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 20년이 만든 결과가 여기까지 밖에 못 왔구나."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23일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지하철 시위에 참석한 후 눈물을 보였다. 지난 TV토론 마무리 1분 발언을 장애인 이동권 보장 호소에 할애한 심 후보는 "진보정당 창당 이래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계속 다뤄왔는데, 결국은(장애인 콜택시 범위가) 광역까지 가지도 못하고 기초 시군구에서 이렇게 멈춰 서 있는 걸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출근길 시위'는 대선 정국에도 계속 되고 있다. 아침 출근길, 발 디딜틈 없는 서울 시내 전철에 장애인들은 휠체어를 탄 채로 지옥철을 비집고 탑승해 "저희도 여러분들과 함께 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타고 싶다", "함께 자유롭게 살아가자"고 구호를 외쳤다. 일부 비장애인들은 불편을 호소했다. 이날도 지하철에 탄 이들을 향해 "꼴값한다", "이 바쁜 시간에 가지가지 한다", "무식한 것들" 등 원색적인 비난을 직접적으로 쏟아냈다. 장애인들은 이들의 비난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서울교통공사는 장애인들의 시위를 막기 위해 엘리베이터 이용을 막고 형사고발과 민사소송을 걸기도 했다. 갈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정치'가 필요한 현장이다. 현장을 찾은 심 후보는 시위에 참여한 모든 장애인들과 악수를 나눈 뒤 출근길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전국장애인철폐연대(전장연) 박경석 대표의 손을 꼭 붙잡았다. 박 대표는 "심 후보가 많은 사람들이 보는 TV토론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언급하고 출근길 시위를 멈춰 달라고 한 것을 보았다"며 "이날부터 3월 2일 TV토론까지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멈추겠다"고 약속했다.심상정 "최선을 다해도 앞으로 나가지 못해 면목없다"
심 후보는 출근 시간인 아침 7시 30분, 4호선 서울역 승강장을 찾아 이들을 만났다. 그는 먼저 "이 모든 상황의 책임은 21년 동안 이동권을 위해서 투쟁해 온 장애인들 책임이 아니라, 세계 10위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의 이동권조차도 보장하지 않는 대한민국 정치와 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했다. 심 후보는 "장애인들이 이 엄동설한에 그렇게 위험한 투쟁을 하고 싶었겠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부나 정치권이 귓등으로도 듣지 않기 때문에 그런 위험을 감소하고, 그런 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런 투쟁을 했다"고 출근길 시위 취지에 공감했다. 그러면서 "이동을 할 수 있어야 교육도 받을 수 있고, 일도 할 수 있고, 삶을 살 수가 있지 않냐"며 "비장애인 대중교통도 광역 차원에서 다 통합 서비스가 되고 있지만 장애인 콜택시는 기초 행정구역에 멈춰서 있다"고 지적했다. 장애인 콜택시는 기초 지자체별 각기 다른 지침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같은 수도권 내에서도 택시를 타고 한 번에 갈 수 없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심 후보는 장애인 이동권을 처음으로 입법한 민주노동당 시절을 회고하며, 나아지지 못한 현실에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그는 "진보정당이 민주노동당 창당 이래 첫 법안이 바로 장애인 이동권 법안이었다"며 "21년 동안 열심히 싸웠는데 장애인들의 이동권이 시군구 경계까지 밖에 못 갔구나, 이런 점에서 우리 박경석 대표께서 저의 1분 발언을 감사하다고 생각했지만 저는 부끄럽고 죄송할 뿐"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불편을 호소하고 있는 시민들을 향해서도 "장애인분들 중에 다른 시군구에 계신 부모님 만나러, 임종 지키러 가려고 하다가 결국은 통합 서비스가 되지 않아서 부모님 장례식에도 참여 못한 정말 절절한 사연을 들었다"며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아마 이런 실상을 이해하신다면, 출근길에 불편하신, 그래서 화가 나신 그 마음 저는 다 해소되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현장에 나와있는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를 직접 호명해 "우리 장애인들 아침 출근 투쟁으로 열차가 지연이 돼서 많은 고충을 겪으셨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그러나 장애인 시위로 인해서 발생한 모든 문제에 대한 책임은 정부와 정치권에 돌려주고, 장애인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철회해 주실 것을 정중하게 요청드린다"고 밝혔다. 심 후보는 현장 발언 뒤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일하면서 지역사회 함께 살아갈 권리를 정치가 책임지고 기획재정부를 통해 예산으로 해결하겠습니다'라는 판넬에 직접 서명했다. 또, "저의 진심을 알아주시고, 지하철 출근 시위를 멈춰주신 데 대해서 우리 장애인 여러분들께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장애인들은 심 후보를 붙들고 "꼭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기자들과 만난 심 후보는 20년 진보정당의 역사와 장애인의 권리를 맞대어 생각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저희가 해 온 20년 진보정당의 역사와 우리 장애인들 권리가 이게 하나의 어떤 (사회의) 바로미터"라며 "저희가 최선을 다해도 조금씩 밖에 앞으로 나가지 못하니까 정말 죄송하고 안타깝고 면목없다"고 고개를 숙였다. 심 후보는 "진보정당 20년이 만든 결과가 여기까지밖에 못 왔구나"라고 회고하며 울컥하기도 했다. 이어 "20년 동안 정말 한 눈 팔지 않고 최선을 다해 왔는데 우리가 이룬 삶의 변화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 그런 생각에 가슴 아팠고, 장애인 분들에게 죄송했다"고 거듭 반성하며 "이제 대한민국 정치가 어디에 신경을 써야 하나 하는 점들이 저는 좀 더 뚜렷해졌다"고 강조했다."3월 2일 TV토론까지 출근길 시위 멈추겠다…우리의 외침 외면말라"
심 후보가 떠난 뒤 서울역에 모인 장애인들은 4호선 지하철을 타고 한성대입구역을 거쳐 집결지인 혜화역으로 갔다. 이들은 혜화역 다음역인 한성대입구역을 굳이 거쳐 다시 혜화역으로 돌아갔다. 혜화역 반대편 승강장으로 가야하는데 일방향인 혜화역 구조상 다같이 엘레베이터를 타서 넘어가야하기 때문에 양방향으로 환승이 가능한 한성대입구역에서 반대로 돌아오는 길을 택한 것이다. 온정어린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으나, 지하철안의 비장애인 시민들은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장애인을 내려보며 "왜 이 바쁜시간에 타야했냐", "가지가지 한다"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장애인들은 고개를 숙이고 비장애인의 분노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박 대표는 비장애인 시민들을 향해 사과했다. 그는 "저희가 지하철을 타면서 많은 시민들이 불편했고 갈등이 발생했다. 정말 죄송하다"며 "저희가 여러분의 바쁜길을 막으면서까지 외치려고 했던 주제는 여러분들과 함께 자유롭게 안전하게 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타고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는 것이었다"고 했다. 박 대표는 2001년 오이도 참사를 언급했다. 2001년 1월 22일 장애인 노부부가 오이도역에서 리프트를 이용하다가 추락한 사고다. 그는 "자유롭고 평등하게 이동하고 싶었는데 이동할 권리조차도 지켜지지 않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차별을 경험했다"며 "저희는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무시와 차별을 경험했고 배웠다"고 했다. 이어 "그래서 학교도 못갔고 일할 기회도 없었다. 시설을 만들고 격리시키고 배제·소외시켜왔던 세월과 차별의 경험이 장애인 이동권으로 표현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TV토론 마지막 발언을 장애인 이동권에 할애했던 심 후보를 향해 "소중한 시간 모든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장애인 이동권이 언급됐다. 우리의 절절하고 기나긴 외침과 권리가 대통령 후보들이 외치는 토론의 장에 의제로 올라왔던 것 자체가 너무 힘이 된다"며 "그것이 권리로 연결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센터 대표도 "우리 장애인도 안전하고 편리하게 대중교통과 지하철,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고 21년 째 외치고 있다"며 "너무 화가 난다.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장애인에게 떠넘겨 놨다. 그러니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다가 떨어져 다치거나 죽는 지금의 상황이 발생한 것 아니냐"고 했다. 최 대표는 "왜 장애인은 목숨을 걸고 지하철을 이용해야 하냐"며 "왜 21년 째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외쳐야 하냐. 이 물음에 대해 이재명, 윤석열, 심상정, 안철수 후보가 답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더 이상 우리 장애인들이 아침마다 욕먹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외침을 외면하지 말라"며 "우리도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대표는 혜화역에 함께 모인 장애인 활동가들에게 심 후보의 사인을 받아온 피켓을 보여주며 "심 후보의 사인을 받아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음 TV토론예정일인 3월 2일까지 출근길 시위를 멈추겠다고 약속했다. 이형숙 전장연 공동대표는 "앞으로 장애인 이동권과 우리의 권리가 안전하게 지켜지기 위해서 우리가 또다시 몇 년을 외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끝까지 외친다면 언젠가는 그날이 오지 않겠냐"며 "여기서 우리의 행진은 끝이 아니다. 언제 다시 우리의 투쟁이 시작될지 모른다. 끈질기게 지역사회에서 우리의 권리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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