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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입양 어둠의 유산과 싸워온 '뿌리의집' 지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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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해외입양 어둠의 유산과 싸워온 '뿌리의집' 지속돼야 한다" [인터뷰] 해외입양인들 위한 게스트하우스 '뿌리의 집' 대표 김도현 목사
김도현 목사는 서울대 국어교육과와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하다가 지난 1992년 스위스 국가교회의 한국담당 목사로 가게 됐다. 1993년 스위스에 살고 있던 한 한국계 입양인이 자살하는 일이 벌어진 것을 계기로 한국계 입양인들과 8년 동안 동고동락하게 된다. 그는 그때 만난 해외입양인 가운데 세 명이 또 그 뒤에 자살하는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다. 그래서 스위스 생활을 마감하고 귀국하기 전 그는 영국 버밍엄대학교에서 몇 년 간 <국제 간 아동입양과 한국의 친생모>란 주제로 연구하고 논문을 쓴다. 그 후 2004년 귀국한 이래 지금까지 20년 동안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위치한 해외입양인 게스트하우스 '뿌리의집'에서 대표로 봉사하고 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10년 한 해외입양인의 결혼식장에서였다. 그는 나보다 7살 연상이자 기독교 목사이고 나는 퀘이커 교도이지만 우리는 나이와 종교의 벽을 넘어 금방 친해졌다. 마음도 오랜 벗처럼 술술 통했다. 그 후 졸지에 내가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뉴라이트' 이영조 위원장 체제의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쫓겨나서 두 아이의 가장으로 거리에서 '구직자' 신세로 있게 되었다. 그때 그는 어려운 형편에 있는 내게 선뜻 물심양면으로 큰 도움을 주었다. 그는 해외입양인들의 인권문제를 마치 자기 자신의 일인 듯 물불 안 가리고 선뜻 나선다. 아마 스위스 생활 중 가까운 해외입양인들의 자살을 3번이나 가까이에서 '목격'한 것이 그에게 깊은 지울 수 없는 충격과 상처 그리고 큰 부채의식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그는 해외입양인들에게 기독교의 교리를 설파하거나 교회에 나오라고 전도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해외입양인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또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과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해 늘 동분서주한다. 그래서 이렇게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무리한 탓에 그는 몇 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지는 큰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 7월이면 지난 20년 동안 그가 봉사했던 해외입양인 게스트하우스 '뿌리의집'이 서울 청운동 생활을 마감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너무나 안타깝고 서운하다. 그래서 지난 30년 동안 스위스와 영국 그리고 한국에서 해외입양인들과 몸과 마음으로 함께 했던 그의 인생역정에 대한 감회와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어졌다. 그는 선뜻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다음은 지난 며칠간 그와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 김도현 뿌리의집 목사 ⓒ김성수

- 지난 30년 동안 해외입양인 문제에 헌신하셨는데 이제 서울 청운동 '뿌리의집' 생활을 올해 7월에 마감하신다니 너무 안타깝고 서운하다. 지난 20년 '뿌리의집' 역사를 되새기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기억과 가장 가슴 아프셨던 순간은 언제인지?

"2011년 해외입양인들이 주도해서 입양특례법의 전부 개정이 이루어졌다. '뿌리의집'은 이 일을 위해 조력을 제공했다. 이 법의 개정을 통해 가정법원의 판결제도를 도입했고, 해외입양 60년 역사의 결정적 흠결 중의 하나였던 대리입양제도를 혁파했다. 한국은 60년 동안 해외입양의 이름으로 이십만 아동을 해외로 송출 했지만, 그건 입양이 아니라 사실상 해외이주에 불과했다. 일생을 가름하는 아동의 운명을 타국 시민들의 선의에 맡긴 것에 다름 아니었다. 이런 제도의 결함이 바로 성인이 되었을 때 해외입양인들이 모국으로 추방당하는 사태의 원인이었다. 2011년 입양특례법 개정은 이런 사태를 종결짓는 제도의 혁신이었다. 2011년 입양특례법의 개정과 동시에 미혼모단체들과 함께 시작한 '싱글맘의 날' 운동 역시 잊을 수 없는 일 중의 하나다. 우리나라 입양의 뿌리에는 미혼모와 아동의 '분리와 상실'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싱글맘의 날' 운동은 미혼모에 대한 편견의 혁파와 양육의 권리를 담아내는 운동이었고,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상당한 수준에서 성과를 거두었다. 뿌리의집도 이 일에 힘을 보탰고, 행복했던 지난 10년이었다. 가슴 아팠던 일을 물으셨는데, 사실 일일이 헤아릴 수가 없다. 가장 가슴 아팠던 일들은 입양인(아동)들의 죽음의 행렬이었다. 뿌리의집은 이들의 죽음을 가슴에 품고 아파하고, 사회적 애도를 소환하고, 이들이 죽음으로 말하고 요구하는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킴 캘리건, 지혜 만델슨, 수잔 브링크, 필립 클레이, 얀 소르코크, J. D, 현수, 은비, 정인. 뿌리의집 정원과 배움자리, 혹은 홍대 소공원에 에 빈소를 차리기도 하고, 친생모와 함께 죽은 아이의 유골을 바다로 나가 뿌리기도 했다. 유골함을 항공화물에 담아 입양국의 입양부모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슬픔을 안고 언론 인터뷰를 하고 죽음이 남긴 우리의 실패를 담은 기고문들을 썼다. 기자회견도 하고 해당 입양기관 앞에서 혹은 광화문에서 시위를 하기도 했다. 보건복지부와 국회를 방문하기도 했다. 애도를 가슴에 품은 채로 해외입양의 질기고 험한 어둠의 유산들과 싸웠다."

- 향후 해외입양 의제의 해결을 위해서 추구해야 할 남은 과제가 있다면 무엇인지?

"두 가지다. 하나는 한국의 입양 법제의 전면적이고 근원적 혁신이다. 연대단체들과 함께 법안의 골격을 만들었고, 드디어 법안이 법사위에 회부된 것으로 알고 있다. 다소 부족한 점이 있긴 하지만, 조속한 통과가 필요한 시점이다. 입양은 아동 최선의 이익에 기초해서 국가의 공무체계가 모든 절차적 책임을 지고 수행해야 아동의 인권이 오롯이 보호될 수 있다. 위기가정에 대한 지원을 통해 원가족을 보호하고 아동의 분리를 예방해야 한다. 분리된 아동의 원가족 복귀에 대한 정교한 정책설계와 실천이 담보되어야 한다. 분리가 불가피한 아동을 아동 최선의 이익의 원칙에 따라 배치해야 하고, 국내 입양은 선택지 중의 하나이며, 해외입양은 이론적으로 선택지가 될 수 있으나, 한국이라는 국가가 나서서 해외입양을 선택지로 삼는다면, 삼척동자도 국가를 향해 눈을 부라릴 것이다.  입양되기까지 아동의 보호는 국가의 공적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하고, 입양을 통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입양기관에 위탁 되어져서는 안 된다. 아동의 입양의 불가피성이 입증되어야 하고, 입양부모의 적격성이 엄밀하게 검증되어야 일생을 가름하는 아동의 인권이 오롯이 보호될 수 있다. 분리와 보호, 결연과 입양 결정, 사후 관리가 엄밀하고 따뜻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법사위에 계류된 법안은 이런 지향을 지니고 있는 법안이다. 오남용의 우려가 있지만, 한 술에 배부를 수 없으므로, 일단 한 걸음 나아갈 필요가 있다. 다른 하나는, 지난 70년 동안 해외입양의 실천 과정에서 인권 훼손과 상처를 입은 입양인들에게 대한 국가의 책임 있는 응답을 이끌어 내는 일이다. 인권 훼손에 대한 인정, 사과, 치유 전문기관의 설립, 배·보상, 재발방지 등을 논할 때가 무르익었다.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연구자들과 학자들, 공익법률가들과 시민단체들이 조력에 나서고 있고, 뿌리의집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흐름에 대해서, 해외입양을 부정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이라면서, 다소 거리를 두는 듯한 분위기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국가인권위가 조사에 나섰고, 진실화해위에서도 조사의 개시를 결정했다. 피해자 중심주의 혹은 당사자 중심주의, 즉, 제3자의 견해가 아니라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이 가장 우선하는 원칙인 만큼 우리 사회가 해외입양인들의 목소리에 상응하는 응답을 하는 날이 오리라고 믿는 중에 뿌리의집은 입양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그릇이자 입양인들과 한국 사회의 소통을 돕는 역할을 차분하게 감당해가고자 한다."

- 진실화해위원회(아래 진실위)에서 해외입양 중 발생한 인권침해와 관련해 조만간 조사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 진실위에 거는 기대와 우려가 있을 것 같은데?

"진실위는 권위주의 정권, 독재 정권 하에서 이루어진 인권 침해를 다루는 기관이다. 해외입양의 경우,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권위주의 정권들의 정책이 낳은 결과물이다. 혼혈인, 장애아동, 극빈아동, 미혼모 아동들을 해외입양 보냈다. 국가의 기록들은 이 일이 국가의 사회정화(social cleansing) 정책의 일환이었음을 명명백백하게 드러내어 주고 있다. 독일을 히틀러 정권은 독일 사회 내부의 유대인, 정신장애인, 성소수자들을 체계적으로 제거했다. 한 마디로 아리안민족주의에 기초한 사회정화였다. 이들이 자기 사회 내부의 위험요인이므로 사전적으로 제거하기로 한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가 이와 같은 사회 정책에 대해서 명확하게 범죄로 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승만 정권에서는 인종주의의 이름으로 혼혈인들을 해외로 이주시키고, 순혈주의 사회를 구축하고자 했다. 전두환 정권 초기에는 사회정화의 이름으로 삼청교육대와 형제복지원이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사회의 소위 부랑인들을 제거하고 제압하려고 했다. 사실상 해외입양도 그 본질에 있어서 삼청교육대나 형제복지원의 행태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삼청교육대와 형제복지원의 경우 가시적 신체적 폭력이 선연하게 드러난 경우이지만, 해외입양은 인간의 근원적 권리인 존재의 근원을 알 권리(정체성의 권리)를 무참히 유린하면서 진행된 또 다른 국가 폭력의 한 행태였다. 1982년 국회 보건복지위의 속기록에 의하면, 입양특례법의 입안 이유로 미혼모의 아동들을 사회의 위험 요인으로 간주하고 해외입양을 통한 해결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독재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나아가 외교안보정책의 일환으로 아동의 해외입양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나아가 익히 알려진 바, 인구정책으로, 또 사회복지비용의 감경 정책으로 해외입양을 거론하고 있다. 홀트 아동복지회 이사회는 국보위 멤버들이 장악했고, 사회정화위원들이 감사로 들어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공동체가 범죄로 규정한 사회정화가 활개 친 사건에 다름 아니었다. 밥 못 먹던 시절에 혹은 미혼모 자식으로 태어나면, 아무런 희망도 없던 시대(동의하기 어렵지만)에 해외입양을 통해서 먹이고 입히고 한 일인데, 왜 해외입양을 폄훼하느냐는 목소리가 있을 수 있다. 해외입양을 통해 그 삶이 잘 된 경우들이 있다는 것이 진실인 것처럼, 해외입양을 통해 인권 훼손의 아픈 경험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입양인들의 삶 역시 진실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뿐이다. 하나의 진실이 다른 진실을 덮을 수는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되는 일이다. 사실 최근에는 아동의 정체성의 권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난민아동, 인신매매아동, 아동용병과 나란히 국제 입양 아동의 정체성의 권리가 논의의 테이블에 올라와 있다. 이 네 경우 모두 아동의 출생의 진실과 원가족에 대한 기록이 의도적이거나 아니거나 간에 멸실·훼손·위조·조작되고 있는 점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난민아동, 인신매매아동, 아동용병은 그렇다 하더라도 어떻게 아동에 대한 사랑의 이름으로 수행된 국제 입양이 그러한 범죄행위들과 나란히 놓여 질 수 있느냐고 분개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아동의 기록이 멸실·훼손·위조·조작되어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정체성의 권리가 훼손되고 있다는 점 그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고, 이것은 팩트이며, 이런 일들이 아동의 자국 이탈과 이동의 과정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에 있어서, 즉, 유사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몸을 두들겨 맞는 일이 학대인 것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타자가 제거해버리는 일 역시 일생을 관통하는 학대인 것이다. 진실위가 이런 점들을 충분히 고려해서 입양인들의 조사청원을 받아 조사 개시를 결정한 일에 대해서 경의를 표하거니와 이어지는 조사청원들을 검토하고 조사 개시를 결정하는 일과 조사를 통해 해외입양인들의 인권훼손을 규명하고, 정부로 하여금 그것을 인정하도록 견인하고 사과와 함께 해외입양인들의 가족 찾기와 그들이 입은 상처를 온전히 보듬어 내는 국가의 치유기구의 설립을 담보해낼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향후 목사님의 계획은?

"해외입양인의 삶을 조력하는 일, 20년. 금방처럼 지나갔지만, 짧은 세월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뿌리의집'의 터전인 청운동 주택의 무상임대 종결 시점을 기해, 시민단체 '뿌리의집'도 함께 완전히 문을 닫을 것인지에 대해 고심을 거듭하다가, 20년 뿌리의집이 남긴 환대·조력·연대·옹호의 유산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하고, 새 공간을 먼저 마련하기로 결정을 했다. 해외입양인들은 여전히 모국을 방문하고 가족 찾기를 하고, 그들의 일상과 어려움들에 대한 조력은 계속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또한 그 동안 해외입양담론을 둘러싸고 형성된 다양한 연대체들과의 공동 활동의 밑돌 노릇을 일정부분 걸머지고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아가 담론의 풍부화를 위한 연구와 출판활동 역시 이끌어갈 핵심 추동력이 일거에 퇴각해버리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았다. 이런 이유로 새 공간 마련을 통한 '뿌리의집'의 지속가능성을 최소한 탐색해보는 중이다. 공간이 마련되고 지속가능한 재정기반을 담보하는 것이 제2기 '뿌리의집'의 최소요건이라고 보고, 이를 위해 진력하고 있다. 두 가지 최소 요건의 확충 혹은 안정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과 병행해서, 당연히 '뿌리의집' 차기 리더십도 세워가야 한다. 그 동안 차기 리더십을 세워내지 못한 것이 참 아쉽지만, 열악한 시민단체로서 재정 안정 없이 차기 리더십을 준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재정 안정은 더 좋은 차기 리더십을 세우는 과정에서 갖추어야 할 도리이고, 1~2년 안에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노력을 거듭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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