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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 우리에게 '정치'가 있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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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 우리에게 '정치'가 있었더라면 [여의도 '바깥'의 정치 ⑩] 여의도 '바깥'의 움직임에 답해야 될 때

"이대로 말라 죽느니 뭐라도 한 번 해보자."

지난 4월 중순 일요일, 스무 명가량의 시민들이 경기도 과천 별별극장에 급하게 모였다. 금요일에 오고 간 전화로 이틀 만에 모인 인원이었다. 지역단체 과천풀뿌리 소속 여성 활동가들이 주축이 됐지만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와라'는 게 자리의 모토였다. 지난 4년간은 활동이 뜸했다. "시민사회의 에너지가 소진돼 있던" 때, 누군가 "이대로 말라죽느니 뭐라도 해보자, 무작정 선거라도 나가보자" 제의했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런데 후보로 누가 나가지? 당선 가능성이 있긴 한가? '뭐라도 해보자'던 결의가 뻘쭘해지려던 찰나 손을 든 이가 안영 전 과천시의원이다. "아무도 안 나오면 좀 그러니까요." 지난 9월 29일 <프레시안>과 만난 안 전 시의원은 우스갯소리를 섞어가며 지난 6월의 '낙선' 경험을 풀어냈다. 선거는 패배했다. 다만 낙선 이전에 당선이 있었다. 안 전 시의원은 2014년 지방선거에서 소속에도, 이력에도 '정당'이 없는 '시민사회 출신 무소속 시의원'으로 당선됐다. 2018년엔 시장 선거에 도전했다가 낙선했고, 2022년 6월 시의원에 출마해 다시 낙선했다.
▲ 지난 6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안영 전 시의원 후보의 지지자들이 남긴 응원 문구. 안 전 시의원은 "선거 당시, 당선 여부와 별개로 시민사회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100명 규모의 선거인단을 모집해 규모 있는 캠프를 꾸린 안 전 시의원의 후보 당시 활동은 지방 시의원 선거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과천시민정치당
"원래부터 시민사회 세력이 강한 지역."
당선 당시의 비결을 묻자 안 전 시의원은 이렇게 답했다. 과천엔 지역 특성상 아이를 키우는 초기 부부가 많다. "자연스럽게 주변 환경, 보육, 먹거리 문제 등의 사회문제와 관련한 시민활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지역민 사이의 네트워크도 중요해진다." 생활밀착형 시민사회인 셈이다. 정치 욕구도 자연스럽게 돋아났다. 지역의제를 다루다보면 지방정부, 의회 및 정당들과의 접점이 생긴다. 그들이 "시민참여의 통로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불만이 생겼다. 2011년, 과천 '여성활동가 정치모임'이 시작되면서 시민사회 활동의 주축인 여성 활동가들 사이에서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일종의 "정치적 각성"이었다.

그때, 우리에게 '정치'가 있었더라면

양당 대립구도가 선거판을 집어삼킨 6월 지선은 지난 2014년과 상황이 달랐다. 과천풀뿌리는 지역정당을 표방하는 '과천시민정치당'을 창립해 이번 선거에 나섰지만, 지역정당의 창당이 불가능한 현행 정당법상 '당'은 단체의 이름일 뿐이었다.  선거인단을 모으고 공천규정을 만들었지만 시민을 대상으로 한 공천대회는 불가능했다. 정당이 아닌 시민단체 과천시민정당은 정치세력이 아닌 무소속의 개인으로 기억됐다. '풀뿌리 시민후보'라는 명함 속 소개문구가 무색하게 "더 다양한 시민에게 다가가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그때 우리에게 정당이 있었더라면? 소속과 세력을 가지고 선거에 임할 수 있었더라면? "그렇다고 선거에 이겼을지는 모르지만,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 지난 5월 지방선거 선거운동에 나선 안영 전 시의원 후보의 모습. 안 전 시의원은 "선거는 낙선했지만 선거 이후 시민사회엔 모종의 활기가 돌았다"며 이번 낙선이 '남긴 것이 있다'고 평했다. ⓒ안영
안 전 시의원은 중앙정당이 아닌 지역 시민사회 출신의 시의원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기억한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시 정부를 상대로 더 많은 싸움과 협상을 수행할 수 있다. "지역축제를 생뚱맞은 경마축제로 바꾸려 하는 시정에 제동을" 걸 수 있고 "주민참여예산 조례나 사회적 제도 지원 조례 등으로 시민과의 접점을 넓혀" 나갈 수도 있다. '우리에게 정당이 있었더라면'이라는 안 전 시의원의 질문은,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우리에게 정치가 있었더라면'이라는 질문으로 들리기도 한다. 지역정당의 유무 자체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 정치와 시민 사이 통로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지역정당은 그 통로의 가장 직관적인 예시일 뿐이다. 과천시민정치당은 낙선 이후에도 지역정당네트워크에서 전국적인 연대를 이어나가고 있다. 결국은 통로의 확장을 위해서다.
▲ 지난 20일 국내 지역정당 추진 단체들이 모인 지역정당네트워크와 전국의 지역단체들은 다시 헌법재판소 앞에 섰다. 작년 11월 헌법재판소에 청구한 정당법 헌법소원심판 청구를 한 지 거의 1년이 된 시점이다. ⓒ프레시안취재팀

"1962년 정당법, 이제는 바꾸자"

과천뿐만이 아니다. 전국 곳곳에서 여의도 '바깥'의 정치를 꿈꾸는 주민들의 움직임이 자생적하고 있다. 그러나 1962년 만들어진 정당법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오직 전국 무대에서 활동하는 거대 중앙정당만 허락하는 정당법 때문에 시민은 지역정당을 창당할 수 없다. 당연히 '당'이라는 이름을 내건 공식적인 활동이나 선거에 당 이름을 걸고 나가는 일도 제재를 받는다. 지난 20일 국내 지역정당 추진 단체들이 모인 지역정당네트워크와 전국의 지역단체들은 다시 헌법재판소 앞에 섰다. 작년 11월 헌법재판소에 정당법 헌법소원심판 청구를 한 지 거의 1년이 된 시점이다. 헌재가 '이해관계기관 등 의견 취합'을 하는 동안 전국에서는 지역정당 창당을 지원하는 지역정당 창당학교가 열리고 권역별로 진행되는 지역정당 좌담회가 진행 중이다. 헌재 앞에 선 이들은 곳곳에서 분출하는 여의도 바깥 움직임의 속도를 헌재가 따라가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무소속 시의원을 역임한 임형택 Like익산포럼 대표는 "일당이 독식하는 호남과 영남에서 시민은 볼모로 잡혀있다"라며 "지역정당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두 당만 존재하는 것 같은 지역민들의 정치 염증을 깰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라북도 익산을 비롯한 호남에서는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이 '민주당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전라북도 광역 도의원 40명 중 37명이 민주당이고 그중 22명은 무투표로 당선됐습니다. 익산시의회도 25명 중 21명이 민주당 의원입니다. 그런데 의회를 독식한 이들이 전북, 익산 지역민들이 겪는 문제에 대해 논평 한 마디 내는 일을 잘 못 봤습니다. 2017년 익산시 함라면 장점마을 주민들에게 집단 암 발병이 찾아왔을 때 민주당 전북도당, 익산시 갑, 을 지역위원회에서 논평을 낸 적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호남에도 더불어민주당 아닌 익산당, 전북도당을 만들고 영남에서도 영남 주민들의 목소리를 내는 지역정당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을 끝내고 주민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역사적인 판결을 헌법재판소가 내려야 합니다."
▲ 헌재가 '이해관계기관 등 의견 취합'을 하는 동안 전국에서는 지역정당 창당을 지원하는 지역정당 창당학교가 열리고 권역별로 진행되는 지역정당 좌담회가 진행 중이다. 헌재 앞에 선 이들은 곳곳에서 분출되는 여의도 바깥 움직임에 대해 헌재는 속도를 따라가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프레시안취재팀

여의도 '바깥'의 움직임에 여의도를 움직인다

지역정당 추진 단체가 헌재의 판결을 기다리는 사이 국회에서도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0월 4일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정당법 개정안은 민주당뿐만 아니라 국민의힘, 정의당, 시대전환, 정의당 등 여야 5당 20명의 의원이 이름을 올린 여야 합의 법안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회부된 법안은 정당 설립 활동 규제를 완전히 푸는 내용을 담고 있다. 수도에 중앙당 설치, 시·도당 설립 및 각 1000명 이상의 당원 등의 정당설립 요건을 삭제했다. 뿐만 아니라 물리적 사무소에 대한 내용도 삭제해 '온라인 정당'의 출현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의원들은 법안 제안 이유에 "모든 국민은 헌법상 기본권으로서 정치적 결사의 자유를 갖고 있는바, 현행 정당법상 중앙당과 법정 시도당, 법정 당원 수, 사무소 구비 관련 규정은 불필요하거나 과잉규제"라며 "모든 국민에게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장된 정치적 결사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다양한 정당의 출현과 활동"을 가능하도록 하는 변화를 이루겠다고 명시했다. 지속적으로 지역정당 연구와 관련 활동을 이어온 윤현식 지역정당네트워크 정치위원은 지역정당 창당이 가능해질 때 "자치분권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주민이 지역정당 일원으로서 지역의 의제를 발굴하고, 정치적 책임을 질 수 있는 형태가 완성될 때 지방자치의 중심이 지자체가 아니라 주민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연재 끝>

[여의도 '바깥'의 정치] 바로보기 (//www.ershouche688.com/pages/serials/11901004000000000025)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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