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1일 새벽,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석탄운송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던 스물넷 하청 노동자 고 김용균 씨가 기계에 끼어 숨진 채 발견됐다. 김 씨의 소속 회사인 한국발전기술이 만든 컨베이어벨트 점검 작업 2인 1조 지침은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았다. 전부터 제기됐던 하청 노동자들의 컨베이어벨트 안전 설비 개선 요구도 여러 번 묵살됐다.
원청인 한국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 법인을 비롯 이 사고의 책임자에 대한 1심 선고가 다음 달 10일로 예정돼있다. 이를 앞두고 시민 1만여 명이 법원에 제출할 의견서를 썼다. 고 김용균 노동자 산재사망의 책임자를 엄중히 처벌해 한국사회에 다시는 그와 같은 비극을 당하는 이가 없도록 해달라는 마음을 재판부에 전하기 위해서다.
김용균재단이 모은 김용균 재판 의견서를 일곱 번에 걸쳐 싣는다. 앞의 네 편은 한국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부인 오은주 씨, 건설노동자 고 김태규 누나 김도현 씨, 건설노동자 고 정순규 아들 정석채 씨,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 씨 등 산재유족이 쓴 것이다. 뒤의 세 편은 이들의 곁을 지켜온 노동시민사회단체 사람들의 의견서로 예정돼있다.편집자
재판장님.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마사회 부산경남 경마기수 고 문중원 부인 오은주라고 합니다. 기수였던 제 남편은 15년 동안 한국마사회에 몸바쳐 일하다 경마장 내 온갖 부조리와 갑질을 견디지 못하고 꽃같은 어린 두 자식을 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남편이 남긴 유서에는 가해자들의 비리 내용과 이름이 자세히 적혀 있었습니다. 가해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재판이 이루어졌고 너무 어이없게도 모두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습니다. 저는 지난 12월 21일 서산지원에 있었던 고 김용균님의 산재사망 피의자들의 1심 결심공판에 다녀왔습니다. 남편을 죽음으로 내몬 피의자들과 용균님을 산재사망으로 이르게 했던 피의자들의 대답은 똑같았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왜 죽었는지 모르겠다. 현장은 안전했다'라며 모든 책임을 김용균님에게 전가하고 반성의 태도도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김용균님의 어머님은 매번 그 재판에 가실 때마다 자식을 죽게 한 피의자들의 얼굴을 마주하며 그들이 내뱉는 거짓증언들을 들으시며 얼마나 속으로 억장이 무너졌겠습니까. 우리 유족들은 더 이상의 죽음을 막고자 책임자들의 처벌은 반드시 엄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평택항 부두에서 김용균님처럼 혼자 일하다 300kg 쇳덩어리에 깔려 죽어간 스물셋 고 이선호님의 산재사망 책임자들에 대해 1심 재판부가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가늠할 수 없는 무거운 죽음의 책임에 비해 면죄부나 다를 바 없는 솜털같은 처벌입니다. 이번 김용균님의 1심선고 마저 이와 같은 가벼운 처벌이 나온다면 결국 또다른 김용균은 계속 생겨날 것입니다. 청년 김용균은 일하다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안전한 일터에서 가족을 위해 자신을 위해 성실하고 최선을 다해 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가족이 기다리는 따뜻한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끝내 용균님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매해 20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일하다 죽지 않기 위해서는 중대재해에 책임이 있는 기업들을 엄중히 처벌하여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반복되는 산재사망을 줄여야 합니다. 재판장님. 고 김용균님을 죽음으로 내몬 책임자들을 강력하게 처벌하여 다시는 내 자식이, 내 남편이, 우리 가족의 아까운 목숨을 앗아가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022년 1월 15일탄원인 오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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