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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법소년 연령' 논의와 '민식이법 놀이' 이야기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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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촉법소년 연령' 논의와 '민식이법 놀이' 이야기의 공통점 [청소년 인권을 말하다] 청소년이 특권층이라고?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국민 청원 제1호는 '청소년보호법 폐지'였다. 한데 그 내용은 청소년 유해 환경 규제, 매체 심의 등을 담은 '청소년 보호법'을 없애 달라는 게 아니었다. 형사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청소년에게 형사 처벌이 아닌 '보호 처분'이 가능케 한 '소년법' 내지는 형사 미성년 제도 등을 폐지해 달라는 것이었다. 청원인이 '청소년보호법'이라는 명칭을 쓴 것은 청소년 관련 사법 제도(소년 사법)에 대한 사람들의 무지와 더불어, 이 문제가 사람들에게 어떤 프레임으로 인식되고 있는지도 드러냈다. 윤석열 정부는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110대 국정과제'를 통해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 구현"을 하겠다며 "촉법소년 연령 기준 현실화", 곧 형사 처벌 대상 연령 하향 입장을 보였다. 법무부도 6월, '촉법소년 연령 기준 현실화 TF'를 꾸리며 연령 기준 하향 추진을 발표했다. 사실 이런 정책은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되지 않았어도 추진되었을 공산이 크다.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도 모두 유사한 공약을 냈고, 국회에도 여러 정당에서 비슷한 방향의 법안들을 발의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청소년이 연루된 범죄 사건들을 자극적으로 보도해온 언론의 행태, 그리고 널리 뿌리 내린 '청소년들을 보호해줬더니 법을 악용한다'라는 담론이 있다.

청소년이 특권층?

이런 모습은 형사 처벌 대상 연령 하향에 관해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사회적 소수자가 보호·지원 제도를 악용하여 '평범한 사람'이 억울한 피해를 보며 피해자/가해자가 역전된다는 역차별 서사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혐오의 일부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여성이 악의를 갖고 남성을 성폭력이라고 무고하여 억울하게 처벌받는다는 '꽃뱀'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이른바 '민식이법' 논란, 곧 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 강화 정책을 놓고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어린이들이 이 법을 악용하여 '놀이'를 하며 억울하게 처벌받는 운전자가 늘어날 거라는 우려였다. 그러나 어린이보호구역 강화를 악용하는 어린이들의 놀이란 것이 그 실체가 잘 확인되지 않았듯이, '형사 처벌을 안 받는 것을 이용하여 특혜를 누리는 촉법소년들' 역시 상당부분 허상이며 과장되어 있다. 실제론 현재도 만 10세 이상은 자유를 제한, 박탈하는 처분을 받고 있다. '소년법'을 적용받은 청소년들은 대개 소년분류심사원, 소년원, 재판에서의 경험을 두렵고 괴로운 일로 기억하지, 편하고 이득 본 일로 기억하지 않는다. 보호 처분이나 피해에 대한 배상, 가정·학교에서의 처벌, 사회적 낙인 등 여러 제재가 있는데 단지 형사 처벌만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청소년들이 거리낌 없이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 비현실적이다. 오히려 미디어 및 온라인에서의 "청소년(촉법소년)은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 안 받는대"라는 단편적이며 틀린 정보의 확산이 범죄를 조장하고 있진 않은지 짚어 봐야 한다. 또한 청소년들이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을 비교적 약하게 받는 예를 놓고 일종의 특권층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부적절하다. 자기결정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스스로의 사회적 지위도 없다시피 하며, 경제적으로도 취약한 위치에 있는 많은 청소년들의 상황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현행 '소년법'상 청소년들은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다', '품행이 불량하다'라는 이유만으로도 소년 재판과 보호 처분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는데 무슨 특권이란 말인가. 기존 사회 질서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인정받기 어려운 존재, 일상적으로 자기 삶을 꾸려가고 만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이, 오직 범죄에 연관될 때만 선처나 지원을 받는 것은 특권이라 할 수 없다. 형사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하는 청소년 대다수는 가정과 학교라는 청소년에게 주어진 자리를 벗어나 사회에서 배제되고 열악한 조건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청소년과 범죄를 보는 관점의 전환

2019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형사 처벌 대상 연령을 만 14세 이상으로 유지하라고 유엔아동권리협약 가입국에 권고했고,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정기 심의에서도 같은 권고를 했다. 이는 관련 연구에 근거한 것이자 국제적 추세이다. 게다가 '청소년 범죄가 늘어나고 악화되고 있다'라는 사람들의 인식은 사실과 다르다. 통계상 청소년 범죄 수는 10년, 20년 길게 보면 오히려 감소했고, 최근에도 큰 변화가 없다. 언론들이 몇몇 사건을 집어 "흉포화", "심각" 등의 헤드라인을 달았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형사 처벌 대상 연령 하향은 뚜렷한 근거 없이, '청소년들이 법을 악용한다'라는 세간의 왜곡된 인식에 부응하려는 정책이다. '청소년들의 범죄가 형사 처벌만 하면 해결될 것'이라는 지나치게 단순한 접근법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엄벌주의는 당장 만족감은 줄지 몰라도 장기적으론 재범률을 높이고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형사 처벌 대상 연령 하향을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가정 환경 등이 좋지 못해 법적 조력을 받지 못하거나 보호 처분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청소년들이 더욱 많이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경향이 심해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법무부의 '촉법소년 연령 현실화 TF'에선 다각도에서 부작용을 없애며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명칭부터가 연령 하향을 추진하려는 의도가 뚜렷하고, 여러 종합적 정책을 연구하고 시행하는 것은 쉽지 않기에 결국 실질적 변화는 형사 처벌 대상 연령만 낮추는 데 그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의 청소년 관련 사법 제도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청소년 등 소수자들이 보호·지원을 악용한다는 식의 혐오 담론에 적극 대처하여 그 힘을 약화시키는 것 아닐까? 나아가 범죄가 줄어들도록, 재범이 일어나지 않도록 청소년들의 삶을 종합적으로 살피는 것 아닐까?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처벌 대상을 확대하기보다는 예방에 더 힘써야 마땅하다. 청소년의 인권 보장을 주장한다면, 청소년 범죄의 경우 온정주의적으로 대우받는 것도 부당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자주 받곤 한다. 일단 범죄에 연루되는 청소년은 전체 청소년 집단 중 소수임에도 청소년 전체의 인권 및 사회적 지위와 결부되어 이야기되는 것 자체가 불합리한 차별의 논리는 아닌가. 나아가, 지금까지 청소년 관련 사법 제도에 대해서는 온정주의냐 엄벌주의냐 하는 이분법만 작동했다. 청소년들은 순수하고 무고하며 가족(부모)과 환경의 책임만 있다는 식의 온정주의는 청소년을 타자화하고 시혜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그러한 순수성을 벗어난 듯한 청소년들에 대해서는 엄벌주의를 적용하게 만든다. 청소년 관련 사법 제도가 존재하는 이유는 재범 예방의 효과성 등 사회적 공익을 고려한 것이자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적합한 지원을 위해서라고 이해되어야 한다. 청소년을 이 사회에서 같이 살아가며 또 살아갈 존재로 여기는 것, 그리고 범죄를 범죄자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이자 공동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 청소년 관련 사법 제도를 논하는 데 밑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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