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 사주' 사건은 한국 범죄사에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사건이다. 핵심 피의자들이 모두 범죄 수사로 잔뼈가 굵은 검사 출신이다. 검사가 범인이 되면 범죄의 기획에서부터 실행, 증거인멸, 수사 대응에 이르기까지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고발 청부 사건은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상세히 보여준다. 이 사건은 공수처의 완패로 끝나며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공수처의 모습을 보면 '무능은 죄악'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검찰권을 사유화한 국기문란 사건의 진실을 명명백백히 밝혀 관련자들을 엄히 단죄하고 무너진 공직기강을 바로잡아야 할 임무를 전혀 완수하지 못했다. 사건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과 김웅 국민의힘 의원 등은 법망을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가고 있다. '손준성 보냄'이라는 텔레그램 흔적을 비롯해 모든 정황이 이들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으나 정의의 실현은 아직도 요원하다. 공수처가 속절없이 무릎을 꿇은 것은 피의자들의 철저한 증거인멸이다. 공수처가 가져온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실의 하드디스크는 모두 텅 빈 상태였다고 한다. 단순한 컴퓨터 포매팅 정도가 아니라 '디가우징'까지 해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디가우징이란 하드디스크 등 저장매체에 저장된 데이터 정보를 강력한 자기장을 이용해 파괴해 모든 기록을 '복구 불능'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실은 정기적으로 컴퓨터를 포맷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컴퓨터 기록 삭제가 마치 검찰의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말한다. 우리나라에는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있어 '모든 공무원과 공공기관의 임직원은 기록물을 보호·관리할 의무'를 지닌다. 이 법 19조2항은 '누구든지 기록물을 무단으로 손상·은닉·멸실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고 있으며, '기록물을 고의 또는 중과실로 그 일부 내용이 파악되지 못하도록 손상시킨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등에 처하도록'(51조 벌칙조항) 규정해 놓았다. 검찰은 나름의 내부 지침을 만들어 업무 기록 삭제를 허용하고 있다고 항변하겠지만, 공공기록물 관리법은 불가피한 사유로 기록을 삭제하는 경우에도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의 심사와 기록물평가심의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제 27조)고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법 문제를 떠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더라도 국민의 세금을 받아 일하는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업무 기록을 마음대로 지우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인할 수 없는 일이다. 손준성 검사 등은 컴퓨터 기록만 지운 게 아니라 사용하던 핸드폰도 이미 바꿔버린 상태다. 핸드폰을 수시로 바꾸는 것은 주로 범죄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이 정도면 거의 완벽한 증거인멸이다. 손 검사 등은 이 모든 행위를 "업무특성상 관행"이라고 말한다. 도대체 그 '업무특성'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실은 무슨 일을 하는 조직이길래 수시로 업무 흔적을 지우는 것일까. 이는 바꿔 말하면 이 조직이 평상시에도 법에 저촉되는 일탈행위를 해 왔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판사 사찰 문건'을 만든 것도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실로 지목된다. 이런 정황을 종합해보면 고발 사주 사건의 그림이 확연히 그려진다.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실은 평소 검찰총장의 눈과 귀, 손발이 돼 필요하면 일탈행위도 서슴지 않으며, 흔적을 남기지 않는 데도 이골이 난 조직이다. 그래서 마음 놓고 판사 사찰 문건이며, 고발 사주 문건을 만들었다. 예기치 않게 사건이 들키자 '모르쇠'로 딱 잡아뗀 것도 이미 증거를 없앴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증거가 없는데 너희들이 우리를 잡아넣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이것이 손준성 검사와 김웅 의원 등이 일관되게 보여 온 모습이기도 하다.
손준성 검사의 구속 여부를 심사한 법원은 고발장 작성자가 특정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손 검사 밑에서 일하던 검사 두 명이 고발장 서류에 포함된 '검언유착 사건' 제보자의 '실명 판결문'을 고발장이 전달된 날짜에 즈음해 검색한 사실 등도 밝혀졌으나 법원은 더욱 명확한 물증을 요구했다. 의혹의 당사자들이 관련 증거를 모두 없앤 상태에서 이런 법원의 요구는 합당한 것일까? '불리한 추정'(adverse inference)이란 법률 용어가 있다. 영미법상 증거법의 개념으로 민사재판에서 소송 당사자가 침묵하거나 요청한 증거를 제출하지 않았을 때 당사자에게 불리하게 추정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증거 파괴’ 행위를 한 피고인은 절대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 개념은 민사재판 등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이번 사건의 철저한 증거인멸 행위를 감안하면 원용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고 본다. 그런데 법원은 손준성 검사 등의 증거인멸 행위는 '관행'으로 인정해주면서 공수처에는 더욱 확실한 범죄행위 증거를 가져올 것을 요구했다. 구속영장 발부 요건 중에는 '증거인멸의 우려' 들어 있는데, 이미 '증거인멸이 완료된 상태'이니 구속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손준성 검사와 김웅 의원 쪽의 '수사 딴죽걸기' 역시 전문가 솜씨의 경지를 보여준다. 공수처의 압수수색 영장을 취소해달라며 법원에 준항고를 신청하는 등 온갖 절차적 정당성 시비를 걸었다. 물론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 인권 보호와 절차적 정당성 준수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동안 피의자 인권 보호를 등한히 하던 검찰이 정작 자기네가 피의자가 되자 인권을 걸고 나오는 모습은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조국 수사' 당시 검찰이 행했던 마구잡이 압수수색 등을 떠올리면 '윤석열 검사들'이 온갖 법률 지식을 동원해 자기 보호에 나선 행태는 참으로 치사하고 뻔뻔하다. 요즘 서울 서초동 주변 변호사 업계에서는 "고발 사주 사건 피의자들이 새로운 수사 방해 기법을 많이 보여줬는데 앞으로 그들이 한 것처럼만 하면 얼마든지 검찰 수사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말마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손준성 검사나 김웅 의원은 지금 한껏 기고만장해 있을 것이다. 혹시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라도 당선되면 자신들의 범죄행위 의혹은 영원히 묻힐 것이며, 대선에 큰 공을 세웠으니 후한 포상이 내려질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기 바란다. 당신들의 무죄와 결백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아마 야권 내부에서도 별로 없을 것이다. 진정 자신들의 결백을 증명하려면 컴퓨터와 휴대폰 기록 등을 제대로 보존·제출해 그 안에 아무런 흔적이 없음을 보여줘야 했다. '관행'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증거 인멸을 해놓고 증거가 없으니 무죄라고 우기는 것은 명색이 검찰 출신이라는 사람들로서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비록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간다 해도 그동안 저지른 잘못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무엇보다 본인들 스스로가 잘 알 것이다. 고발 사주 사건을 '미스터리 영역'에 남겨 놓는 것은 공수처만의 수치가 아니라 국가적 수치다. 이 사건이 완전 연소되지 않고 두고두고 의혹의 연기를 피워내는 ‘범죄의 희나리’로 남아서는 안 된다. 끝까지 진실을 추적해 잘못을 바로잡고 이 땅에 다시는 이런 불의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공수처의 마지막 분발을 기대한다. 악을 방치하는 것은 더 큰 죄악임을 명심하라. 법원 역시 협소한 기계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보다 명징한 눈으로 사안을 바라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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