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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탑승 막아선 수십 개 방패, 장애인은 끝내 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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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지하철 탑승 막아선 수십 개 방패, 장애인은 끝내 타지 못했다

[현장] "1분 이내로, 1명씩 타겠다" 외쳤지만 서울지하철, 장애인 안 태웠다

"나 지하철 타야해요, 타게 해주세요, 지금 지하철 오고 있잖아..."

열차가 들어오자 휠체어 위 장애인은 울음을 터뜨렸다. 십수 명의 경찰이 방패를 들고 그의 앞을 막고 있었다. 휠체어는 열차로 진입하지 못했다. 끝내 장애인을 태우지 않고 출발하는 서울지하철 4호선 열차를 바라보며, 문경희 세종보람센터 소장이 오열하며 외쳤다. 

"나도 사람이라고요, 나도 시민이라고요."

3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열차 탑승구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과 경찰·서울교통공사 사이 대치전이 벌어졌다. 전장연은 이날 오전 8시께 4호선 성신여대역에서 지하철에 탑승, 오전 10시 30분께 삼각지역에 모여 '1박2일 지하철 행동 해단식'을 가졌다.

오전 11시 30분께 시위 해산을 선언한 전장연 활동가들은 "승객 불편 최소화를 위해 1분 이내로, 한 명씩 탑승해서 이동하겠다"라며 지하철에 탑승하려 했지만 공사 측 지하철보안관과 경찰들은 활동가들의 열차 탑승을 원천봉쇄했다. 경찰은 방패로, 보안관들은 지하철 안전발판을 세워가며 장애인들의 앞을 막아섰다.

▲3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하철 행동 해단식에 참여한 문경희 세종보람센터 소장. 문 소장은 시위 종료 이후 지하철에 탑승하려 했지만 경찰 통제에 막혀 열차에 오르지 못했다. ⓒ프레시안(한예섭)

활동가들은 "이미 시위는 해산했는데 왜 열차를 못 타게 하느냐" 반발했다. 박경석 전장연 공동대표가 "시위하지 않고 1명씩 이동만 하겠다, 방송용 앰프도 놓고 타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공사 측 대응은 완강했다. "퇴거하세요." 기자가 탑승 거부의 정확한 기준을 묻자 현장을 지휘하던 한 공사 관계자는 "할 말이 없다, 방송 내용대로 보도하라"고 대답했다.

이날 역내엔 같은 내용의 안내방송이 수십 번 울려 퍼졌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즉시 시위를 중단하고 역사 밖으로 퇴거해 주시기 바랍니다. 퇴거 불응 시엔 부득이 열차 탑승을 거부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서울교통공사 6호선 삼각지역장 업무대행은 '시위는 종료된 것 아닌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집으로 가셔야 퇴거"라고 말했다. "집으로 갔다가 다시 오는 거 아니면 (열차를 못 탄다)"라고도 했다.


이날 전장연의 시위는 '2023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권리예산·입법 쟁취 1박2일 1차 지하철 행동'의 이틀째 해단식이었다. 전장연은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예산안이 통과되는 날인 당월 24일까지 지하철 시위를 중단했으나, 지난 2일 "증액을 요구한 장애인 권리 예산 중 0.8%만 국회를 통과했다"며 해당 시위를 시작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해 12월 20일 "국회에서 관련 예산안 처리가 끝내 무산되는 경우 시위 재개 여부를 검토해도 늦지 않다"라며 전장연 측에 "휴전을 제안"했지만, 예산안 처리 이후 전장연이 '시위재개'를 선언하자 "무관용으로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는 입장을 다시 밝혔다. 오 시장은 '5분 이내 탑승' 조건을 내건 법원의 강제조정 결정에 대해서도 "(지하철은) 1분만 늦어도 큰일"이라며 거부 입장을 밝혔다.

이에 박 대표는 이날 현장에서 "1분 이내에, 1명씩 열차에 탑승하자"라며 현장을 정리했다. 그는 "1분 이내의 불편사항도 무겁게 고민하겠다"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장연 시위로 인한) 4호선의 예상 지체시간을 고려해 달라"고 시민들에게 호소하기도 했다. 장애인권리예산 증액과 관련한 기획재정조정실과의 면담이 이루어진다면, 지하철 선전전을 즉시 유보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3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서 발언하는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프레시안(한예섭)

다만 이날 현장에선 박 대표를 비롯한 전장연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자세히 들을 수 없었다. 소형 앰프를 휴대한 채 발언자 앞에서 '맞불방송'을 실시한 공사 측 대응 때문이다. 전장연 활동가들의 발언 때마다 공사 측 방송이 겹쳐지면서 각 발언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 만들어졌다.

"역 시설 등에서 고성방가 등 소란을 피우는 행위, 광고물 배포 행위, 연설행위, 철도종사자의 직무상 지시를 따르지 않거나 방해하는 행위는 철도안전법에서 금지하고 있습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즉시 시위를 중단하고 역사 밖으로 퇴거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울교통공사 측 안내방송 중 일부

이에 일부 활동가들이 "고성방가는 서울교통공사가 하고 있다"라며 항의했지만, 공사 측 방송은 시위 종료 이후 지하철 탑승을 둘러싼 대치상황에서까지 계속됐다.

▲안내문을 읽고 있는 서울교통공사 관계자. 안내방송은 앰프를 통해 송출됐다. ⓒ프레시안(한예섭)

앞서 오전 10시 30분께엔 서울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장이 '활동가 휠체어에 충돌해 부상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119 구급대원이 현장에 출동하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현장에선 휠체어를 탄 한 전장연 활동가가 역장 쪽으로 움직였고, 그와 동시에 역장이 바닥에 쓰러지며 병원 이송을 요청했다.

그러나 휠체어가 실제로 역장의 신체와 충돌했는지, 부상을 호소한 역장이 어느 정도의 피해를 입었는지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전장연 측은 공사 관계자들이 "언론플레이를 위해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라며 반발했다. 공사 관계자들은 상황 경위와 부상 정도 등을 묻는 현장 취재진의 질문에 별도의 답을 하지 않고 역장을 119 구급대원들에게 인계했다.

상황을 목격한 김필순 전장연 기획실장은 "(고의성 없이) 휠체어 스틱 쪽에 올려놓은 활동가의 팔이 스틱을 눌러 휠체어가 살짝 움직인 것뿐"이라며 "전날부터 공사 관계자들은 조금만 몸이 닿아도 119를 호출하는 등 지나친 반응을 보이고 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공사 측이 소위 '언론플레이'를 위해 시위현장에서 과장된 대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3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과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들이 대치하고 있다. ⓒ프레시안(한예섭)

이날 오후까지 공사 측과의 대치를 이어간 전장연 활동가들은 오후 2시 30분 서울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다시 모여 최종 해산했다.

전장연은 다음날 4일부터는 지하철 선전전의 장소를 4호선 삼각지역으로만 한정하고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한 2023년의 260일 동안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특히 장애인권리예산 보장과 입법 문제를 두고 "대통령제 국가에선 대통령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라며 용산 대통령 집무실과 가장 가까운 역인 삼각지역을 "대통령실역"으로 명명, 장애인 권리예산 문제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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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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