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 대법원이 낙태권 폐기 결정을 내린 데 대해 미국 정부와 주요 기업들이 여성의 낙태권을 지지하며 이에 대한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25일(현지 시각)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성명을 발표하고 "(낙태 권리를 합법화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는 연방대법원의 결정은 전 세계와 우리 직원들 사이에서 이해할만한 우려와 의문을 낳고 있다"며 "바이든 정부 내에서 국무부는 산부인과 시술을 지원할 것이며 출산권 증진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이어 "국무부는 모든 직원이 어디에 거주하든 생식 의료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것을 할 것"이라며 국무부 직원의 낙태권 보장에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 역시 성명을 통해 "군의 건강과 안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며 "산부인과에 시술하는 것을 접근하는 데 있어 어떤 차질도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규정을 면밀하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미 정부 부처에서 이처럼 연방대법원 결정에 정면으로 반대 의사를 보이는 배경에는 민주당 및 바이든 정부가 여성의 낙태권을 지지하는 기조를 유지해왔다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미 연방대법원은 전날 낙태 합법화 판결을 공식 폐기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각 주 정부와 의회가 낙태권 존폐를 결정할 수 있게 됐고, 그 결과 미국 50개 주 중 26개 주가 낙태를 금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실제 이날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마자 미주리와 루이지애나 등은 낙태가 불법이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하기도 했다. 국무부와 국방부가 밝힌 낙태권 보장은 이처럼 미국 주별로 낙태권 존폐 여부가 달라질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다른 주에서 시술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는 의미인 것으로 분석된다. 미 정부뿐만 아니라 주요 기업들도 시술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스스로 환경과 사회에 대해 책임을 지는 기업이라는 모토를 가지고 있는 아웃도어 의류 업체 파타고니아는 원정 낙태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파타고니아는 미 연방 대법원의 결정에 반대하는 평화적인 항의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되는 직원들이 생길 경우 이들을 위해 보석금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 체이스 역시 합법적인 원정 낙태를 위해 직원들에게 관련 비용을 회사 측에서 부담하겠다고 밝혔다. 월트디즈니도 낙태를 포함한 의료서비스 접근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가야하는 직원들에 대해 비용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디즈니월드가 있는 플로리다주의 경우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임신 15주 이후 낙태를 불법화하는 법안에 서명한 바 있어, 안그래도 정치적인 대립을 보이고 있는 양측의 갈등이 더 심화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이외에도 도이체방크, 씨티그룹, 아마존, 애플, 마스터카드, 스타벅스, 나이키, 리바이 스트라우스, 마이크로소프트, 골드만 삭스, 워너브라더스디스커버리 등 다수의 기업이 이와 같은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개인 차량 호출 서비스인 우버와 리프트의 경우 낙태를 돕는 운전기사에게도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규정한 텍사스 주의 낙태 금지법을 비판하면서, 운전기사들이 피소될 경우 소송 비용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미국 내에서 대법원 판결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가 곳곳에서 열렸다. 특히 공화당이 주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곳에서 시위가 격하게 일어났다.
공화당이 주 의회 다수를 점하고 있는 애리조나 주에서는 주의회 의사당 앞에서 낙태권을 지지하는 시위가 열렸다. 이날 시위는 평화적으로 진행됐지만 일부 참가자들이 의사당 창문과 문을 두드리는 행위를 했고 경찰은 최루탄을 발사하며 시위대를 해산시키기도 했다. 조지아주와 텍사스주 등 공화당이 의회의 다수인 지역에서도 주의회 의사당 및 연방법원 청사 앞에 많은 시민들이 낙태권을 지지하는 시위에 동참했다. 임신 기간과 무관하게 낙태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콜로라도 주의 경우 낙태 찬반 시민들이 같은 장소에서 시위를 벌이면서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민주당이 주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지역에서도 다른 주의 주민들과 연대하는 차원의 시위가 열렸다. 뉴욕 맨해튼에서는 수천 명의시민들이 이번 결정을 내린 대법관을 규탄하는 시위를 열었다. 다만 뉴욕에서는 대법원 결정을 찬성하는 사람들의 시위도 열렸으나, 양측 간의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낙태권을 주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도 낙태 금지가 추진될 것으로 보이는 26개 주 여성들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보내는 시위가 개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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