자양분이 된 만남도 꽤 있었을 테다.
2018년 7월 노회찬이 떠난 뒤 시작한 '기록이야기' 연재의 첫 주제도 '만남'이었다. <노회찬 OOO을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2018년 11월 15일부터 2019년 12월 30일까지 총 16회에 걸쳐 전태일, 신영복, 김진균, 오재영, 세종대왕, 세월호 참사 희생자, 4.19의 희생자, 노무현, 김종필, 조봉암, 김대중, 정운영, 박정희, 김영삼, 이재영, 김근태 등을 만났다. 이번 기록 이야기는 <노회찬 OOO을 만나다>, <노회찬의 꿈과 길>, <노회찬과 여덟 장면 톺아보기>, <6411 투명인간과 약자들의 벗 노회찬>에 이은 다섯 번째 연재로, 주제는 <기록으로 찾아가는,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이다.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대한민국이라는 경계를 넘어 맺은 여러 인연의 끈을 통해 노회찬의 흔적을 찾아보려 한다. 그가 남긴 기록과 기억의 조각들, 그리고 그의 길동무들과 지인들이 남긴 사료들을 모아 몇 개의 범주로 묶었다. 불완전한 퍼즐 조각을 끼워 맞춘 이야기도 있다. 또 딱딱한 주제만이 아니라 가벼운 에피소드를 찾아 소개하려 한다.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에 등장하는 이들은 나라 밖 인물 산책의 길잡이 또는 동행인이 되어 함께 산책길을 걷는다. 노회찬의 작은외삼촌 원태진과 마음의 스승 신영복 외에, 이진경, 이상엽, 박병우, 이광호, 황광우, 리영희, 정수일, 장 석, 정운영, 김민정, 손호철, 박세열, 손문상, 이재영, 주대환, 이인우, 서영표, 박창규, 구영식, 한귀영, 이정미, 김어준, 장석준, 김수민, 박갑주, 조효제, 박용진, (최김)경호, 목수정, 한애규, 김지선, 장광렬, 조돈문, 하수정, 최연혁, 김형탁, 정경섭, 홍세화, 강상구, 윤선주, 박노자, 박홍순, 손석희, 하종강, 이범, 조희연, 김윤철, 김동춘, 윤영상, 정광필, 진선미, 정용상, 이근원, 오삼교, 오재영, 김정진 등. 강병인 작가와 염은비 작가는 중간중간 작품으로 함께 동행했다.
노회찬의 기록에는 송년맞이 등 인사를 하면서 신영복 선생의 '야심성유휘(夜深星逾輝,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난다)'라는 글귀와 함께 희망을 찾아가는 '길동무'라는 낱말이 자주 등장한다.
"야심성유휘(夜深星逾輝).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납니다."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가는 것은 아닙니다. 눈물도 흐르고 희망도 흘러갑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을 걸을 때 가장 소중한 사람은 함께 손을 잡고 그 길을 걷는 길동무들이라 합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연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두 가지다. 무엇보다 먼저, 기록 정리에 대한 노회찬의 강조였다. '선대본 일기(노회찬의 난중일기)'를 모아낸 <힘내라 진달래>(사회평론, 2004)를 내며 노회찬은 서문에 "우리가 가는 길이 바로 역사이고 이를 기록하는 것은 나의 임무라고 생각했다"고 적었다. 그리고 역대 왕조의 기록을 이만큼이나마 집대성한 <조선왕조실록>에 대해서는 "<조선왕조실록>은 오늘날 많은 역사가들과 문학가들에게 연구와 창작, 그리고 상상력의 보고로 애용되고 있는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나는 노회찬의 지나온 여정을 여러 각도에서 기록하고 정리하는 것을 나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오래 전에 읽은 비교정치학자 고세훈 고려대 명예교수의 <영국노동당사-한 노동운동의 정치화 이야기>(나남, 1999) 머리말에 적힌, "활용할 만한 기록이 별로 없는 한국 정치의 현실"이라는 글귀가 준 부담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영국) 노동당 정치의 산 역사이며 대모격인 바바라 카슬은 정치인이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것은 범죄에 해당한다고 단언했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펴낸 회고록과 일기, 전기, 자서전 등이 없었다면 그나마 이 책은 더욱 부실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기록의 보고(寶庫)의 나라 영국, 그 정치의 편린이나마 엿보면서 나는 내내 활용할 만한 기록이 별로 없는 한국 정치의 현실을 생각했다. 그러면서 나는 기록할 만한 정치, 그리고 하루의 정치현장을 뒤로하고 매일 밤 외롭게 책상 앞에서 그 날의 정치를 끊임없이 회고해내는 정치인들이 있는 나라의 정치를 꿈꾸듯 상상했다." 고세훈
노회찬의 떠나는 길에 장례위원장을 맡은 문희상 당시 국회의장은 추도사에서 그를 "시대를 선구한 진보정치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노회찬의 오랜 길동무였던 주은경과 이금희는 그를 "자랑스런 정치인"이자 "유일하게 진짜였던 초대 손님"이라고 말했다.
"당신은 항상 시대를 선구했고 진보정치의 상징이었습니다. …(중략)… 정치의 본질이 못 가진 자 없는 자 슬픈 자 억압받는 자 편에 늘 서야 한다 생각했던 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 (중략)… 당신의 삶은 많은 이들의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문희상 (추도사 2018.7.27.) "노회찬은 우리나라에도 이런 정치인이 있다고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자랑스러운 사람." 주은경 (페이스북, 이중잣대의 칼날이 노회찬을 죽였다, 2018.7.29.) "14년 전 건너편 방송국에서 진행자와 초대 손님으로 처음 만났다. 여의도동 1번지에 있는 꽤 많은 분을 초대 손님으로 모셨는데, 내 기억으로는 유일하게 진짜였다." 이금희 (추모문화제 소개말, 2018.9.7.)
'유일하게 진짜였던, 자랑스런 정치인'이 되기까지 노회찬은 고등학교 시절에는 '반유신 민주화운동가'로, 전두환 정권하에서는 '대중의 힘에 기반을 둔 혁명을 통해 독재 타도'를 꿈꾼 노동운동가로, 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진보정당의 설계자이자 개척자'의 길을 걸어왔다. 이후 진보정당의 3선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매진했다.
<시사IN>의 천관율 기자는 노회찬의 삶에 대해 이렇게 글을 썼다.
"그는 촌철살인의 대가였고, 현실주의적 진보주의자였으니, 이 모두를 포괄하는 것이 진보정치인이다. 진보정치인이라는 말은 지금 시점에서 보면 전혀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그의 세대에서 진보와 훨씬 잘 어울리는 짝은 '운동'이었지 '정치'는 아니었다. 진보주의자에게 제도권 정치는 이상을 접고 현실에 투항한다는 뜻이었다. 노회찬은 진보진영을 이탈하지 않으면서 정치를 진보의 무기로 재발견한 첫 세대를 대표한다. 지금 시점에서 진보정치인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한 단어로 들리는 데는 분명 그의 기여가 있다." "노회찬은 이상주의자여서 세상을 바꿀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동시에 그는 현실주의자여서 그 목표를 이뤄낼 수단을 찾아내야만 했다. 진보는 너무 큰 목표여서 정치를 쓰지 않고는 이룰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진보정치가로 살았고, 진보정치가로 삶을 마감했다." 천관율 (노회찬은 이런 정치인이었습니다, <시사IN>, 568호, 2018.8.6.)
생애 내내 진보적 이상과 현실주의가 만나는 접점을 탐색한 탐험가, 노회찬. 그는 '독서는 만남'이라는 지론처럼 책과 여행을 통해 끊임없이 탐색했다. 노회찬이 남긴 말글처럼, 그 탐색은 최종적으로 '자신과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책은 만나기 위해서 읽습니다. 자연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과거를 만나고 최종적으로 자신을 만나기 위해 책을 읽습니다."
그 가운데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이나 양사익우(良師益友)로 삼을만한, 혁명이나 운동·정치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한 나라 밖 인물들도 다수 있다. 이번 연재의 첫 번째 이야기 묶음은 <혁명, 그리고 정치>로 무국적자 칼 마르크스, 러시아(소련)의 블라디미르 레닌, 베트남의 호치민, 중국의 저우언라이, 독일의 로자 룩셈부르크,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그람시, 쿠바의 체 게바라와의 만남과 인연이다. 노회찬이 고등학교 시절 이후 본격적인 합법 진보정당 활동 전까지 많은 지적, 실천적 자양분을 준 인물들이다.
두 번째 이야기 묶음은 <유럽 사회민주당 정치인>으로 영국 노동당의 키어 하디와 켄 리빙스턴, 독일사민당의 빌리 브란트, 프랑스 사회당의 장 조레스와 프랑스와 미테랑, 네덜란드 노동당의 빔 코크와의 만남과 인연이다.
세 번째 이야기 묶음은 <사회의 공기까지 바꾼 스칸디나비아 복지 모델, 북유럽 사민주의 복지국가>로 스웨덴의 올로프 팔메와 타게 에를란데르, 노르웨이의 에이나르 게르하르센, 핀란드의 마우노 코이비스토‧타르야 할로넨과의 조우다.
노회찬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이야기 묶음의 인물들에게서 진보정당을 설계하고 개척하는 데, 나아가 당의 비전을 상상하고 발전을 꾀하는 데 많은 힌트를 얻었다. 네 번째 이야기 묶음은 <'변방'에서 '새 정치'를 만나다>로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폴란드의 레흐 바웬사,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브라질의 룰라와의 만남과 마주침에 대해 이야기한다. "변방은 창조의 공간"이라는 신영복 선생의 가르침도 노회찬의 기억 한켠에 자리잡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제, '무국적자 칼 마르크스'와 노회찬의 만남과 인연을 첫 출발로 해서 다섯 번째 이야기 연재인 <기록으로 찾아가는,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을 떠난다. 노회찬의 삶의 여정, 그 한 자락을 함께 나누면서, '지금 여기'에서 세상의 변화를 여전히 꿈꾸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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