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를 두고 흔히 '저돌적 리더십'의 소유자라고 말한다. 검찰총장 옷을 벗자마자 거침없이 대선판에 뛰어든 것을 비롯해 그가 보여온 정치적 행보를 돌아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표현이다. 현 정권을 향한 '저돌적 공격', 자신을 검찰총장으로 발탁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저돌적 비판' 등은 현 정권을 싫어하는 유권자들이 윤 후보에게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돌'이라는 말에는 과감성, 용감함, 정면 돌파 등의 의미와 함께 난폭함, 공격성, 앞뒤 가리지 않음 등의 뜻도 함께 내포돼 있다. 저돌(猪突)의 저(猪)가 무엇을 뜻하는 한자인지를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저돌적 리더십이라는 말은 정치인에게는 양날의 칼과 같다. 과감함이 지나치면 무모함이 되고 용감함이 넘치면 난폭함으로 변한다. 윤석열 후보가 부인 김건희씨의 허위 경력서 작성 파문에서 보인 반응은 좌충우돌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버럭' 화를 냈다가 마지못해 사과하는 시늉을 하더니 다음에는 "노 코멘트"로 바뀌었다. 정돈되고 일관된 메시지 전달은 없었다. 전체적인 기조는 오히려 과도한 흥분이다. "시간강사를 어떻게 뽑는지 현실을 좀 보라"고 호통친 게 대표적이다. 이를 두고 언론은 '격앙된 반응'이라고 일제히 제목을 달았다. '격앙'은 감정의 격화, 흥분, 그리고 자제력 상실 등을 뜻한다고 국어사전에는 나와 있다. 정치인도 사람이니 화를 낼 수도 있고, 흥분할 수도 있다. 문제는 윤 후보가 '사과'를 해야 할 대목에서 '화'를 내고, '틀린 내용'을 옳다고 우기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오죽했으면 윤 후보의 발언을 두고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등에서 "모욕감을 느낀다"는 성명까지 발표했겠는가. 윤 후보의 격앙된 반응은 '불화살을 맞은 저(猪)'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수없이 많지만 '겸손'과 '침착'은 그중에서도 핵심이다. "민주주의는 겸손을 먹고 산다"는 정치학자 존 킨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지도자의 겸손함이 민주주의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첨언이 필요 없을 것이다. 겸손하지 않은 지도자가 나라를 이끌면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위협받게 돼 있다. 지도자의 침착함 역시 소용돌이치는 국내외 정세 속에서 나라를 안정감 있게 이끌어가는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거나 쉽게 흥분해서 판단을 그르치는 것은 국가경영에 매우 위험한 요소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대통령이 기침만 해도 공무원 사회가 독감에 걸리는 사회다. 대통령이 내쉰 한숨은 일선 공무원 조직으로 내려가면 태풍으로 변한다. 그것이 관료사회 속성이다. 그러니 대통령이 걸핏하면 흥분하고 화를 내면 온 나라에 대형 쓰나미가 덮치게 된다. 국내 정치뿐 아니라 대외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도자의 잦은 흥분, 자제력 상실은 그 자체로 국가의 재앙이 될 수 있다.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은 보통 조그만 잘못에도 유권자들에게 고개를 숙인다. 표를 의식해서다. 딱히 진정성이 없더라도 일단 그런 척이라도 한다. 그런데 윤 후보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것을 솔직함으로 좋게 봐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것은 지나친 자기 확신에서 비롯된 아집이며, 겸손함이 결여된 오만이다. 후보 시절에도 이럴진대 만약 국가 최고지도자라도 되면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가. 윤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에게 쏟아진 의혹에 대해 "학교 진학을 위해 쓴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 "이렇게까지 검증을 받아야 하느냐"는 등의 여러 주목할만한 '어록'을 남겼다. 사과나 반성이 아니라 무감각과 무반성이다. '개 사과 연출자' 의혹의 신빙성을 더욱 뒷받침하는 비상식적 언사다. 김건희씨의 여러 발언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죄라면 죄다"라는 말이다. 허위 재직증명서 제출을 '죄'로 바라보는 외부 시선에 대한 완강한 저항과 거부감이 이 말에는 깃들어 있다. 자신이 저지른 행위가 결코 '죄'가 아니라는 확신이 박혀 있다. "사랑한 게 죄라면 죄"라는 말로 사랑의 애처로움이 더욱 증폭되듯이, "죄라면 죄"라는 김건희씨의 말은 허위이력서 작성에 대한 자기연민의 가장 적극적인 표현인 셈이다. . 이번 사안에 대한 상당수 언론의 보도와 관전평도 비상식적이긴 마찬가지다. 김씨가 "사과할 의향이 있다"고 말한 것을 "사과했다"고 기정사실화했다. "사과하면 별일 아닌 것을 잘못 대응해 문제를 키웠다"는 식의 평가도 나온다. 과연 허위 증명서 작성이 '사과만 하면 별일 아닌' 내용일까. 사문서 위조 및 행사 혐의, 대학의 업무방해죄 등의 용어는 '조국 수사'를 거치면서 모든 국민에게 친숙한 법률 상식이 돼버렸다. '윤석열 검찰'이 '인턴 활동 허위증명서' 제출을 기소했을 때 언론은 "사과만 하면 별일 아닌 것을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했다"고 말한 적이 있던가. 윤 후보가 검사 시절 참여한 수사팀이 신정아씨를 시간강사 출강을 위해 서류를 위조한 혐의 등으로 구속했을 때 "여성혐오"라고 비판했던가. 이런 것을 두고 공정성과 형평성의 상실이라고 하는 것이다. 공정과 상식. 이 아름답고 거룩한 말은 윤석열 후보가 줄곧 흔들어온 정치적 깃발이다. 하지만 이런 언어들은 이제 바벨탑이 돼 속절없이 무너져내리고 있다. 자신의 불공정 행위를 공정이라고 우기는 인식으로 공정한 사회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비상식적 언설을 상식이라고 버티면서 우리 사회를 상식이 넘치는 사회로 변모시킬 수도 없다. 남의 눈의 티끌은 손가락질하면서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사회' 건설을 이룩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불가하다. 그것은 더 불공정하고 비상식적인 사회로 가는 지름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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