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미국에서 출간돼 화제를 모은 뒤 한국에서도 2016년에 번역돼 나온 <개소리에 대하여>란 책이 있다. 책의 제목은 다소 상스럽고 거북하지만 내용은 묵직하다. 저자인 해리 G. 프랭크퍼트는 미국 프린스턴대 철학과 명예교수로, 자유주의와 도덕적 책임에 관한 연구 등으로 유명한 철학자다. 프랭크퍼트 교수와 대학원 유학 시절 인연이 있는 서울대 철학과 강성훈 교수는 이 책의 해제에서 "책의 제목이 주는 당혹감은 역설적으로 철학이라는 것이 어떤 작업인지를 우리에게 상기시켜준다"고 적었다. 이 시대에 만연한 언어의 타락상을 다룬 이 책은 개소리를 협잡, 기만, 거짓말 등과 비교해 개념적 특성을 연구하고, 개소리 현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것이 왜 중요한 사회 문제인지를 탐구한다. 이 책의 원제는 <On Bullshit>이다. bullshit은 헛소리, 허튼소리, 엉터리, 실없는 소리, 허튼수작, 허풍, 과장, 바보 같은 소리, 터무니없는 소리 등으로 번역할 수 있는 단어다. 지난 2015학년도 서울대 입시 구두 논술시험에서 이 책의 일부를 발췌해 지문으로 출제했는데, 그때는 '빈말'로 번역됐다고 한다. 책을 옮긴이(이윤 번역가)는 "처음에는 개소리라는 비속어보다는 '헛소리' 정도로 옮기는 게 좀 더 철학책의 격에 맞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헛소리는 난센스와 차별화가 어렵고 무의미한 말이라는 뉘앙스를 담고 있어 어딘지 만족스럽지 못했다"며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기사에 실린 도서명에서 힌트를 얻어 결국 '개소리'로 번역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책이 가장 역점을 둔 내용은 "X소리가 거짓말보다 위험하다"는 대목이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적어도 자기 말이 진리인 것처럼 포장하기 위해서라도 진리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보여주는 반면 X소리를 하는 사람은 자기 말이 진리든 거짓이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한마디로 진리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언론의 품격상 책의 본문과는 달리 지금부터는 'X소리'로 표기함.) 거짓말에 대해서는 학문적으로 많은 연구가 있다. 자크 데리다의 <거짓말의 역사>, 베티나 슈탕네트의 <거짓말 읽는 법>, 볼프강 라인하르트의 <거짓말하는 사회> 등 번역돼 나온 책도 꽤 많다. 베티나 슈탕네트의 책에서는 인류가 지난 2000년 동안 거짓말의 정의를 정밀하게 다듬어 왔다며 다음과 같은 정의들을 소개한다. 거짓말에는 의도가 있다, 거짓말은 엉뚱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유인전략이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나쁜 줄 알면서도 거짓말한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거짓말은 속이려는 의도를 지닌다, 거짓말은 가짜 정보다…. 그런데 프랭크퍼트 교수는 '진리에 대한 관심'이라는 각도에서 거짓말과 X소리를 조명해 구분한다. "X소리를 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와는 달리 진리의 권위를 부정하지도, 그것에 맞서지도 않는다. X소리쟁이는 진리의 권위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 점 때문에 X소리는 거짓말보다 훨씬 더 큰 진리의 적이다." 옮긴이 이윤 번역가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데는 생각보다 엄격한 지적 정밀성과 장인정신이 필요한 반면에 X소리는 굳이 공들여 만들 필요가 없다. 단지 약간의 뻔뻔함만 있으면 된다"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예로 든다. "트럼프는 진리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 때문에 그처럼 강력하고 효과적일 수 있다. 트럼프의 말이 사실인가? 그러면 좋다. 트럼프의 말이 거짓인가? 그래도 좋다. 어차피 X소리쟁이와 그 지지자들은 참과 거짓이라는 진릿값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논리적 공간에서 언어 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은 그렇다 치고 대한민국의 현직 대통령은 어떤가? 가장 최근에 논란을 빚은 윤석열 대통령의 '말씀'은 "MBC 기자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는 헌법 수호를 위한 부득이한 조처"라는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이 발언에 대해 상당수 언론이 "궤변"이라고 비판했는데 엄밀히 따지면 '궤변'이 아니다. 궤변이란 '얼핏 들으면 옳은 듯하지만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둘러대 논리를 합리화시키려는 허위의 변론'을 뜻한다. 궤변은 일단 '속이려는 의지'의 발현이다. 상대방을 속여 참을 거짓으로, 혹은 거짓을 참으로 잘못 생각하게 하거나, 또는 거짓인 줄 알면서도 상대방이 쉽게 반론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궤변이다. 윤 대통령이 '자유'를 강조하면서도 언론 자유를 탄압하는 데 대해 "나는 자유를 무척 존중한다. 그렇다면 '자유를 억압할 자유' 역시 존중받아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주장한다면 그런 것이 일종의 궤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헌법 수호" 발언은 그런 수준이 아니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한 말'도 아니고, '기이한 논리로 헷갈리게' 하지도 않는다. '얼핏 들어도 틀린 말'이고 '헷갈리게 하는 교묘한 논리도 없는 말'이다. 궤변의 필요조건을 전혀 충족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의 말에는 '속이려는 의지' 자체가 없어 보인다. 진실에 대한 의식이 아예 없기 때문에 속인다는 차원을 이미 벗어나 버린 것이다. '진실에 대한 관심'을 중심에 놓고 윤 대통령의 발언을 분석해보자. 이런 발언을 하려면 '헌법 수호'란 말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하고, 이에 앞서 자신의 '바이든 비하 및 비속어 발언'의 진위부터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진실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자신의 입으로 직접 한 '바이든 비하' 발언 논란에 대해서도 진실을 애써 외면한다. 프랭크퍼트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사실에 전혀 눈길을 주지 않는다. 자신이 말하는 내용이 현실을 올바르게 묘사하든 그렇지 않든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자기 목적에 맞도록 그 소재들을 선택하거나 가공해낼 뿐이다." 프랭크퍼트 교수가 말하는 '그'와 윤 대통령의 모습이 놀랍도록 정확히 겹치지 않는가?
프랭크퍼트 교수의 책은 현대 사회에서 언어의 타락이 심각해지는 이유와 문제점 등을 짚었으나 아쉽게도 '권력형 X소리'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 책이 정치학 관련 책이 아니라 철학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권력자가 참과 거짓의 구별 자체에 무관심한 것은, 일반 '장삼이사'들이 입에서 나오는대로 지껄이는 것과는 심각성에서 차원이 다르다. 그런데 지금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 국민의힘은 '참과 거짓이라는 진릿값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논리적 공간'에서 언설을 토해내고 있다. 권력자가 말한다는 것은 법을 말한다는 것이다. 권력의 형태와 언어의 형상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언어학을 뺀 정치학이란 있을 수 없다. 권력을 제대로 쓰려면 최소한 교묘한 수사학적 기교로 형상화하는 능력이라도 발휘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최고권력자에게는 그마저도 없다. 의미내용이 없는 벌거벗은 거친 언어만 난무할 뿐이다. 언어의 난폭성은 권력의 난폭성의 다른 이름이다. 진실의 권위에 오불관언하는 권력자의 말은 거대한 폭력이다. 프랭크퍼트 교수는 X소리가 끼치는 사회적 악영향에 대해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사심 없이 노력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을 무너뜨린다"고 지적했다. 지금 윤 대통령을 비롯해 이 정권 사람들은 참과 거짓에 대한 사회의 기본 상식을 뿌리부터 허무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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