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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씨 '돈'과 검찰의 '낮은 포복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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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씨 '돈'과 검찰의 '낮은 포복 수사' [김종구의 새벽에 문득]
2019년에 개봉한 영화 <돈>(감독 박누리)은 일반 투자자들에게는 생소한 펀드매니저와 증권사 브로커의 세계를 깊숙이 다뤄 증권가에서도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증권사 법인영업팀 주식 브로커 조일현(류준열 분)은 '번호표'라는 별명의 작전 설계자(유지태 분)와 연결돼 아슬아슬한 머니게임을 벌인다. 이들이 주가 조작을 위해 동원하는 금융기법은 스프레드 거래, 프로그램 매매 등 다양한데 '통정매매'도 중요한 수법으로 등장한다. 통정매매는 작전세력끼리 매매 주식의 수량, 시기, 가격 등을 미리 정해놓고 거래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짜고 치는 매매'를 통해 '시세조종'을 하는 불법행위다. 영화에서 나온 통정매매가 현실의 뉴스로 등장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와 장모 최아무개씨 간에 도이치모터스 주식 통정매매가 수십 차례나 이뤄졌다고 한다. '모녀간 통정매매'는 영화에서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의 대담한 발상이다. 현실은 영화보다도 더 극적이고 상상력이 뛰어나다. 통정매매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에 의해 엄격히 규제되며, 형사상 초범이라도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한다. 과연 이 현실 드라마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도이치모터스 권오수 회장이 얼마 전 주가 조작 혐의로 구속됐다. 김건희씨의 증권계좌를 관리했다는 주가 조작 '선수' 이아무개씨도 잠적 도피 중 붙잡혀 구속됐다. 다른 공범 3명은 이미 구속기소된 상태다. 최근 열린 재판에서 주가 조작 관련자 한 명은 작전 혐의를 대부분 시인했다. 이제 사건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정점에는 주가 조작의 전주(錢主) 노릇을 한 의혹의 주인공 김건희씨가 있다. 김건희씨의 혐의를 법률적으로 명확히 입증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권오수 회장 등 관련자들이 모두 "김씨는 몰랐던 일"이라고 잡아뗄 게 분명하다. 정황이 충분해도 물증과 자백이 없으면 수사는 벽에 부닥친다. 하지만 피의자들이 잡아뗀다고 해서 거기서 멈추면 검찰의 존재 의미는 사라진다. 생각해보면 검찰이 '조국 수사'를 할 때 쏟았던 힘의 절반, 아니 10분의 1만 쏟아도 관련 혐의를 모두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범죄 혐의 유무'가 아니라 검찰의 '수사 의지 유무'다. 김건희씨와 권오수 회장 간의 거래 내역을 보면 보통 사람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비상식'의 연속이다. 권 회장은 김씨에게 '떼돈'을 벌게 할 기회를 연속해서 주었다. 도이치모터스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신주인수권 51만여주 헐값 매도, 도이치모터스의 자회사 도이치파이낸셜의 주식 2억원어치 액면가 매도 등등. 개인이 기업 오너의 보유 주식을 액면가로 대량으로 넘겨받는 것은 양쪽이 '특수관계'가 아니면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도이치파이낸셜 주식 취득에 대해 윤석열 후보 쪽은 "공모 절차에 참여해 주식을 산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당시 공모 절차가 있었다는 공시 기록은 없다. 수상쩍은 '비상식'의 이면에는 분명히 '숨겨진 비밀'이 있는 법이다. 윤석열 후보 쪽은 김건희씨 수사에 대해 "야당 대선 후보 탄압" "대선을 앞둔 시점의 부적절한 수사" 등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법무부 장관 후보자 검증이라는 명분으로 그토록 가혹한 수사를 한 게 검찰이다. 하물며 지금은 대통령 후보에 대한 검증의 시간이다. 장관 후보자의 가족에 대해서는 '멸문지화' 수사를 한 윤석열 후보가 자기 부인에 대한 수사를 비판하는 것은 너무 몰염치하고 자가당착 아닌가. 검찰의 법률 적용 잣대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지도교수의 개인 장학재단이 조 전 장관 딸에게 준 장학금 600만원을 뇌물로 규정하고 기소했다. 이 기준에 비춰보면 윤 후보가 검찰총장 후보로 지명된 뒤 김씨의 회사 코바나컨텐츠 전시회에 쏟아진 기업 협찬금은 '보험성 뇌물'이 아니고 무엇일까. 살아있는 권력 수사! 이 말은 우리 사회에서 신성불가침의 권능을 누린다. 이 거룩한 언어는 유권자를 홀리는 마법의 주문이 되고 미신이 돼서 오늘의 윤석열 후보의 정치적 권좌를 마련해줬다. 그러나 도이치모터스 수사 진행 과정을 돌아보면 그 말은 허무하다. 김건희씨의 주가 조작 연루 혐의는 언론의 의혹 제기와 고발로 지난해 4월부터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랐으나 윤 후보의 검찰총장 재직 시에는 수사에 진척이 없었다. 권오수 회장과 '선수 이씨'가 이번에 구속된 것을 보면 그렇게 어려운 수사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검찰이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살아있는 권력'은 검찰총장이었다. 그리고 이제 윤석열 후보는 누가 뭐래도 '떠오르는 권력'이다. '범죄 혐의가 있으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수사한다.' 검찰이 늘 표방하는 조직의 좌우명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권력의 눈치를 살피며 낮은 포복으로 시대의 철조망을 통과해온 게 검찰의 본모습이다. 그 습성은 검찰의 유전자에 깊이 각인돼 있다. 과연 이번에 검찰은 '윤석열 권력' 앞에서 당당해진 달라진 모습을 보일 것인가. 일단 회의적이다. 영화 <돈>의 시작 장면에는 "우아하게 시장을 흔들어보자"는 대사가 등장한다. 공정 경쟁을 흔드는 손은 시장을 왜곡시키고 투자자에 큰 손해를 안긴다. 지금 김건희씨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2021년 상영 신작 <돈>은 순리적인 결말을 회피하고 '조기종영'을 준비하는 듯하다. 진실을 속여 고객(유권자)의 판단력을 흐리고, 주가(지지율)의 '시세조종'을 조장하는 작위적 결말이다. 이런 플롯 속에서 공정한 경쟁은 사라지고 정치의 시장은 왜곡된다. 시장 교란 범죄 혐의자를 붙잡아야 할 검찰이 '시세조종의 조연'으로 등장하는 것은 비극이다. 나라를 위해서나, 검찰을 위해서나.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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