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하면 살릴 수 있는가
발굴 범주만 넓힌다고 해서, 위기가구가 사회안전망으로 자동 편입되는 것이 아니다. 기초생활보장을 신청하더라도 탈락이 부지기수다. 가혹한 재산·소득 기준, 근로능력 증명 등 겹겹의 제도적 장벽을 겨우 넘어서도, 비현실적인 기준중위소득에 기반 하는 사회보장으로 인간다운 삶은 어렵다. 빈곤에 대한 경멸을 견디는 것은 덤이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21년 한국사회보장정보원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에 포착된 위기가구는 133만 명에 이른다. 2014년 송파세모녀 사건 대응으로 2016년부터 발굴 시스템이 도입된 후, 도입 초기 20만 명이었던 발굴 대상 위기가구가 대폭 늘었다. 그러나 공적 서비스로 연결되는 비중은 24% 정도이며, 기초생활보장제도로 연결되는 비중은 4.3%에 불과했다. 수집정보가 39종으로 늘어나니 발굴 대상자는 더욱 늘어나겠지만, 또 다른 참사를 막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약자의 목소리를 외면한 정부
윤석열 정부의 대책 중 가장 의아한 부분은 AI복지사 도입이다. 이는 지난달 말 활동 종료 된 행정안전부 산하 주민복지서비스개편추진단 소식과 맞물려 더욱 큰 우려를 낳는다. 송파 세 모녀 이후, 지자체별 위기가구 관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범부처 기관으로 사각지대 발굴과 복지전달체계 전담해온 컨트롤타워가 사라졌다는 의미다. 그 자리를 AI가 메우도록 만든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윤석열 정부는 '약자복지'를 선언했지만 약자의 삶과 고유한 이야기를 외면하고 있다. 수원 세 모녀는 스스로 고립되었다. 고립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공적 도움의 영역으로 이끌어내는 것은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어려운 상황의 끝단에 내몰린 사람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찾고, 만나고, 살피고, 관계 맺고, 각자의 고유한 이야기를 듣고, 설득하고,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야 공공정책도 가닿을 수 있다. 늘어나는 위기가구 발굴 대상자의 수에 비해, 현장 사회복지사와 방문 간호사들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복지전달체계의 최전선에서 위기가구와 관계 맺고 있는 사람을 충원하지 않고, AI로 초기 상담을 진행하겠다는 것은 실재하는 사람들의 삶을 보지 않으려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복지전달체계 컨트롤타워도 무너지고, 빈곤 현장의 최전선도 와해되고 있다. 민간 자원봉사로 이뤄지는 명예 사회복지사나 AI복지사로 부족한 제도를 보완할 수 없다. 윤석열 정부는 AI복지사 개발에 23억5000만 원을 투입할 것이 아니라, 현장의 사회복지사와 방문 간호사를 대폭 충원하는 것이 다음이다.제도의 공백을 메우는 '관계'
모든 사회적 죽음을 잇는 맥이 있다. 고립이다. 빈곤이나 위기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제도가 불충분하고, 공적인 도움이 요원하며, 사회적 경멸에 노출되면서 고립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아무리 고도화 하더라도, 공공부조의 제도적 해법은 공백을 수반한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한 해법은 '관계'다. 관계부조의 가능성을 생각한다. 발굴 시스템과 복지전달체계를 고도화하고, 사회안전망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과 동시에 지역 사회의 '관계' 형성을 위한 공공정책이 필요하다. 매년 수차례씩 고독사 현장을 마주한다는 복지센터 활동가는 지역에서 사람을 연결시키는 것이 절박하다고 했다. 상황이 어려워도 관계에 뿌리 내린 사람은 살아내고, 뿌리 뽑힌 사람은 고립돼 죽어 발견된다. 위기와 사회서비스를 잇는 것도 결국 사람을 돌보는 사람의 '관계'다.*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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