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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가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이 정도는 괜찮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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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가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이 정도는 괜찮다'고 말하고 있다" 전 서울대 교수 '제자 성추행' 1심 무죄에 학생·시민사회 반발  

"자꾸만 가해자들에게 '이 정도까지는 괜찮다'는 인식을 심어주며 '사건의 재발 방지'라는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훼손하는 사법부는 변화해야만 한다."

서울대학교 학생사회와 시민사회·정당 등이 모여 '서울대 A교수 제자 성추행 사건'에 대한 1심 무죄 판결을 규탄하고 나섰다. 학생·시민단체 연대체인 '전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A교수에 대한 1심 무죄 판결을 규탄하는 학생·시민사회 공동대응(공동대응)'은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권력형 성폭력 및 인권침해 혐의로 서울대에서 해임된 서어서문학과 A교수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며 "이 판결은 불평등하고 불합리하며, 다른 피해자들마저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사법 정의의 역행"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A 전 교수는 피해자 B 씨가 자는 사이 그의 정수리를 만진 점, B 씨에게 팔짱을 끼도록 강요한 점, B 씨의 허벅지 안쪽 흉터를 만진 점 등의 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해당 사건은 2019년 B 씨의 공론화 및 학내 인권센터 신고로 처음 불거져, 같은 해 서울대학교는 A 전 교수의 해임을 결정했다. 다만 A 전 교수는 지난 7 ~ 8일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 재판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7명의 배심원이 만장일치로 무죄를 평결했고, 재판부(형사합의29부 재판장 김승정) 또한 '피해자가 자는 사이 정수리를 만진 사실' 등 공소 건에 대해 "피해자가 불쾌감을 느낀 것은 인정"되지만 "강제추행 죄의 추행으로까지 볼 수는 없다"며 배심원 평결을 수용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공동대응 측은 해당 1심 재판을 두고 "사건의 내용에 집중하기보다, 배심원들에게 '피해자를 의심해야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다투는 괴상한 법정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A 전 교수 측이 "사건 그 자체와는 관련이 없는 피해자의 말 토씨 하나하나를 꼬투리 잡았고, 맥락 없이는 자칫 의미심장하게 읽힐 수 있는 조력자들의 대화 내용을 발췌해 피해자를 거짓말쟁이로 몰았"으며, 피의자 측의 이러한 부적절한 전략이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방청 연대'를 위해 1심 재판 현장에 참석했던 최다빈 권력형 성폭력·인권침해 문제 해결을 위한 서울대인 공동행동(서울대인 공동행동) 집행위원장은 "(재판 당시) A 전 교수 측은 피해자의 공손한 연락 말투와 사건 발생 전 웃으며 찍은 사진을 근거로 피해자를 '피해자답지 않다'고 비난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A 전 교수 측의 해당 행위가 "특정한 정서와 태도를 보여야만 '진정한 피해자'라 말하는 전형적인 피해자 탓하기" 전략이라 비판하며 "현실이 지워진 법정에, 편견은 남았다"고 주장했다. 공동대응 측에 연대한 강은지 천주교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본 사건의 가해자는 피해자의 지도교수로, 피해자의 학위과정 및 졸업에 전권을 가진 사람"이라며 이번 무죄 판결에 대해 "재판부는 가해자의 위력과, 그 안에서 피해자가 처한 상황과 취약한 위치를 고려하지 않은 채 (가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평가했다. 강 활동가는 이어 "대학 내 교수들의 성폭력은 서울대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며 교수와 학생 간의 권력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사건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강 활동가가 제시한 2021년 서울 소재 대학원 대학원생 성인지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4.3%가 학교 내 성희롱 및 성폭력을 경험했으며 가해자 중 65.5%가 교수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에 응답한 피해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가해자의 권력으로 인한 불이익과 2차 가해"였으며, 때문에 "학내에서 문제제기를 하거나, 고소를 망설이는 피해자들"도 많았다. 이에 대해 최 집행위원장 또한 "흔히 대학원을 감옥에, 졸업을 탈출에 비유한다. 교수가 학생의 학업과 진로에 있어 막강한 권한을 갖다 보니, 부당한 일은 빈번히 발생하고 문제제기는 어렵기 때문"이라며 "공고한 위계 속에 교수에 의한 성폭력, 인권 침해가 끊이지 않고 발생"해 왔고, A 전 교수 사건 또한 그 "출발점은 바로 이런 현실에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해당 재판은 피해자 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피의자 측 국민참여재판 신청이 수용되는 등 시작 전부터 논란에 휩싸여왔다.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국민참여재판은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들이 사건 맥락이나 성폭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경우 가해자 측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공동대응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회적 인식이 피해자에게는 낙인관 편견을 가하고, 가해자에게는 막강한 지위와 발화 권력을 부여하는 권력형 성폭력 사건의 유무죄를 겨우 이틀 간 국민참여 재판으로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과연 누구를 위한 국민참여재판인가" 되묻기도 했다.
▲29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전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A교수에 대한 1심 무죄 판결 규탄 기자회견 ⓒ프레시안(한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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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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