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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보러 가는 건 왜 그렇게 떨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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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보러 가는 건 왜 그렇게 떨릴까 [10.1 세계주거의날 주거권 칼럼] 세입자가 불안하지 않는 사회

10월 첫째 주 월요일은 '세계주거의 날'이다. 2022 세계주거의 날을 맞아 10월 1일 서울역과 서울시청 일대에서 주거‧복지단체와 시민이 주거권 대행진을 펼친다. <프레시안>은 세계주거의 날을 맞아 집걱정없는세상연대에서 보내온 반지하 참사, 공공임대주택, 전세 문제 등에 대한 당사자의 목소리를 일주일 동안 연재한다.

"집주인이 차일피일 미루고 있습니다. 너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합니다."
"임대인 부부가 제 전화를 착신금지하고, 카톡 탈퇴까지 하고 있습니다."
"임대인이 보증금 반환을 한 없이 미루고 있고 잠적 상태 입니다."
"임대인이 계약끝나고 3개월 뒤에 돌려주겠다며 계속 연락만 피하고 있습니다."
"임대인이 새로운 세입자에게 돈을 받을때까지 보증금을 줄 수 없다고 버티고 있습니다."
"방을 비운지 한 달도 넘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고, 최근에는 아예 임대인으로부터 연락이 끊겼습니다."
보증금은 점점 비싸지고, 전세사기 수법은 날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지만 세입자의 보증금 반환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는 여전히 미흡하다. 특히, 보증금 떼이는 문제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극심하다. 물론 세입자가 임차권등기명령제도를 통해 주택임차권을 설정하고 지급명령 및 보증금반환청구소송을 진행하는 것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그러나 설령 임대인의 협조를 받아 임차권 등기가 가능해져도 즉각적인 보증금 반환이 보장되는 것은 아닐 뿐더러, 집이 경매에 넘어가서 보증금을 날린채 쫓겨나는 불상사를 막아줄 장치는 못된다. 어떤 세입자에겐 전재산이고, 또 어떤 세입자는 대출을 끌어모아 빚을 져서 마련한 보증금이기에 이것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은 공포에 가깝다. 그 공포가 곧 현실이 되는 경우, 세입자는 몇 가지 선택지 앞에 놓인다. (1) 청소비 및 도배비 등을 명목으로 요구하는 몇 십만 원을 떼이고 나머지 보증금을 돌려받는 것으로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거나, (2) 우선 이사를 나간 뒤 지속적으로 연락하면서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줄 때까지 기다리거나, (3) 이사를 연기하고 다음 세입자가 구해질 때까지 계약을 연장하거나, (4) 이사를 포기하고 같은 집에 계속 거주하는 등의 방안을 선택한다. 갭투기꾼이 운영하는 깡통주택에 거주하는 경우에는 주로 (3) 또는 (4)의 선택지를 제안받는데, 요즘 들어서는 (5) 웃돈을 조금 더 지불하고 해당 주택을 매입하라는 제안을 받기도 한다. 주어진 선택지가 무엇이든, 계속 거주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하는 선택을 자의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 능력에 따라 좌우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는 세입자에게 몹시 불합리한 관행이 분명하다. 어디 보증금만이 문제인가. 민달팽이유니온 주거상담을 진행하는 활동가들이 우스갯소리로 주고받는 4대 마요가 있다. 보증금 떼먹지 마요, 월세 올리지 마요, 관리비 속이지 마요, 곰팡이 떠넘기지 마요. 일부 임대인은 세입자의 보증금과 월세를 쥐고 흔들고, 임대차3법으로 보호받는 세입자에게는 편법으로 관리비를 인상하기도 하고, 곰팡이와 누수 등 열악한 주거환경에 대한 책임을 세입자에게 떠넘기곤 한다.
ⓒ민달팽이유니온
"임대차3법때문에 월세를 못올리니 관리비를 2배 이상 올리겠다고 통보 받았습니다. 관리비 상세내역도 알려주지 않으면서, 인상분을 내지 않으면 나중에 퇴거할 때 보증금에서 제할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재계약할 때 보증금을 500만원 올리겠다고 하길래, 요즘 무슨 법이 생겨서 그렇게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임대인은 재계약 할 때 마다 아득바득 올릴 거라고 하면서, 5% 인상한 임대료로 계약을 갱신하고서는 이것도 싸게 주는 거라며 화를 냈습니다. 법으로 보호되는 게 이래서 중요하구나 생각했습니다. 임대인이 올릴 수 있는 거 다 올릴 거라고 협박할 때, 법이 없으면 세입자 입장에서는 주장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복비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여자애가 얘기한다며 역정을 냈습니다. 아는 연장자한테 도와달라고 했더니 상황이 정리됐습니다."
기상천외한 이유를 들먹이며 세입자의 주거비 부담과 주거불안을 야기하는 일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보니, 처음 독립하는 청년도 이미 몇 차례 이사를 다녀본 베테랑 세입자도 집을 구하는 시기가 오면 긴장하고 경계하게 된다. 보증금 떼이지 않으며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집을 찾기 위해서 여러 동네를 다니고 여러 공인중개사를 만난다. 문제는 안심할 수 있는 집, 보증금 떼이지 않는 집을 중개해주는 좋은 공인중개사를 만나는 것 또한 오직 운에 맡겨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 가격에 집 못 구해요!’ 라면서 네가 뭘 모른다는 식으로 이야기 합니다."
"집 구할 때 공인중개사가 사적인 질문을 하고 남자친구 자주 오는 거 아니냐고 물어봅니다."
"부동산에 찾아갔을 때에는 제대로 대꾸를 안 해줍니다. 혼자 갔을 때는 나중에 알아보고 연락 준다며 방도 안 보여줍니다."
"집을 구할 때 고생하니까 당시 친했던 남자 후배가 같이 가주겠다고 했습니다. 반신반의했는데, 남매라고 말하니 바로 저렴한 방을 보여줬습니다."
어떤 청년들에게는 중개를 의뢰하는 과정부터가 난관이다. ‘그 가격에 집 못구한다’면서 무시를 당하기도 하고, 나중에 알아볼테니 일단 가라며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하고, 남자친구를 자주 데려오진 않냐며 사적인 질문에 응답하길 요구받기도 한다. 이 고비를 잘 넘겨 집을 보러 다닌다고 해도, 집을 고르고 계약서를 쓰게 되는 과정 또한 녹록치 않다.
"위반건축물인 줄 모르고 계약했다가 전입신고를 하지 못했습니다. 공인중개사에게 왜 해당 내용을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냐고 항의하자, 실거주에 아무 지장이 없지 않냐고만 말합니다."
"계약서를 쓸 때는 몰랐는데, 뒤늦게 중개대상물확인설명서를 보니 나중에 경매에 넘어가서 보증금 일부 또는 전체를 반환받지 못할 수 있다는 내용이 써 있었습니다."
"중개사가 임대인 없이 계약하자고 했습니다. 전화 통화라도 임대인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공인중개사법에 따라 공인중개사는 중개를 의뢰한 세입자 등에게 중개대상물확인설명서를 교부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법 조항에 불과하다. 중개대상물확인설명서를 꼼꼼히 설명해주면서 건축물대장, 등기부등본을 살펴봐주고 이 집이 깡통주택인지, 위반건축물은 아닌지, 관리비 항목과 관리규칙이 어떠한지, 민간임대주택등록제도를 이용해서 언제까지 계약갱신을 할 수 있는지 등을 알려주는 공인중개사를 만나는 것은 정말 운이 따라야 하는 일이라고 민달팽이유니온이 만나는 청년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계약서를 쓸 때 안내한 적 없던 관리비 예치금을 갑자기 요구하면서, 보증금을 다 내더라도 관리비 예치금을 내지 않으면 입주할 수 없도록 할 것이고 그 때까지 비밀번호와 마스터키를 절대 줄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에어컨이 노후화되어서 고장이 났는데, 임대인에게 수리비를 달라고 하니까 고작 그 정도 월세를 내면서 무슨 수리비를 달라고 하냐며 절대 줄 수 없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언제든지 문 열라고 할 수 있고, 내가 없어도 문 열고 들어오겠다고 하고 그런 게 서럽습니다."
계약서를 작성하고 입주를 하는 과정에서도, 살아가는 동안에도 크고 작은 분쟁에 휘말린다. 말도 안되는 항목의 돈을 추가로 요구하거나, 주택관리에 대한 책임을 전부 전가하거나, 사생활 침해와 무단주거침입을 서슴치 않는 일들에 부딪히기도 한다. 집을 알아보고, 계약서를 쓰고, 살아가는 전 과정에서 세입자는 임대인이나 공인중개사로부터 주거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크고 작은 권리 침해를 감내하도록 강요받아 왔다. 그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전세사기와 같은 심각한 범죄 행위가 난무하는 상황에까지 치닫게 되었다. 민달팽이유니온에서 만난 전세사기 피해 세입자들의 대다수는 사회초년생인 청년들이었고, 수 년동안 모은 자부담금과 대출받은 빚이 전부 공중에서 사라진 채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도 나가야 하는 등 극단적인 주거 위기에 놓여 있었다.
"제가 계약했던 집이 매매가보다 전세가가 더 높은 이른바 깡통전세라는 것을 알게 된 뒤부터 밤낮으로 잠 못 자고 싸워야 했습니다. 중개인도, 임대인도, 심지어 대출상담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오직 개인의 노력과 책임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일이었습니다."
"저는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뒤 민, 형사 소송을 모두 진행했지만 결론적으로 임대인에게 돌려받은 돈은 하나도 없습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으로는 실효성 있는 게 없습니다. 피해를 직접적으로 본 사람들에 대한 대책이 더 필요합니다."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세입자들이 어떤 주거위기 상황에 놓여 있는지,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는 자료는 없다. 그나마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운영하는 전세 보증금 반환 보증 제도를 이용하던 세입자들을 대상으로 한 자료를 기반으로 유추해볼 수 있을 뿐이다. 2021년 HUG에서 파악한 전세 보증금 반환 보증 사고 금액은 5,790억 원이다.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의 비중이 현저히 높긴 하나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피해 입는 전세 보증금의 규모는 2~3억 원 미만이 43.7%, 1~2억 원 미만이 32.3% 순이다. 해당 금액의 범위는 대체로 갭투기 및 깡통전세에 주로 이용되는 가격대의 매물이 대다수이며, 사회초년생 및 일정 정도의 근로소득이 발생하는 노동 계층이 대출받을 수 있는 한도와 맞닿아 있다. 실제로 사고 피해 연령층은 30대가 49.7%, 40대가 20.9%, 20대가 15.0%로 청년층이 약 2/3를 차지한다. 이들이 최대치로 마련하는 보증금 대출 수준이 갭투기로 인해 양산되는 깡통전세 매물의 보증금 수준과 거의 일치하는데, 그 과정에서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2022년 상반기 전세 보증금 반환보증 사고금액이 3407억 원에 도달할 정도로, 보증금을 떼이는 세입자의 고충은 가히 압도적이다. 그러나 보증보험 가입이 불가한 집, 전월세 신고도 하지 않는 집, 주거용 건물이 아닌 집 등에 살거나, 대항력이 갖춰지지 않은 채 사는 등 제도 밖 영역에 있는 세입자가 떼인 보증금의 규모는 함부로 가늠조차 어렵다. 민달팽이유니온에서는 2021년부터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주택도시보증공사, 국토교통부 등을 통해 전세사기를 비롯한 보증금 미반환 위험에 처한 세입자 문제를 중심으로 주택임대차시장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세입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요구해왔다. 이에 정부 부처에서는 전세사기상담센터, 보증보험 활성화 등 전세사기 대책을 몇 차례에 걸쳐 발표하였고 특히 원희룡 장관은 모든 역량을 동원해 전세사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대책은 실효성이 낮거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대책들이 부재해 많은 피해 세입자들과 시민들에게 실망을 안겼다. 우리는 왜 그토록 높은 보증금을 임대인에게 지불해야 하는가? 전재산을 비롯해 빚까지 져서 마련한 보증금을 왜 제대로 된 검증절차 하나 없이 마치 임대인에게 무보증 대출을 해주는 것처럼 떠밀리듯 내놓아야 하는가? 임대인이 파산한다는 이유로 우리는 왜 살던 집에서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나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또 다시 묻는다. 세입자로 사는 사람은 이 집이 깡통주택인지 위반건축물인지 곰팡이가 심한 집인지 같은 건 몰라도 되는가? 세입자로 사는 사람은 불시에 임대인이 집을 찾아와도, 하룻밤 사이 빗물이 새서 온 집이 젖어들어도 그저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가? 그런 집에 살면서, 임대인이 보증금 올리고 월세 올리고 관리비까지 올린다고 하면 그저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지불해야 하는 존재인가? 이 모든 질문에 민달팽이유니온은 아니라고 자답하고 싶다. 우리는 보통 떡볶이를 먹고 싶을 때, 떡볶이집에 가는 것이 무서워 먹기를 주저하진 않는다. 세입자로서 집을 구하고 집에서 살아가는 것 또한 마땅히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은 일이 되어야 한다. 보증금은 원래 제때 못받는 것이니 기다리라던 어느 임대인, 계약금 돌려달라고 할거면 사정을 해야지 이렇게 뻣대면서 정 없게 굴지 말라던 전세사기 분양대행업자와 가짜중개사에게 꼭 본때를 보여주고 싶다. 전세사기를 친 한 명의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애당초 그가 활개를 칠 수 있었던 주택임대차시장의 구조 자체를 개혁하자. 세입자로 사는 삶이 불안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 세입자로 사는 사람도 마땅히 주거권을 누릴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자. 그 과정에서 임대료가 오로지 임대인의 마음대로만 정해지는 질서를 바로잡고, 공인중개사의 의무와 책임을 강화하는 등 법과 제도의 개선 또한 계속해서 이뤄내자.

(10.01 주거권대행진 참여신청 및 문의 : bit.ly/1001주거권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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