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소속의 지역 정치인, 연합하는 지역정당
시의원 몰벡의 소속은 복잡하다. 먼저 그는 유럽 정치단체인 연대의 도시(City of Solidarity) 소속이다. 중앙정당 좌파당(DIE LINKE)의 당원이기도 하다. 시의회에서는 프라이부르크 지역정당 '모두를 위한 도시'(Eine Stadt Fur Alle)의 부대표이자 의원으로 활동한다. 정당법상 이중당적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한국과 달리 독일에서 다양한 당적과 소속은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진다. '모두를 위한 도시'라는 지역정당은 그중에서도 독특한 구조를 가진 정당이다. 진보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2개의 지역정당과 1개의 중앙정당 소속 프라이부르크 지부가 연합해 만든 지역정당이다. 오직 프라이부르크에 한해 존재하는 정당간 연합체인 셈이다. 몰벡이 속한 좌파당을 비롯해 프라이부르크 여성 독립(Independent women Friburg), 프라이부르크 녹색 대안(Green Alternative Freiburg) 등 3개의 지역정당이 함께한다. 선거에서는 각 정당이 각자의 이름으로 자유롭게 후보를 내고, 선거 후 당선자의 의석을 다시 연합해서 세력을 키운다. 올해 현재 '모두를 위한 도시'는 시의회 48석 가운데 7석을 차지하고 있다. '모두를 위한 도시'를 구성하는 각자의 정당은 지역 내 빈민·여성·환경 정책 문제 해결 방안을 함께 고민하고 토의한다. 몰벡 의원은 이 연합들의 연대를 조직하고 총괄 운영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중앙만 바라보는 건 지역정치의 핑계
몰벡 의원이 말하는 독일 지역정치 현실도 한국과 비슷했다. 연방·주정부의 결정에 지방정부는 어쩔 수 없이 예속된다.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시에 예산을 배정하면 그 예산을 어떻게 사용할지 시의회에서 정하는 식이다. 몰벡 의원은 "예산 크기 때문에도 지역은 '베를린'의 정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지역정치의 근본 한계는 독일이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은 셈이다. '베를린'의 보조금이나 예산에 따라 지역의 경제가 휘청거리기도 한다. 실제로 프라이부르크 태양광 산업은 중앙정치로 인해 침체기를 겪고 있다. 몰벡 의원은 "중앙정부의 태양광 산업 보조금 정책 실패"가 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재생에너지 보급 촉진을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독일 정부의 정책은 역설적이게도 독일 태양광 기업의 R&D 자금력 조달 노력이나 기술경쟁의 필요성을 약화시켰다. 이후 독일의 대표적인 태양광 기업들인 큐셀(Q-cells), 솔론(Solon), 솔라월드(SolarWorld) 등이 경쟁력 약화로 파산했다. '태양의 도시'라 불릴 정도로 태양광 산업이 발전한 프라이부르크도 그 여파를 피해갈 수 없었다. 건물 곳곳에 태양광 패널이 있는 프라이부르크지만 정작 지역 내 태양광 산업은 사라지고 있다고 몰벡 의원은 전했다. 지역 산업이 침체되는 상황에서 지역의원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중앙정치 무대에도 활동하는 의원이 있는 기존 정당의 경우, 지역의원이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관련 예산을 배정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한국 국회의원들이 '쪽지예산'으로 지역 사업 예산을 확보하고, 기초의원들은 지역 사업을 유치했다며 플래카드를 걸어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중앙정치에 '끈'이 없는 지역정당은 어떨까. 몰벡 의원은 지역에서, 지역정당 정치인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말했다. 모두를 위한 도시의 시의원들은 프라이부르크 내 대학교를 활용하고 있다. 대학 연구소에서 경쟁력 있는 태양광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시의원들이 대학 지원 제도를 손보고 있다. 또 지역에 신진 스타트업을 유치하기 위해서 시의원들이 직접 기업들을 찾아다니고 시 차원의 지원 제도를 만들고 있다. 중앙정치의 결정을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는 시의원이 아니라,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존재임을 스스로 입증했다.정치인 '라인' 타지 않아도 정치를 한다.
중앙보다 지역의회 정당의 색채나 가치도 더 다채롭다. 생전 본 적 없는 정당이 탄생하고, 전혀 다른 정당들의 연합도 나타난다. 다채로운 지역정당이 나타난 데에는 독일 선거제도도 한몫했다. 소수정당 진출이 쉬운 제도 덕분이다. 독일의 지방선거는 기본적으로 지지율에 비례해서 의석을 가져가는 비례대표제를 채택한다. 연방의회에는 있는 봉쇄조항 또한 기초의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일정 이상의 득표율을 올려야 의석을 획득할 수 있는 봉쇄조항이 없어 지역정당들은 사표 없이 받은 득표율만큼 의석을 획득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중앙·기초 의회 모두 3% 이상의 득표율을 획득해야 한다. 거기서 더 나아가 독일 지방선거에서는 '몰표'가 가능하다. 누적·배합 투표라고 불리는 제도다. 유권자가 특정 후보에게 복수의 표를 줄 수 있고, 여러 정당의 후보에게 나눠줄 수도 있다. 지역마다 유권자가 행사하는 투표수와 배합의 조건은 다르다. 프라이부르크시의 경우 유권자들은 지역선거마다 일인당 48표를 행사할 수 있다. 이 중 3표까지 한 후보자에게 몰아줄 수 있다. 이 제도 덕분에 지역 정치 무대에 나서는 이는 큰 정당에 소속되어 있지 않더라도, 좋은 정책을 홍보해 유권자의 지지만 받으면 충분히 선출직 정치인이 될 수 있다.시민과 행정의 다리가 되어주는 지역정당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지역정당이 연합해서 도시 곳곳의 구체적 문제를 정책적으로 해결한다. 몰벡 의원이 속한 '모두를 위한 정당'에는 다른 지역에는 없는 독특한 성공의 경험이 있었다. 특히 지역정당 소속 정치인들은 주류 정치세력 정치인보다는 시민과 더 가깝다는 점을 몰벡 의원은 강조했다. 지역정당 정치인은 '엘리트 정치인'이나 직업 정치인이 아닌, 평범한 시민이라는 인식이 더 강하기 때문이란다. 정당 조직 자체도 작기 때문에 지역정당으로서도 지역 주민과 긴밀한 협력을 하는 것이 의정 활동에 유리하다. 몰벡 의원은 시민과 시청의 간격을 메우기 위해 시청과 거리를 바쁘게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시청을 어슬렁거리는 그의 모습에 공무원들이 익숙한 이유였다.쓰레기통까지 뒤지는 '이웃' 정치인
어디서 지역의제 발굴을 하느냐는 질문에 몰벡 의원은 웃으며 '이웃'이라고 답했다. 몰벡 의원의 또 하나의 '자랑스러운' 업적은 골목에 있는 쓰레기통 구조를 바꾼 일이다. 이것도 이웃집의 제보로 시작됐다. 거리 쓰레기통에 들쥐가 들끓는다는 민원을 듣고 직접 쓰레기통 구조를 고안해냈다. 들쥐들이 들어가기 쉽지 않게 쓰레기통 모양을 바꿨다. 이웃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쓰레기통까지 뒤지는 지역정당 정치인 몰벡은 지역정치의 효능을 마지막까지 강조했다. "연방·주정부 움직임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지역정치"라는 말이다.(통역=박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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