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노동자들은 '해고는 살인이다'라 외치며 고용안정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인 우리는 열악한 노동조건에 견딜 수 없어 다른 사업장으로 가려면 사장에게 '해고'를 애원해야 합니다. 사장은 해고해주는 대가로 돈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차별입니다"
한국 사회 곳곳의 '보이지 않는' 이주노동자들이 거리에 나섰다. 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본청 앞에선 올해로 132주년을 맞은 세계 노동절을 기념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의 주최로 서울 지역 이주노동자대회가 열렸다. 방글라데시, 네팔, 필리핀, 캄보디아 등 다양한 출신의 이주노동자들이 이날 현장을 찾았다. 이들은 농업, 제조업, 복지산업 등 각 분야 사업장에서 그들이 겪는 차별과 착취의 실태를 토로하고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고용허가제 폐지 및 노동허가제 시행 △근로기준법 제63조 폐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숙사 보장 △이주노동자 산재보험 적용 △여성 이주노동자 대상 성차별, 성폭력 근절 등을 한국 사회에 촉구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고용허가제, 근로기준법 제63조 등 이주노동자들을 사각지대로 몰아넣는 제도의 문제점을 역설했다. 발언에 나선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는 사장의 허락 없이 사업장에서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사장의 지시를 절대 어길 수가 없다. 몸이 아파도, 힘들어도 언제나 불안에 떨며 일해야 하고 사장이나 관리자의 폭행, 폭언, 협박도 끊이지 않고 있다"며 고용허가제를 이주노동자 문제의 핵심으로 꼽았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가 일터를 바꾸려 할 때 고용주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고, 노동계는 고용허가제로 인한 사업장 이동의 부자유를 사업주의 이주노동자 착취·차별을 가능케 하는 핵심 요소로 꼽아왔다. 이어 그는 "농어업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63조 때문에 이중의 차별을 겪고 있다. 휴게시간, 휴일 규정이 적용되지 않아서 정해진 쉬는 날이 없이 장시간 일해야 하고, 초과수당도 주지 않는다"며 근로기준법 제63조의 폐해를 강조하기도 했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63조는 업종에 따른 탄력 근로를 위해 농업, 축산업, 어업 등을 근로기준법상의 예외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 또한 해당 사업장의 사업주가 현장 이주노동자들을 저임금·고강도 노동으로 착취할 수 있게 하는 요소로 활용돼 왔다.
이주노동자를 착취하는 사업장은 제조업, 농업 등 상대적으로 익숙한 노동 현장에 그치지 않았다. 자신을 다문화 가족 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이주노동자로 소개한 한 참여자는 "우리는 일터에서 부당한 지시나 출신국 무시, 폭언, 따돌림, 육아휴직의 제한 등 여러 괴롭힘과 인권침해를 받는다"며 "다문화가족들과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해 가족센터를 만들었는데, 왜 우리 이주여성들은 직장에서 이런 괴로운 일을 겪어야 하나" 되물었다. 해당 노동자는 특히 "일터에서 (집회 참여 등을) 꼬투리 삼아 괴롭힘이 더해지면 일터를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며 익명성 유지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에 가족센터에서 일하는 이주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반응은 혐오였다. 인권침해를 당한다고 호소했는데, 왜 우리는 다시 혐오의 대상이 되어야 하나. 이해하기 어렵다"며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겪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주노동자 인권 단체 '지구인의 정류장' 소속 캄보디아 출신 여성 노동자도 구직 차별을 우려해 익명 발언을 이어 나갔다. 농업 현장에서 일해 온 그는 "유류비, 가스비 등등 120만 원의 숙소비"를 내면서도 악취와 곰팡이 등에 취약한 열악한 숙소에서 생활했던 점, 사업주의 강요로 "자전거로 최대 30분 거리에 있는 다른 농장" 등 열 군데에 달하는 담당 외 농장으로 추가 파견 노동을 나갔던 점 등을 본인이 겪은 노동착취 사례로 제시했다.
이번 이주노동자대회는 만 6년 만에 노동절 당일에 열린 이주노동자 대회이기도 했다. 노동절 당일에도 쉬기가 힘든 탓에,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절 행사는 정주노동자(한국 국적 노동자) 행사와 달리 노동절 근처 일요일에 별도로 열려왔다. 현장을 찾은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이에 대해 "(지금까지 이주노동자들은) 그나마 쉬는 (노동절 근처) 일요일에 별도로 대회를 진행해왔다"며 "노동절은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유급휴일이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장시간 노동과 강제 특근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이주노동자들은 오후 12시 30분경 서울고용노동청 본청 앞에서 모여 1시간가량 대회를 진행했다. 이후 참여자들은 "Free Job Change(사업장 이동의 자유를)"를 구호로 외치며 서울시청으로 행진했고, 민주노총 주최 세계 노동절 본 대회에 참가했다. 대회는 서울 이외 부산, 대구에서도 동시에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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