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 컷오프' 앞에 3년 만에 꺼낸 김진태의 사과문은 "진솔"했을까
김 후보가 5.18 공청회에 대해 이미 사과했으니 된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실제로 김 후보는 강원도지사 후보 공천 과정에서 컷오프된 뒤인 지난달 18일 5.18 공청회에 대한 사과문을 발표했다. 김행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 대변인의 "5.18과 불교(조계종) 관련 문제 발언에 대해 진솔한 대국민 사과를 한다면 (김 후보의 컷오프 결정을) 다시 논의해볼 수도 있겠다"는 발언이 나온 지 불과 1시간 만이었다. 사과의 이유가 된 공청회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먼저 돌아보자. 공청회의 부제는 "북한군 개입 여부를 중심으로"였다. 발표자인 지 씨는 그날 '북한 특수군이 침투해 5.18을 일으켰다'는 내용을 담은 자신의 책을 들어 보이며 열변을 토했다. 후일 1·2심 재판부에서 허위사실이라는 점이 판명된 주장이다. 지 씨에 의해 북한특수군으로 지목된 5.18 참여 시민들의 고소는 지난해 11월까지 총 7번에 걸쳐 이뤄졌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라는 뜻이다. 당일 공청회에 직접 참석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의원들의 발언도 가관이었다. 김순례 전 자유한국당 의원은 "종북좌파들이 판을 치면서 5.18 유공자라는 이상한 괴물집단을 만들어 우리의 세금을 축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명 전 의원은 "5.18 폭동이라고 했는데 10년, 20년 후에 그게 5.18 민주화운동으로 변질됐다"고 했다. 김 전 의원은 3개월 당원권 정지 처분을 받은 뒤 당에 복귀했다. 이 전 의원은 제명 징계를 받았지만 비례대표였기에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공청회의 판을 깔고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이 김 후보였다. 공청회 한 달 전 김 후보는 "지 씨보다 5.18에 대해 깊게 연구한 사람은 없다"며 5.18 진상조사위원회 자유한국당 몫으로 지 씨를 추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청회 당일 보낸 영상 축전에서는 "5.18 문제에서만큼은 우리 우파가 결코 물러서서는 안 된다"고 했다. 당시 김 후보가 당으로부터 받은 징계는 경징계 중 경징계인 경고 처분이었다. 그랬던 김 후보가 3년만에 겪은 정치적 위기 앞에 내놓은 내놓은 사과문도 김 대변인이 말한 "진솔한" 사과문으로 보기는 어렵다. 김 후보가 발표한 사과문 중 5.18 관련 부분은 이렇다. 사과문에는 지 씨를 5.18 진상조사위원으로 추천하려 하고, 5.18 공청회에 영상축전을 보낸 자신의 행적조차 정확히 적히지 않았다. "일부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발언", "정치적 책임", "행사 주최자의 일환"과 같은 말에서는 5.18 공청회와 관련한 논란을 축소하려는 뜻도 읽힌다. 그런데도 공관위는 '컷오프' 결정을 취소했다. 김 후보가 강원도지사 선거 출마 후보 중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었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후 김 후보는 1대1 경선을 거쳐 국민의힘의 강원도지사 후보로 공천됐다.'5.18 정신 자산으로 한 국민 통합'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길
너무 박하게 생각하고 싶지만은 않다. 정부·여당과 5월 단체 사이에 윤 대통령의 5.18 기념식 참석 협조 분위기가 마련되기까지는 긴 대화와 노력이 있었다. 사단법인이었던 5월 3단체의 공법단체 승인에 대한 국민의힘의 협조, 2020년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의 5.18 묘역 '무릎 사과' 등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이던 작년 10월 19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얘기하는 분들이 많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지만, 그 이후 10월 21일 SNS 게재 입장문과 11월 10일 광주 방문시, 12월 28일 방송기자클럽 토론 등 수 차례에 걸쳐 거듭 사과 입장을 밝혔다. 작년 5월 "5.18은 현재도 진행 중인 살아 있는 역사"라고 하는 등 기회 있을 때마다 5월 정신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이뤄진 진전 전체가 잘못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김 후보의 공천을 보면, 5.18을 향한 정부·여당의 구애가 '선거에서 이기겠다'는 생각을 중심에 두고 진행된 일이 아니겠냐는 의구심을 거두기도 어렵다. 국민의힘에게 호남이 중요한 이유는 실질적으로 어려운 '호남 지역 선거 승리'가 아니다. 전국의 중도층, 특히 수도권 민심에 '호남을 대하는 태도'가 어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강원도지사 선거 승리를 위해, 5.18 정신을 훼손하고 그에 대해 "진솔한" 사과를 했다고 보기도 어려운 인사를 광역단체장 후보로 시민들에게 내세웠다. 호남과 중도층의 표가 필요한 선거가 끝나면 5.18이 또다시 뒷전으로 밀리리라는 우려가 남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우였으면 좋겠다. 국민의힘이 그간 공언해온 대로 "말이 아닌 행동"으로 5.18 정신을 자산으로 한 국민 통합 움직임을 보여주길 바란다. 그 최소한은 5월 단체들이 국민의힘과의 간담회에서 이야기한대로,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는 일에 정부·여당이 힘을 쏟는 것일 테다. 지금이라도 김 후보의 공천을 철회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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