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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행복하길 원하지만 행복을 두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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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행복하길 원하지만 행복을 두려워한다"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 ㊺] part 4 변방의 정치는 변방이 아니다 : 룰라 다 시우바 上
이번 노회찬의 기록이야기 제목은 <기록으로 찾아가는,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 칼 마르크스에서 브라질의 룰라까지>이다. 칼 마르크스부터 브라질의 룰라에 이르기까지 '나라 밖 인물' 20여 명과의 직·간접적인 만남과 인연을 주제로 노회찬의 여정과 활동을 재구성한 것이다.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은 11월 1일부터 매주 월·수·금 3번 씩 연재된다. '평등하고 공정한나라 노회찬재단'(노회찬재단)과 <프레시안>이 함께한다. 편집자.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 (☞시리즈 모아보기)

part 1 혁명 그리고 정치part 2 유럽 사민당 리더와의 조우part 3 스칸디나비아(북유럽) 복지모델을 만나다 part 4 변방의 정치는 변방이 아니다

㊳ 들어가는 글 변방으로 밀려난다는 건 창조의 기회를 얻는 것이다(☞바로가기)

㊴ 넬슨 만델라 上 27년 6개월의 투옥, 교도소의 핵인싸가 되다(☞바로가기)

㊵ 넬슨 만델라 下 우리는 함께 가야 한다, 우분투!(☞바로가기)

㊶ 레흐 바웬사 上 공산당은 한국에서 과연 좌파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바로가기)

㊷ 레흐 바웬사 下 폴란드에서 히틀러와 스탈린의 흔적과 마주치다(☞바로가기)

㊸ 살바도르 아옌데 上 (☞바로가기)㊹ 살바도르 아엔데 下 (☞바로가기)

노회찬, 중남미의 '핑크 타이드'를 이끈 브라질 노동자당의 룰라와 만나다 :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8년 동안 670일 지방 출장, 470일 외국 방문한' 룰라; '3년 동안 지구 7바퀴를 돈' 노회찬

▲2007년 4월 28일 브라질리아에서 기타 연주를 하고 있는 셔츠 차림의 룰라 대통령 (사진 출처: 브라질리아|AP연합뉴스)
▲2009년 4월 30일 울산 북구 조승수 후보 선거사무소. 4·29 재·보선 조승수 후보의 당선 자축연 자리에서 무아지경의 '빗자루 기타 연주'를 선보이는 노회찬 Ⓒ이상엽 작가
2004년 정운영과 노회찬은 인터뷰에서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정운영 : 현역으로서는 브라질의 루이스 룰라 대통령한테 많은 기대를 걸고 계시다고요?

노회찬 : 장기간의 군사 독재, 고도성장, 민주화, 직선제 도입, 노동운동의 폭발적 고양, 진보정당의 출현 등 1970년대 이래 브라질이 가져온 일련의 과정이 한 10여 년 빨랐을 뿐, 놀랍도록 한국의 경험과 유사합니다. 그래서 저는 브라질의 경로와 한국의 경로, 그 유사성과 차이점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브라질 노동자당(PT)은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새로운 사회주의 정당이 주목할 만한 모델이 됐습니다. 중학 졸업의 선반공 출신 룰라는 현재 노동자 정치 세력화의 초기 시절을 관통하는 한국적 상황에서 노동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갖게 하는 상징적 인물입니다. 다만 대통령으로서 그의 미래는 아직 불확실한 것이 사실입니다.

정운영 : 룰라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정치 외적으로 인상이나 인품에서는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노회찬 : 강력하면서도 호감과 신뢰감을 주는 인상이었습니다. 브라질 국민들이 그에게서 강력한 리더십과 인간적 친밀감을 동시에 느끼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고난을 제대로 겪고 극복한 사람답게 밝은 인상의 소유자였으며, 찌르면 눈물이 쏟아질 만큼 감성이 풍부해 보였습니다. (정운영, <우리 시대 진보의 파수꾼>, 랜덤하우스중앙, 2004)

모르긴 몰라도, 룰라 특유의 소통과 믿음의 리더십도 노회찬에게 강렬한 인상을 던지며 매력으로 다가가지 않았을까 싶다. '좌파'라는 딱지와는 달리 대통령 룰라는 정치적 지지층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장친화적인 성장 정책을 추진했다. 룰라의 강력한 리더십에 원자재 가격 급등, 대형 해저 유전 발견 등 몇 가지 호재가 겹치면서 브라질 경제는 '삼바 신화'를 이룩했다. 

그 배경에는 룰라식의 '소통과 믿음의 정치'가 큰 몫을 했다. 끊임없이 반대파와 대화하며 설득했다. 국민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솔선수범했다. (김한별 기자, 「세계서 가장 인기있는 대통령 … 브라질 룰라의 아름다운 퇴장」, <중앙일보>, 2010.12.31.)

좌파가 성장 드라이브 정책에 반발하자 "노동지도자 룰라는 노동자를 위해 일했지만, 대통령 룰라는 브라질 국민 전체를 위해 일한다"고 설득했다. 우파가 빈곤층 생계수당 지급을 '유권자 매수'라고 비난하자 "배부른 소리 마라. 배고프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룰라는 직접 발로 뛰었다. 대통령 재임기간 중 670일을 지방 출장, 470일을 외국 방문에 썼다. 둘 다 역대 브라질 대통령 가운데 최장 기록이다. 직접 발로 뛰는 소통과 공감의 정치는 노회찬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예컨대 2004년부터 3년 동안 공식 강연만 368회였다. 2004년 127회, 2005년 84회, 2006년 82회, 2007년 6월까지 75회를 기록했다. 1회 강연당 평균 300명이 참석한 것으로 계산한다면 3년간 총 11만명 이상의 대중을 강연을 통해 만났다.  또 다른 기록으로 노회찬의 차량 주행거리는 지난 3년간 11만km에 달했다. 휴일을 제외하면 하루 평균 147km를 달린 셈이다. 교통안전공단에서 발표한 2005년 영업용 포함 자동차 1일 평균 주행거리 58.6km의 두 배를 웃돈다. 관용차량의 하루 평균 주행 거리 37.7km의 세 배다. 

비행 기록의 경우 국내 탑승 기록은 448회였다. 1회 탑승 거리를 평균 400km로 계산하면 18만km를 비행한 셈이 된다. 국제선 탑승 기록은 27회였다. 노회찬이 지난 3년간 차량과 비행기로 이동한 거리는 29만km를 넘는다. 지구를 7바퀴 이상 돈 거리다. (정제혁 기자, 「3년 동안 지구 7바퀴 돌다」, <레디앙>, 2007.7.3.)

브라질의 룰라(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그는 누구? : "모든 업적은 나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룰라는 내 우상이다. 그를 깊이 존경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한국 진보진영, 룰라에게 배워야 합니다. 불만족스럽긴 하지만 룰라 정권의 성공은 좌파와 중도우파를 포괄하는 국내 진보진영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조돈문, <브라질에서 진보의 길을 묻다>, 후마니타스, 2010)

▲EBS 지식채널e '눈물의 룰라 1부'(2011.1.22.) 화면 갈무리
'축구, 삼바, 아마존, 그리고 세계 최악의 불평등.' EBS 지식채널e <눈물의 룰라 1부>(2011.1.22.) 앞부분에 올라온 브라질을 설명하는 글귀였다. 루이스 룰라(Luiz Lula, 1945.10.27.~)는 브라질 노동운동가 출신의 정치인으로, 2002년 대통령 선거에 당선된 이후 2003년 브라질의 35대 대통령에 취임했으며 2006년 선거에서 재선됐다. 룰라의 어린 시절은 굶주림과 노동의 연속이었다. 궁벽한 농촌마을에서 8남매 중 7번째로 태어난 룰라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10세가 돼서야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 때까지 문맹 상태였다. 초등학교 4학년의 학력이 배움의 전부이며 그 후 상파울루의 거리에서 행상과 구두닦이로 돈벌이를 하다가 금속공장에 갔다. 금속공장에 다니면서 기술학교에서 일을 배웠고 선반 자격증도 취득했다. 그 뒤 1975년 브라질 금속노조 위원장에 당선되면서 룰라는 10만 명 이상의 노조원의 대표가 됐다. 그 뒤 노동자들의 권리 확보 활동과 전국적인 총파업투쟁 등을 통해 노동자들의 신뢰를 쌓아갔다. 이러한 활동은 1980년 브라질 노동자당(PT) 창당과 1983년 노동자단일연맹(CUT) 결성으로 이어졌다. 1986년 하원의원 선거에서 역대 최다득표로 당선된 룰라는 이후 1989년, 1994년, 1998년 대선에 도전했지만 연거푸 낙선했다. 2002년 대선 결선투표에서 마침내 룰라는 브라질 사회민주당(PSDB)의 조세 세하 후보를 물리치고 61.2%의 지지율로 브라질의 35번째 대통령에 당선됐다.
▲EBS 지식채널e '눈물의 룰라 2부'(2011.1.29.) 화면 갈무리
단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중도좌파의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선택한 룰라 정부는, 복지 프로그램을 최우선적으로 실시했다. 룰라는 굶주림을 근절시키자는 캠페인을 더 확대시켜 '포미 제루'(Fome Zero)라는 이름의 캠페인으로 시도했다. 군부독재 정권 시기에 다국적 자본들이 경제원조한다는 구실로 외채를 빌려주어 브라질을 경제적으로 지배하는 외채문제, 소수의 지주들이 토지를 독점하여 대다수의 농민들이 무토지 농민인 심각한 빈부의 격차 등으로 인해 브라질 민중들이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룰라의 복지국가 만들기의 결정판은 '볼사 파밀리아 프로그램'(Programa Bolsa Familia, PBF)이었다. 2003년부터 시작한 볼사 파밀리아를 통해 1인당 수입이 월 50헤알 이하인 가족들에게는 월 50헤알을 지원하고, 월 100헤알보다 수입이 낮은 가족은 미취학어린이 1인당 15헤알씩 최대 45헤알까지 지급했다. 수급자는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고 예방접종을 맞게 해야 하고, 읽고 쓰는 공부, 직업교육 등을 해야 했다.(※ 참고로 2003년 1월 헤알화 환율은 달러당 3.53헤알, 2007년 4월 2.00헤알이었다.) 룰라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인 2001년에서 2002년 브라질의 빈곤층은 전 인구의 31'35%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빈민들에 대한 식량 무상제공, 저소득층 생계비 지원, 빈곤한 노동빈곤층의 임금향상, 미취학 아동이 있는 가정의 경우 취학을 전제로 한 생계비 지원, 최저임금의 현실화 등 룰라 정부의 포미 제루와 볼사 파밀리아 프로그램은 높은 호응을 얻었다. 중남미의 '핑크 타이드'(Pink tide, 좌파 물결)를 이끌었다는 평을 받는 룰라는 집권 8년 동안 총인구 1억9000만 명 가운데 2800만 명을 절대빈곤에서 구제하고 3600만 명을 중산층에 새롭게 편입시켜, 세계에서 빈부격차가 가장 심한 나라 중의 하나인 브라질을 중산층이 두터운 나라(총인구의 50% 이상)로 변화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아울러 룰라의 재임기간 동안 브라질은 연 평균 4% 이상의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해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전환됐고, 세계 8위 경제국으로 성장했다. 2010년 12월 29일 퇴임을 앞두고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룰라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87%였고, 특히 상파울루 주의 지지율은 95%를 넘었다. 룰라는 대통령 퇴임연설을 통해 이런 말을 남겼다.
"모든 업적은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나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있는, 석방된 룰라(2019.11.8.) (사진출처: REUTERS/연합뉴스)
퇴임 뒤 룰라는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돼 1심(징역 9년6월)과 2심(징역 12년1월) 재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수감생활을 하던 중 뜻밖의 반전이 일어났다. 룰라의 출마를 막기 위해 사건을 조작했다는 내용의 텔레그램 대화가 유출되면서 수사 검사와 판사 간의 담합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2019년 11월 8일 룰라는 2018년 4월초 남부 쿠리치바 시내 연방경찰 시설에 수감된 지 580일 만에 자유의 몸이 됐다. 룰라는 석방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나를 기다려준 지지자들에게 감사한다. 민주주의의 승리다."
그 뒤 2021년 4월 15일 브라질 연방대법원 전원회의는 부패혐의 관련 기존 판결을 뒤집는 최종 무효 판결(8대 3)을 내렸다. 룰라는 모든 정치적 권리를 회복했다.  룰라는 한 인터뷰에서 "보우소나루라고 불리는 파시스트와의 2022년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내가 후보가 돼야만 한다"면서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룰라는 전직 대통령인 페르난도 카르도주와 만나 보우소나루의 연임을 저지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브라질 언론들은 2022년 10월 예상되는 룰라와 보우소나루의 경쟁을 "빈민 챔피온"(champion of the poor)과 "열대지방 트럼프(Trump of the tropics)의 대결"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2021년 가을 한국에서 '브라질식 연성 쿠데타'와 함께 룰라가 느닷없이 호명되는 일이 일어났다. 10월 18일 김용판 국민의힘 20대 국회의원(전 서울경찰청장)이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이재명 지사가 조폭으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을 꺼내들었다가 큰 망신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전우용(역사학자)은 페이스북(2021.10.19.)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브라질식 연성 쿠데타가 진행 중이라는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며 "주권자들의 혜안(慧眼)만이, 반복적으로 창작되는 저질 시나리오의 성공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전우용이 언급한 것처럼 법 기술자들의 '연성 쿠데타'는 브라질의 사례가 유명하다. 세르지우 모루라는 브라질의 연방판사가 주도한 이른바 '세차(장) 작전'(Operation Car Wash)—한 세차장의 자금세탁에서 수사가 비롯됐기 때문—은 수많은 선출직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를 부패 혐의로 구속시켰다.
"그러나 실제는 철저한 '언론플레이'가 뒤섞인 정부 전복 작전이었으며, 결국 지난 2016년 지우마 호세프 당시 대통령을 예산작성 규칙 위반이라는 정책적 실수 혐의로 탄핵시켜 브라질 노동당 정권을 붕괴시켰다.  모루의 최종 목표는 브라질 국민에겐 물론 세계적으로도 극찬 받는 정치인인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의 정치생명을 끊는 것이었다. 룰라 전 대통령은 이듬해 구속됐고 2018년 대선에 출마하지 못했다.  이러한 법 기술자의 '연성쿠데타'로 인해 극우적 성향을 띤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이 당선됐고, 모루 판사는 법무부 장관에 임명됐다." (<뉴스 프리존>, 2021.10.20.)
※ 에피소드 하나: '오징어 게임'과 브라질만의 'Round 6'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브라질에서만 그 이름이 다르다.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오징어 게임'은 해외 넷플릭스에서 제목이 그대로 번역된다. 그래서 영미권에서는 'Squid Game(스퀴드 게임)', 일본에서는 'イカゲーム(이카 게임)'으로 불린다. '스퀴드'와 '이카'는 모두 오징어를 뜻한다. 하지만 브라질에서는 'Round 6'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브라질에서는 '오징어 게임'이라는 제목을 그대로 번역할 때 생기는 정치·사회적 이슈가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에서는 자국어로 포르투갈어를 사용한다. 포르투갈어로 '오징어'는 'lula'이며 '게임'은 'jogo'다. 그렇다면 브라질에서는 '오징어 게임'을 전치사인 'de'를 섞어 'Jogo de Lula' 정도로 번역하는 게 일반적이다.

문제는 오징어를 뜻하는 'lula'다. 'lula'는 브라질 제35대 대통령이자 내년에 있을 39대 대선 출마를 노리고 있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룰라) 전 대통령의 이름과 같다. (… )넷플릭스 브라질은 드라마 제목에 대선 예비 후보에 이름이 들어가면 정치·사회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제목을 'Round 6'로 바꾼 것으로 추측된다. (최재민 기자, 「브라질에서만 이름이 다른 '오징어 게임'…」, <현대 모비스>, 2021.10.8.)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dc뉴스 Ade>와 인터뷰를 한 뒤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맙시다"는 글귀로 사인을 하고 있는 노회찬(2009.12.22.) ⓒ노회찬재단
▲<dc뉴스 Ade>와 인터뷰를 한 뒤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맙시다"는 글귀로 사인을 하고 있는 노회찬(2009.12.22.) ⓒ노회찬재단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Without Fear of Being Happy)" 1989년 대통령 선거에서 브라질노동자당(PT)의 룰라 후보가 내세운 구호였다. 2002년 대선에서도 같은 구호였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변화해야 하고, 변화하기 위해서는 거기 따르는 공포를 극복해야 한다는 호소였다. 2002년 10월 28일 룰라가 결선투표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자 민주노동당은 '축하 논평'을 내고 12월 대선에서의 약진을 다짐했다. 
"노동자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전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시장만능주의, 신자유주의 광풍이 결코 노동자와 서민들의 삶을 개선해줄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브라질의 노동자, 농민, 서민들이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노동자당 룰라 후보를 선택함으로써 자신들의 미래를 개척한 것처럼 한국의 노동자, 농민, 서민 여러분도 민주노동당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구영식, 「우리도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말자」, <오마이뉴스>, 2002.10.28.)

민주노동당은 특히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투표제의 도입을 촉구한다"며 올해부터 결선투표제를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브라질 노동자당 룰라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 과반수가 넘는 60% 이상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는 결선투표제가 있음으로 해서 전체 국민의 민의가 반영될 수 있었던 것이다. 87년 이후 늘 30% 내지 40%의 지지율만으로 당선됐던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제도는 결선투표제로 바뀌어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마지막으로 "브라질 노동자당이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내건 구호는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것이었다"며 "우리 국민도 브라질과 마찬가지로 진보정당을 선택함으로써 행복해지는 대열에 동참할 것을 간곡히 당부드린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2004년 17대 총선 민주노동당 비례후보 8번 노회찬(사무총장 겸 중앙선대본부장)은 부부가 나란히 출마해 화제가 된 서울 영등포갑 홍승하 후보의 선거 지원 유세를 했다. 뒤로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말자"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노회찬재단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 맙시다."
노회찬의 좌우명으로, 마음의 스승으로 품은 신영복 선생의 '함께 맞는 비'와 함께 노회찬의 옆을 지켰던 글귀였다.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 진보신당 후보로 출마한 노회찬은 공약집 <노회찬의 약속>을 출간했다. 서문 「나는 꿈을 꿉니다」에서 노회찬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미 그 꿈은 나의 곁에, 우리 모두의 곁에 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미래의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이 책은 진보의 봄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이 가야할 곳을 가리키는 나침반이자, 우리 곁에 다가올 새로운 사회에 대한 사용설명서입니다."
2016년 <스토리 오브 서울>(2016.4.11.)은 노회찬과 인터뷰를 한 뒤 이렇게 정리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자주 떠올리는 문구로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를 꼽았다. 이는 브라질 전 대통령 룰라가 자신감과 희망을 품자는 뜻으로 국민에게 연설한 말이다. 그는 이 대목 뒤에 "더 나은 정치는 얼마든지 가능하며 세상은 원하는 만큼 바꿀 수 있다"고 적었다. 과연 그가 꿈꾸는 세상은 무엇일까."
▲앨버트 허시먼과 그의 저서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책 표지 갈무리
물론 더 나은 정치가 세상을 원하는 만큼 바꿀 수 있기 위해서는 그것을 막는 역사적인 반동의 움직임을 물리쳐야만 가능하다.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Albert O. Hirschman)은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세상을 조종해온 세 가지 논리>(웅진지식하우스, 2010)를 통해 역사적인 반동의 움직임과 세 가지 반동 명제를 제시했다.
①역효과 명제(perversity thesis,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것이다"): 가령 빈민을 구호하는 행위는 빈민을 더욱 의존적으로 만들어 그를 영원히 빈민으로 남게 만들 것이라는 주장; 세율을 올리면 근로의욕과 생산량을 떨어뜨려 종국에는 세수감소로 귀결된다는 주장.
② 무용 명제(futility thesis, "그래 봐야 기존의 체제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실현되더라도 결국 통치는 소수에게 맡겨질 것이라는 파레토의 주장, 프랑스 혁명은 사실 그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못했다는 토크빌의 주장.
③ 위험 명제(jeopardy thesis, "그렇게 하면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질 것이다"): 복지국가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할 것이라는 하이에크의 논변.
허시먼에 따르면 이 명제들은 수백 년의 역사 속에서 역사적 전환기마다 구조적 차원에서 때로는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반복해 나타나며,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고 한다. 허시먼이 언급한 세 가지 명제는 어떤 주장, 행동 요청이 제기될 때, 이를 거부하는 논리적 수법으로 꼭 보수'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 세 가지 반동 명제야말로 룰라와 노회찬이 말한 "행복해지는 것을 두렵게 만드는 또는 포기하게 만드는", "행복을 향한 행동을 미연에 방지하는" 차단막으로 작동해온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행복배달부' 노회찬의 '행복'관

2004년 6월 13일 국회 의원동산에서 노회찬(민주노동당 17대 국회의원)과 '리얼노사모(cafe.daum.net/realnosamo)' 회원들과의 첫 공식 만남이 이뤄졌다. '노회찬 국회 보내기 운동본부(노국본)'라는 이름으로 지난 총선, 인터넷상에서 자신과 민주노동당 열풍을 주도한 지지자들이었다. 첫 만남이라는 것 외에, 노회찬과 리얼노사모의 만남은 각별한 의미를 지녔다. 리얼노사모가 노국본의 해단식을 갖고 '행노들(행복을 배달하는 노회찬과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거듭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국회 의원동산, '행노들'과 노회찬-김지선 부부의 첫 만남(2004.6.13.) ⓒ노회찬재단
이날 행사에는 갖가지 이벤트가 준비됐는데 클라이맥스는 선물전달식이었다. 회원들은 사비를 털어 노회찬에게 자전거와 교통카드를 증정했다. 카페 운영자인 우상택(아이디 '띨띨이왕자')은 "모임의 이름처럼 이 자전거를 타고 행복을 배달해 달하는 의미에서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선물을 받은 노회찬은 "여의도 당사와 국회를 오갈 때 이 자전거를 타면 유용하겠다"며 "자전거 도로를 이용해 통근할 때도 가끔 이용할 수 있겠다"고 흡족해했다. 5만 원 이상의 선물을 수수하지 못하도록 한 민주노동당 당헌·당규에 따라 5만 원 이하의 저가 자전거였다. 이외에도 회원들이 준비한 선물 중에는 팬들의 사인과 '한마디'가 적힌 대형 방명록이 있었다.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노동당을 탈당(3.7.)하면서 의원직을 잃게 된 노회찬이 의원실을 비우고 떠날 때(3.8.), '딱 하나만 가져가라면 이걸 가져가야 될 것 같습니다'라면서 옆에 들고 내려간 것이 바로 이 대형 방명록이었다.
▲'행노들'이 선물한 대형 방명록. 노회찬이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글귀는 '늘 초심의 마음으로...그리고 담대하게...'였다. KBS스페셜 '노회찬과 상계동 사람들'(2008.4.13.) 화면 갈무리

2010년 12월 14일 한겨레신문사 사옥 청암홀에서 '<행복대담회> 2011년, 미리 가본 대한민국: 우리의 행복지수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토론회가 열렸다. <불안증폭사회>의 저자 김태형과 노회찬 진보신당 상임고문(마들연구소 이사장), 오건호 공공노조 부설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 <88만원세대>의 공저자 우석훈이 패널로 참석하고 이재영 진보신당 정책위 의장이 대담 진행을 맡았다. (조현연, 「노회찬, 진보정치 '영원한 정책실장' 이재영을 만나다」, <프레시안>, 2019.12.12.)

▲'2011년, 미리 가본 대한민국: 우리의 행복지수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토론회(2010.12.14.)
"과연 지금의 한국 사회는 행복한가?"라는 질문과 함께,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이재영의 물음에 대해 노회찬은 이렇게 답했다.
"국민의 행복추구권은 헌법 개정 당시 안착된 개념이다. 타고난 운수나 행운이 많이 따른다는 의미로 쓰는 행복을 한 사회가 집단적으로 추구하고, 집단의 모든 사람이 행복해질 권리를 명시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 그러므로 사회는 국민들의 행복을 보장해줄 책임이 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우리는 아직 행복하지 못한 것 같다.
단적으로 고용문제와 교육문제의 부담으로 더 이상 아이를 낳기 싫어하는 사회는 행복하지 못한 사회가 아닌가. 우리 사회는 전 세계에서 가장 긴 시간 학습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긴 업무시간 동안 일을 하면서도 자살률이 높은 사회라는 모순 속에 있다.
공동체 차원에서 행복의 필수 조건, 필요조건적 차원에서 기회의 균등을 말하고 싶다. 결과의 평등은 나로서는 아직도 포기하고 있지 않은 이상이지만, 현실 속에서 금방 이뤄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소한 기회 균등은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그건 도덕 윤리로 보장되지 않는다.  자본주의 체제의 자연상태에서는 어떠한 곳에서도 기회 균등이 보장되지 않는다. 가장 근본적인 삶의 방식을 사회제도로 고착하지 않으면 행복의 길은 어려워진다."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느끼는 행복과 우리가 함께 이뤄내야 할 행복의 상은 어떤 것인가"라는 이재영의 이어진 질문에 대해 참석자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2011년 대한민국 국민은 행복합니까?-<행복 대담회> 김태형, 노회찬, 오건호, 우석훈」, <채널예스 블로그>, 2011.1.1.)

김태형 : 사람이 평생 살면서 인생이 끝나는 순간에 누구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 나는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었나?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으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반대인 경우 삶의 허무함을 느낀다. 

솔직히 말해 지금은 행복이라는 고차원적인 질문이 아니라, 우리가 이 각박해진 사회에서 미칠 것인가, 제정신으로 버텨낼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다고 본다. 사람들이 더 이상 벼랑 끝으로 밀리지 않도록 사회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

노회찬 : 내가 살아온 길지 않은 경험을 미루어 봤을 때, 자신이 가장 하고 싶어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게 행복의 중요한 조건이라고 본다. 지금이라도 가장 하고 싶은 일을 고민하고 찾는 일이 중요하다. 그 일에는 몇 년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다. 

나는 이 길에 들어서겠다고 결정한 게 스물다섯 살 때였는데, 그 이후에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웃음) 행복은 구원이다. 사회적 차원에서 보자면, 나 역시 나눔을 위한 여러 가지 사회적 제도가 확충돼야 한다고 본다. 물론 그렇게 해도 조금 더 행복해질 뿐, 계속 부족함을 느낄 거다.  하지만 더 이상의 행복이 필요 없다는 건, 더 이상 살 필요가 없다는 얘기와 같은 의미일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가 가장 우선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무상급식과 남북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건호 : 편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주체들 간의 상호 의존도, 연대에서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는 사람들 사이에 그런 연민, 동감, 관계 맺음을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우석훈 : 이번 정부 들어서서 TV가 재미없어졌다. 특히 윤도현의 러브레터를 정말 좋아했는데, 그거 없어지고 나서 무척 섭섭했다. 딱 하나만 부탁하라고 하면, 윤도현이 다시 나오게 됐으면 좋겠다.

많은 이야기가 오가는 중에 예정된 두 시간을 훌쩍 넘기게 됐고 노회찬은 이렇게 마무리 발언을 했다.
"두 가지만 얘기하고 싶다. 결코 혼자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 가족이 불행할 때 나 혼자만 행복할 수 없다. 이웃이 불행한데 우리 집의 행복이 지속될 수 없다고 본다.  다른 방의 난방을 다 끄고, 한 방만 불을 땔 때는, 모든 방에 불을 때는 것보다 훨씬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한다.  한국 사회 속에서는 서민뿐 아니라 가진 자들도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낀다. 세상은 사람이 바꾸는 것이고 우리는 많이 바꿔왔다. 절망과 체념이 행복의 가장 큰 적이다. 행복해지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 행복해지기 위한 용기와 확신이 필요하다. 그것 없이는 올 수 있는 행복도 더디올 거다. 어둡지만 밝은 새벽이 온다는 확신을 가졌으면 좋겠다."
2016년 3월 19일 노회찬은 유엔이 정한 '세계 행복의 날'을 하루 앞두고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행복으로 동맹을 맺자"면서 유튜브 등을 통해 <행복데이> 해시(#)태그 캠페인을 제안하기도 했다.
※ 3월 20일 '세계 행복의 날'은 2012년 6월 유엔 총회에서 193개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채택해 이듬해부터 기념해 왔다. 온 세계가 기아와 환경파괴, 증오와 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오늘날 '행복한 세상'을 향한 각국의 관심과 노력을 환기하자는 취지에서였다.
▲유튜브를 통해 <행복데이> 해시태그 캠페인을 제안하는 노회찬(2016.3.19.) 화면 갈무리
"3월 20일(내일)은 UN이 정한 '세계 행복의 날'입니다.
'세계 행복의 날'을 맞이하여 노회찬은 행복을 위한 작은 캠페인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3월 20일 하루만이라도 잃어버린 웃음과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취지입니다. 각자 행복을 느끼게 하는 지인, 반려동물 그리고 사물 등을 사진으로 찍어 서로의 행복을 공유했으면 좋겠습니다. 한 장의 사진에 담긴 '결정적 순간'이 우리 모두를 미소 짓게 할 수 있습니다.
※ 참여하시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① '우리를 미소 짓게 하는' 주변의 지인, 반려동물, 그리고 사물 등을 스마트폰으로 자유롭게 촬영하고,② 사진에 해시태그 '#행복데이'를 달아 각자의 SNS에 공유해주세요.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맙시다. 함께 나누는 작은 실천을 통해 행복으로 동맹을 맺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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