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아직 변이 바이러스로 고전하고 있지만 동시에 팬데믹 이후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대응과 공생의 대상으로 인식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그 이전부터 진행되어왔던 변화를 앞당겼고 우리는 코로나 종식 이후에 혁신이라 부를만한 급격한 변화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미중 패권경쟁 심화에 따라 국제 정세도 빠르게 변할 것이다. 세계 경기 회복과 맞물려 미중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되고, 자국 중심의 세력을 규합하려는 미중의 대결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주지할 점은 미중 경쟁의 배경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이며 미중 대결의 핵심은 첨단기술 경쟁이라는 것이다. 인류의 발전은 인공지능, 자율주행, 로봇, UAM 등 첨단기술의 상용화와 우주 탐사, 고도화된 우주군 증강 등 지구를 넘어 우주로 향하고 있다. 미중 경쟁이 한국에 우호적이라고 할 순 없지만, 반도체와 이차전지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한국이 미중 양국에 중요한 국가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은 한국에 기회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미중 간의 경쟁이 심화될수록 동북아 안보의 구조적 요인이 부각되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모멘텀을 마련하기 어려워졌다. 그 이유는 첫째, 갈등을 축소하고 협력을 강조했던 미중 관계가 명확히 갈등과 경쟁 관계로 변하여 양국의 협력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미국과 중국은 경제 회복과 리더십 강화를 비롯한 국내 문제뿐만 아니라 자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구축과 우군 만들기, 군사적 긴장 및 지정학적 리스크 관리 등에 많은 에너지를 투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한반도 문제는 미중의 힘겨루기에서 경쟁의 우위를 가를만한 핵심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은 북한이 극단적 도발을 하지 않는 한 적당히 북한의 위험을 관리하는 차원으로 한반도 문제를 관망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북한이 도발을 감행하여 동북아 지역에 미국의 추가적 MD 시스템 도입을 자극하지 않는 한 북한과 이념적 동질성을 기반으로 경제적 지원을 지속하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미국은 NATO의 동진으로 러시아와 갈등의 골이 깊고, 중국 견제를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과 대서양 동맹을 강화하는데 군사력과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간 이견이 좁혀지기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중국이 북한을 지지하는 한 지난한 협상 끝에 결과물을 얻기 어렵다는 미국의 계산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미중 경쟁이 본격화되기 전 지난 몇 년간 시도했던 남·북·미·중의 협력적 분위기를 조성하기는 쉽지 않다. 2018년 싱가포르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과정에서 보았듯이 한반도 비핵화 협상 과정은 북미 주도, 북중 연합, 한미 협력이라는 세 개의 축으로 움직였고 한국은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다. 한반도 비핵화 논의에 남북의 협력 부재와 한국의 역할 축소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다만 한반도 비핵화를 주변 강대국들과 협력하여 풀어가야 하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을 멈출 수 없다. 한반도 비핵화 이슈가 미중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상황과 동북아 정세가 비우호적으로 변한다고 해도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통일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하며 어려울수록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창의적 대안을 더욱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세계 경제와 국제관계에 능통한 통일 지도자를 키우는 일이다. 한국과 북한을 이해하고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를 면밀히 파악하여 한반도 평화가 강대국들의 안보와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설득하고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통일 지도자를 키워내야 한다. 우리는 통일 지도자들을 길러냄과 동시에 어떻게 하면 북한이 국제 사회에 나오고 싶게 할 것인가에 대해 더 고민해야 한다. 그동안 6자회담이나 북미정상회담 등 남북 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시도했던 일련의 과정에서 한국은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한반도 문제를 주변 강대국들과 함께 풀어가야 한다면 한국은 높아진 위상과 국가 경쟁력에 걸맞는 외교력으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과정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 세력,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대척점에 있다. 따라서 강대국들은 전략적 관점에서 한반도 문제를 다루어 왔다. 미중 갈등 상황과 한반도의 안보 위기가 겹치게 되면 자칫 북중러 대 한미일의 냉전적 구도가 강화될 우려가 크다. 북중 관계가 복원되고 중러 연대가 강화되고 있다. 인도·태평양 전략을 근간으로 미일이 협력하고 이를 계기로 일본은 군사력을 키우고 평화헌법 개헌을 추진하려 한다. 이러한 시기에 한국은 외교력을 더 키워야 한다. 중국이 2049년까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루겠다고 천명한 이상 공격적 외교와 강대국화는 지속될 것이다. 이제 21세기 초입에서 어느 국가나 협력 대상으로 환영했던 세계화 시대는 저물었다. 합리성과 경제성을 우선시하던 우호적인 국제 환경은 미중패권경쟁이라는 국제질서의 변화를 맞아 국가가 경쟁 우위의 전략적 입지를 가져야만 발전을 모색할 수 있도록 경직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이제 시작 단계이며 미중 간 어느 한 국가가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한국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향해 30년을 노력해야 한다면 지금부터 이념적 한계를 넘어 세계 경제와 국제관계에 능통한 글로벌 인재를 통일 지도자로 키워내야 한다. 한국이 추구해야 할 국익 우선의 실용외교는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 남북의 화해와 협력이라는 지향점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343602-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최재덕교수는 성균관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하고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박사학위(한중관계)를 받았고 모스크바국립대학 국제관계 박사후과정을 거쳤습니다. 이후 연세대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을 거쳐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고 현재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기능분과위원장,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현대중국학회 대외협력위원장, 슬라브유라시아학회 이사 등을 맡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