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이 있어도 치료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은찬이
차은찬 어린이(13세)는 6살에 급성림프구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치료과정은 순탄하지 않았고, 작년 2월 세 번째 재발까지 해서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마지막 희망은 있었다. 1회 치료로 은찬이 같은 재발성 급성림프구성백혈병 환자 10명 중 8명에게 획기적인 치료효과가 검증된 '킴리아'(성분명: 티사젠렉류셀)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세포 채집을 앞두고 몸 상태가 극도로 나빠져 올해 6월 10일 결국 사망했다. 은찬이와 같은 아이에게 획기적인 치료 효과를 지난 약이었지만 은찬이에게 제공되기 위한 건강보험 등재 과정이 너무도 더디었기 때문이다. 은찬이 엄마는 다른 백혈병과 림프종 환자들이 은찬이 같이 슬픈 일을 더 이상 겪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킴리아와 같은 생명과 직결된 신약의 건강보험 신속 등재 제도 도입을 위해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국정감사 참고인 진술, 청와대 국민청원을 제기했다.내 아내를 살린 글리벡
내 아내는 2001년 11월 27일 만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담당 의사는 이미 가속기로 상태가 악화되어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을 수 없고, 앞으로 6개월 정도 살 수 있다는 사실상 시한부 선고를 했다. 아내는 충격으로 패닉 상태가 빠졌고, 가족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넋을 잃었다. 태어난 지 11개월 된 아들과 세 살 된 딸은 본가와 처가댁에 맡겨졌고, 아내는 병원에 입원해 우선 높은 백혈구 수치부터 낮추는 치료에 들어갔다. 며칠 후 담당 의사가 암세포만 공격해 치료효과는 뛰어나고 부작용은 적은 최초의 표적항암제 '글리벡'(성분명: 이매티닙)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아내와 같이 생명이 위독한 환자를 대상으로 제약사가 인도주의 차원에서 약을 무상으로 지원하는 '동정적 사용법'으로 글리벡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아내는 12월 5일부터 한 달 약값이 300만원~600만원 하는 글리벡 치료를 무상으로 시작했고, 3개월 만에 암세포가 거의 없어졌고, 10개월 후에는 조혈모세포이식까지 받았다. 아내는 20년째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는 본래 기상학에서 나온 말이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나비가 날개를 한번 퍼뜩거린 것이 대기에 영향을 끼쳐 나중에 미국 뉴욕을 강타하는 허리케인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미다. 한순간의 사건이나 선택이 미래에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때 자주 인용되는 용어다. 최초의 만성골수성백혈병 표적항암제 글리벡은 2001년 5월 10일 미국 FDA 허가를 받았다. 이후 40일 만인 6월 20일 우리나라 식약처에서 허가했다. 식약처 허가 이후 5개월만인 11월 19일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급여 고시까지 했다. 한국노바티스가 보건복지부가 고시한 약값이 낮다는 이유로 수용을 거부해 이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아내는 글리벡의 신속한 식약처 허가와 건강보험 급여 고시로 동정적 사용법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만일 글리벡이 미국 FDA 허가를 늦게 받았다면, 우리나라 식약처가 6개월만 늦게 허가를 했다면, 보건복지부에서 5개월 만에 건강보험 급여 고시를 하지 않았다면 아내는 지금 가족의 품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있을 것이다.더디고 더딘 킴리아 신약 적용
미국 FDA은 킴리아 시판 허가를 2017년 8월에 했다. 하지만 한국노바티스는 우리나라 식약처에서 3년 6개월이 지난 2021년 3월에 시판 허가를 받았다. 곧바로 건강보험 등재 신청을 했지만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첫 관문인 암질환심의위원회만 통과한 상태다. 앞으로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약가협상,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거치려면 몇 달을 더 기다려야 한다. 킴리아는 약 200여 명의 백혈병·림프종 환자를 위한 신약이다. 이들 환자의 여명 기간이 3~6개월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난 8개월 동안 킴리아의 건강보험 등재만을 기다렸던 대다수의 환자들은 사망했을 것이다. 만일 한국노바티스가 몇 개월만 일찍 식약처 허가 신청을 했다면, 우리나라 식약처가 몇 달만 일찍 시판 허가를 했다면, 은찬이는 킴리아 치료를 받아 어쩌면 지금 하늘나라가 아닌 가족의 품에 있을지도 모른다.경제적 능력에 달린 환자 접근권
우리나라는 2006년 12월부터 신약의 건강보험 등 재방식을 기존의 네거티브 시스템에서 치료적·경제적 가치가 우수한 약제만 선별하여 건강보험 급여화하는 선별 등재 방식(positive list system)으로 변경했다. 이로 인해 신약은 식약처 허가만 받으면 시판이 가능하게 되었고, 약값을 지불할 경제적 능력이 되는 부유한 환자들과 민간보험에 가입한 환자들은 곧바로 신약으로 치료받아 생명을 짧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몇 년을 연장시킬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표적항암제, 면역항암제, CAR-T치료제로 치료받은 말기 암환자들의 삶의 질이 이전 화학항암제로 치료하던 때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좋아졌다. 이제는 상당수의 말기 암환자들도 병원 병실이나 중환자실에서 고통받으며 죽을 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장기 생존을 하거나 가정이나 사회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의미 있게 여생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약값을 지불할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은 저소득층 환자들이나 민간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환자들은 신약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오로지 건강보험 등재만을 기다리다가 상당수가 사망하는 불행한 상황이 15년째 계속되면서 의료현장에서는 환자들과 가족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적어도 '생명과 직결된 신약'으로 우선 해당 환자부터 살려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아무리 치료 효과가 뛰어난 신약이라고 하더라도 건강보험 등재를 신속하게 하는 제도는 없다. 예외적인 절차도 없다.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은 저소득층 환자들이나 민간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환자들도 현재 건강보험료를 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이들도 고가의 약값이 필요할 때는 경제적 능력이 되는 부유한 환자들이나 민간보험에 가입한 환자들이 자비나 민간보험금으로 신약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당연히 건강보험 재정으로 신약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생명과 직결된 신약, 신속한 건강보험 등재 제도 필요
백혈병과 림프종 CAR-T 치료제 킴리아는 1회 투약 비용이 약 4억 6000만 원이다. 올해 5월 28일 식약처 허가를 받은 척수성 근위측증 CAR-T 치료제 '졸겐스마'(성분명: 오나셈노진아베파르보벡)은 미국 기준 25억 원이다. 약값이 초고가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바이오인왓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항암세포치료제 R&D 파이프라인이 2021년 4월 기준으로 2073개에 달한다. 킴리아, 졸겐스마에 이어 앞으로 초고가 신약은 줄줄이 출시될 것이다. 이와 같은 초고가 신약이 비급여 영역에서 장기간 방치되면 문재인케어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정부의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 표적항암제 글리벡이나 CAR-T 치료제 킴리아, 졸겐스마가 '생명과 직결된 신약'이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생명과 직결된 신약'에 대한 환자 접근권은 최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하고, 차별해서는 안 된다. '생명과 직결된 신약 건강보험 신속 등재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 이는 생명과 직결된 신약은 제약사가 식약처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시판허가와 건강보험 등재 결정을 위한 신청을 동시에 하고, 식약처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동시에 심사, 결정해서 식약처 허가 후 신약이 시판될 때 모든 해당 환자들이 건강보험 적용되는 임시 약값으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후 정상적인 건강보험 등재 절차를 진행시켜 최종 약값이 결정되면 임시 약값과 최종 약값의 차액을 정산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생명과 직결된 신약의 신속한 환자 접근권을 보장하는 제도를 말한다.'문재인케어' 남은 6개월의 긴급 과제
정말 그럴까? 약이 있음에도 치료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은찬이에게 대통령은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문재인케어 평가가 자화자찬(自畵自讚)이 되지 않으려면 시급히 이루어야 할 일이 있다. 문재인 정부 6개월을 남겨둔 지금 시점에서 더 늦기 전에 '생명과 직결된 신약 건강보험 신속 등재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돈이 있는 사람이든 돈이 없는 사람이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든지 차별 없이 건강보험 적용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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