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노회찬의 기록이야기 제목은 <기록으로 찾아가는,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 칼 마르크스에서 브라질의 룰라까지>이다. 칼 마르크스부터 브라질의 룰라에 이르기까지 '나라 밖 인물' 20여 명과의 직·간접적인 만남과 인연을 주제로 노회찬의 여정과 활동을 재구성한 것이다.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은 11월 1일부터 매주 월·수·금 3번 씩 연재된다. '평등하고 공정한나라 노회찬재단'(노회찬재단)과 <프레시안>이 함께한다.편집자.
"50년 후에 진보가 집권할 것" : "민주노동당이 밟아가는 길은 한 걸음 한 걸음 모두가 처음이고 모두가 감격"
17대 총선을 앞둔 2004년 1월 26일, 민주노동당 중앙선대본부장이자 사무총장이었던 노회찬은 영국 노동당을 떠올렸다.
"당 대표 신년 기자회견 일정이 최종 확정됐다. 내일 오전 10시. YTN에서 생중계를 하면서 1시간 당겨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확보된 시간은 8분이다. 2002년 12월 대선후보 첫 방송토론을 앞두고 KBS 본관 앞에 모인 민주노동당 선거운동원들에게 권영길 후보는 감격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 50년이 걸렸습니다.' 1900년 2월 27일. 23년 후에 집권하게 될 영국 노동당이 이날 창당됐다. 그러나 다음날 런던의 어떠한 신문도 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다.
비록 케이블 방송이지만, 민주노동당의 대표 기자회견이 TV로 생중계되는 데만 4년이 걸린 셈이다. 민주노동당이 밟아가는 길은 한 걸음 한 걸음 모두가 처음이고 모두가 감격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모두가 처음이고 모두가 감격이다」, <선대본 일기>)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이 명제는 오랜 세월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다가 1987년 대선에서 처음 '현실'로 부상했다. 그 뒤엔 한국 진보정치운동에 일종의 정언명령처럼 됐다. '노동자'의 구성양태, '민중'의 내포와 외연, 그리고 정치세력화의 주체적 조건과 객관적 상황은 변해왔지만, 노회찬에게 그 요체는 여전히 중요했다. 진보정당이 제대로 설 때 비로소 정치가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진보정당이 자기 색깔을 제대로 드러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보정당의 설계자이자 개척자로서 '독자정치세력화'의 길을 걸어온 노회찬은 줄곧 진보정당으로서의 당 정체성(party ID)을 강조했다. 국민승리21,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통합진보당을 거쳐 정의당에 이르기까지 그의 정치적 소신은 기본적으로 변한 적이 없었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화제가 된 '판갈이' 발언, 즉 한나라당을 향해선 "삼겹살도 50년 동안 같은 판에 구우면 타 버리니 갈아야 한다"고 하고, 또 열린우리당을 향해선 "한 일도 없이 인기가 올라가는 횡재를 했는데 길 가다 지갑 주웠으면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일침을 놓은 것도 잘 뜯어보면 자신의 소신을 노회찬식 방송 언어로 표현한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노회찬이 정책연대나 선거연대 자체를 무시하거나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노회찬은 타협과 연대도 적절하게 구사하려고 노력했다. 스스로 진보의 기본 원리라고 밝힌 바 있는 '실사구시'의 원칙에 따른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 참고로 "스스로의 목소리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힘없는 사람들에게 힘을" 강조한 미국 인권운동의 대부이자 급진적 빈민운동가였던 사울 알린스키는 '타협'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타협은 허약함, 우유부단함, 고매한 목적에 대한 배신, 도덕적 원칙의 포기와 같은 어두움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단어이다. (…) 이 단어는 보통 윤리적으로 불미스럽고 추잡한 것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조직가에게 타협은 핵심적이고 아름다운 단어이다. 타협은 언제나 실질적인 활동 속에 존재한다.
(…)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회는 끊이지 않는 갈등 그 자체이며, 갈등은 간헐적으로 타협에 의해서만 멈추게 된다. 일단 타협이 이루어지면, 바로 그 타협은 갈등, 타협, 그리고 끝없이 계속되는 갈등과 타협의 연속을 위한 출발점이 된다. 권력의 통제는 의회에서의 타협과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사이에서의 타협에 바탕을 두고 있다. 타협이 전혀 없는 사회는 전체주의 사회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회를 하나의 단어로 정의해야 한다면, 그 단어는 '타협'일 것이다."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현실적 급진주의자를 위한 실천적 입문서> (아르케, 2016)
세상을 더 나은 세상으로 바꾸겠다는 뜻을 지닌, 제대로 된 정치인이라면 집권의지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 노회찬 역시 많은 부침 속에서도 집권의지는 뚜렷했다. 그에게 "정치의 매력은 권력의지를 실현하는 길이라는 것이자, 세상을 바꾸는 강력한 길"이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정치를 통해서만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노회찬에게 진보의 집권은 살아생전이 아니라 '50년 후'에(나) 이뤄질 목표였다는 것이다. <노회찬 6411>을 연출한 민환기 영화감독과 조유경 조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노회찬의 정치적 삶, 집권의지에 대해 밝힌 바 있다.
"진보정당으로 권력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 이분이 가진 현실적인 꿈이었던 듯합니다. 그 꿈을 향해 달려 나간 노회찬. 그러나 2008년 민주노동당이 분당됐죠. 그 꿈이 꺾였다기보다는 그 꿈을 이루려는 방식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이후에도 부침을 계속 겪었습니다." (「[민환기 <노회찬6411> 감독] "타협 않고 꿈 실천한 노회찬, 개인 일대기이자 현대사 담았다"」, <매일노동뉴스>, 2021.10.8.)
"처음에는 노 의원에 대해 여성이나 노동 문제와 관련한 정책과 감수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영화를 만들면서 이 사람이 진짜 집권의지가 있었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최종본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이금희 아나운서가 인터뷰 중에 '노 의원은 50년 후에 진보가 집권할 거라고 이야기했다'고 말했거든요. 자기 생애에 목표가 이뤄질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노력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노회찬 6411> 제작진을 만나다] ① 김지수 조감독, 조유경 조감독」, <프레시안>, 2021.10.8.)
한 가지 조심스럽게 추가한다면, 노회찬의 마음속에는 하기 나름에 따라 50년 후 진보의 집권이 더 앞당겨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조금은 자리잡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19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처럼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그날'은 느닷없이 다가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7, 8월 대투쟁 때인데, 내가 살아생전에 그런 광경을 보리라고는 상상을 못했었죠. 사실은. 그야말로 예기치 못한 혁명적 상황이 일어난 건데…."
노회찬의 '최초의 해외 나들이', 영국을 방문하다 : "'진보정당 건설'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다"
1996년 5월 하순 노회찬 한국노동정책정보센터 대표는 고려대 노동대학원 옥스퍼드 리더십 프로그램에 참여해 영국을 방문했다. 생애 최초의 해외 나들이였다. 5월 24일 서울을 출발, 파리를 경유해 5월 27일 옥스퍼드에 도착한 노회찬은 5월 30일 옥스퍼드대 코리아포럼에서 '진보정당 건설과 한국의 노동운동'(On Progressive Party and Labor Movement in Korea)을 주제로 발표를 했다. 발표를 통해 노회찬은 1987년 이후 정치환경의 변화 속에서 한국사회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부터 바꿔야 하며,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대로 된 진보정당의 건설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①6월항쟁으로 인한 군부독재세력의 퇴각과 민주화의 진전과 ②노동운동의 고양, ③사회주의 진영의 몰락과 냉전체제의 해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의 정세 변화는 각각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으니 합법적이며 공개적인 대중정당, 교조적 사회주의를 배제하며 이데올로기적 개방을 정치지형으로 하는 진보정당의 건설이 바로 그것이었다."
방문에 앞서 노회찬은 당시 영국 유학중이던 '전순옥 선배'(전태일 열사의 여동생)에게 팩스를 보내 토니 블레어 노동당 당수와의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성사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저는 <매일노동뉴스> 발행인 자격으로 영국 체류기간 중에 토니 블레어(Tony Blair) 당수와 인터뷰할 수 있길 원합니다. 87년 이래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고 있는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은 이제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에 보다 실천적인 관심을 갖는 단계로 돌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토니 블레어 당수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영국 노동당의 최근의 변화는 그 자체로서도 관심의 대상이며 한국 노동운동이 처한 현실과 견주어서도 주목을 모으고 있습니다. 영국의 경험을 통해 한국의 노동운동이 인식의 폭을 넓히는 것이 인터뷰의 주요 목표이며 이를 계기로 영국 노동당과 한국 노동운동의 교류와 협력이 증진되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첫 해외 나들이 때를 회상하며 당시는 비행기 기내에서 흡연이 가능했다는 노회찬의 말에 함께 자리한 사람들이 긴가민가한 적이 있었다. 영국 방문 기록 이야기를 정리하다 문득 떠올라 관련 자료를 뒤져보니 기내 흡연이 금지되기 시작한 것은 1996년 7월부터였다. 노회찬의 기억이 정확했다.
"항공기내에서의 흡연은 최근 거의 모든 국가, 항공사들이 금지하고 있다. 1990년대 이전까지는 항공기 내에서 흡연이 일정 구역을 정해 허용되었으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항공사들이 점진적으로 기내 흡연을 금지해 왔다. ICAO(국제민간항공기구)는 1996년 7월부터 모든 국제선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도록 하는 결의문을 채택하면서 급속도로 항공기내는 금연 장소로 변했다."
<영국노동당사>의 저자 고세훈, 하디와 노회찬 : "영국노동당, 개인들의 역량이 당의 구조를 만든 실용주의 정당"
2008년 7월 15일 <노회찬의 난중일기>('<PD수첩>은 <마지막 신문고>인가')를 보면, "영국노동당사의 국내 최고 권위자인 고세훈 교수"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올 8월로 정년퇴임 하시는 최장집 선생님의 새 연구실을 방문했다. <민주주의 교육 연구센터>라는 이름을 거셨다. 개소식을 따로 갖지 않고 가까운 몇 분들을 공부모임에 초청한 것이다. 심상정 대표와 임종인 전 의원도 자리를 함께 했다. 영국노동당사의 국내 최고 권위자인 고세훈 교수도 오랜만에 뵙게 됐다. <최장집과 세계읽기>라는 이름으로 진행될 세미나에서 오늘 발표의 결론은 <진보적 리더쉽>에 관한 내용이다. 새기고 성찰해야 할 내용이 많았다."
고세훈의 책 <영국노동당사: 한 노동운동의 정치화 이야기>(나남, 1999)는 영국 노동당의 역사에 관한 증언이라고 할만한 책으로, 영국 노동당을 이해하는 데 필독서 가운데 한 권이다. 고세훈은 2010년 노회찬 진보신당 서울시장 후보 선대위에 학계 자문위원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고세훈의 <영국노동당사> 「머리말」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
"외부 세계에 대한 학문적 호기심은 그것이 일정한 국내적 함축을 던지지 못한다면, 자칫 자기만의 피상적이고 오만한 지적 유희에 머물기 쉽다."
"영국 노동당은 케어 하디에서 리차드 토니를 거쳐 나이 베반에 이르기까지, 현실정치적 실천과는 별도로, 사회주의의 정신만은 일정하게 견지해 온 정당이다. 일찍이 토니가 요약했던 바, '물적 요소(즉, 자본)가 사람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받는 사회는 병든 사회이다' 라는 언명이 그것을 함축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노동당 정치는 노동조합의 적극적 관심과 태만이 정해주는 한계 내에서 결정돼 왔다고 보는 것이 이 책의 시각이다. (…) 영국 노동계급은 처음부터 정치화를 원하지 않았었다. (…) 노동당이 결성되기까지는 정치화에 목숨을 걸었던 소수 엘리트들의 부단한 노력과 자기양보가 있었다. 영국의 노동운동사가인 헬리 펠링은 '한 거대 정당의 역사는 불가피하게 그 안에 국가의 역사를 포함한다'고 말한 바 있거니와, 노동당이 수권정당으로 자리잡기까지는 수많은 돌출적인 사건과 우연들 역시 복합적으로 작용해왔다. (…) 결정적인 시기마다 그것을 포착하여 전향적으로 활용하려는, 즉 이론에 기대어 역사의 흐름을 지레 예단하거나 구조를 빗대어 전망을 냉소하거나 과도하게 낙관하지 않는 정치행위자들의 투철한 역사의식과 결연한 자기희생이 있었다. 맑스의 말대로 역사라는 기차가 세월의 굽이를 돌 때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론들이 창 밖 저 멀리로 튕겨나가는 것을 보아왔던가."
"(노동운동의) 정치화에 목숨을 걸었던 소수 엘리트들의 부단한 노력과 자기양보", "정치행위자들의 투철한 역사의식과 결연한 자기희생"이라는 고세훈의 표현을 보면서 필자는 자연스럽게 노회찬의 이름을 떠올렸다. 고세훈은 2009년 어느 인터뷰에서 '정치학자로서 요즘의 정당정치를 보자면 어떤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 조언한다면?'이란 물음에 영국 노동당의 사례와 함께 노회찬의 이름을 거론하며 의견을 피력했다.
"지금의 정당정치 단계에서는 구조가 아니라 개인이 굉장히 중요하다. 진보정당에서는 심상정이나 노회찬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렇게 미숙하고 전망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영웅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전략적 선택이다. 민주주의라며 노-심을 끌어내리려는 것은 천박한 짓이다. 심과 노를 빨리 의회에 보내는 게 진보신당의 살 길이다. 영국노동당 같은 경우 기본적으로 실용주의 정당이고, 개인들의 역량이 당의 구조를 만들어 왔다. 영국노동당에서 노동조합이 굉장히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중요한 계기에서는 한 발 물러나 지도자들에게 당 진로를 맡긴다. 열정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들이 중요하다. 지도부는 당 내외에서 협상해야 하기 때문에 언제나 실용적일 수밖에 없다. 그들을 이론이나 독트린을 빌미 삼아 끌어내려서는 안 된다. 노회찬이나 심상정 같은 사람들 없이 진보신당이 성장할 수는 없다.
노-심이 국회 밖에 있는 것은 진보정당의 손실일 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손실이다." (「노-심이 의원 돼야 진보정당 산다」, <레디앙>, 2009.3.7.)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고세훈은 '한국이 선진복지국가로 가기 위해 선차적으로 이뤄야 할 것이 무엇인가?'라는 <한겨레> 인터뷰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도 등장시켰다.
"맥락과 정도는 다르지만, 복지의 필요성에 대한 의식이 정파를 넘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복지국가는 국민총생산과 국가예산의 상당 부분을 배정해야 하는 매우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는 보수진영의 시혜적 차원에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거기에는 예산 배정을 둘러싼 정치세력, 정당들 간의 타협과 협상이 필수적이지만, 모든 협상과 거래는 협상 당사자들의 권력자원의 대등성을 웬만큼 전제한다. 그런데도 한국 진보진영의 권력자원(노조 조직률, 정당 지지도, 집권 가능성)은 극도로 취약하다. 따라서 한국적 실정에서 복지국가 진입은 중장기적 전망일 수밖에 없다.
가장 시급한 일은 범진보진영이 무책임한 소모적 논쟁을 멈추고 단일의 대오를 갖추는 일이다. 심상정이나 노회찬 같은, 이미 검증된 일당백의 진보 정치인들을 의회에 진출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제도가 약하면, 개인이 제도의 역할을 대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앙과 지방선거에서 비례대표 원칙을 점차 넓혀 선거의 민주성을 확대해나가는 일 또한 진보세력의 정치적 진입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회 약자에게 한국은 아직 야만국가」, <한겨레>, 2010.7.26.)
※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고세훈은 '복지국가를 정의한다면? 의외로 명쾌하지 않은 듯하다'는 물음에 이렇게 답하기도 했다.
"복지국가란 자본주의가 낳는 시장실패를 정치를 통해 교정하려는 장치이다. 그것은 자본주의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살리려는 정치적 자구책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모든 것을 상품화시킨다. 예컨대 우리는 노동을 시장에 내다 팔아 임금을 받아 생활한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노동을 상품화시킬 수 없거나 불완전하게 상품화시킬 수밖에 없는 '시장탈락자'를 양산한다. 실업자, 비정규직, 장애인, 노약자 등을 방치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는 시장이 발생시킨 문제이고 따라서 시장이 스스로 해결 못 한다. 정치가 나설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시장체제가 내친 사회경제적 약자를 정치마저 배려하지 않는다면, 정치는 무의미하거나 해악적이다. 한국에서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혐오가, 특히 약자 계층을 중심으로 팽배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민주노동당 대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대 한나라당?"
2004년 12월 18일 노회찬 민주노동당 17대 국회의원은 민주노동당 은평지역위원회 초청강연회에서 특유의 비유법을 통해 6개월간의 의정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과 민주노동당의 비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강연 중에 노회찬은 MBC 100분토론(2004.4.25.)을 마치고 영국 노동당을 언급한 정형근 한나라당 국회의원과 나눈 이야기를 소개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2003년 11월 11일 창립이후 6개월 만에 거대정당이 된 열린우리당은 처음보다 빛이 바래가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은 제대로 이루어지는 게 없고 열린우리당은 점점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탄핵으로 거의 없어질 뻔한 한나라당은 더 오른쪽으로 갈 곳이 없을 만큼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한나라당은 본래 우파이고 잘 봐야 중도우파 정도로밖에 볼 수 없는 노무현 정부를 좌파라고 하고 있어요. 이는 자기들의 극우성을 고백하는데 불과합니다. 한나라당에 더 이상 오른쪽은 없습니다. 절벽 밖에 없어요. 절벽 밑에 자민련 정도 있을까?(웃음)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상대적인 위치는 바뀌지 않겠지만 두 당 사이는 점점 가까워질 겁니다."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랑 MBC 토론에서 방송 끝나고도 한참 토론을 했는데 그때 제가 한나라당 바꾸지 않으면 해체된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열린우리당이 보수가 되고 민주노동당이 진보가 되는 구도로 갈 것이다. 대선에서 3번 지고 살아남는 정당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 그런 말 했더니 정형근 의원은 반대로 한나라당 대 민주노동당 구도로 갈 거라며 영국이 보수당/자유당 구도에서 노동당/보수당으로 바뀐 예를 들더군요. 정범구 씨도 라디오에서 한나라당 대 민주노동당의 구도로 갈 거라고 그럽니다. 종합해보면 결국은 민주노동당 대 열린우리당이나 아니면 민주노동당 대 한나라당이라는 얘기니까 결국 민주노동당은 확실하단 얘기 아니겠습니까?(웃음)"
※ 서울대 학생회장 출신으로 안기부 대공수사국장/수사2단장 시절 고문 수사 및 은폐조작을 지휘한 혐의를 받은 정형근은 영국 노동당의 예를 들면서 열린우리당의 소멸과 민주노동당의 약진, 한나라당의 회생을 점친 것이다. 민주노동당 인터넷 총선게시판에 공개되기도 한 그의 대화 내용은 이랬다.
"저는 전통적으로 김대중 대통령이라든가, 노무현 당선자가 소위 젊은 층이라든지, 또는 30대 40대 초반의 당시 암울한 군사독재를 경험했던 세대, 그리고 서민들, 이것이 그분들의 지지 기반의 근간인데, 이게 민노당으로 이전 할 것으로 봅니다. 민노당으로. 그리고 우리가 영국을 보면은 보수당, 자유당, 그 다음에 노동당이었지 않습니까. 자유당, 노동당, 하다가 자유당 없어졌지 않습니까. 오히려 열린우리당이 지금은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세는 굳지만은, 전통적인 보수층은, 또 저희들도 많이 바꿔야 되지 않겠습니다만, 우리는 보수당 살아났고, 민노당도 약진하고, 중간에 열린우리당은 소멸될 운명이라고, 거꾸로 갈 수도 있는…."
끝으로 노회찬은 민주노동당 가입을 독려하면서 특유의 유쾌한 해학으로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우리 민주노동당은 낙관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양당체제 됩니다. 다음 총선에서 교섭단체 됩니다. 민주노동당은 신기록 정당입니다. 국회의원 하나 없이 4년 이상을 버텼고 2% 지지율을 18% 지지율로 끌어올렸습니다. 2006년 총선에서 25~30% 지지율 나옵니다. 2007년 대선에서 500만 표 이상은 얻을 것입니다. 무시할 수 없는 때가 온 겁니다. 그러면 2012년에 집권도 가능합니다. 그러면 '그래 꿈은 커야 돼'합니다. (웃음) 제가 2000년에 사람들한테 4년 뒤에 국회의원 두 자리 수 된다고 그러고 다녔습니다. 솔직히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그래야 될 것 같아서 그러고 다녔습니다. (웃음) 그런데 지금 국회의원 10명 됐습니다. 두 자리 수 되지 않았습니까?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이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어떤 엄마가 사교육비 때문에 힘들다고 그랬습니다. 대통령이 '미안하다. 근데 이미 태어난 아이들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은 걱정없다.'고 그랬습니다.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는 게 2012년입니다. 바로 민주노동당이 집권할 때 되는 겁니다. 제 해석이 잘못된 겁니까?(웃음)"
닫는글 : "무감어수 감어인(無鑒於水 鑒於人)"
2014년 9월 노회찬은 영국을 두 번째로 방문했다. 강한록 박사 주도로 영국 교민회가 초청해 옥스퍼드대, 케임브리지대, 런던대 등의 강연과 함께 재영교민회 초청 무료강연이 이뤄졌다. 강연 주제는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진보정치의 역할>이었다. 영국에 도착한 노회찬은 트위터를 통해 영국의 '성숙한' 민주주의에 대한 부러움을 알렸다.
"재영교민회 초청으로 영국에 왔습니다. 나라를 두 동강 낼지 모르는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주민투표가 진행 중인데 런던은 조용하고 템즈강은 말없이 흐릅니다. 예전 같으면 전쟁을 통해 총칼로 해내던 일을 투표로 결정하는군요. 삼척 신규원전 유치신청 철회 여부를 묻는 것도 국가사무라며 주민투표를 허용하지 않는 한국에서 온 사람 눈에 영국의 분리독립 주민투표는 참 신기한 민주주의입니다."
영국교민회가 돌린 '노회찬 영국교민 초청 무료 강연회' 보도자료의 내용은 이랬다.
"진보의 입, 노회찬 전 의원을 모시고 한국 민주주의 위기 속에서 진보정치의 역할이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무료 강연회를 가지고자 합니다. 노회찬 님의 유쾌한 촌철살인 정치 이야기를 직접 들어 보시길 바랍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9월 25일자 <영국생활>은 「청중 몰입시킨 '노회찬 영국 강연'」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노회찬의 강연에 대해 이렇게 총평을 내렸다.
"일주일간의 영국 방문 기간 중 진행된 강연에서 노 전 대표는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진보정치의 역할>이라는 주제를 통해 특유의 논리적 달변으로 청중을 몰입시켰다. '왜 한국의 민주주의는 합법적 선거를 통해 나은 정부가 더 나아지지 못하고 앞으로도 더 나아진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가'라는 국민들의 불안한 의문에서 출발한 이번 강연의 주제는 노회찬 전 의원이 인용한 '무감어수 감어인(無鑒於水 鑒於人)'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이 말은 '물에 비친 너의 모습을 보지 말고 사람들의 마음에 비친 모습을 보라'는 뜻이다. 곧 정치인이 국민의 마음이 원하는 것을 민감하게 알아차려야 하지만 오히려 국민의 갈망을 무시한 결과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는 것이다. (…) 런던대와 옥스퍼드대 캠브리지대 등 강연에 참석한 교민들과 학생들은 진지한 태도로 노 전 대표의 강연을 들은 뒤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야당과 현실 정치에 대한 불만 섞인 질의를 던지기도 했다. 교민 김민희 씨는 '노회찬 의원이 현실 정치인으로 꼼꼼히 한국 사회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다.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낙담하며 절망에 빠지게 되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는 정치인이 있어 감사하다'고 강연 소회를 밝혔다."
통합진보당 창당 직전부터 진보정의당 창당 직후까지의 시기에, '무감어수 감어인'을 인용한 노회찬의 몇몇 장면을 모아봤다. 2011년 11월 28일 <에브리뉴스>에 출연한 노회찬 새진보통합연대 공동대표는 진행을 맡은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와 통합진보당 창당(12.5. 선관위 정당등록은 12.6.)에 즈음하여 이런 문답을 주고받았다.
노회찬 : 무지개가 하나 또는 두 개의 색깔이라면 아름답지 않을 것입니다. 무지개의 일곱 가지 색 중에 어느 색이 가장 아름답다고 사람들이 말하지 않습니다. 통합을 하면서 각 주체가 무엇을 계승하고 버려야하는지 제가 주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유시민 : 저는 헌 불판에서 고기를 구워본 사람입니다. 저는 앞치마에 그을음도 묻어 있고 덴 자국도 있는데 함께 하는 심정이 어떤지요?
노회찬 : 함께하는 분들 중 헌 불판에 고기 굽는 것을 보기만 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경험이 통합진보정당의 소중한 자산과 바탕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유시민 : 국민참여당에서 가장 탐나는 것이 무엇인가요?
노회찬 : 플래카드입니다. 컬러, 디자인, 등이 모든 정당들 중에서 제일 낫다. 메시지를 만들고 전달하는데 통합에 참여하는 주체 중 가장 현실적입니다. '무감어수 감어인(無鑑於水 鑑於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일은 국민들이 어떻게 바라보는가로 판단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진보세력이 서민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서민들은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을 지지합니다. 그 분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통합진보당 사태'와 초읽기에 들어간 분당 조짐 등으로 당 안팎이 시끄러웠던 2012년 9월 11일 KBS1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에 출연한 노회찬 통합진보당 19대 국회의원은 '끝내 갈등을 봉합하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는 뭐였습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당이 스스로 대변하려고 하는 그런 국민들에 대한 배려보다는 일부 개인과 정파의 이익을 앞세운 아집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 아닌가, 이게 옛말에 '무감어수 감어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지 말고 사람들의 마음에 비춘 자기 모습을 보라는 말이 있는데, 지금 국민들에게 통합진보당이 어떻게 비춰지는지를 제대로 본다면 이런 것이 나올 수가 없는 거죠."
통합진보당이 분당된 이후 2013년 1월 30일 YTN라디오 <김갑수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한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는 하루 전날 통합진보당이 이정희 전 대표를 새 대표로 합의 추대한 데 대해 '무감어수 감어인'이라는 표현을 썼다. "어떤 분을 대표로 할지는 각 당에서 정한 규칙에 따라 할 일이고 선출권이 없는 쪽에서 가타부타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라는 말과 함께(<국회신문>, 2013.1.31.). 신영복 선생의 <나무야 나무야>(돌베개, 1996)에 있는 '무감어수'(無鑒於水)와 '감어인'(鑒於人)을 옮겨 적으며 오늘의 기록 이야기 <키어 하디와 노회찬> 편을 닫는다. 특히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정치인이라면 되새겨봄직한 경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옛 사람들은 물에다 얼굴을 비추지 말라고 하는 '무감어수(無鑒於水)'의 경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을 거울로 삼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만 그것이 곧 표면에 천착하지 말라는 경계라고 생각합니다. '감어인(鑒於人)'. 사람들에게 자신을 비추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과의 사업에 자신을 세우고 사람을 거울로 삼아 자신을 비추어 보기를 이 금언은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어깨동무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살아가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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