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노회찬의 기록이야기 제목은 <기록으로 찾아가는,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 칼 마르크스에서 브라질의 룰라까지>이다. 칼 마르크스부터 브라질의 룰라에 이르기까지 '나라 밖 인물' 20여 명과의 직·간접적인 만남과 인연을 주제로 노회찬의 여정과 활동을 재구성한 것이다.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은 11월 1일부터 매주 월·수·금 3번 씩 연재된다. '평등하고 공정한나라 노회찬재단'(노회찬재단)과 <프레시안>이 함께한다. 편집자.
"스웨덴의 민주주의는 이렇게 성숙해갔다. 에를란데르를 보면서 대화의 정치, 상생의 정치를 경험하고 체득한 스웨덴 국민들은 사회의 모든 갈등을 대화와 협상으로 풀어 나갔다." (김종배, 「위대한 정치인」, <뉴제주일보>, 2016.3.6.)
노회찬은 증오와 적대가 난무하는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소통과 공감을 대표하는 정치인이었다. 진보·중도·보수 지식인 100명이 뽑은 '소통 잘하는 인물' 4위인 노회찬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소통과 관련해 이렇게 밝혔다. - 소통을 잘하는 인물 4위에 꼽혔다."일반적으로 정치인은 주장을 선명하게 하면 불리하다는 판단에서 터부시하는데, 저는 주의주장이 선명한 편이다. 저는 그보다 주장이 어떻게 잘 전달되게 만드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는 정치를 '배달 증명'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하고, 발표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떻게 전달되느냐가 중요하다. 평소 주장할 때도 한편으로는 선명히 얘기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쉽고 일상적이고, 감동적으로 전달되도록 노력하는 편이다."- 토론의 달인으로도 불린다."보통 토론에서 상대방을 논리적으로 꺾으려 하는데 확실한 자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논리에 밀린다고 설복되지 않는다. 그래서 저는 토론할 때 시청자를 의식하면서 말한다. 토론은 국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이지, 상대방을 말로 이기는 과정이 아니다."
경향 : 소통을 잘하기 위한 조건이 있다면?
노회찬 : 우선 들어야 한다. 또 전달받는 쪽에서 무엇을 요구하는지 어떤 생각과 처지에 있는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잘 안 듣거나, 원하는 것만 듣다보면 이야기할 때 자기 합리화 속에서만 얘기하는 현상이 생긴다.
경향 : 불통현상에 대한 진보진영의 책임론도 나온다.
노회찬 :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진보진영의 소통 역시 대단히 부실하다. 인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진보 진영이 비정규직에 대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렇다고 비정규직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나?
그럴 때 사회의 낮은 정치의식을 문제삼기보다 이슈를 제기하고 풀어가는 과정에서 스스로 민심보다 공중에 떠 있는 일들을 더 많이 하지는 않았는지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진보진영은) 자신들의 치부나 병폐, 노선의 문제점을 과감히 드러내고 시인하는 데 매우 인색하다. (이호준 기자, 「소통 4위 노회찬 대표 "원하는 것만 듣다간 자기합리화 위험"」, <경향신문>, 2009.7.6.)
2018년 7월 23일 노회찬이 갑자기 떠난 뒤, 사람들은 '소통과 공감의 정치인'으로 노회찬을 떠올렸다. <디트NEWS24>의 류재민 기자는 「노회찬 어록과 정치인의 언어: 품격 있는 언어로 국민과 소통해야」(2018.7.27.)라는 글에서 이렇게 밝혔다.
"노회찬 의원이 진보와 보수 정치권 모두에 존경과 찬사를 받는 이유는 정치인으로서 품격 있는 언어로 국민들과 소통하고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아주 삭막한 우리 정치판에서 말의 품격을 높이는 면에서 많은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대한민국 정치에 '제2의 노회찬'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한편 '상생', '상생의 정치'와 관련해서 노회찬이 마지막 몸을 담은 정의당의 강령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우리가 꿈꾸는 정의로운 복지국가는 함께 행복한 상생의 나라이다. 정의로운 복지국가로 가는 정치가 상생의 정치이다. 우리는 '사람과 사람'의 상생을 추구할 것이다. 차별은 없애고 차이는 존중하며 격차는 줄이고 연대는 단단해지도록 할 것이다. '사람과 자연'이 상생하게 할 것이다. 노동하고 생산하고 소비하고 여가를 즐기는 우리 삶의 방식을 바꿀 것이다. '남과 북'이 상생하도록 할 것이다. 전쟁의 공포를 극복하고 공동 번영을 추구하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 것이다. '과거・현재・미래'의 상생을 추구할 것이다. 식민과 분단, 전쟁을 겪은 세대부터 지금의 청년 세대에 이르기까지 모두의 삶과 경험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들이 겪게 될 문제의 해법 또한 현세대가 책임 있게 준비할 것이다."
에를란데르의 '만찬정치'와 '목요클럽'(Thursday Club)과 '하프순드(Harpsund) 회의' : "난 목요일이 좀 한가한데 일단 만나서 얘기합시다"
"스웨덴에도 화합의 정치를 이룬 영웅이 있다. 바로 타게 에를란데르 총리다. 그는 45세에 총리에 올라 68세에 자진 하야할 때까지 23년 동안 재임하면서 스웨덴 복지를 완성했다. 재임 기간 중 치른 11번의 선거에서 모두 승리해 민주국가 정치인 중 가장 긴 연속 통치 기록을 갖고 있기도 하다."
스웨덴 쇠데르퇴른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최연혁 교수가 쓴 칼럼의 일부 내용이다. (「[동아광장/최연혁]스웨덴 에를란데르 총리의 만찬 정치」, <동아일보>, 2013.12.21.)
1946년 에를란데르가 총리로 선출됐을 때만 해도 왕과 보수파들은 많은 걱정을 했고 특히 노사분규로 힘들어 하던 경영자들의 거부감은 대단했다. 당시 스웨덴은 한국처럼 대기업 중심의 수출 위주 경제체제로 인해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였다. 에를란데르 총리는 각종 기념행사와 포럼, 회의 등에서 여러 단체의 대표를 만나 대화를 시도했지만 단지 그때뿐이었다. 1년에 한두 차례 기업총수와 노동조합 대표를 만나기도 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단체마다 정부가 수용할 수 없는 정책을 요구할 때가 많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정권을 흔들어 좌초시키려고도 했다. 그렇게 첫 임기를 마쳤다. 1948년 선거에서 승리한 에를란데르는 자신을 공격했던 50%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는 국가가 바로 설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갈등과 분열을 해소하고 정책에 대한 결실을 맺는 본격적인 대화의 장을 위한 '목요클럽'(Thursday Club)을 조직했다. 목요클럽의 공식 명칭은 '수출과 생산 증대를 위한 협력기구'로 스웨덴식 노사정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난 목요일이 좀 한가한데 일단 만나서 식사를 같이 하면서 얘기를 나눕시다." 에를란데르의 초대장에 적힌 글귀였다. 1948년 타게 에를란데르 총리 재임 시절 시작된 스웨덴 협치 모델 '목요클럽'이 태동한 배경은 소박했다. 나라가 어렵고 사회가 혼란스러우니 노사정이 저녁 식사를 같이 하며 허심탄회한 대화를 해보자는 구상이었다. 대화 목적은 자신과 입장이 다른 사람을 알아가는 것에 두었다. 설득하지 말기, 경청하기, 끼어들지 않기 등을 기본 원칙으로 삼았다. (「목요대화」, <한국일보>, 2020.4.25.)
2주에 한 번씩 모이는 목요클럽은 재무장관 주재로 경제인연합회, 농업인연합회, 도매인연합회, 무역협회, 중소기업연합회, 노동조합총연맹, 사무직노동조합총연맹 대표가 참석했다. 주요 경제정책과 현안을 두고 논의를 이어갔으며 참가자는 물론 총리 자신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50년대 중반, 정부와 대기업의 관계가 악화되자 목요클럽도 시들해졌다. 하지만 에를란데르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그는 총리의 하프순드 별장으로 경제계 대표를 초대해 자신이 직접 주재하는 '하프순드(Harpsund) 회의'를 시작했다. 1955년부터 1964년까지 이어진 하프순드 회의는 목요클럽보다 참가자의 폭이 넓었다. 개별 기업 대표, 금융인, 이익단체 대표, 각 부처의 고위 관리자, 노동조합 관계자 등을 회의 이후에도 수시로 만났다.
목요클럽과 하프순드 회의를 거치며 에를란데르에 대한 평가는 합리적이고 말이 통하는 정치인으로 변했고 노사정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대화의 끈을 이어갔다. 처음 모임을 시작했을 때 "오페라와 샴페인 이야기를 하는 경제인들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던 에를란데르의 솔직한 고백이 "효과적이고 유쾌한 토론"으로 변하기까지, 23년이라는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고뇌와 노력이 녹아 있을지 정치의 무게를 되새긴다. (하수정, 「정세균 총리 후보자가 언급한 '목요클럽'」, <경향비즈>, 2020.1.9.)
그의 노력에는 보여주기식 대화가 아닌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진정성이 자리잡고 있었고, 그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다.
※에를란데르는 총리로 재임하는 동안 매일의 다짐을 일기로 남기기도 했다. 몇 대목을 소개하면 이렇다.
"정치권력을 대표하는 사람은 경제권력을 가진 이들과 끊임없이 직접 대화해야 한다."
"이번 상황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듣는 것은 매우 큰 도움이 되었고, 그들 역시 왜 우리가 그렇게 했는지 그 이유를 듣는 것이 조금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재계는 나를 민간 기업을 말살하려는 네로처럼 여긴다."
"내가 은퇴 후 적적한 생활을 할 때 나를 찾아준 사람들은 동지도 많았지만 함께 국가의 미래와 경제발전을 상의했던 재계 사람도 많았다. 그들과의 대화의 정치가 없었다면 경제성장도, 복지정책도 둘 다 불가능했을 것이다."
2004년 17대 총선 과정에서 민주노동당 중앙선대본부장 노회찬도 매일의 상황을 <선대본 일기>로 작성해 중앙당 게시판에 연재했다.
"2003년 말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선대본부장으로 임명되자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일기를 쓰자'는 것이었다. 하루하루 일어난 일을 간결하고 담담하게 기록하기로 했다. 우리가 가는 길이 바로 역사이고 이를 기록하는 것은 나의 임무라 생각했다. 2004년 제17대 총선을 준비하면서 민주노동당 중앙선거대책본부의 활동을 일지로 기록함으로써 후일의 선거준비 활동에 살아 있는 자료를 제출하려는 것이 제1의 목적이었다."
노회찬의 <선대본 일기>는 <힘내라 진달래>(사회평론, 2004)로 묶여 출간되었고, '전태일문학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노회찬의 일기쓰기는 그 뒤에도 <난중일기>라는 제목으로 틈틈이 올라왔다.
노회찬과 '음식천국' : "서민들이 잘 살 수 있는 민生(생) 정책을 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그런 노회찬의 옛 동지들과 오랜 벗들이 노회찬이 생전에 즐겨 갔던 식당과 주점에 다시 모여 그가 걸어갔던 삶과 그가 꿈꾸었던 비전을 회고하며 나눈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은 이인우 기자의 <음식천국: 맛집에서 나눈 '노회찬의 삶과 꿈'>(일빛, 2021)이다. 이인우는 "노회찬이라는 사람의 인간미 속에 음식의 세계가 있다는 건 그 자신에게나, 주변의 지인들에게나 다 같이 축복"이라고 말한다.
"인생의 맛을 여기서 보았습니다. 2007.12.26. 노회찬"
<음식천국 노회찬>을 통해 이인우는 「노회찬과 이낙연의 '인생의 맛: 여의도 남도 한정식 '고흥맛집'」의 사연을 이렇게 전했다.
"날짜를 보니 18대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1주일 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었고, 민주노동당은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분열의 국면으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그렇게 돌이켜보니 왠지 노회찬이 남긴 글귀가 다소 처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주인의 회고에 따르면 노회찬은 사인을 마치고 "저 사인이 빛을 볼 날이 꼭 있을 겁니다"라는 말을 주인에게 남겼다고 한다. 비록 지금은 잠시 주춤하지만, 자신의 정치적 전도뿐 아니라 전체 진보정당의 미래에 대한 낙관의 다짐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인생의 맛을 알 때쯤엔… 2007. 4. 28. 국회의원 이낙연. "이낙연이 국무총리가 된 다음 날인 2017년 6월 1일, 정의당 원내대표실로 노회찬을 예방한 자리에서 이낙연은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노회찬 원내대표님과는 같은 막걸릿집 단골입니다. 언젠가 취중에 '인생의 맛을 알 때쯤엔…'이라고 낙서를 해 놨더니, 나중에 노 대표님이 그 아래에다 '인생의 맛을 알겠습니다.'라고 응수했습니다. (…) 총리 공관이 역사상 막걸리를 가장 많이 소비한 공관이 되도록 소통하는 정치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노회찬에게 총리 공관에서 다시 막걸리 회동을 하자고 제안하자, 노회찬도 화답했다.
"총리 공관 막걸리 맛을 보고 나서 공관에 없는 막걸리를 한 통 갖다 드리겠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여 뒤인 8월 16일, 당시 정의당 지도부(이정미 대표 및 심상정, 노회찬, 윤소하, 김종대, 추혜선 등 소속 의원 6명 전원)가 모두 참석한 만찬이 총리 공관에서 열렸다. 노회찬은 이 자리에서 이낙연에게 노회찬 의원실의 박규님 보좌관이 국내산 찹쌀로 직접 빚은 막걸리라며 두 병을 선물했다. 막걸리 이름은 '낙연주(洛淵酒)'. 그리고 이런 당부를 했다.
"총리께서 효모가 살아 있는 이 생쌀 막걸리를 맛있게 드시고, 서민들이 잘 살 수 있는 민生(생) 정책을 펴 주시기 바랍니다."
2018년 4월부터 2018년 7월 노회찬이 떠날 때까지 존재한 '평화와 정의의 의원 모임', 그것은 노회찬이 고흥맛집에서 도모한 생애 마지막 사업이었다. 이인우의 글을 따라가 보자. 소수 정당이 국회에서 캐스팅보트를 쥐려면 반드시 확보해야 할 고지가 교섭단체 지위(20석)다. 그러나 정의당은 6석. 노회찬은 이 벽을 넘기 위해 마침 민주당에서 떨어져 나와 있던 민주평화당(14석)과 공동 교섭단체를 꾸리는 일에 적극 나섰다. 이 '모의'의 주된 장소가 고흥맛집이었다. 노회찬은 두 당이 공동 교섭단체 구성에 합의하기에 이르자, 당시 민평당 원내대표인 장병완 의원과 함께 춤을 출 정도로 기뻐했다고 한다.
"노 의원님이 춤추는 걸 그때 처음 봤어요. 무슨 좋은 일이 있나보다 했는데…."
그해 4월 2일, 두 당이 국회에 공동 교섭단체로 등록하면서 노회찬이 첫 원내 사령탑을 맡게 됐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처음 국회에 입성한 뒤 14년간 비교섭단체 소속이었던 소수 정당 국회의원 노회찬에게 이 일은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그는 "14년 전 첫 등원 때만큼 떨린다"라고 말하면서 국회의장과 다른 당 원내대표, 두 당 소속 의원 모두에게 봄꽃 야생화를 직접 심은 화분을 보냈다. '봄이 옵니다. 노회찬'이라는 문구를 화분 하나하나에 꽂으며 여의도에도 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했던 그의 염원은 너무도 빨리 끝났다. <음식천국 노회찬>의 이인우 작가가 노회찬을 마지막 본 것은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하던 그날, 염리동 평양냉면집 '을밀대'에서였다. 이인우는 동료들과 점심을 하러 을밀대에 왔다가 마침 이정미 당시 정의당 대표 등과 회식을 마치고 나오던 노회찬과 마주쳐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다. 노회찬 정의당 20대 국회 원내대표도 이날 "시작이 반이다. 나머지 반을 채우기 위한 노력은 우리 모두의 몫"이라는 논평을 내고, 정의당 당직자들에게 평양냉면으로 '점심을 쏘기 위해' 을밀대에 들렀던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하기 위한 이 자리의 성격은 '평화, 새로운 시작'이었다. 점심 대접을 받은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오늘 점심은 노 대표님이 쏜 을밀대 냉면. 그 보답으로 다음 점심은 평양 옥류관 냉면 내가 쏘기로. 옥류관 냉면, 멀다고 말하면 안 되겠기에~^^"
이정미의 약속은 지켜질 수 없었다. 남북 평화의 조짐이 나타나지 않은 건 차치하고, 세 달 뒤 노회찬이 우리 곁을 황망히 떠났기 때문이다.
<집·밥·왔·썹>으로 이어진 노회찬과 에를란데르 : "집밥"으로 "연대"합니다
2020년 2월 노회찬정치학교 1기 기본과정(2019.10.26.~2020.2.8)을 수료한 학생들은 후속작업으로 4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오재영추모사업회'(대표: 김진석)는 프로젝트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장학지원금을 출연했다. 4개의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인 <집·밥·왔·썹>은 총 4회로 기획됐는데 안타깝게도 코로나19 상황으로 2회에 그쳤다. <집·밥·왔·썹> 프로젝트 제안자인 윤선주 님은 스웨덴 타게 에를란데르 총리의 '목요 만찬'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하면서 (가칭)'타게의 식탁'이라는 제목의 제안서를 제출했다. 제안서에 적힌 기대효과를 보면 이렇게 적혀 있었다.
1. 다양한 사회 문제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생생한 대화를 이끌어 냄2. 식사라는 행위는 전체적인 무게감이나 부담감을 덜어냄과 동시에 몸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들에게 감사의 표시가 될 수 있음3. 지속성을 띠고 갖가지 갈등을 다루면서 상반된 입장을 조율하게 되고, 영향력이 커질 경우, 소통하는 정치를 실현하는 하나의 모범적인 사례가 됨
'현장'을 방문해, 집에서 정성껏 준비한 한 끼 식사('집밥')를 대접함으로써 그들의 진솔한 목소리를 듣고 나누며 지속적인 소통의 장을 마련한다는 취지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함께 공부한 1기 수료생들도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시간을 쪼개 함께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닫는 글
오늘의 이야기 <스웨덴의 에를란데르>편은 노회찬재단 소식지 <민들레> 15호에 실린 윤선주 님의 글을 소개하며 닫는다. 글의 제목은 「"집밥"으로 "연대"합니다」.
"노회찬정치학교에서 공부한 내용을 삶 속에서 적용해보자는 취지의 프로젝트로 선정되어 진행하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수료식을 마친 이후 프로젝트 시작까지 반년이나 걸렸을 만큼, 코로나19는 생각보다 우리에게 치명적 고통을 주는 바이러스로 지금까지 일상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라는 생각이, 마음이 커져 '일단 시작이라도 해보자' 하여, 노동투쟁 현장(아시아나 비정규직 해고노동자)에 뜨거운 마음으로 출동하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음식을 하니,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엄청 분주했습니다. 전날 당직으로 인해 재료 손질을 제대로 해놓지 못해서인지, 이상하게 느릿느릿.. 더구나 코로나로 인해 일회용 포장 용기를 사서 반찬 하나하나를 담다 보니 준비가 더욱 더뎌졌습니다. 결국 아쉽게도 호박전 하나는 재료 손질만 하고 완성을 하지 못했습니다. 김치볶음, 멸치볶음. 찹스테이크, 오징어 날치알 깻잎 쌈, 감자볶음. 밥 2회, 맛살 샐러드. 오이 쌈장. 후식으로 수박 등등, 거기에 소명 쌤의 참나물, 가지나물과 재옥 쌤의 오이냉국과 멋진 식탁보 준비를 해주셨습니다. 우리에게는 풍성한 집밥으로 동지들의 힘든 투쟁을 응원해 드리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종각역 3-1 출구 앞에 동지들이 선전전을 시작한 11시 30분 우리는 도착했고, 함께 선전전을 마친 후 풍성한 식탁을 차렸습니다. 황복연, 기호운, 손은경 님 노회찬정치학교 동기 분들께서 손을 보태주셨습니다. 시간을 내고, 마음을 내고, 정성을 더하니 풍성한 나눔이 이루어졌습니다. 서로 간의 인사를 나누고 오순도순 밥을 함께하면서 삶과 정을 나눈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힘들게 싸우고 계신 아시아나 해고노동자 동지들은 어쩌면 우리들의 더 나은 근무환경을 위해 투쟁을 하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연대가 동지들에게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작은 힘 보태기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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