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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기업은 알고리즘 정보를 노동조합에 제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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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플랫폼 기업은 알고리즘 정보를 노동조합에 제공해야 한다"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알고리즘 매개변수는 '취업규칙'...노동조합과 단체교섭 대상

"플랫폼 기업은 노동조건·취업 등에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인공지능의 기초가 되는 매개변수(parameter) 등에 관한 정보를 노동자평의회(노동조합)에 제공해야 한다."

올해 3월, 스페인 정부가 제정한 '라이더법(Ley Riders)'에 명시된 내용이다. 이 법은 배달 라이더를 기본적으로 노동자로 추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위 알고리즘 관련한 조항은 배달 플랫폼만이 아니라 모든 플랫폼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내용이다. 여기 알고리즘, 매개변수와 같은 개념이 나오는데 이건 대체 무슨 뜻을 가진 걸까? 우선 알고리즘이란 어떤 해결책을 찾기 위해 입력 자료를 토대로 원하는 출력을 유도하기 위한 규칙이다. 너무 추상적인 얘기인가? 그렇다면 배달 플랫폼을 예로 들어 설명해보자. 내가 고객(C : Customer)이 되어 인근 음식점(S : Store)에 간식 배달을 주문했다. 나와 음식점 근처에는 9명의 라이더가 일을 하고 있다. 그럼 어떤 기준과 원칙으로 일감이 배정될까?

매개변수 등에 관한 정보?

아마도 플랫폼이 원하는 해결책은 가장 빠르게 음식점에서 간식을 픽업해 고객인 내게 배달해줄 라이더를 찾는 알고리즘일 것이다. 그렇다면 음식점에서 라이더까지의 거리(x)가 가장 중요한 항목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일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어떤 음식이냐에 따라 조리시간이 꽤 걸리는 탓에 이를 감안한 최적의 거리(y)에 있는 라이더를 찾는 게 효율적일 것이다.
▲ 배달 플랫폼 알고리즘이 고객과 음식점의 거리만을 변수로 최적의 라이더를 찾는다면 이런 모습일 것.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그뿐이 아니다. 그동안 고객들의 평점(z)이 어떠했는지도 참고할 만한 수치가 될 것이다. 여기에 플랫폼 기업의 경우 라이더가 그동안 콜 수락율(또는 거절율)에 따른 충성도(w)를 따져 일감 배정을 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까지 벌써 x, y, z, w 라는 네 개의 항목이 등장한다. 보통 수학에서 다루는 다항식이라면 이들 문자는 '변수(variable)'가 되겠지만, 플랫폼이 사용하는 알고리즘에선 의미가 좀 달라진다. 일단 고객과 음식점이 정해지는 순간, 음식점에서 라이더까지의 거리 x는 정해진다. 조리시간 감안한 최적의 거리 y, 평점 z와 충성도 w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라이더에 따라 값이 달라지긴 하지만, 모든 값은 미지수가 아니라 정해진 숫자이다. 그런 뜻에서 알고리즘은 이들 항목을 입력값(argument) 또는 입력 데이터라 부른다. 자,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일감 배정을 위해 이들 4가지 항목 중 어떤 것을 가장 중요하게 취급할까? 4가지 항목에 각각 어떤 비중(가중치)을 줘야 할지 처음에는 알 수 없다. 그래서 AI를 통해 각각의 입력값에 계속 다른 가중치를 주면서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을 찾게 된다. 이때 AI를 학습시키기 위해 변화시키는 가중치를 알고리즘에선 매개변수(parameter)라 칭한다.

알고리즘 밝히란 요구의 진짜 의미

자, 그렇다면 최종적으로 라이더를 선택하기 위한 알고리즘은 어떻게 될까. 입력값 x, y, z, w 에 대한 가중치(매개변수)를 각각 a, b, c, d 라 하면 입력값과 가중치를 곱한 값들의 합, 즉 {ax+by+cz+dw} 값을 구해 가장 높은 수치가 나오는 라이더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 거리, 최적거리, 평점, 충성도를 입력값으로 각 입력값에 가중치를 적용해 구상해본 배달 플랫폼 알고리즘.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앞서 설명한 것처럼 x, y, z, w 는 라이더가 정해지면 고정된 값이기에 매개변수 a, b, c, d 값을 계속 변화시키며 최적의 답을 찾게 된다. 매개변수가 달라짐에 따라 라이더1이 선택될 수도 있고 라이더2 또는 라이더3이 선택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알고리즘 내용을 밝히라는 요구에 플랫폼 기업들은 "데이터셋과 코딩 내용까지 공개하라는 거냐? 영업비밀이다"라며 저항한다. 하지만 스페인 라이더법에 명시된 조항에 따르면, 플랫폼이 노동자평의회(노동조합)에 제공해야 하는 것은 AI를 학습시키는 과정에 △ 어떤 입력값을 사용하고 있는지 △매개변수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말하는 것이다. 사실 이 모든 것이 라이더들의 노동조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일감 배정기준이 직선거리인지 아니면 조리시간 감안한 거리인지에 따라 일하는 요령이 달라진다. 평점이 일감 배정에 어떤 비중을 차지하는지, 도대체 몇 번의 콜 거부가 일감 배정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라이더들, 그리고 노동조합이 알 권리가 있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지 않은가.

노동조건·취업에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이란?

지난 9월 13일, 유럽연합 의회에서 압도적 찬성으로 의결된 "라이더, 운전기사 등 플랫폼 노동을 위한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적 권리 보장" 결의안에도 알고리즘의 투명성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노동조건·취업에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을 플랫폼 노동자에게 제공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일감이 어떻게 배정되는지, 등급(평점)이 어떻게 매겨지는지, 계정 정지와 가격(요금)은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대한 알고리즘 작동 관련 최신 정보를 이해 가능한 수준으로 제공할 것" (… the provision of intelligible and up-to-date information concerning the functioning of the algorithm in view of the way tasks are assigned, ratings are granted, the deactivation procedure and pricing …)
유럽연합 결의안에서 정보 제공을 요구하는 알고리즘은 배달 플랫폼이 사용하는 것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배달 플랫폼은 아래와 같이 일감 배정 알고리즘, 등급(평점) 알고리즘, 계정 정지 알고리즘, 그리고 가격 결정 알고리즘 등 4가지 알고리즘이 작동되고 있다.
▲ 배달 플랫폼에서 작동하는 4가지 알고리즘.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알고리즘은 취업규칙, 설명하고 협의해야

위의 알고리즘 내용을 살펴보면 모두가 라이더의 수입(가격 결정 알고리즘), 징계 및 해고(등급과 계정 정지 알고리즘), 물량(일감 배정 알고리즘)에 대한 것들이다. 임금과 노동조건을 정해놓은 것, 그렇다면 알고리즘은 취업규칙이다. 노동자들에게 알리고 설명해야 한다. 만일 알고리즘을 노동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바꾸려면 노동자들과 협의하거나 노동조합과 교섭을 통함이 옳다. 물론 여기서 다루는 것은 노무제공을 매개하는 플랫폼에서의 알고리즘이다. 앞선 글에서 다뤘던 페이스북·유튜브·인스타그램 등 노무제공과 무관한 플랫폼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노무제공을 매개하는 배달·배송·모빌리티·가사 등의 플랫폼에서 작동되는 알고리즘은 분명 취업규칙의 성격을 갖고 있다. 아울러 알고리즘은 아직 취업규칙처럼 간단히 '공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페인의 라이더법, 또는 유럽의회 결의안처럼 "노동조건과 취업에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의 매개변수 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함이 옳다. 굳이 말하자면 '알고리즘을 공개하라'는 말보다 '알고리즘을 설명하라'는 것이 더 정확한 의미가 되겠다.

모든 플랫폼노조의 교섭 핵심의제, 알고리즘

지난 9월 28일, 영국의 우버 기사들을 조직하고 있는 앱기사·라이더노조(ADCU, App Drivers & Couriers Union)가 우버를 상대로 파업을 벌인 바 있다. 당시 ADCU가 내걸었던 파업의 3대 요구 모두 알고리즘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 영국 우버 기사를 조직하고 있는 앱기사, 라이더노조 ADCU의 파업 관련 선전물. ⓒADCU
① 수수료를 15%로 인상할 것과 함께 선불요금제(up-front pricing) 폐지 요구 여기서 선불요금제 폐지 요구는 생소하다. 카카오택시를 생각하면 쉬운데, 일단 출발지와 목적지를 입력하고 앱으로 택시를 잡으면 예상 요금이 먼저 결제된다. 나중에 미터기 요금이 정확히 산정되면 선결제 요금을 돌려주고 미터기 요금을 다시 징수한다. 그런데 우버의 경우 선결제 요금으로 끝이다. 한때 우버 기사들이 바가지 요금을 물린다는 악소문이 퍼지자 이를 방지한다며 앱이 일방적으로 정한 선불요금이 최종 요금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버 앱은 낮은 요금을 책정하기 일쑤였고 이는 우버 기사 실질임금의 하락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기존의 가격결정 알고리즘을 폐지하고 개선책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② 대법원 판결에 따라 대기시간도 노동시간에 포함할 것 올해 2월 우버 기사는 우버가 직접 고용한 기사라는 영국 대법원 판결에는 노동시간 산정에 대한 판단도 함께 이뤄진 바 있다. 로그인한 순간부터 로그아웃한 시점까지, 즉 승객을 태워주고 난 뒤 다음 승객을 기다리는 대기시간도 노동시간에 포함시키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버는 이 판결을 무시한 채 대기시간을 제외하고 승객을 태운 시간만 노동시간으로 인정하고 있다. 노동시간 산정과 관련한 알고리즘을 폐지하고 대법원 판결에 따라 앱에 로그온 해있는 시간 전체를 노동시간으로 인정하라는 요구이다. ③ 부당 해고 중단 우버 기사들에게 '해고'란 계정 정지를 의미한다. 즉, 이 요구는 부당한 계정 정지를 중단하라는 것으로 계정 정지와 관련한 알고리즘을 폐지하고 개선하라는 것이다. 이 요구에는 계정을 중지시키거나 일감을 배정하지 않은 시간에 대한 보상 요구도 포함되어 있다. 영국 우버의 사례는 사실 전세계 플랫폼 노동자들 상황과 똑같은 것이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쿠팡이츠와 교섭을 벌이고 있는 라이더유니온, 그리고 조만간 카카오모빌리티와 교섭을 벌이게 될 대리운전노조가 교섭에서 핵심 쟁점으로 삼고 있는 것이 대부분 알고리즘이다. 이들 플랫폼노조의 요구를 AI의 언어로 번역하자면 이렇게 표현해볼 수 있겠다. "알고리즘 매개변수에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을 추가하라!" 즉, 취업규칙에 다름 아닌 알고리즘 작동과 변경 과정 일체에 대해 노동조합에 충분히 설명하고 교섭을 통해 변경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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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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