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들쥐 나와요!" 주민의 말에 쓰레기통 뒤지는 지역 정치인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들쥐 나와요!" 주민의 말에 쓰레기통 뒤지는 지역 정치인 [여의도 '바깥'의 정치 ④] 프라이부르크 시의원 그레고리 몰벡 인터뷰
헌팅캡을 눌러쓴 반바지 차림의 그레고리 몰벡(Gregor Mohlberg) 씨가 특유의 걸음걸이로 시청을 돌아다녔다. 지난 8월 23일 독일 프라이부르크 시청에서 만난 그의 티셔츠에는 뜬금없이 '에스파냐 공화국'이 적혀있었다. 멀리 한국에서 온 기자들에게 시청과 의회 건물을 구경시켜주겠다고 몰벡 씨는 호기롭게 말했지만 건물 문은 대부분 닫혀있었다. 여름휴가 기간이었다. 그는 조금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시청 직원 중에 열쇠를 가진 사람이 있을 거라며 성큼성큼 시청 건물을 향해 앞장섰다. 이곳저곳 시청 공무원이 있는 방마다 얼굴을 들이밀며 몰벡 씨는 "열쇠 있어?"라고 물어봤다. 공무원들은 이런 몰벡 씨가 익숙해 보였다. 점점 시장실이 가까워졌다. 조마조마한 마음이 더 커졌다. 지금까지 보여준 몰벡 씨의 추진력이라면 시장이 있든 말든 문을 벌컥 열고 "열쇠 있어?"라고 물어볼 것만 같았다. 예상치 못하게 시장을 만나면 뭘 물어봐야 하지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열쇠를 가진 시청 공무원이 나타났다. 몰벡 씨가 그렇게 구경시켜주고 싶은 마음도 이해됐다. 프라이부르크 시청과 의회 건물은 지역의 유명 관광지다. 1800년대 완공되었는데 독특한 건물양식으로 유명하단다. 시청 바로 앞에는 작은 광장이 있다. 곳곳에 심어진 나무가 벤치에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다. 광장 내 식당 테라스는 맥주를 마시는 주민들로 가득 차 있다. 시청 2층에 있는 발코니에 나가면 이 광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프라이부르크 축구팀이 분데스리가 경기에서 승리한 후에는 선수들이 이곳 발코니에 나란히 서서 지나가는 시민들과 인사를 나눈다고. 역사가 깊은 건물이라 그런지 시청에서 결혼식도 자주 열린다. 몰벡 씨도 이곳에서 지금의 아내와 결혼식을 올렸다고 전했다. 시청에서 결혼을 할 만큼 프라이부르크에 깊숙이 묻혀 사는 몰벡 씨는 프라이부르크의 현직 시의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의원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다. 
▲ 프라이부르크 지역정당 '모두를 위한 도시'(Eine Stadt Fur Alle) 부대표 그레고리 몰벡(Gregor Mohlberg)은 거침없이 시청과 의회 건물을 돌아다녔다. 공무원들은 시청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몰벡의 모습이 익숙해보였다. 몰벡은 2016년부터 시 의원으로서 활동 중이다. ⓒ프레시안취재팀
▲ 몰벡과 함께 둘러본 프라이부르크 의회. 시청과 같은 건물을 사용하는 시 의회는 1800년대 완공되어 독특한 건물양식을 가진다. ⓒ프레시안취재팀

복잡한 소속의 지역 정치인, 연합하는 지역정당

시의원 몰벡의 소속은 복잡하다. 먼저 그는 유럽 정치단체인 연대의 도시(City of Solidarity) 소속이다. 중앙정당 좌파당(DIE LINKE)의 당원이기도 하다. 시의회에서는 프라이부르크 지역정당 '모두를 위한 도시'(Eine Stadt Fur Alle)의 부대표이자 의원으로 활동한다. 정당법상 이중당적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한국과 달리 독일에서 다양한 당적과 소속은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진다.  '모두를 위한 도시'라는 지역정당은 그중에서도 독특한 구조를 가진 정당이다. 진보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2개의 지역정당과 1개의 중앙정당 소속 프라이부르크 지부가 연합해 만든 지역정당이다. 오직 프라이부르크에 한해 존재하는 정당간 연합체인 셈이다. 몰벡이 속한 좌파당을 비롯해 프라이부르크 여성 독립(Independent women Friburg), 프라이부르크 녹색 대안(Green Alternative Freiburg) 등 3개의 지역정당이 함께한다. 선거에서는 각 정당이 각자의 이름으로 자유롭게 후보를 내고, 선거 후 당선자의 의석을 다시 연합해서 세력을 키운다. 올해 현재 '모두를 위한 도시'는 시의회 48석 가운데 7석을 차지하고 있다. '모두를 위한 도시'를 구성하는 각자의 정당은 지역 내 빈민·여성·환경 정책 문제 해결 방안을 함께 고민하고 토의한다. 몰벡 의원은 이 연합들의 연대를 조직하고 총괄 운영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 프라이부르크 시 의회 모습. 48석 중 14석을 지역정당이 차지하고 있다. 몰벡 의원이 속한 '모두를 위한 도시'는 몰벡을 포함해 7명의 시 의원이 소속되어 있는 지역정당이다. ⓒ프레시안취재팀

중앙만 바라보는 건 지역정치의 핑계

몰벡 의원이 말하는 독일 지역정치 현실도 한국과 비슷했다. 연방·주정부의 결정에 지방정부는 어쩔 수 없이 예속된다.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시에 예산을 배정하면 그 예산을 어떻게 사용할지 시의회에서 정하는 식이다. 몰벡 의원은 "예산 크기 때문에도 지역은 '베를린'의 정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지역정치의 근본 한계는 독일이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은 셈이다.  '베를린'의 보조금이나 예산에 따라 지역의 경제가 휘청거리기도 한다. 실제로 프라이부르크 태양광 산업은 중앙정치로 인해 침체기를 겪고 있다. 몰벡 의원은 "중앙정부의 태양광 산업 보조금 정책 실패"가 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재생에너지 보급 촉진을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독일 정부의 정책은 역설적이게도 독일 태양광 기업의 R&D 자금력 조달 노력이나 기술경쟁의 필요성을 약화시켰다. 이후 독일의 대표적인 태양광 기업들인 큐셀(Q-cells), 솔론(Solon), 솔라월드(SolarWorld) 등이 경쟁력 약화로 파산했다. '태양의 도시'라 불릴 정도로 태양광 산업이 발전한 프라이부르크도 그 여파를 피해갈 수 없었다. 건물 곳곳에 태양광 패널이 있는 프라이부르크지만 정작 지역 내 태양광 산업은 사라지고 있다고 몰벡 의원은 전했다. 지역 산업이 침체되는 상황에서 지역의원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중앙정치 무대에도 활동하는 의원이 있는 기존 정당의 경우, 지역의원이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관련 예산을 배정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한국 국회의원들이 '쪽지예산'으로 지역 사업 예산을 확보하고, 기초의원들은 지역 사업을 유치했다며 플래카드를 걸어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중앙정치에 '끈'이 없는 지역정당은 어떨까. 몰벡 의원은 지역에서, 지역정당 정치인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말했다. 모두를 위한 도시의 시의원들은 프라이부르크 내 대학교를 활용하고 있다. 대학 연구소에서 경쟁력 있는 태양광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시의원들이 대학 지원 제도를 손보고 있다. 또 지역에 신진 스타트업을 유치하기 위해서 시의원들이 직접 기업들을 찾아다니고 시 차원의 지원 제도를 만들고 있다. 중앙정치의 결정을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는 시의원이 아니라,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존재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내가 사는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직접 기여할 수 있는 것이 지역정치입니다. 중앙에서 벌어지는 이슈와 달리 내가 그 문제에 더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기 때문에 생산성 있게 일이 진행될 수 있죠."
▲프라이부르크 의회 앞 광장에 주민들이 모여있다. 몰벡 의원은 지역정치란 "내가 사는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직접 기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레시안취재팀

정치인 '라인' 타지 않아도 정치를 한다.

중앙보다 지역의회 정당의 색채나 가치도 더 다채롭다. 생전 본 적 없는 정당이 탄생하고, 전혀 다른 정당들의 연합도 나타난다.
"다양한 가치의 연합이 중앙보다 훨씬 쉬워요. 제가 속한 지역정당인 '모두를 위한 도시'도 그렇습니다. 좌파조직과 환경단체, 여성단체 등 다양한 의제를 대표하는 이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중앙에서 활동하는 주류정당에서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연대죠. 다양한 가치가 어울리니 사안에 대한 복합적인 논의도 가능해집니다. 임대주택 건설 문제를 예로 들어보죠. 지역에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임대주택을 지어야 하는데, 주택 건설은 환경적으로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좌파당 소속인 저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임대주택 건설을 주장하는 반면, '프라이부르크 녹색전환' 당원은 환경보호를 이유로 개발 반대를 주장하죠. 그런데 두 정당 공히 '모두를 위한 도시'라는 지역정당에 함께 소속되어 있어요. 지역의 구체적인 논의를 같은 정당의 틀 안에서 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죠. 이렇게 굉장히 복합적이고 구체적인 지역의 의제를 지역정당이라는 매개를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할 수 있는 것이 지역정치의 장점입니다."
다채로운 지역정당이 나타난 데에는 독일 선거제도도 한몫했다. 소수정당 진출이 쉬운 제도 덕분이다. 독일의 지방선거는 기본적으로 지지율에 비례해서 의석을 가져가는 비례대표제를 채택한다. 연방의회에는 있는 봉쇄조항 또한 기초의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일정 이상의 득표율을 올려야 의석을 획득할 수 있는 봉쇄조항이 없어 지역정당들은 사표 없이 받은 득표율만큼 의석을 획득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중앙·기초 의회 모두 3% 이상의 득표율을 획득해야 한다. 거기서 더 나아가 독일 지방선거에서는 '몰표'가 가능하다. 누적·배합 투표라고 불리는 제도다. 유권자가 특정 후보에게 복수의 표를 줄 수 있고, 여러 정당의 후보에게 나눠줄 수도 있다. 지역마다 유권자가 행사하는 투표수와 배합의 조건은 다르다. 프라이부르크시의 경우 유권자들은 지역선거마다 일인당 48표를 행사할 수 있다. 이 중 3표까지 한 후보자에게 몰아줄 수 있다. 이 제도 덕분에 지역 정치 무대에 나서는 이는 큰 정당에 소속되어 있지 않더라도, 좋은 정책을 홍보해 유권자의 지지만 받으면 충분히 선출직 정치인이 될 수 있다. 
▲ '모두를 위한 도시' 소속 의원들. 비례대표제를 기초로 하는 독일 지방선거제도는 소수정당 후보자들의 의회 진출을 더 쉽게 만들어줬다. 다양한 출신과 배경을 가진 의원들은 지역정당 소속으로 의정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프레시안취재팀

시민과 행정의 다리가 되어주는 지역정당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지역정당이 연합해서 도시 곳곳의 구체적 문제를 정책적으로 해결한다. 몰벡 의원이 속한 '모두를 위한 정당'에는 다른 지역에는 없는 독특한 성공의 경험이 있었다.
"가장 큰 성공은 민간이든, 공공이든 주택을 새로 만들 때는 최소 50%를 공공임대주택으로 확보하게 한 것이죠. 프라이부르크도 주거 문제가 무척 심각하거든요. 임대료가 너무 높아서 월급의 50%가 월세로 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건설사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지역이라는 공간에서는 이 같은 정책이 중앙보다 더 쉽게 합의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저소득층에 대중교통 이용 시 할인을 제공하도록 하는 정책이나, 자전거 도로 확장도 저희가 시의회에서 이뤄낸 일이죠." 
특히 지역정당 소속 정치인들은 주류 정치세력 정치인보다는 시민과 더 가깝다는 점을 몰벡 의원은 강조했다. 지역정당 정치인은 '엘리트 정치인'이나 직업 정치인이 아닌, 평범한 시민이라는 인식이 더 강하기 때문이란다. 정당 조직 자체도 작기 때문에 지역정당으로서도 지역 주민과 긴밀한 협력을 하는 것이 의정 활동에 유리하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 출신이 상대적으로 많은 지역정당은 시민단체와 긴밀하게 소통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시에 전달해요. 시에서 전달한 의견 또한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다시 가져가 의견을 묻고요."
몰벡 의원은 시민과 시청의 간격을 메우기 위해 시청과 거리를 바쁘게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시청을 어슬렁거리는 그의 모습에 공무원들이 익숙한 이유였다.
▲ 몰벡 의원은 이웃의 사소한 민원마저도 허투로 넘기지 않는다. 호수에 정류장을 설치해 달라는 이웃의 말이나, 들쥐가 나타난다는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서 지역·의회·시청을 바쁘게 돌아다녔다. ⓒ프레시안취재팀

쓰레기통까지 뒤지는 '이웃' 정치인

어디서 지역의제 발굴을 하느냐는 질문에 몰벡 의원은 웃으며 '이웃'이라고 답했다.
"하루는 이웃집에 사는 아저씨와 아들이 '동네 호수에 수영하러 가고 싶은데 버스가 안 서서 불편하다'고 말했어요. 바로 버스회사에 가봤죠. 해당 호수 근처에 정류장을 설치하는 건 법적으로 안 된다고 하더군요. 이 문제로 시청과 토론하고 버스회사도 계속 설득했어요. 결국 호수 근처에 정류장을 만들었죠."
몰벡 의원의 또 하나의 '자랑스러운' 업적은 골목에 있는 쓰레기통 구조를 바꾼 일이다. 이것도 이웃집의 제보로 시작됐다. 거리 쓰레기통에 들쥐가 들끓는다는 민원을 듣고 직접 쓰레기통 구조를 고안해냈다. 들쥐들이 들어가기 쉽지 않게 쓰레기통 모양을 바꿨다.  이웃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쓰레기통까지 뒤지는 지역정당 정치인 몰벡은 지역정치의 효능을 마지막까지 강조했다. "연방·주정부 움직임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지역정치"라는 말이다.
"민원이나 법의 사각지대를 파악하고 해결하는데 연방이나 주정부는 엄청 오래걸려요. 법을 마련하고 대책을 마련하기까지 5년 이상 걸릴 때도 있죠. 그런데 지역정치는 기민하게 유권자의 요구에 대응할 수 있어요. 특히 쓰레기통 설치나 정류장 신설과 같은 돈이 별로 안 들어가는 문제는 매우 빠르게 해결할 수 있죠.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내가 직접 경험하는 바를 해결하고, 이웃의 요구에 기여할 수 있는 지역 정치는 그래서 더 중요합니다."

(통역=박지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원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2-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