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이후 정부는 5일 24시까지 국가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애도가 먼저'라는 말에 정치권은 정쟁을 자제하고, 지자체는 예정되어 있던 축제와 공연을 취소했다. 기업들은 홍보 활동을 자제하겠다고 밝혔고, 방송 프로그램 결방도 잇따르고 있다. 공연장의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서울문화재단은 3일부터 개최 예정이던 '서울 스테이지11' 공연을 취소했다. 인디밴드 등이 공연하던 여러 공연장들도 예정되어있던 공연을 취소하고 애도 분위기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예정된 공연을 일괄적으로 취소하는 방향이 최선이 아니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문화예술 종사자에게 공연 취소 및 중단 결정은 곧 생업을 중단하라는 말과 동일하다는 지적이다. 길게는 몇 개월 동안 준비해온 프로젝트 취소 부담을 개인이 온전히 떠안아야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생업 중단과 애도가 동일시되는 것이다. 국가가 정한 애도 선택지만을 강요하는 현재의 상황이 '애도 계엄령'이라는 비판이 종사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이유다.
꼭 음악을 멈춰야 애도일까?
실제로 공연이 취소되었거나, 중단 압박에 놓인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강제된 애도"로 공연예술가들만 일상을 멈추는 현실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음악인이자 방송인인 래피 씨는 1일 본인의 SNS에 중단된 콘서트, 전시를 위해 긴 시간 준비한 스태프들은 "적절한 보상은커녕, 공연을 위해 기다렸던 시간과 투자한 노력은 모두 허사가 된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회사, 식당, 공장, 노래방, 무도장, 카페, 술집, 스포츠 경기장, 놀이공원은 애도에 걸맞아 생업을 유지하고 공연장과 행사장은 애도에 반해서 오직 공연예술 업계만 생업을 포기하게 하나요?"라고 물었다.
실제로 1일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서는 키움과 SSG 간의 한국시리즈 1차전 경기가 예정대로 진행됐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안타깝게도 발생한 대규모 인명사고의 희생자 분들을 애도하고 유가족 및 많은 상처 입은 분들을 위로하며 한국시리즈를 진행하기로 했다"라며 선수와 심판들이 리본을 달아 추모하고, 시구와 치어리더, 응원 등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남녀 프로배구와 농구 등 다른 프로스포츠 리그도 예정대로 진행된 건 마찬가지다. 경기장에서 관객들은 한편으로 애도의 묵념을 가진 후, 함성을 지르며 경기를 관람했다.
반면에 공연과 행사는 공공·민간 주최와 상관없이 대부분 중단되는 상황이다. 홍대 앞 예술가들이 속한 홍우주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이자 음악가인 단편선(본명 박종윤) 씨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통계적으로 정확한 데이터는 없겠지만 수많은 축제와 공연이 취소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길게는 9개월 동안 준비한 축제와 공연에 걸려있는 수많은 계약들에 대한 논의와 고려는 없이 그냥 취소를 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공연을 일괄 중단시키는 일련의 흐름이 예술을 단지 '유흥'과 동일시하는 시각이 반영되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음악가 생각의 여름(본명 박종현) 씨는 지난달 31일 본인의 SNS에 "예나 지금이나 국가기관이 보기에는 예술일이 유흥, 여흥의 동의어인가 봅니다"라며 "공연이 업인 이들에게는 공연하지 않기뿐 아니라 공연하기도 애도의 방식일 수 있습니다"라고 꼬집었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또한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사회적 재난과 같은 재난이 사회에 닥쳤을 때 행사나 공연을 중단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그 과정이 서로의 합의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져야지, 일방적으로 문화예술이라는 특정한 분야에만 한정되어서 멈추라고 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또한 "단순히 음악과 공연을 멈추라는 말은 옛날식으로 '딴따라'들한테 닥치고 있으라고 대우하는 후진적인 태도일 수 있다"라고 일갈했다.
음악과 공연을 단숨에 멈추는 식의 애도는 주민들의 일상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관할구역에서 참사가 일어난 용산구청은 12월 31일까지 애도기간을 가진다. 이에 자치회관 프로그램을 중단했다. 특히 어린이·청소년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용산 구립 꿈나무종합타운도 일부 프로그램을 한 달 동안 중단한다고 공지해 주민들 사이에 비판이 나왔다. 용산구에 거주한다는 한 주민은 주민 커뮤니티를 통해 "용산구 어린이들은 스포츠 수업 받을 권리를 잃어야 하느냐"며 "아이들 수업은 배움 이상의 돌봄 기능도 있다"고 지적했다. 꿈나무종합타운 김종복 관장은 "시끄러운 노래 등이 나오는 수업은 상황을 고려해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하려고 했다"라며 "주민들과 협의를 통해 국가 애도기간 이후로 수업을 재개하는 방식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국가가 애도의 방식을 강요할 수는 없다
문화예술종사자들은 세월호, 코로나 등 재난이 닥쳤을 때마다 생업이 중단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번 이태원 참사 이후에도 공공이 주관하는 행사에서는 '통보' 받다시피 예정 활동을 중단해야했다. 전문가들은 "문화예술만의 애도의 방식이 있다"고 강조했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는 "코로나 때의 비대면 콘서트나 세월호 당시 추모곡 등 음악을 비롯한 문화예술은 세월호, 코로나 때 국민들이 겪었던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해왔다"라며 "애도의 방식을 강제하는 게 아니라 조금 더 열어놓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단편선 홍우주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또한 "예술이 유흥적인 속성이 있다는걸 부정하고 싶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더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단순히 행사나 공연을 취소하면서 애도를 강요하는 게 아니라 우리 다 같이 안전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이야기 나누고, 공연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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