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페미니즘 윤석열, 그나마 이재명?
최근 공개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TV광고의 채용 면접장면에서 남성 응시자의 박탈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여성 응시자인 것처럼 그려져 비판이 있었다. 이에 기득권층 부모로 인한 특혜를 문제 삼은 것뿐이라며 항변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벌어지는 숱한 채용 성차별의 현실은 윤 후보의 안중에 없다. 윤 후보는 10대 공약 중 '공정'의 이름으로 여성가족부 폐지와 함께 성범죄 처벌 강화-무고죄 처벌 강화를 내걸었다. 이 공약들은 지난 10월 예비후보 시기에 청년 정책의 이름으로 발표되었고, 윤 후보의 청년 범주에 여성은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12월 n번방 방지법 시행을 앞두고 남초커뮤니티 중심으로 폐지 요구가 일자 '검열법'이라며 개정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윤 후보가 1월 초 SNS에 올린 "여성가족부 폐지" 단 7글자는 20대 남성의 지지율 반등으로 이어졌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선언하고 성차별주의를 전면 부정하면서 국민의힘은 반페미니즘을 주요한 선거전략으로 삼고 있다. 이를 비판하며 최소한 성평등 정책을 언급하고 있지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행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선거대책회의에 "민주당의 페미 정책이 남성을 역차별"했다는 남초커뮤니티의 글을 공유하며 논란을 샀고, '페미방송'이라는 반발로 인터뷰를 취소하기도 했다. 20대 여성들의 질문에 답하는 다른 방송에 다시 출연하는 것에 대해 "나쁜 얘기라도 들어야" 한다는 식이었다.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되면서 반페미니즘에 앞장서는 윤 후보와 차별성을 보이려고 하지만, 이는 이 후보가 강조하는 '실용주의적 정치'의 연장선일 뿐이다. 이 후보는 멈춰야 할 '광기'라던 페미니즘을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것'이라 하고 있다. 반페미니즘 행보에 선을 그으며 달라진 이 후보가 그나마 나은 것처럼 보이는 형국이지만, 그에게 성평등은 원칙과 비전이 아니라, 실리에 따라 쓰고 버릴 수 있는 카드일 뿐이다. 그가 따지는 실리가 성평등 요구에 대한 제대로 된 응답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페미니즘 운동이 일구어온 진전, 정치의 퇴행
그동안 페미니즘 운동이 제기해온 문제는 민원이 아니다. "여성이라서 죽지 않는 세상을 바란다"는 추모의 외침은 불법촬영물에 편파적으로 대응하는 공권력을 규탄하는 분노의 목소리로 이어졌다. 일터와 학교라는 일상의 공간에서 여성이 겪는 차별과 폭력의 현실에 대한 고발은 온라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성착취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졌다. 그 결과 일부 법제도를 개선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간 이어져 온 여성들의 말하기와 행동에 담긴 요구는 나의 안전과 국가의 보호에 국한하지 않는다. 여성이라는 이유가 숱한 차별과 폭력을 겪고 생명까지 잃게 되는 현실 그 자체를 바꾸기 위한 것이었다. 여성도 동등한 인간이라는 외침은 남성중심사회를 살아내고 있는 생존의 요구였다. 페미니즘이 자신의 경험을 해석하고 드러내는 언어가 되면서 정치적 주체로서 페미니스트를 선언하며 이어진 역동은 함께 벼려가야 할 평등의 감각을 쌓으며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만들어왔다. 페미니즘 운동은 성차별주의와 그에 기반을 둔 착취와 폭력에 대항하며 변화를 이끌어왔다. 여성권익의 증진 그 자체가 페미니즘 운동의 목표이자 결과가 아니지만, 정치권력은 적극적으로 여성우월주의라며 페미니즘을 오독해 왔다. 성차별주의를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지우거나 갈등을 중재하면 되는 것처럼 뭉개면서 지금 양당 두 후보는 모두 페미니즘 운동이 일구어온 진전을 퇴행시키고 있다. 퇴행의 결과는 그저 여성에게만 위협적인 것이거나 그간 이끌어온 법제도의 변화를 흔들고 무너뜨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차별과 폭력의 기제로 여전히 성별이 작동하고 있는 현실을 가리면서 개인의 탓으로 돌리거나 문제 대응의 방향을 왜곡한다. 지난 5년 페미니즘 운동이 일구고 세워온 평등의 가치를 훼손하고 후퇴시키는 정치의 퇴행은 민주주의의 역행이다. 대선을 앞두고 더욱 첨예해진 페미니즘을 둘러싼 전선이 그저 여성운동만의 몫일 수 없다. 차별의 구조로 지탱되어온 지금의 체제가 아닌 다른 질서를 바라는 사회운동 공동의 몫이어야 하며, 그렇게 페미니즘을 기입해 가야 한다. 정치권력이 앞다퉈 무너뜨리고 있는 페미니즘 운동의 기반을 지키고 세워가는 전선 위에 대선이 놓여 있다.페미니스트 주권자로서
거대양당의 대선 후보 둘 중 누가 되든 지금보다 나은 세계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또다시 최악과 차악 중 선택하는 것만이 답인 것처럼 다루어지고 있다. 두 후보가 내세우는 슬로건을 곱씹어본다. 이재명의 '나'에 다양한 얼굴이 담길 수 있는지, 윤석열의 '내일'에 누가 등장할 수 있을지 그려지지 않는다. '나를 위해' '내일을 바꾸는' 선택을 그들에게 내맡길 수 없다 정해진 판에서 투표로만 제한되는 '유권자'의 위치를 거부하고, 변화를 만들고 이끌어온 '주권자'로서 행동하겠다고 선언하며 2월 12일 "성평등을 청와대로"라는 외침과 함께 페미니스트 행진이 이어졌다. 이는 지금 성평등 정책과 제도가 후퇴하고 무너지는 것을 지키자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성차별주의를 오히려 부추기며 유지해온 정치권력에 우리의 미래를 내맡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성평등 정책을 넘어 성평등 정치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 주권자로서 행동하겠다는 선언은 자격 없는 이들에게 의탁하지 않고 지금 이곳에서 다시 우리의 정치를 세워갈 것이며 이제껏 그래왔듯이 우리가 변화를 만들어갈 것이라는 선언이다. 결코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우리는, 그 선언으로 새로운 봄을 맞이할 것이다.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으로 읽는 세상'은 <프레시안>과 <비마이너>에 공동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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