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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꽃모가지 뚝뚝 떨어지던 서러운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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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꽃모가지 뚝뚝 떨어지던 서러운 세월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10.19 여순항쟁

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10.19 여순항쟁, 고운 꽃모가지 뚝뚝 떨어지던 서러운 세월

1 1945년 해방을 기뻐하지 말자그것은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었을 뿐이다일제에서 벗어나 단군의 조선, 삼일의 시절을 꿈꾸며내 땅의 주인이 되는 세상을 원했건만미제의 탐욕으로 한반도는 두 동강이 나고너와 나, 서로의 가슴에 깊은 증오의 늪이 파이고 말았구나하나의 하늘을 함께 바라보지 못하고하나의 땅을 함께 걷지 못하니미제의 반쪽 해방을 어찌 기쁨이라 할 수 있으랴우리에게 아직 해방은 오지 않았다그리고 진정한 해방을 위해 피를 흘렸던1948년 4월과 10월을 마냥 슬퍼하지는 말자그것은 다시 일통의 세상을 보기 위한 레퀴엠이었다그 숱한 죽음들의 반쪽과 반쪽이 만나고왼 날개와 오른 날개가 하나의 날갯짓으로 날아올라이 땅의 서러운 마음들을 서로 곱게 품어 줄 수 있어야그것이 바로 일통의 세상이니그것이 바로 너와 내가 꿈꾸는 하나의 조국이니그것을 향했던 1948년 10월의 여수와 순천그 역사의 항쟁 속에 학살된 숱한 죽음들을어찌 슬프고 헛되다고만 할 수 있으랴 2 해방이 되었으나 해방된 나라가 아니었다일제보다 더 모진 순사 나리들의 세상이었고미제의 권력 아래 양곡의 수탈은 여전히 심했다더구나 하나의 조국에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서고38선으로 나라가 나뉜다니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남한만의 단독정부를 막기 위해 제주 4.3이 일어났고그들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어 여수 14연대 군인들은동족상잔 결사반대, 미군 즉시 철퇴를 외치며 봉기하였다1948년 10월19일 봉기 이후 9일 동안이념도 사상도 없는 양민들은 아수라 지옥에 빠졌다14연대 군인들의 주력 봉기군이 지리산으로 빠져나간 뒤전국에서 내려온 이승만 정부의 토벌대가 꾸려지면서여수와 순천, 주변의 벌교 보성 고흥 구례 광양 등지에서무자비한 민간인 학살이 시작되었다좌우를 구별하는 손가락은 총이 되어 집단학살이 시작되었다만성리 구랑실 애기섬 신전마을 간문천 형제묘 백월마을 항쟁탑 백비......소명도 없이 죽어간 죄 없는 원혼들이 떠도는 곳독립운동을 한 사회주의자 할아버지 때문에 죽고지까다비 신발 하나 사다주었다고 죽고어머니와 아버지 서로 뺨치기를 시키고 그러다 죽고나는 죄가 없응께 괜찮다며 나갔다가 죽고14살 반란군 연락병으로 총상을 입은 어린아이마을 사람들이 옷도 빨아주고 홍시도 주고 밥 먹여주었는데그 아이의 손가락 총에 마을 사람 22명이 죽고마을 전체를 불 지르는데 소는 끌어내고 사람만 죽고엄마 등에 업힌 채 3살 난 아기도 죽고반란군이 탄 기차를 운행했던 철도기관사도 죽고입산자가 있는 마을은 불타고 40여명이 트럭에 실려가 죽고아침마다 사람 하나 죽이고 해장 했다는 지서장과11구를 들쳐 내고 아들의 시신을 수습했다는 노인네그렇게 죽고 죽고 죽고 또 죽고 또 또 죽고 무더기로 죽고그렇게 억울하게 죽은 자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빨갱이가 되었고그 어린 자식 또한 아무런 이유 없이 빨갱이 새끼가 되어연좌제의 덫에 걸린 죄인으로 한 평생을 늙어온 사람들좌절과 절망의 세월 속에 한 평생 숨어 살다가흰머리에 고부라진 허리가 되어서야 비로소말할 수 있는 세월을 맞아 슬픔을 슬픔으로 통곡할 수 있었다 3 여순항쟁에 희생된 혼령들이시여맑고 고운 하늘, 이 눈부신 날에 그대들의 넋을 불러봅니다그때의 당신보다 많은 나이의 노인네가 되어 그대들을 불러봅니다젊고 아름다웠던 내 아버지, 내 어머니시여당신을 잃고 의지할 곳도 없이 하루 세끼 밥을 찾아눈물로 세상을 떠돌던 서러운 세월을 기억합니다그리고 이제야 겨우 여순특별법이 만들어져억울함과 분노의 오랜 세월을 헤매온 넋들을 불러봅니다천길 나락 어둠을 떠돌던 내 아버지 어머니 그 서러운 넋들이여이제는 맺힌 원한 깨끗이 씻어내소서1948년 10월, 여수 밤바다에 울려 퍼진 총소리와 함께 시작된반인권, 반생명, 비민주의 세월은 고스란히 우리의 몫이니그대들의 서러운 세월은 이제 모두 잊어버리소서역사의 진실을 바로잡는 일도, 좌우대립의 갈등을 극복하는 일도다 이 못난 자식들의 몫이옵니다희생된 여순의 넋이여, 항쟁의 영령들이시여진실은 진실을 믿는 자에게 있으니 우리에게 있으며화해는 화해를 하려는 자로부터 시작하니 그것도 우리에게 있습니다용서받을 자보다 용서하는 자의 마음이 평화로우니그 용서도 우리에게 있습니다젊고 아름다웠던 내 아버지, 내 어머니시여이제 모두 잊고 편히 쉬소서아직껏 진상규명도 끝내지 못한 못난 자식이지만이 땅을 사는 우리들 몸에는 아직도 저 오동도의 동백처럼붉은 꽃잎 뜨거운 꽃들이 해마다 피어납니다당신을 향한 우리의 마음입니다1948년 10월 19일 이후 이 땅에 고스란히 갇혀있는도심과 골짜기 곳곳의 총성과 비명소리그 동백꽃 붉은 세월은 우리의 가슴 속에 그대로 있습니다고운 꽃모가지 뚝뚝 떨어지던 서러운 세월그 억울한 넋들과 빛나는 항쟁의 혼령들이시여이제 우리가 그대들의 한 맺힌 오라와 차꼬를 풀어드리겠습니다칠십여 년 닫혀있던 10.19의 빗장을 열어맑고 푸른 하늘을 훨훨 날아오르게 하겠습니다
ⓒ여순사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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