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24주 이내 임신중지권을 보호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고 관련법 제정을 각 주 재량에 맡김으로써 각 주들은 19세기에 제정된 법이 아직 유효한지를 두고 법정 다툼을 벌이는 등 혼란에 빠졌다. 대법원이 판결을 통해 권리를 더 분명하게 한 것이 아니라 모호하게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의 25일(현지시각) 보도를 보면 위스콘신주에서는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 때문에 사문화됐던 1849년의 임신중지시술 금지 주법을 부활시킬 수 있을지를 두고 법정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거의 200년 전에 만들어진 이 법은 임신한 여성의 생명이 위급할 경우를 제외하고 임시중지시술을 시행한 의사를 처벌하도록 돼 있다. 성폭력이나 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에도 예외는 없다. 임신중지 반대 단체인 위스콘신생명권 쪽은 1849년 주법이 "시행되기를 바라지만 법적 도전이 예상된다"고 했다. 임신중지권을 옹호하는 비영리조직인 위스콘신계획된부모 쪽은 "1849년법이 시행 가능할지에 대한 소송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시간주에서도 임신중지를 금지하는 거의 100년된 주법의 부활 여부를 두고 지난 4월부터 소송이 벌어지고 있다. 임신중지를 중범죄로 간주하는 1931년 미시간 주법은 임신중지시술을 한 의사뿐 아니라 약물을 통해 임신중지를 시도한 여성에게도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법은 강간이나 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에도 예외가 없고 임신한 여성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예외가 허용되지만 예외 허용 상황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규정하지는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미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을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던 지난 4월 민주당 소속 그레첸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는 1931년법을 파기하기 위해 미시간 주 헌법 조항에 따라 대법원에 임신중지에 대한 헌법적 권리를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주 법원은 5월 최종 판단이 나올 때까지 이 법의 시행을 일시적으로 금지했지만 임신중지 반대 단체 등은 이 금지 명령 철회를 법원에 요구하고 있다. 휘트머는 연방대법원 결정이 나온 24일 임신중지법이 "케케묵은" 1931년법이 부활하는 것을 막겠다고 했다. 휘트머는 임신중지를 제한하는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했다. 공화당 소속 주의원들이 피임약 제조나 판매시 20년형을 부과할 수 있는 더 가혹한 법안까지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 주를 포함해 대 웨이드 판결 이전에 임신중지금지법을 갖고 있던 일부 주는 최소 50년 이상 된 법안의 부활을 놓고 주 행정부와 사법부에서 씨름을 벌여야 할 가능성이 있다. 이번 대법원 결정이 임신중지에 대한 논의를 단숨에, 길게는 두 세기 전으로 되돌려 놓은 셈이다. 심지어 최근 미국 여러 주에서 제정된 임신중지금지법이 19세기 법률보다 여성을 더 보호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로렌 맥아이버 톰슨 조지아 케네소주립대 법학 교수는 최근 제정되는 법들보다 "19세기에 통과한 많은 (임신중지금지)법들은 여성을 처벌하지 않았고 더 관대했다"고 <뉴욕타임스>에 설명했다. 매체는 역사학자들이 19세기 당시 임신중지금지법 제정은 의사로 자칭하는 이들의 훈련 받지 않은 시술을 금지하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며 임신 중기 이후 여성이 태아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는 시기 뒤에만 임신중지를 금지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임신중지권 보호 목소리를 내 온 캘리포니아주 등에서는 임신중지를 위해 다른 주에서 오는 여성들까지 보호하겠다는 성명을 내 놨다. 24일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케이트 브라운 오리건주 주지사, 재이 인슬리 워싱턴주 주지사는 임신중지와 피임에 대한 접근을 유지하고 다른 주의 임신중지금지법과 관련해 캘리포니아의 임신중지시술 당사자와 제공자들이 기소되거나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내용의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서부 해안에 위치한 이들 주에는 미국 인구의 6분의 1 가량이 거주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르면 27일 캘리포니아에서 재생산권을 명시적으로 보호하는 내용을 담은 주 헌법 수정안이 투표에 부쳐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임신중지금지법이 있는 주의 여성이 캘리포니아에서 중지시술을 받기 위해 이동할 경우 이동 비용을 경감시킬 수 있는 법안도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반면 임신중지 반대자들은 대법원 결정에 만족하지 않고 더 강한 법안을 요구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임신 15주가 지나면 임신중지를 금지한 플로리다주에서 주의원들이 임신 6주가 경과하면 중지를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하기 위해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를 압박하고 있다고 전했다. 임신중지 반대 단체인 전국생명권위원회는 임신중지금지를 헌법에 명시하고 중지시술을 위해 다른 주로 이동하거나 약물을 사용한 임신중지도 금지하는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임신중지 약물에 대한 접근 제한도 시도되고 있다. 공화당 소속인 크리스티 노엠 사우스다코타 주지사는 26일 미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편 주문 임신중지약에 대한 제한법을 시행하고 약물을 처방한 의사를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WP)는 노엠의 계획이 법무부 지침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24일 메릭 갈랜드 미 법무장관이 발표한 미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임신중지약을 주정부가 안전을 구실로 금지해선 안 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 3월 노엠은 원격 진료를 통한 임신중지약 처방을 금지했고 임신 여성이 최소 3번 의사를 직접 방문해야 약을 탈 수 있도록 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이 의료기관과 승인된 약물 등 안전한 방법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됨에 따라 여성들이 안전하지 않은 수단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뉴욕 성소수자 거리행진에 참여한 흑인 양성애자인 카미니 라이트(45)는 <워싱턴포스트>(WP)에 원치 않는 임신을 한 할머니 세대의 흑인 여성들이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권이 제한돼 잘못된 시술로 죽거나 불임이 된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정부가 여성의 몸에 대해서는 관여하고 지시하면서 "남성들에게는 정관수술 등 몸에 대한 조치를 강제하지 않고 양육비 지급조차 강제하지 않는다"며 분노했다. <뉴욕타임스>는 26일 대법원 판결이 "시작에 불과했다"며 이번 판결이 "임신중지를 놓고 양쪽 진영의 광란을 촉발했으며" 기존 판결보다 "더 즉각적이고 광범위한 적개심을 유발했다"고 비판했다. 이번 판결에서 임신중지권 보호를 폐지한 대법원 판결 뒤 주말 미국 곳곳에서 열린 성소수자 거리행진(프라이드) 행사 참석자들은 임신중지에 이어 동성혼 등 다른 제반 권리들이 보호되지 못할 것을 우려했다. 행진 전날 집에서 휴식을 취할 예정이었던 다리아 월콧(39)은 24일 대법원 결정에 항의하는 뉴욕 집회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대법원은 "성소수자 권리, 인종간 결혼, 동성혼이 모두 테이블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24일 판결에서 클라렌스 토마스 대법관은 사생활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14조를 근거로 보호됐던 임신중지권을 폐지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같은 조항을 근거로 보장한 피임, 동성애 및 동성혼에 대해서도 재검토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은 이날 결정이 "임신중지에 대한 헌법적 권리에 관한 것이고 다른 권리에 대해서는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지만, 이런 우려는 지난달 대법원 초안이 유출됐을 때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로렌스 고스틴 조지타운대 로스쿨 교수는 "토마스 대법관을 외로운 늑대로 치부하는 것은 쉽지만 그건 실수"라며 대법원이 임신중지권을 보장한 판례의 기반을 파괴했기 때문에 "이후 다른 권리들도 무너질 수 있다"고 <뉴욕타임스>에 경고했다. 일각에서는 대법원이 총기를 규제하는 주의 권리에 대해서는 제한하면서 임신중지를 규제하는 주의 권리는 확대하는 판결을 연이어 내놓은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대법원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전날 공공장소에서 총기 소지를 제한하는 뉴욕주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로렌스 트라이브 하버드 로스쿨 명예교수는 역사적 검토를 통해 이런 결론을 냈다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다수 대법관이 "상상의 과거"를 수용했으며 "두 결정이 완전히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AP> 통신에 말했다. 그는 이 판결들이 "정당성이 곤두박질 친 법원에서 나온 것"이라며 종합해보면 개인 신체의 통제권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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