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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대학 출신이면..." 채용비리 면죄부, 납득이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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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상위 대학 출신이면..." 채용비리 면죄부, 납득이 됩니까? [은행권의 '정유라' 그들은 왜 당당한가] 검찰, 11월 26일 상고장 제출
유력 인사 자녀를 부정하게 입사시킨 혐의로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회장님‘에게 항소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런 논리를 내세웠다.
"청탁대상자들이 대체로 상위권 대학 출신 등 기본적 스펙을 갖춰 일률적으로 부정통과자로 볼 수 없는 점, 부정채용죄가 법률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채용비리를 다스리고 있는 점…."
인사 청탁을 받았더라도 그 대상자가 ‘상위권 대학 출신‘이면 부정입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 논리에 따라 면죄부를 받은 인물은 신한금융지주회사 회장 조용병이다. 법원 판단은 과연 합리적인지, 지금부터 독자 여러분들이 판단해 보길 바란다. 조용병 회장은 2015년 3월부터 2017년 2월까지 신한은행장을 맡았다. 지금은 신한금융지주회사 회장이다. 조 행장 시절, 신한은행은 ‘특이자 및 임직원 자녀’ 명단을 엑셀 파일로 만들어 관리했다. 국회의원, 재력가, 금융감독원 직원 등 은행 영업 및 감독에 영향을 줄 있는 사람은 ‘특이자‘로, 신한금융지주 부서장 이상의 자녀는 ‘임직원 자녀‘로 분리하는 식이다.
▲ 신한은행 ⓒ남궁현
신규행원 채용을 시행하던 2015년 4월, 조용병 은행장은 이상구 금융감독원 은행-비은행 검사담당 부원장보를 만났다. 둘은 이런 대화를 나눴다.

이 부원장보 : 제 아들이 2015년 상반기 신한은행 채용에 지원했습니다.

조용병 은행장 : 아들이 누굽니까?

이 부원장보는 아들 이름을 이금수(가명)를 알려줬다. 조 행장은 신한은행 인사부장 김인기에게 지원자 이금수(가명)의 전형별 합격, 불합격 여부에 대한 피드백을 지시했다. 신한은행은 이금수를 ‘특이자’ 명단에 올리고 관리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이금수는 실무자 면접에서 DD등급을 받고 탈락했다. 조 행장은 인사부장에게 지시했다.
"다음 전형에서 잘 한 번 살펴봐."
이미 탈락했는데 "다음 전형"이라니. 신한은행은 전산 시스템에 손을 대 이금수의 면접 점수를 BB등급으로 상향 조작했다. 면접위원이 남긴 의견도 조작했다.
"큰 키의 호감형으로 창구적합도 양호, 입행 준비 또한 양호한 점 고려, 외국어 역량, 금융권 준비사항 등을 고려해 B로 평가하고자 함."
이금수 씨는 최종 합격했다. 2016년 하반기 신규행원 채용 때도 비슷한 수법이 동원됐다.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조카손자가 신한은행에 지원한 사실을 2016년 9월 조 행장에게 알렸다.
"조카손자인 나원기(가명)가 신한은행 채용에 지원했으니 잘 봐주게나."
조 행장은 이승수 당시 신한은행 인사부장에게 지시했다.
"라응찬 전 회장님 조카손자 나원기의 전형별 합격, 불합격 여부에 대해 피드백 줘."
이 부장은 나원기를 ‘특이자’ 명단에 등재하고, ‘得(얻을 득)과 ★‘을 기재하도록 인사팀에 지시했다. 조 행장이 관심 있는 지원자라는 표시였다. 인사팀은 특이자 나 씨의 서류를 보고 평가 의견을 남겼다.
"나OO 지원자의 서류를 심사한 결과 학업성취도가 낮고 지원한 IT분야 전문역량이 열위이며, 금융권 준비 노력이 부족하고, 학점 필터링컷 해당(3.0미만)하여 불합격권에 속한다."
1단계 서류전형 통과를 못하게 된 상황. 이승수 인사부장은 인사팀에 나원기에 대한 재심사를 지시했다. 인사팀은 같은 날 한 장짜리 '개별 보고서'를 작성해 이 부장에게 제출했다. 나원기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한 상세 분석 내용이 담겼다. 이 부장은 나원기의 '서류 전형 합격'을 지시했다. 임원 면접 때는 나원기을 위한 '전용 면접조'가 꾸려졌다. 신한은행은 다른 IT분야 지원자 52명을 모두 ‘IT면접조‘로 편성한 반면, 나원기는 '일반직 행원 면접조'로 구성했다. 면접위원 4명 중 3명은 그에게 B등급을 줬지만, 이 부장은 A등급을 줬다. 나원기는 최종 합격했다. 1심 재판부인 서울동부지방법원 형사11부(재판장 손주철)는 업무방해,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조용병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2020년 1월 선고했다.
"피고인 조용병은 인사부에 해당 지원자들을 합격시키라는 명시적인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신한은행의 최고책임자인 피고인이 특정 지원자의 지원 사실을 인사부에 알린 행위 자체만으로도 인사부에서의 채용업무의 적정성을 해치기에 충분하고, 피고인도 이러한 사정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2심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 제6-3형사부(재판장 조은래, 김용하, 정총령)는 이를 완전히 뒤집어 지난 11월 22일 조용병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런 논리를 꺼냈다.
"정당하게 합격하거나 합격 사정을 거친 지원자일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하기 어렵다."
재판부는 이금수 채용에 대해 이렇게 판단했다.
"지원자가 재사정 회의라는 형식적 절차를 거쳐 합격자로 결정된 것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이들이 인사권자 내지 의사결정권자의 일방적인 지시에 따라 합격자로 변경된 지원자들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등을 비추어볼 때 정당한 합격자 프로세스를 거쳐 합격된 지원자들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충분해 보인다."
나원기 채용에 대해서는 "만약 피고인 조용병이 인사부장에게 합격 지시를 한 것이 사실이라면, 인사부장은 곧바로 합격지시를 전달하면 그만이지 굳이 나원기에 대한 상세 보고서 작성을 지시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며 "피고인 조용병의 재검토 지시가 ‘기회의 균등‘이라는 측면에서 다소 부적절하다고 볼 여지가 있기는 하나, 그렇다고 하여 이를 두고 업무방해죄에 있어서의 위계행위와 같은 불법행위로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조 행장이 말한 지원자가 탈락하자 인사부가 재검토 상세 보고서까지 만들어 그를 합격자 명단에 올렸는데, 이에 대해 재판부는 "충분한 검토를 한 정황"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 조용병 회장. ⓒ연합뉴스
이어 2심 재판부는 인사부장이 나원기 임원면접조에 면접위원으로 들어간 행위에 대해 "인사부장이 특정 지원자의 인적사항(특이자 및 임직원 자녀)을 알고 면접에 임하는 것이 부적절할 수는 있으나, 이를 금하는 별도의 입법이 없는 이상 이는 어디까지나 사기업이 누리는 채용을 위한 조사방식의 자유에 포함되는 여지도 충분한 점 등을 종합할 때 면접업무의 적정성 내지 공정성이 방해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2심 재판부의 무죄 논리는 그간 채용비리 처벌법규 공백을 '업무방해죄'로 적극적으로 적용해온 법원의 판단과도 배치된다. 2심 재판부는 양형 이유에선 이런 논리도 밝혔다.
"이 사건 공소사실에 특정 전형에서의 부정통과자로 적시된 지원자들 대부분은 청탁의 대상이거나 신한은행 임직원들과 연고 관계가 있는 지원자들이기는 하나, 이들은 대체로 상위권 대학 출신에 일정 수준의 어학 점수와 각종 자격증을 보유하는 등 기본적인 스펙을 갖추고 있는데다, 다른 일반 지원자들과 마찬가지로 일정 정도의 합격자 사정 과정을 거친 경우도 있으므로 이들을 일률적으로 부정통과자로 볼 수는 없고, 이러한 합격자 사정 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지원자임이 밝혀진 경우에만 부정통과자에 해당한다고 보아야한다."
서울동부지검 부장검사 일한 2018년 신한은행 채용비리 사건을 수사·기소했던 주진우 변호사는 이번 2심 판결에 아쉬움을 표했다. 주 변호사는 7일 기자에게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채용비리에 있어 업무방해 혐의 적용이 오래되진 않았지만, 대법원 법리 해석상 적용이 가능합니다. 법원의 판단은 존중하지만, 법 해석도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고, 유사한 사건에서 업무방해가 적용된 만큼 충분히 (업무방해죄로) 판단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2심 판결을 두고 시민단체 '금융정의연대'도 11월 24일 성명서를 발표해 항소심 재판부를 비판했다. 금융정의연대는 "채용 또는 일부 전형의 합격을 청탁한 사정이 직・간접적으로 확인되는 상황임에도 상위 학벌과 일정한 스펙을 갖추면 부정합격자 또는 부정통과자가 되지 않는 참으로 괴상한 논리"라면서 "조용병 회장이 직접 '채용지시'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인사담당자에게 지원자의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공정한 채용절차에 반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조용병은 2021년 12월 현재도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이금수와 나원기는 현재도 신한은행 직원이다. 이들에게 면죄부를 준 2심 재판부는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해야하는 건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적 가치“라는 점을 언급했다. 재판부의 판단은 공정하고 정의로우며 시대적 가치를 반영하고 있는지, 독자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검찰은 조 회장의 무죄 판결에 불복해 11월 26일 상고장을 제출했다. 최종 판단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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