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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기록 2394시간 일하면서도 월 46만 원씩 잃던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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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기록 2394시간 일하면서도 월 46만 원씩 잃던 한국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 ㉞] part 3 북유럽 복지모델을 만나다 : 에이나르 게르하르센 上

이번 노회찬의 기록이야기 제목은 <기록으로 찾아가는,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 칼 마르크스에서 브라질의 룰라까지>이다. 칼 마르크스부터 브라질의 룰라에 이르기까지 '나라 밖 인물' 20여 명과의 직·간접적인 만남과 인연을 주제로 노회찬의 여정과 활동을 재구성한 것이다.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은 11월 1일부터 매주 월·수·금 3번 씩 연재된다. '평등하고 공정한나라 노회찬재단'(노회찬재단)과 <프레시안>이 함께한다. 편집자.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 (☞시리즈 모아보기)

part 1 혁명 그리고 정치

part 2 유럽 사민당 리더와의 조우

part 3 스칸디나비아(북유럽) 복지모델을 만나다

㉙ 들어가는 글 북유럽식 사민주의, 인구 5000만 한국에도 가능하다면 (☞바로가기)

㉚ 올로프 팔메 上 "젊은 정치를 보고싶다…왜 한국정치를 '19금'에 묶어놓나"(☞바로가기)

㉛ 올로프 팔메 下 "넌 특별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스웨덴, "정치는 일상이다"(☞바로가기)

㉜ 타게 에를란데르 上 "그렇다면 진보정당이 집권하면 어떤 세상이 될까요"(☞바로가기)

㉝ 타게 에를란데르 下 스웨덴의 노사정 대화는 오페라와 샴페인 얘기에서 시작했다(☞바로가기)

"게르하르센도 대학을 나오진 않았습니다"

▲노르웨이 지도
▲2008년 11월 노르웨이 방문 당시 박노자 교수(오슬로대)와 노회찬 Ⓒ노회찬재단
스칸디나비아 반도 지도를 보면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가 서로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스웨덴, 핀란드와 함께 스칸디나비아 3국에 속하는 노르웨이는 북이라는 뜻의 nor, 길이라는 뜻의 way가 합쳐진 말로, 북극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도 있다. 입헌군주제 국가인 '노르웨이 왕국'의 면적은 38만5207km²로 한국의 4배가 넘지만, 인구는 547만 명 정도로 유럽에서 아이슬란드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 밀도가 작은 나라다. 피오르로 유명한 해안선을 지닌 노르웨이는 산 그리고 강으로 이루어진 천혜의 자연을 자랑한다. 북유럽 여행자들은 노르웨이의 꾸미지 않은 자연을 첫손에 꼽기도 한다. '사회의 공기까지 바꾼' 북유럽의 복지국가들, 그 가운데 하나로 노회찬이 꼽은 '바이킹(=비킹, 위킹그르)의 후예' 노르웨이는 어떻게 복지국가를 건설했을까? 혹시 노회찬은 에이나르 게르하르센 총리에 대해 알고 있었을까? 노회찬이 남긴 기록을 훑어보면 노르웨이 이야기는 가끔 등장하는데, 게르하르센이라는 이름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에이나르 게르하르센, 그는 누구? : <나는 복지국가에 산다>와 '복지국가 노르웨이'

▲1945년의 에이나르 게르하르센. 2차 세계대전 후 17년간 노르웨이 총리 역임 (사진 출처: 위키백과)
앞서 살펴본 스웨덴의 경우 에를란데르 총리 임기 동안 각 분야에 걸쳐 전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보편적 복지국가의 완성이 이루어져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모범적이고 성공적인 '스칸디나비아 복지국가 모델'을 구축했다. 같은 시기 노르웨이의 게르하르센 총리(1945~1965년 재임) 또한 에를란데르와 나란히 노르웨이 복지국가를 건설했다. 두 사람 모두 '유약한, 우유부단하고 나약한 정치인'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이러한 약점이 강점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오랜 기간 총리를 지내면서도 권력을 이용하거나 타락한 적이 없는 사회민주주의의 이상적인 인물이었다고 평가받았다. (프랜시스 세예르스테드, 유창훈 옮김, <사회민주주의의 시대-북유럽 사회민주주의의 형성과 전개 1905~2000>, 글항아리, 2015)

에이나르 게르하르센(Einar Henry Gerhardsen, 1897.5.10.~1987.9.19.)은 노르웨이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노동당(Arbeiderpartiet, A/Ap) 출신의 정치인이다. 1923년부터 1925년까지, 1936년부터 1939년까지 두 번에 걸쳐 노동당 서기를 역임했으며 1932년에는 오슬로 시의원으로 선출됐다. 1940년 나치 독일이 노르웨이를 점령하면서 나치 강제수용소에 수감됐다가,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석방되면서 오슬로 시장에 복귀했다. 1965년까지 노동당 당수를 지낸 게르하르센은 총리를 세 번(1945.6.25.~1951.11.9.; 1955.1.22.~1963.8.28.; 1963.9.25.~1965.10.12.) 역임, 17년 동안 '장기집권'하면서 노동당 정부를 이끌었다. 그는 전후 재건과 '복지국가 노르웨이'의 틀을 마련, '조국의 아버지(Landsfaderen)'라 불리고 있다.
▲<나는 복지국가에 한다> 책 표지 갈무리
노르웨이는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 가운데 하나다. 세계 행복지수는 최상위권에 있으며, '유엔인간개발지수' 순위는 꽤 오랫동안 1위였다. 이밖에도 노르웨이가 '삶의 질'을 나타내는 지표에서 최상위권에 자리 잡고 있는 경우는 꽤 많다. 게르하르센이 기틀을 마련한 노르웨이 복지국가에 대해, 노회찬의 길동무였던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는 자신이 기획한 <(노르웨이의 한국인들이 말하는) 나는 복지국가에 산다>(꾸리에, 2013)를 통해 설명했다. 책은 6명의 노르웨이 교민들(김건·백명정·이경예·정의성·조주형·최경수)이 10년 이상 노르웨이에 살면서 경험한 복지국가의 장단점, 빛과 그림자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어 노르웨이가 복지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던 원동력과 그들이 지닌 과제를 통해,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를 향하는데 고민해봐야 할 시사점도 전하고 있다. '책소개'에서 노르웨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노르웨이가 장밋빛 유토피아는 아니다. 그저 극도로 부유하고 철저하게 잘 관리되는, 그리고 재분배 시스템이 잘 가동되는 자본주의 사회일 뿐이다. 그러나 재분배 시스템이 지금처럼 잘 가동될 수 있는 배경에는 지난 100여 년 동안 노동운동이 만들어낸 '사회적 책임'과 '평등'의 담론이 있다. 시장에서 자신의 노동을 팔지 못하는, 즉 시장 사회에서 '무능력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생계와 복지를 사회가 당연히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모든 시민들이 똑같은 사회적 권리를 누리며 똑같은 존엄성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이념이야말로 우리가 알고 있는 '복지국가 노르웨이'를 살려주고 지켜주고 있다."
※ 글쓴이들은 복지국가 노르웨이의 밑바탕으로 한결같이 평등을 꼽았다. 어릴 적부터 교육을 통해 평등의 가치를 배워,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도 자연스럽게 내면화됐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음악교사인 백명정은 학생 체벌용 회초리를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로 만나 충격을 받았다. 또 가르치는 학생에게 칠판을 지우라고 지시하자 "내가 도와주길 원하신다면 제게 예의를 차려서 부탁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대답에 놀라워했던 경험을 말한다.
노르웨이 국민들이 정치를 대하는 태도는 무척 흥미롭다. 청소년 시기부터 정치에 참여하도록 권장한다. 덕분에 "각종 정당 당원의 상당수가 20대이고 대학생 중에 의원이 있는" 상황이 보편적이라고 한다. 복지국가를 위한 정책이 결국 정치로 귀결되는 만큼,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역시 자신들이 지닌 삶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원동력일 것이다.
"노르웨이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사회와 정치에 대한 참여의식을 가르칩니다. 초등학교 7학년 교과서만 봐도 노동조합이 무엇인지 복지국가가 무엇인지, 노르웨이가 어떤 사회적 갈등 속에서 복지국가가 될 수 있었는지 하는 것들을 알 수 있습니다.  (…) 

보통 12~13세부터 정당에 입당할 수 있고, 고등학교부터 본격적으로 정당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덕에 사회 참여의식이 일찍부터 발달하고 자신과 사회의 문제에 대한 의식수준도 높은 편입니다." (박노자 기획, <나는 복지국가에 산다>, 꾸리에, 2013)

※우리의 삶은 정치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시민의 정치 참여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필요조건 중의 하나이며, 선거와 투표는 가장 대표적인 참여 형태이다.

<이코노미스트>에서 조사한 '2020년 민주주의 지수'에서 한국은 정치참여도 10점 만점에 7.22점으로 25위를 기록했다. 민주주의 지수 1위를 기록한 노르웨이의 정치참여도가 10인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수치이다. (안선우, 「정치적 무관심을 발전의 발판으로 삼자」, <미디어경청>, 2021.7.9.)

한편 국제의원연맹(IPU)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2021년 기준 40세 이하 청년의원 비율이 5%에도 미치지 못해 전체 121개국 가운데 118위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노르웨이(34.3%), 스웨덴(31.4%), 덴마크(30.7%), 핀란드(29%) 등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북유럽 국가들은 청년의원 비율이 전체 의원의 30%에 달한다. 

프랑스(23.2%), 영국(21.7%), 독일(11.6%), 미국(11.5%), 일본(8.4%) 등 주요국과 비교하더라도 한국의 청년 대표성은 낮다고 볼 수 있다. (이정진, 「청년 정치참여 현황과 개선과제」, 국회입법조사처, <이슈와 논점> 1803호, 2021.2.24.)

<노회찬의 난중일기> 속에 등장한 노르웨이 : "도대체 서민들이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1360시간 대 2394시간

2006년 6월 26일 노회찬은 <난중일기>에 「서민들이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2006년 한국사회의 적나라한 양극화와 빈곤 실상을 잘 보여주는 신문의 통계와 함께 노르웨이를 불러냈다.
"오늘 한 석간신문은 빈곤층의 자산이 월 46만 원씩 줄고 있다는 통계청 자료를 소개하고 있다. 소득 하위 20% 빈곤층의 올 1분기 자산감소액이 월평균 46만 원이라는 것이다. 이 감소액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서도 11.7% 더 늘었을 뿐 아니라 전국 통계를 집계한 2003년 이래 최고치라는 것이다.  반면 소득 상위 20%인 고소득층의 자산은 월평균 178만2000 원씩 늘어났고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서도 3.1% 더 늘어났다는 것이다. 지금 문제의 핵심은 단순한 사회양극화가 아니라 양극화의 양상이 지극히 악성이라는데 있다. 저소득층이든 고소득층이든 생활이 점점 나아지는데 다만 저소득층의 자산증가율이 고소득층의 그것에 못미치기 때문에 격차가 벌어지는 상황이 아니라 저소득층의 자산과 생활수준이 점점 날이 갈수록 후퇴하고 악화될 뿐 아니라 그런 계층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2005년) 경향신문 기사(2006.6.14.) 갈무리
"도대체 우리 대다수 서민들이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머리가 나빠서인가? 남들 열심히 일할 때 먹고 놀아서인가? 반문하면서, 노회찬은 노르웨이와 네덜란드 등의 노동시간과 한국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비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2005년 1년 동안 노르웨이 노동자들은 1년간 1360시간 일했고 네덜란드 노동자들은 1367시간, 독일은 1435시간 프랑스는 1535시간 일했다. 세계적으로 일벌레로 유명한 일본 노동자들도 1775시간 일한 반면 한국의 노동자들은 2004년 통계로 2394시간 일했다.  OECD 통계를 볼 것도 없이 국제노동기구(ILO)에 의하면 한국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지난 30년간 세계 1위를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 최장 노동시간 부문에서 감히 한국을 제치고 1위를 하려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열심히 일한 죄 말고는 이 땅에서 태어난 죄밖에 더 있는가?
이어 노회찬은 사회양극화 심화와 관련해 노무현 참여정부의 기본정책을 질타했다.
"사회양극화의 원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심화시켜온 참여정부의 기본정책에 있다. 3백만 농민을 빈곤층으로 내모는 쌀시장개방 정책, 800만 명이 넘는 비정규직의 양산 정책을 견지하면서 빈부격차를 줄이겠다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잡겠다는 우화가 아닐 수 없다.  (…)  2000년에서 2004년까지 불과 4년 동안 자신의 재산을 25억 원에서 86억 원으로 늘린 참여정부의 부총리도 대기업 노동자들이 양보해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가 나아진다고 하지 않았는가?  현대자동차 노조원들이 사용자와의 교섭에서 인상율 1~2%, 즉 월 임금총액 9억 원에서 18억 원 정도 더 받기 위해 파업하는 것을 마치 기업을 절단내는 것처럼 비난하던 사람들이 기업자금 1000억 원 이상 횡령한 그룹총수의 석방을 탄원하고 있지 않은가?"

노회찬, 노르웨이에 가다 :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만들어낸, '바뀐 공기'의 냄새

▲오슬로대학에서 강연하는 노회찬(2008.11.21) Ⓒ노회찬재단
▲노회찬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고 있는 박노자 교수와 오슬로대 한국인 유학생들(2008.11.21) Ⓒ노회찬재단
2008년 11월 15일부터 7박8일간 노회찬 진보신당 상임공동대표는 프랑스와 노르웨이를 방문헸다. 노르웨이의 경우는 노르웨이 최고의 국립대학 오슬로대학(Oslo University)과 아시아네트워크(Asia Network)의 초청으로 이루어졌다.  노르웨이 방문기간 중 노회찬은 국립 오슬로 대학에서 '오바마의 등장과 한미관계의 미래'(Obama's Victory and the Future of Korea-America: We demand more change from America)를 주제로 특강을 했다. 이 자리에는 오슬로 대학의 지역정치학 교수들, 노르웨이 아시아네트워크 회원,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참여해 동북아 질서 재편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였다.  강연 후 노회찬은 한국 유학생과 간담회를 통해 향후 진보정당의 역할과 과제에 대해 격의 없는 대화를 가졌다. 한편 노회찬은 한국을 떠날 때부터 준비한, 노르웨이의 평범한 시민 두 사람과 장시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한 명은 간호사 출신, 한 사람은 교사 출신의 은퇴한 60대 여성이었다. 세금, 교육, 의료, 주거 등 일상생활에 대한 궁금한 것들을 다 물어보았다. 

그들과 나눈 얘기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깨알 같은 메모가 적힌 '손바닥 노트'가 아직 남아 있다. 그 만남의 소감을 노회찬은 이렇게 전한다. (노회찬.구영식,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비아북, 2014, 211-212쪽)

"그들은 세금, 교육, 의료 등 자기 나라의 여러 제도들에 높은 만족도를 보였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세금도 많이 내고 있었다.  이것처럼 좋은 것이 없다고 얘기하는 걸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를 보면 잘 사는 사람도 있고 못 사는 사람도 있지만, 잘사는 사람조차도 자기가 얼마나 노력해서 잘살게 됐는지를 얘기할망정 자기의 행복한 삶이 사회제도 때문에 유지된다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못사는 사람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 사람들은 제도를 탓하니까.  그런데 그곳에서는 평범한 일반 시민들조차도 사회에 작동하고 있는 제도를 굉장히 소중히 여기고, 이 제도의 유지를 위해 자신도 기꺼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단순히 제도만이 아니라 제도가 갖는 정신과 철학을 체화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복지가 실현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제도를 악용해서 경제적 이득만 챙기는 부작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직 복지제도의 철학까지는 체화되지 못한 것이다.  지방에서 사람을 뽑으면 몇 달 있다가 그만둔단다. 실업수당을 받기 위해서다. 옛날과 달리 실업수당이 많이 나오니까 회사에 잘린 것처럼 해달라고 요청한다고 한다. 그러고는 일당을 받는 단순노동을 하면서 동시에 실업수당을 받는 것이다. 생활이 어려우니까 변칙을 쓰는 것이겠지만 그건 복지제도의 정신에는 반하는 행위다."
"내가 만난 노르웨이 분들은 이런 변칙을 단호히 비판했다. 그것은 자신들이 만든 굉장히 소중한 규칙을 깨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공기가 다르다'고 표현한다. 심지어는 슈퍼마켓에서 받은 영수증 전표를 보여주더라. 거기 보면 물건 가격이 쫙 적혀 있는데, 세금도 같이 적혀 있다. 그것을 이렇게 설명해주었다.  '이것은 물건 살 때 담는 봉투다. 이것은 가격이 낮지만 세율은 높다. 봉투 같은 것은 본인이 노력하면 준비해올 수 있는 것이어서 세금이 세다. 식료품은 진짜 세금이 약하다. 대신 담배나 술은 세금이 높다.'  세금제도가 이렇게 합리적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설명한 것이다. 정부의 홍보부처 사람을 만난 것 같았다. 그럴 정도로 자기들은 굉장히 합리적이고 높은 수준의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자부심이 강했다."
은퇴한 노르웨이의 두 시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노회찬은 '바뀐 공기' 냄새를 맡았고, 그것은 그가 늘 강조했던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만들어낸 냄새였다. 북유럽 나라라고 해서 아무런 갈등과 문제가 없을 리 없다. 하지만 그것이 그 나라들이 '인류가 도달한 가장 선진적 수준의 나라'라는 노회찬의 평가를 유보할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 2018년 7월 노회찬이 떠난 다음날 <88만원 세대>의 공저자이자 경제학자인 우석훈의 추도사 「아름다운 사람들의 시대는 갔는가」(<오마이뉴스>, 2018.7.24.)를 보면 노르웨이가 등장한다.
"우리 부부의 친구였던 노르웨이 부부를 노회찬이 알게 됐다. 그래서 그 후에 노르웨이 방문을 하면서, 그 노르웨이 부부의 부모, 친척 등 그야말로 노르웨이 사회당 계열의 교사들을 만나게 됐다. 우리들의 친구는, 이렇게 겹치고 저렇게 겹치고, 그렇게 몇 년을 지냈다. 그 순간은 내 인생에서도 가장 찬란하게 아름다웠던 순간으로 기억된다."

노르웨이의 '연합정치'와 한국의 '민주대연합'(반MB연대), 그리고 노회찬의 '반MB대안연대'

▲노르웨이 사회주의좌파당(SV) 중앙당사를 박노자 교수와 방문, 당직자와 대화를 나누는 노회찬(2008.11.20.) Ⓒ노회찬재단
▲노르웨이 사회주의좌파당(SV) 중앙당사를 박노자 교수와 방문, 당직자와 대화를 나누는 노회찬(2008.11.20.) Ⓒ노회찬재단
강연 하루 전날 노회찬은 노르웨이 집권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당보다 왼쪽에 있는 '사회주의좌파당'(Socialist Left Party; Sosialistisk Venstreparti, SV)을 방문해, 좌파정당으로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사회주의좌파당의 입장과 향후 과제에 대해 폭넓게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는 한국의 진보신당과 노르웨이 사회주의좌파당 간의 정책교류를 추진하기로 하고 향후 당직자 교환프로그램 등을 함께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노르웨이를 방문하고 돌아온 얼마 뒤 노회찬은 <오마이뉴스>의 구영식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흥미롭게도 노회찬이 귀국한 뒤 정치권에서는 '민주대연합론'이 제기됐다. 이명박 대통령에 맞서 민주당과 진보정당, 시민·사회단체 등 '범민주세력'이 연합해야 한다는 것으로, 한마디로 '반MB연대를 구축하자'는 주장이었다. (구영식, 「민주대연합론은 결국 '민주당 강화론': '진보 수혈' 대신 보수야당이 전향해야」, <오마이뉴스>, 2008.12.5.)

▲노르웨이 노동당 로고(왼쪽)와 사회주의좌파당 로고
먼저 노회찬은 노르웨이 정치 상황을 이렇게 스케치했다.
"노르웨이의 경우 현재 노동당과 사회주의좌파당 등이 연합해 정부를 구성했다. 우파인 '진보당'의 재집권을 저지해야 한다는 것이 '연합정치'의 명분이었다.  하지만 사회주의좌파당은 연정에 참여한 이후 지지율이 5% 정도 떨어지는 타격을 입었다. 게다가 연합정치의 한 축인 노동당은 고등교육 독립법인화, 철도 민영화, 노동법 개악 등을 추진하고 있고, 사회주의좌파당은 이를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규정해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어 '연합정치'를 초점으로 우리의 정치상황에 대한 구영식 기자의 질문에 노회찬의 이렇게 대답했다.
"노르웨이의 연정은 정책의 유사성으로 연합하지 않으면 강력하지도 않고 오래갈 수도 없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특히 우리처럼 'All or Nothing' 정치에서 연합정치는 강자를 살리기 위한 수단이다."
"우리나라 개혁보수세력은 위기에 빠질 때마다 운동진영으로부터 수혈을 해왔다. 그 수혈을 통해 민주정부 수립이라는 정권 창출에는 성공했지만 그 정권이 결국 사회양극화를 조장하는 역설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쓰러져가는 야당을 살리기 위해 다시 민주대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또 한 번 수혈을 하려고 한다. 민주대연합론은 보수 야당이 위기에 처할 때 외부의 힘을 빌리기 위해 나왔다. 그런데 그 소중한 힘이 사회를 개선하는 데 쓰이지 않고 보수야당의 집권을 위한 도구로만 쓰였다."
"좌파가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우파에 투항하는 민주대연합은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이 바라는 민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수 야당이 신자유주의를 버려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겠는가? 민생문제를 얘기하려면 민주당이 반신자유주의를 선언하는 노선 전환, 즉 전향을 해야 한다. 비정규직과 한미FTA에 대한 입장이 다른 상태에서 연합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남북문제 하나만으로는 반MB(이명박)연대를 두텁게 형성할 수는 없다."
※ 2021년 총선에서 사회주의좌파당은 노동당과 연대해 13석의 의석을 획득, 노동당과 연정을 구성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기후변화 대응, 석유 시추, 복지 예산 문제 등으로 갈등하다가 9월 28일 연정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국회 의원회관. 진보신당 주최 '반MB연대,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2009.8.12.)에서 기조발제를 하는 노회찬 (Ⓒ노회찬재단)
이명박 정부에 맞서는 '연대'에 대한 노회찬의 입장은, 대안을 중심으로 하는 '반MB"대안"연대'로 구체화됐다. 2009년 8월 12일 진보신당에서 주최한 '반MB연대,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반민주세력은 오래 전부터 '반민주'라는 역사의 문신을 지우고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보수'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 반면, 민주세력은 정치적 우월감에 갇혀 '민주 대 반민주'라는 낡은 대립구도로 '반민주'를 제압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하지만 이미 대중의 눈에는 민주 대 반민주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일 뿐이며, 민주를 자칭하는 개혁, 진보세력은 지난 10년간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든 장본인일 뿐이었다"고 꼬집었다. 노회찬은 "현재의 '반MB연대'는 '대안연대'가 아닌 '반대연대'에 머물고 있고, 항상 반대하는 상대의 뒤꽁무니만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민주 대 반민주'식의 구도로 회귀하는 것으로는 반MB연대는 승리할 수 없다"며 "새로운 대안 비전 아래서 정치세력과 그 지지기반 자체를 재편하는 '반MB대안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즉 "반MB대안연대의 핵심은 "기존의 '정치적 민주연합'을 넘어선 '사회경제적 민주화연합'"이라는 것이었다. 노회찬은 '대안'연대의 구체적인 의제로 △기간제보호법·파견법의 폐지와 기간제 사용사유 제한 입법 △부자기여세 등 부자 증세 △4대강 살리기 저지와 토지·주택 공개념 도입 △독일식 비례대표제 도입 등을 제시하면서 여기에 '민(民)들레 연대-서민중심형 복지동맹'라는 이름을 붙였다. 발제문의 내용 가운데 눈에 띄는 대목을 추가로 몇 개 소개하면 이렇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은 MB정권만이 아닌 소위 'MB족'이라 부를 수 있는 '약탈투기연합'이다. 'MB족'은 부자 감세의 혜택을 입은 재벌, 금융 부동산 불로소득자 등 소수 부유층, 그리고 이들과 결탁한 고위 관료와 이들의 나팔수 역할을 하는 일부 수구 언론이다.  이러한 'MB족'의 치부 방식은 크게 약탈과 투기다. 이들 약탈투기연합에 맞서 싸우자면, 이들의 가치와 지향, 프로그램과 겨루는 대안적인 가치와 지향, 프로그램으로 무장해야 한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나 신민주연합론은 철 지난 상품을 낡은 포장지로 싸는 것에 다름 아니다. 관 속에 들어가야 할 신자유주의를 '민주' 혹은 '평화'라는 이름의 깃발로 덮는 것으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지금과 같은 비상사태 앞에서 탈출구 없는 감옥살이를 할 수밖에 없는 다수의 보통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서민중심형 복지동맹' 구성이 필요하다. 그 속에서 진보정치의 블루오션을 신속하면서도 정확하게 만들어내야 한다."

토론자로 나선 손호철 서강대 정치학 교수는 노회찬의 제안을 환영하면서도, "지나친 대안강조론, 대안환원론을 경계해야 한다"며 "대안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문제가 단순히 대안이 없어서 그런 것 같은 인상을 주면서 다른 문제들에 면죄부를 주는 알리바이로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참세상>, 2009.8.12.)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 교수도 "'민주 대 반민주'와 같은 낡은 이분법 연대는 다수파의 패권주의에 이용될 수 있다"며 고용·주거·교육·노후·건강 등 5대 불안을 해결할 정책에 기반을 둔 '경쟁적 연대'를 조언했다. 

이대근 경향신문 정치·국제 에디터는 "지난 정권의 실패를 극복하지 못한 오합지졸식 결집은 반대 세력의 정통성을 또 상실할 수 있다"며 "연대는 민주당의 혁신을 촉진하고 견인하는 것을 전제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 2009.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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