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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다극체제의 서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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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다극체제의 서막인가?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국 외교에 주는 함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우크라이나는 잿더미로 변했고, 400만 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했으며,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역사적으로 우크라이나 지역에 세워졌던 키예프 공국이 러시아의 근원이기 때문이든, 냉전 종식 이후 동진하지 않겠다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과 무리하게 나토 가입을 추진한 우크라이나의 무능한 리더십이든, 안보 완충지를 확보할 수밖에 없는 러시아의 선택이든,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한 유럽과 미국의 안일한 대응이든 말이다. 5차 평화협상에서 양국의 이견이 좁혀진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전쟁을 일으킨 침략국은 평화협상 테이블에서 자국의 요구를 대부분 관철시키고 침략 대상국의 역사를 바꾸어놓는 절차를 밟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전 세계에서 지정학적 리스크가 매우 높은 몇몇 지역이 있다. 대만해협,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호르무즈 해협, 우크라이나, 한반도 등이 이에 속한다. 이 지역은 힘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 화약고로 돌변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어떻게 전쟁으로 현실화되는지 보여주었다.
▲ 3월 16일(현지 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 외곽 노보-오가료보 관저에서 화상으로 연설을 가졌다. ⓒAP=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다극 체제의 서막을 알리는 총성일까?

섣불리 단언하긴 어렵다. 하지만 존 미어셰이머가 주장한 '공격적 현실주의(Offensive Realism)'가 21세기 국제정치에서 점차 실현되어 가고 있는 것이 매우 우려스럽다. 국제질서는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일극 체제, 미국과 중국 중심의 양극 체제를 넘어, 지역 강대국이 다수 존재하는 다극 체제로 이행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국제질서에 혼란이 가중되고 안보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지정학적 리스크가 높은 지역에서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커진다. 20세기 말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이 구축한 국제질서는 잘 기능하는 듯 보였고 전 세계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유기적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형성하면서 상호 발전을 추구하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 30년 동안 중국의 부상과 국제기구의 영향력 약화, 에너지 수출국이 된 미국의 평화유지군 역할 축소와 구소련 국가들의 나토 가입,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내전과 영유권 분쟁으로 안보적 갈등은 증폭되어왔다. 2018년에 시작된 미중 패권경쟁으로 잠재되어 있던 양국의 갈등이 표출되면서 지정학적 리스크도 표면화됐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혼란을 수습하고 미중이 전열을 가다듬으려는 시기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잠재적인 지정학적 위험은 현실이 되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한국에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전쟁'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 전쟁이 국제질서와 한국이 속한 동북아 정세에 적지 않은 변화를 추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무엇을 깨달아야 할 것인가?

첫째, 한국은 미중패권경쟁의 틀 안에서 중러 관계에 주목하여 동북아 정세를 파악해야 한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우크라이나에서 촉발됨에 따라 대만해협에서의 미중간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나의 중국'을 핵심이익으로 간주하는 중국은 무력으로라도 대만과 통일을 달성하려는 야심이 있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지 30년이 지난 지금 중국 경제는 상당히 개방적이고 대외의존적이다. 중국은 이번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와 에너지 협력을 더욱 강화하면서 내수 활성화와 자립형 공급망 형성, 반도체 산업 육성을 통해 외부 환경에 영향을 덜 받는 경제구조로의 변환을 촉진하고, 자원을 무기화하여 독자적인 방어 태세를 갖추는데 주력할 가능성이 있다. 2021년 중국이 '일대일로'에 이어 '쌍순환 전략'을 국가 전략으로 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은 발전적 한중관계를 위해 중러 연대 강화와 중국 경제구조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둘째, 한국은 미중패권경쟁으로 동북아 안보의 구조적 제약이 부각되고 전략적 환경이 비우호적일수록 적극적으로 한반도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미국과 중국을 설득하고 북한을 국제무대로 끌어낼 수 있는 창의적인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북핵 문제 해결에 영향력이 적은 한국이 가능하겠나? 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이 직면한 북핵 문제에 당사국인 한국이 소극적인데 스스로 문제 해결에 나설 강대국은 없다. 북한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면서 핵 포기가 불러올 참상에 대해 학습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약소국으로 전락한 이유는 1994년 핵을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핵 포기와 맞바꾼 미국의 안보 보장 약속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에서도, 2022년 우크라이나 본토 침공에서도 지켜지지 않은 셈이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은 준비된 과감한 군사행동은 성공할 수 있으며 미국의 영향력은 제한적이고, 서방은 직접적인 군사 개입을 망설이며, 경제 제재는 인내하면 된다는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올해 들어서만 열한 번째 미사일 도발을 감행하며 ICBM(대륙간 탄도 미사일)의 성능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가 포함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동의를 얻어 대북제재를 강화하기도 어렵고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낼 만한 카드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후보 시절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희망'이라는 기고문에서 '미국은 동맹을 강화하고 한국과 함께 설 것이며,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통일을 향해 계속 나아갈 것'이라면서 '같이 갑시다'라는 한미동맹의 구호를 외쳤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 1년간 한반도 문제를 밀어 둔 사이 북한은 모라토리엄(핵실험과 ICBM 시험 발사 유예)을 파기했고, ICBM 시험 발사와 제재를 주고받으며 북미 관계는 다시 악화일로에 있다. "북한과 마주 앉지 않는다면 긴장이 더 고조될 것"이고, "지금은 인내할 때가 아니라 북한과의 협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이며, 미국은 북한이 협상에 복귀하게 만들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는 조셉 디트라니 전 미 국무부 대북담당 특사의 발언에 백번 동감하는 바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안보적 긴장을 낮추기 위한 노력을 당장 시작해야 한다. 점점 부풀어 오르는 풍선은 언젠가 터진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방관하면 누가 가장 큰 피해를 입겠는가? 셋째, 한국은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추구하여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한 압력을 분산해야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미국과 서방의 대응, 다양한 셈법으로 국익을 내세워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국가들, 미국이 물러난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확대해온 중국과 러시아, 반미 성향의 중남미 국가 베네수엘라와 니카라과의 푸틴 지지 표명 등을 미루어보아 미국의 영향력은 과거와 비교해 약화됐다. 반면에 중러를 중심으로 한 반미 연대는 더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두 진영이 대립했던 냉전 시기에는 어느 한 편에 편승하여 안보를 추구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 도래할 다극 체제에서는 어느 하나의 강대국에 의존한 안보는 매우 취약하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리스트가 매우 높은 지역이다. 한반도는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이 지상에서 현실화될 수 있는 곳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을 통해서 우리는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한 압력이 높아지면 반드시 폭발한다는 사실은 꼭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지역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그 지역은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하고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하지만, 주변국들은 직접 희생하는 대신 침략국에 대한 제재를 논의한다. 한반도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남북으로 분할되었고 남북분단이 고착화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한국은 지나치게 한편으로 기울어 반대편의 압력이 높아지도록 해선 안 된다. 국익 우선의 실용선진외교로 여러 강대국과 협력함으로써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한 압력을 분산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수호하고 국제법을 존중하는 국가로서 대러 제재에 동참했다. 그러나 큰 틀에서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 노선을 분명하게 취해야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강대국 국제정치의 현실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과거 냉전 시기와 달리 신냉전은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양 진영으로 명확하게 나눌 수 없으며, 자국의 이익만 내세우는 강한 국가들이 출현함으로써 다극 체제와 혼재된 성격을 띨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세계 질서에 안보 불안이 더 가중될 것이다. 한국은 이러한 국제정치 환경의 변화를 넓은 스펙트럼과 긴 시계열 내에서 파악하고 한국 외교의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본질과 방향성을 명확히 하고, 첨단기술강국, 외교선진강국, 문화강국을 지향하면서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고 미래 산업을 함께 할 매력적인 국가로 성장해야 한다. 한국은 불확실성이 커지는 국제 사회에서 '스스로 강해지기'로 결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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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덕
최재덕교수는 성균관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하고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박사학위(한중관계)를 받았고 모스크바국립대학 국제관계 박사후과정을 거쳤습니다. 이후 연세대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을 거쳐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고 현재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기능분과위원장,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현대중국학회 대외협력위원장, 슬라브유라시아학회 이사 등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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