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것을 잃기 전에는 그 진정한 의미를 알기 어렵다. 기후 위기 이전에 우리는 생태계와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고,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진정한 '일상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전쟁의 참상을 목도(亲眼看见)하면서 전쟁이 앗아간 것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승자 없는 전쟁으로 남북한이 겪었던 아픔을 그들도 고스란히 겪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 다수가 가족과 삶의 터전, 생계 수단을 잃었고 영토는 잿더미가 되었다. 강대국의 국제정치가 배후에서 작동하여 종전도 쉽지 않고 종전 후에도 양측의 긴장 관계는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치부하기에는 전 세계에서 고조되는 안보 위협과 지정학적 리스크가 매우 높다. '세계는 하나'라고 외치던 목소리는 어느새 사라졌다. 미중패권경쟁과 맞물려 글로벌 공급망이 교란되고 세계 경제는 혼란에 빠졌다, 안보적 측면에서 중국과 러시아, 미국과 유럽 및 미국의 동맹들이 극도로 대립하면서 세계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 한국은 대만해협,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호르무즈 해협과 우크라이나 등과 함께 전 세계에서 지정학적 리스크가 매우 높은 곳이다. 이 지역의 평화는 매우 위태로우며 힘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 화약고로 돌변한다. 분단국가 한국은 항구적 평화가 가장 절실한 국가이다. 장기간의 휴전으로 마치 종전된 듯, 평화로운 듯 일상을 이어가지만, 한반도는 엄밀히 말하자면 전쟁중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에 우선하여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시에 유엔 5본부를 유치하려는 적극적인 활동이 시작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뉴욕(유엔 본부), 제네바(제2본부), 빈(제3본부), 나이로비(제4본부)에 이어 서울에 유엔 5본부가 들어선다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통일을 앞당기는 큰 평화의 힘을 한반도에 끌어오는 것이다. 유엔 5본부를 한국에 유치하는 것은 노력과 준비가 많이 필요하지만 그럴만한 가치는 충분하고도 넘친다. 첫째, 한반도의 안보적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다. 한반도는 남과 북, 한·미·일 대 북·중·러 등의 냉전적 대결 구도에 강한 영향을 받으며, 지금과 같은 미중패권경쟁 시대 또는 여러 강대국이 부상하는 다극 체제에서 한반도의 안보 불안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유엔 5본부가 서울에 있다면 한반도 평화를 위한 강대국들의 협력을 도모하기가 훨씬 용이할 것이다. 남북한이 동일한 유엔 회원국으로써 평화적인 국제기구의 규범 내에서 교류를 늘리고 평화와 상생을 논의하게 되면 북한의 도발이 줄어들고 북한이 국제사회로 나올 기회를 만들어내기가 보다 수월할 것이다. 둘째, 서울은 훌륭한 인프라가 갖추어진 메가시티에 더해 국제평화도시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이는 다른 나라에 의해 한반도의 평화가 지켜져야 하는 당위성을 갖게 되며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우리의 다음 세대가 평화의 가치를 인식하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한 정책을 결정하고 평화 통일로 가는 길을 열어 가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셋째, 한국이 유라시아(Eurasia) 평화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 강대국들이 평화적 해결책보다 자국의 이익만을 앞세움에 따라 유라시아에서의 안보 위협도 커지고 있다. 아세안의 여러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으며 아세안 중심성이 훼손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결속이 강해지면서 유라시아에서 중러와 미국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한국이 유엔 5본부를 중심으로 유라시아 평화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면 한반도 평화를 지키는 것은 물론 세계 평화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넷째, 유엔 5본부 서울 유치로 한반도의 긴장 완화된다면 안보 불안에 의한 코리안 디스카운트가 경감되고 더 많은 외국 자본이 유입되어 한국 경제가 활성화되며 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다. 우리 젊은이들이 국제기구에서 일할 기회를 얻고 더 넓은 시야로 세계 평화를 추구해 나갈 것이다. 한국은 미중패권경쟁, 미국과 중러의 대결에 함몰되지 말고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고 한국의 가치를 높이는 일을 추구해야 한다. 강대국들의 부상과 갈등, 편가르기가 심화될수록 한국은 더욱 평화와 화합을 추구해야 한다. 유엔 5본부 서울 유치는 한국이 평화를 추구한다는 상징적 의미이자 실질적 가치 창출의 길이며, 평화를 위해 실제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강대국들의 화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강력한 모멘텀이다. '평화가 제일 필요한 곳에서 가장 많이 평화가 외쳐져야 되지 않겠는가?' 유엔 5본부를 통해 서울에서 끊임없이 세계 평화를 위한 방법을 간구한다면 남과 북도 반목을 넘어 상생의 길로 가게 될 것이다. 한반도 한복판에서 매일 평화의 외침이 울린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다. 한반도에 지정학적 위험이 커질수록,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심화될수록, 북한의 도발 수위가 높아질수록 우리는 우리 세대를 넘어 지켜질 항구적인 평화를 더욱 추구해야 한다. 모내기를 위해서 마른 논에 물을 대야 하는 것처럼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더 큰 평화의 힘을 끌어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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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덕교수는 성균관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하고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박사학위(한중관계)를 받았고 모스크바국립대학 국제관계 박사후과정을 거쳤습니다. 이후 연세대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을 거쳐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고 현재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기능분과위원장,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현대중국학회 대외협력위원장, 슬라브유라시아학회 이사 등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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