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시를 쓰고 음악을 통해서, 또 누군가는 겉으로는 영화도 보고 똑같이 살아가면서도 계속 내면에서는 이 참사를 생각하고 숙고하면서 애도를 표현할 수 있어요. 애도를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 국가가 지정하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그렇게 말하던 자유주의 원칙에도 위반되는 건 아닐까요?" (진태원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연구교수)
지난 10월 29일,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 이후 음악은 멈췄다. 정부는 참사 이후 곧바로 '국가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사회 전체의 애도 분위기에 맞춰 공연기획자나 뮤지션이 자체적으로 공연 등의 활동을 취소한 경우도 있지만, 많은 축제와 공연이 일방적인 취소 통보를 당했다. 특히 공공기관의 예산이 들어간 지역 축제의 경우 뮤지션이 당일 취소를 통보 받은 사례도 많았다. 윤성진 축제기획자는 지난 14일 문화연대가 서울 종로구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진행한 토론회에서 "다양한 취소 사례가 애도 기간 동안 있었다"라며 "대응이 불가능할 정도로 갑작스러운 취소 통보에 공연 종사자들은 심각한 분노와 우울감을 겪기도 했다"고 사례를 소개했다.이날 토론회에서 문화예술 종사자들은 지난 국가 애도기간 동안 공연 및 축제가 일방적으로 취소당하는 상황이 "국가가 예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지난 코로나19 대유행 때도,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사태 때도 문화예술 분야는 국가에 의한 통제를 경험하고 있다고 문화예술 종사자들은 말했다. (관련 기사 ☞ '딴따라'들은 입 다물어라? "애도 방식의 다양성 존중해야")
갑작스러운 축제 취소가 어느새 '익숙한 풍경'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문화연대는 이날 '10.29 참사와 문화정치'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열어 예술과 애도의 관계를 되물었다. 문화예술인들은 참사에 애도를 표하면서도 국가 시스템의 부재를 비판했다. 또한 문화예술 활동을 제약하는 국가의 통제는 '애도의 강요'라고 반박했다.예술이 애도에 동참하는 방식은 오직 침묵뿐?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교수는 정부의 애도기간 선포는 '과잉통치'라고 규정했다. 국가가 먼저 나서 '선애도, 후책임'을 말함으로써 애도를 정치화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특히 "애도의 결정은 신속했지만 애도의 방식은 매우 부적절했다"라고 비판했다. 행정안전부가 참사 직후인 30일 "참사 명칭을 '이태원 사고'로 통일하고 '피해자' 등의 용어가 아닌 '사망자', '사상자' 등 객관적인 용어를 사용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낸 것을 언급하며 "책임지는 통치성이라기보다는, 책임회피 통치성이 더 적절하다"라고 꼬집었다. 이렇게 정부로부터 강요되는 애도는 개인들에게 '내면화'를 일으키며 검열의 요소가 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정부가 내리는 애도 지침은 "만인의 품행에 일정 형식의 감시와 통제를 행사"하게끔 하고 예술가로 하여금 정부가 정한 애도에 동참하지 않으면 "이기적인 예술인으로 낙인찍히는" 과정까지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침묵만을 강요하는 애도에 뮤지션들 또한 "스스로를 검열하게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뮤지션유니온에서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 이호 씨는 "연말 공연 홍보를 위해서 영상을 찍는다거나 연습 장면을 올릴 때도 웃는 얼굴을 올릴 수 없어 스스로 검열하게 된다"라며 "애도기간 중 공연 취소의 변을 올리면서 자신의 결정으로 다른 동료들이 눈치를 볼까봐 걱정하게 되는 상황도 생겼다"라고 밝혔다. 또 코로나19 당시 공연이 취소당했던 경험을 언급하며 "이런 참사가 벌어지면 칼이 제일 먼저 들어오는 곳이 문화예술 분야"라며 "뮤지션은 예술을 단순히 유희나 취미로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서 삶을 살아내고 있는데, 국가는 예술인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이 씨는 비판했다.'자유' 좋아하는 대통령은 어디로 갔나
진태원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연구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를 좋아하지만 과연 애도기간이 자유주의 원칙에 충실한지는 의문"이라며 "이번 정부가 선포한 국가 애도기간은 '관제애도'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참사의 원인을 밝히고, 책임규명을 하는 일련의 흐름을 애도로 인정하지 않고 애도를 어떤 방식으로 해야하는지 국가가 지정하는 것은 자유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진 교수는 "정부가 말한 애도는 망각하고 은폐하기 위한 애도"였다며 "다시는 이런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방지책을 내놓고, 참사에 대해 각자가 애도행위를 할 때 진정한 애도의 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예산이 투입된 축제의 의사결정 구조를 지자체장을 비롯한 정부가 독점하고 있는 구조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윤성진 축제기획자는 "과도한 공공의존성 때문에 축제가 지자체장의 '도구'가 되고 있다"라며 "단순히 공공예산이 투입되었다는 이유로 문화예술 종사자에게 침묵과 굴종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 봐야한다"라고 말했다.예술은 참사를 막는 상상력을 발휘하게 해준다
예술을 중단하는 '침묵의 애도'가 아닌 더 적극적인 예술이 오히려 더 정확한 애도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상철 시시한연구소 소장은 "참사 이후 필요한 것은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상상력"이라며 "이런 참사가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 할 수 있었던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해주는 것은 문화예술이 만들어내는 예외성에서 나올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싱어송라이터 이호 씨 또한 "예술가들이 애도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며 그것이 있어서 세상이 풍부해질 수 있다"라며 국가가 애도를 통제하는 상황에 대해 비판했다. 정원옥 문화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블랙리스트, 문화예산 축소, 코로나19 등에 이어 국가가 애도를 통제하며 문화예술인의 공간을 빼앗는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라며 "예술의 사회적 의미와 사회적 애도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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