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돈룩업>(2021년)은 재미있고 흥미롭다. <빅쇼트>(2015년)와 <바이스>(2019년)를 연출한 아담 맥케이 감독의 작품답다는 생각이 든다.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블랙 코미디로 풍자하는 영화는 지구 안팎에서 끝장을 본다. 지구 행성에서는 인류세의 종말을 보여주고, 저 멀리 약속의 땅에 도착한 성간우주선의 탑승객들은 식인식물에 속수무책이다. "제발 하늘 좀 쳐다보라"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정치, 언론, 사회, 문화, 산업, 기술, 거의 모든 부분에 만연한 기후 지체(climate delay)의 부조리한 현실을 영화는 웃프게 표현한다. 익숙한 재난 SF나 환경 다큐멘터리와 어떤 색다른 여운을 남긴다. 한국의 현실은 영화보다 더 씁쓸하다. 대선 후보 토론회(2월 3일)의 TV화면은 기후위기 시대의 헛웃음을 유발한다. RE100, EU 택소노미, 블루수소에 무지를 드러낸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해외 토픽 감이다. 탄소중립 에너지 전환 공약은 낙제점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공약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지지율은 낮지만 '녹색 복지 대통령'을 자처하는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보다 나은 수준이다. 기후 대통령 적합도를 기준으로 4자 TV토론 출연 후보들을 상대 평가하면, 심상정, 이재명, 안철수, 윤석열 순이다. 막상 청와대에 가서 무엇을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지만, <돈룩업>에서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제이니 올린 대통령의 등장을 배제할 수 없다. 차기 대통령과 행정부 임기 2022~2027년에 탈탄소 정의로운 전환을 가속화할 성과를 내지 못하면, 기후위기 대응의 마지막 기회를 잃게 된다. 20대 대선이 기후대선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유엔에 제출한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하향 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윤 후보에 '영적인 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시대적 흐름을 읽는 정치적 감은 없는 것 같다. NDC 하향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정도의 배짱이 있어야 가능하다. 한국의 감축목표는 국내정치와 국제정치의 양면게임과 관련되어 있다. 지난 10여 년의 역사를 함께 공부해보자. 대통령이 될 사람이 모를 수도 있는 사안이 아니다. 아는 게 힘이다. 1라운드. 2009년, '저탄소 녹색성장'을 추진한 이명박 정부는 2020년 온실가스 총배출량 30% 감축(배출전망치(BAU) 대비)을 확정했다. 당시 코펜하겐 기후총회를 앞두고 정부가 자체 설정한 감축목표 옵션 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는데, 국제사회가 개발도상국에 권고하는 최대치를 반영했다고 자평했다. 고무줄 논란을 낳은 BAU 방식을 의식해 2005년 기준으로는 4% 감축 수준이라고 부연했다. 2010년, 녹색성장법 시행령에 2020년 30% 감축을 넣었다. 이명박 정부의 계획에 따르면, 2010년 총배출량 약 6억 5600만 톤은 2020년에 약 5억 6900만 톤으로 줄어들게 되는 셈이다. 2라운드. 2015년, 파리 기후총회 개최 전 박근혜 정부는 유엔에 NDC의 전신인 INDC 이름으로 2030년 감축목표를 제출했다. 파리협정이 체결된 후 2016년, 녹색성장법 시행령을 개정해 2020년 감축목표를 삭제하고, 대신 2030년 총배출량 37% 감축(BAU 대비, 국제 탄소시장 등 활용 해외 감축분 포함)으로 변경했다. 참고로 2015년 총배출량은 6억 9200만 톤으로 증가했다. 3라운드. 2017년부터 에너지 전환, 한국판 뉴딜, 탄소중립을 연속적으로 추진한 문재인 정부는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2019년, 녹색성장법 시행령을 2030년 총배출량 24.4% 감축(2017년 총배출량 대비, 국제 탄소시장 등 활용 국외 감축분과 탄소흡수원 활용 감축분 포함)으로 변경했다. 실제 감축량은 같지만 감축표기 방식을 수정한 것이다. 다음으로 2021년, 탄소중립기본법을 제정하면서 2030년 배출량 35% 이상 감축(2018년 배출량 대비)을 명문화한 데 이어, 글래스고 기후총회를 앞두고는 40% 감축으로 확정해 유엔에 NDC를 제출했다.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에도 2030년 40% 감축이 수록될 예정이다. 국내외적으로 공표된 40% 감축은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약 4억 3600만 톤이 된다는 말이다(2018년 총배출량-2030년 순배출량). 이 지점에서 우리는 2030년 감축목표를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정당한 비판만이 아니라 2020년 감축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평가에도 주목해야 한다. 총배출량 정점을 찍었다고 얘기되는 2018년 약 7억 2700만 톤과 2019년 약 7억 100만 톤, 그리고 팬데믹 시기인 2020년 약 6억 4800만 톤(추정)이 최근 공개 실적이다. 2020년 총배출량 추정치는 2009년에 수립한 2020년 총배출량 목표치 약 5억 6900만 톤을 7900만 톤 초과한 수치이다. 3라운드까지의 실적을 짧게 요약하면 '배출 쇼크'로 발표할 수 있을 것이다. 팬데믹 영향이 목표와 실적의 격차를 줄이는 데 일부 기여했겠지만, 그렇다고 배출 추세가 하향 안정화됐다고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 팬데믹이 완화되면 배출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있다. 왜 실패했는지, 그 이유를 찾지 않고서는 기후대선도 없고, 미래도 없다. 목표도 있었고, 법령도 있었고, 정책도 있었고, 예산도 있었고, 기술도 있었고, 계기도 있었다. 기업과 시민단체의 선언도 있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리얼리티를 체크하자. 호전적인 군사안보가 아니라 선제적인 기후안보의 시대가 시작된지 오래다. 제발 좀 탄소중립기본법이라도 찾아보자. 탄소중립기본법이 규정하는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은 RE100 개념보다 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정보 습득 능력이 아니라 사회적 감수성이 요구되니까 말이다. 기후 소양(climate literacy)이 태부족한 대통령을 상상하면? 후져도 너무 후지다. 2027년이나 2030년에는 무슨 생각이 들까? 4라운드의 끝자락에서 극단적인 생존 서사의 '고지'와 '시연'이 없더라도, 이대로는 분명 지나간 날들을 향한 분노와 불안의 정서적 표출이 걱정된다. 김기창 소설집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2021년)의 등장 인물 소피는 나직하게 들려준다. "정말 멍청해. 이렇게 될 줄 정말 몰랐다고? 정말?"(24쪽) 다른 표현도 있다. "어쩌다가 이런 방식으로? 도대체 왜 이런 방식으로?"(27쪽) 과연 20대 대선이 기후위기 대응의 정치적 전환점이 될 것인가? 전망도, 낙관도 어렵다. 어떤 선거 결과가 전환의 조건을 충족하는지 예시하는 것도 힘들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4라운드는 이미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청와대가 특정 정치적 부족(political tribe)의 요새로 남아서는 전환 정치는 결코 시작될 수 없다는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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