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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영 곁으로 떠난 원경 스님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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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영 곁으로 떠난 원경 스님을 기리며 ['박헌영의 아들' 원경 대종사 이야기] 64화(최종화)

64. 아버지 곁으로

"허화백님, 저 박보살입니다.” "보살님, 무슨 일로 전화를…?” "스님이…” "스님이 왜요?" "스님이 입적하셨습니다." 박보살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아니 그처럼 건강하시던 분이 갑자기 입적이라니. 무슨 일이 있었나요?" "오늘이 12월 6일이라 스님 어머니 기일이에요. 그래 스님이 아침에 제사 준비를 지시하시고 10시에 나오시겠다고 서재에 들어가신 뒤 10시가 넘어도 안 나오시기에 들어가 보니 서제에 쓰러져 계셨어요. 엉~엉~" 허유 화백은 나를 비롯해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 심지연 경남대 명예교수, 양승태 이화여대명예교수, 최갑수 서울대 명예교수, 박호성 서강대 명예교수 등 스님과 가깝게 지내던 학자들에게 스님의 입적 소식을 알렸다. 극작가 안종관, 김정헌 화백, 유병윤 화백, 김윤수 씨, 영애박 씨 종친회 박용옥 총무, 고 박원순 서울시장 부인과 딸 등이 만기사로 달려 왔다.
▲ 원경스님의 영정 ⓒ손호철
"아니 코로나19 정책이 '위드 코로나'로 바뀌어 10명까지 만날 수 있으니 저녁이나 하자고 하셔서 10명이 만나 식사하고 앞으로 매달 마지막 날에 만나기로 한 것이 11월 30일이니, 정확히 1주일 전인데 갑자기 돌아가시다니 믿기지가 않네요." "심장마비라는데, 스님이 나이 드시며 몸이 비대해지시고 대식가인데다가 무릎이 안 좋고 어려서 빨치산들 따라다니며 너무 많이 걸으셔서 걷기 등 운동을 싫어하는데다가 무술의 고수로 자신의 건강을 자만하신 것이 문제였던 것 같네요."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문제였겠지만, 평생 긴장 속에 사시다가 평생의 숙제들을 다 끝내 긴장이 풀리신 것도 원인인 것 같아요. 어려운 아버지 전집도 냈지요, 일제시대 아버지 독립운동을 다룬 만화책 끝냈지요, 아버지 해원탑 만들었지요, 지난해에는 안재성 씨의 <박헌영 평전>도 나왔지요 최근에는 해방정국을 다룬 만화까지 끝냈으니까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 거지요." "아무리 삶이라는 것이 생로병사라지만, 이렇게 갑자기 가시다니…." "스님이 1년 만 더 사셨으면 손 교수와 하기로 한 이정 선생의 흔적을 찾는 해외 답사와 스님 흔적을 찾아가는 국내 답사를 끝낼 수 있었을 턴데 참 안타깝네요." "1년만 더 사는 것이 아니라, 하루 이틀이라도 앓다가 가셨으면 여러 문제들을 정리하시고 가셨을 텐데…. 특히 박헌영 관련 자료들은 다 어디 다 놔두셨는지…." "그러게요. 자료들 보관한 곳을 아는 사람이 스님밖에 없을 터인데 낭패네요." "49재 끝나고 새 주지가 정해지면, 새 주지에게 부탁해 스님 유품 중 불교 관련이 아닌 이정 관련 서적과 자료들은 챙겨달라고 해야지요." "스님이 하시던 '이정기념사업회'도 이제 '이정·원경기념사업회'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정기념사업회라는 것이 스님이 혼자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앞으로 유지할 수 있겠어요?" "그러게요." "이제까지 스님 같은 어른이 버티고 있어 마음이 든든했는데 이렇게 떠나시고 나니 허전하기만 하네요." "그 문제들은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 나가서 스님이 누우실 사리탑이나 가봅시다." "아니 몸도 불편한데 광주에서 어떻게 올라왔어요?" "당연히 달려와야지요." 일행들이 스님의 사리탑이 있는 절 왼쪽 언덕을 올라가고 있는데 소식을 듣고 광주에서 달려온 황광우 박사, 유미정 박사가 뒤늦게 도착했다. 민주노동당 성공의 핵심 주역 중 한 명으로 <철학콘서트>라는 베스트셀러 저자이기도 한 황 박사는 풍을 맞았지만 초인적 노력으로 재활에 성공, 유 박사의 도움을 받아 장재성 등 잊힌 광주지역의 사회주의운동가들 복권을 위해 일하며 인문학연구소인 동고송 모임을 이끌고 있는데 나를 통해 얼마 전 스님과 인연을 갖게 된 사이였다. 나지막한 언덕에는 2017년 스님이 세운 세 개의 탑이 자리 잡고 있다. 가운데는 이정 박헌영 해원탑으로 '이정박헌영지탑'이라고, 왼쪽에는 남북통일, 오른쪽에는 세계평화라고 쓰여 있다. 박헌영 해원탑의 오른쪽에는 스승이신 송담스님의 사리탑이, 왼쪽에는 자신의 사리탑을 만들어 놓았다.
▲ 원경스님의 사리를 만기사 박헌영 해원비 옆에 세워진 원경사리탑에 안장시키고 있다 ⓒ손호철
"황 박사, 이곳 만기사와 이정 선생님 해원탑은 처음이지요?" "그렇지요. 이정 해원탑이 있다는 것을 작년에 선배님이 이야기해 처음 알았습니다. 일찍 와 봤어야 하는데, 게을러 스님이 입적하신 뒤에야 와보네요." 초인적 노력으로 재활에 성공했지만 아직 걸음걸이가 편치 않은 황광우 박사가 불편한 걸음으로 언덕에 올라와 박헌영탑 앞에서 안타까움을 표했다. 2021년 12월 10일 오후, 한 줌의 재로 변한 원경스님은 자신이 가꾼 만기사 언덕에 세운 아버지 박헌영 해원탑 옆에 누었다. "아버님, 저 왔습니다." <후기> 2022년 1월 23일, 49재를 맞아 원경스님의 사리탑을 찾아 참배를 드리고 언덕을 내려오는데 뒤에서 스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산자의 그리움은 족쇄와 같아서 살아있는 사람이 내려놓지 않으면 망자는 떠날 수가 없습니다.'(원경, <산사의 편지>, 1권 25쪽) "이제 그리움을 내려놓을 테니, 스님도 훌훌 자유롭게 떠나십시오. 그리고 다음 생에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한 삶을 사십시오."
▲ 입적 6개월 전의 원경스님 ⓒ손호철

<원경 스님 연대기>

1939년 박헌영, 일제감옥에서 출소. 정태식, 조카 정승년을 박헌영 청주 아지트키퍼로 만듦. 박헌영, 정승년 데리고 상경. 1940년 정승년, 박헌영 아이 잉태 후 출산 위해 청주로 옴. 일제 추적 피해 박헌영 잠적. 1941년 3월 5일(음력 2월 8일) 원경, 청주에서 태어남(박병삼). 5월 말 정순년, 원경 놔두고 친정으로 잡혀감. 6월 관악산 보이는 과천에서 할머니가 키움. 1943년(2살) 할머니 사망, 유언으로 배다른 아들 박지영에게 병삼 부탁. 과천에서 김상룡 애인 이옥숙이 키움. 1945년(4살) 해방과 함께 박헌영 광주서 상경, 조선공산당 재건. 박지영 부부 유언대로 조카 병삼 인계받음. 명륜동 김해균 집에서 아버지 박헌영 만남. 예지동 남로당 아지트에서 김삼룡·박지영 부부와 기거. 1946년(5살) 3월 김해균 집에서 박헌영, 김삼룡, 이현상, 한산 등과 사진 촬영. 10월 조선공산당 불법화로 박헌영 북으로 넘어감. 조선공산당, 인민당, 신민당이 남조선노동당(남로당) 창당. 김삼룡, 이주하, 정태식 3인 중심으로 남로당 지도. 1948년(7살) 4월 3일 단독정부 반대 제주 4.3. 8월 15일 단독정부 출범. 10월 여수 주둔 14연대 제주출동 거부하고 봉기(여순사건). 봉기군 순천으로 이동, 이현상, 봉기군 만나 지리산행. 1949년(8살) 겨울 동계 토벌로 이현상 부대 대부분 괴멸. 1950년(9살) 3월 경찰, 아지트 습격해 김삼룡 부부 체포. 박지영 부부 도주. 구출작전 중 이주하, 정태식 체포되어 남로당 붕괴. 5월 혼자 숨어있는데 한산스님 찾아옴. 지리산행, 보신책으로 화엄사 서동월 스님에게 머리 깎음. 피아골 연곡사로 지리산 올라가 이현상 만남. 6월 한국전쟁 발발. 김삼룡·이주하 처형당함, 정태식 경찰관이 구해줌. 7월 전쟁 소식에 한산스님과 상경(노근리 등 학살 목격). 과천도착, 인민군으로 변한 김소산 만남. 10월 인천상륙작전으로 이현상 찾아 동해 삼화사로(정태식 북한으로). 소백산 구인사에서 상월스님에게 천자문 떼다.  1951년(10살) 담양 가마골에서 남로당 간부 자녀들과 생활. 남덕유산 원통사에서 이현상 만남. 산청 대원사계곡 통해 지리산 들어감. 1951~53년(10-12살) 빨치산과 생활(연락원이나 망보기 역할). 1953년(12살) 3월 전세 기울자 하산, 광양 체류. 한산 지시로 이현상 탈출용 승복가지고 백운산행.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29일 구금(광양경찰서). 빨치산, 서동월 화엄사주지 공개처형. 갈치국 기적으로 석방되어 광양향교서 한산 재회. 이현상, 북한이 직책 박탈 후 하산하다 경찰에 사살됨. 김일성, 박헌영 체포하고 남로당 숙청. 정태식 총살. 가난한 전주농가에 맡겨져 생활함. 1953~1957(12~16살) 김천 청암사 강고봉 스님에게 4년간 공부. 1955년 12월 15일(14살) 박헌영 사형선고. 1956년(15살) 해인사에 잠시 머물다 멸치사건으로 쫓겨남. 7월 19일 박헌영 처형(원경이 1991년 알아낸 것). 1958년(17살) 12월 15일 한산, 예산 대련사에서 원경과 박헌영 제사지냄. 임존산성에서 박헌영 이야기를 해줌. 원경, 기구한 삶에 승복 벗고 전국 방황.  1959년(18살) 남의 호적으로 해군입대(72기). 아버지 복수 위해 UDT 지원, 지옥훈련 생존(8명). 백령도 근무 중 대리 입대 발각되어 탈영. 1960년(19살) 음력 정월 15일 인천 용화선원 전강 선사를 수계사로, 전강의 맏상좌인 송담 정은 스님의 상좌가 되다. 4.19혁명 목격. 수계 후 전강 선사 설득으로 자수, 원대복귀. 1961년(20살) 5.16쿠데타. 진해, 거제도, 소백산 등에서 특수 훈련 교관. 1962년 말(21살) 전역. 1963년(22살)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구족계. 수덕사(정혜사)에서 한산 통해 찾아온 어머니 해후. 기구한 삶에 원주 영천사에서 음독, 14일 만에 깨어남. 한산, 을릉도 여행하며 이정 자세히 알려주며 기념사업 부탁. 남해 금산 부소대에서 제선스님에게 공부. 1964년(23살) 한산이 남로당 출신 기업인에게 받은 돈 갖고 제주도행. 서귀포에 황림사 재건, 여관 매입해 도장 만들어 부랑아 구제사업.  1968년(27살) 지역 깡패들의 신고로 국토건설단 잡혀감(호적 부재). 1100도로 건설공사 강제노역(4개월). 한산스님 잠적.  1969년?(28살) 동료스님들과 환속고민 중 패싸움으로 구속. 어머니, 집 팔아 보상해 석방됨. 1970년?(29살) 상주 절 '현판절도사건'으로 10개월 징역. 호적 필요성 절감. 1971년(30살) 한산 봤다는 풍문에 홍도 갔으나 못 찾음. 1972년(31살) 수원 포교당에서 수원법원의 판결로 가호적 획득(남궁혁). 10월 28일 유신 직후 보안사에 잡혀가 처음으로 아버지 이야기 실토. 1973년(32살) 여주 흥왕사 주지. 1979년(38살) 흥왕사에 도둑 들어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 훔쳐감. 배다른 동생 입대로 갈 곳 없어진 어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 1983년(42살) 교통사고 내 김성동 큰 부상. 안기부 조사에서 아버지에 대하여 두 번째 진술. 용화사 주지설에 불교계서 빨갱이론 시달림. 안성 청룡사 주지. 1985년(44살) 박원순, 임헌영, 이호웅, 김성동 등과 한국현대사 연구모임 시작. 이정 기일 소규모 공개추모제 시작.  1986년(45살) 2월21일 서중석, 이이화 등 460명 역사문제연구소 발족.  1987년(46살) 6월 항쟁과 민주화. 여주 신륵사 주지. 1989년(48살) <시사저널> 창간호 인터뷰에서 아버지 처음 밝힘.  1991년(50살) 러시아 방문, 배다른 누이 비비안나 만남. 이정 관련 소련 자료 수집 등 <박헌영전집> 작업 시작. 전 북한 외무성 차관 통해 이정 기일(7월 19일) 알게 됨. 이후 이정 제사날(7월19일로) 수정. 1995년(54살) 평택 만기사 주지. 1996년(55살) 동국대학교 사회복지학 석사(부설 유치원 운영에 필요). 2000년(59살) 수원법원 판결로 박헌영과 정순년의 자 박병삼 신원 회복. 2003년(62살) <이정 박헌영 일대기>(임경석 저) 출간. 2004년(63살) 모친 별세(82세). <이정 박헌영 전집>(9권) 출간. 자작 시집 <못 다 부른 노래> 출간(한국기자협회 한민족대상 수상). 2008년(67살) 박갑동 만남. 2013년(72살) <박헌영트라우마>(손석춘 저> 출간. 2014년(73살) 조계종 원로의원 추대. 영해 박씨 족보에 박헌영의 자식으로 오름. 2015년(74살) 이정 독립운동 만화 <경성아리랑1~6권>(유병윤 그림) 출간. <만화 박헌영 1~6권>(구 경성아리랑) 출간. 조계종 대종사 법계 서품. 2017년(76살) 만기사에 박헌영 해원탑, 송담·자신 사리탑 세움. 원로회의 부의장 선출됨. 2020년(79살) <박헌영평전>(안재성 저) 출간. 필자와 예산, 지리산, 가마골, 회문산, 제주도 등 삶의 흔적 답사. 2021년(80살) 새벽 편지 <산사의 편지> 1~6권 완간. 해방정국 만화 <혁명과 박헌영과 나: 무너진 하늘, 1~3권>(유병윤그림) 출간. 필자와 코로나19 후 이정 해외 흔적과 자신의 삶 흔적 답사 계획 수립. 2021년 12월 6일 입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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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화가를 꿈꾸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로 진학했다. 독재에 맞서다 제적, 투옥, 강제 징집을 거쳐 8년 만에 졸업했다. 어렵게 기자가 됐지만, '1980년 광주 학살'에 저항하다 유학을 갔고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일하며 진보적 학술 활동과 사회운동을 펼쳐왔다. <국가와 민주주의>, <한국과 한국 정치>, <촛불혁명과 2017년 체제> 등 이론서와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보다>, <레드 로드-대장정 13800KM 중국을 보다> 등 역사 기행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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