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독일의 정치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 독일고등연구진흥원(DAAD)의 지원을 받아 독일 중서부에 있는 라인란트-팔츠주(州) 주도(州都)인 마인츠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주 의회와 주 정부를 찾아 주 의원 및 고위공무원과 인터뷰를 통해 평소 궁금해하던 사항들을 파악했다.
이를 바탕으로 법원과 검찰을 포함한 사법시스템의 개혁방안, 제대로 된 자치경찰제 도입을 통한 경찰시스템의 개혁방안, 교사·공무원의 정치기본권 보장방안, 주 정부시스템의 분석을 통한 지방분권의 강화방안, 다선의원의 문제 해결방안, 독일식 선거제도(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방안 등을 통해 한국 정치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해보고자 한다.(필자)
경찰시스템의 개혁방안
2022년 10월 29일에 일어난 이태원 참사로 159명의 무고한 시민이 사망했다. 이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새삼스럽게 다시 들이밀고 있다. 도대체 경찰의 임무와 역할은 무엇인가? 또 경찰이 제대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재조직되어야 하는가? 사고 원인을 규명하려는 특별수사본부의 수사 결과나 국회의 국정조사를 지켜보면서 드는 몇 가지 의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첫째, 그와 같은 대형 사건이나 사고를 대비한 '대처 매뉴얼'이 존재하는가 이다. 만약 있었다면 이번 참사에서 그 매뉴얼이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든다. 인질이나 화재 등 대형 사건이 발생했을 때 보통 다양한 기관의 구조요원이 출동하지만, 매번 특정한 현장 책임자가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지시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사전에 준비된 매뉴얼에 따른 것이지 현장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즉 매뉴얼의 존재 여부와 당시 구조요원들이 그 매뉴얼에 충실히 따랐는지가 사고대처 및 구조활동의 잘잘못을 밝히는 기준이 된다고 생각한다. 만약 매뉴얼이 없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당시 상황에서 잘했고, 잘못했음을 지적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두 번째는 사건의 조사과정에서 용산경찰서장, 서울경찰청장, 경찰청장 등에게 몇 시에 보고되었고 어떤 지시가 있었는지가 쟁점이 되었다. 그런데 사건이 발생한 다음에 하는 보고와 지시가 크게 의미 있는 일일까? 왜냐하면 보고가 빨랐다고 하더라도 현장에 없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지시나 조치가 가능했으리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상부의 지시가 없더라도 현장에 있는 누군가가 대처할 수 있도록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 지시가 없으면 움직이지 못하는 경찰을 상상하는 것은 끔찍하다. 우리는 경찰도 과도하게 중앙집권적이며 위계적이다. 참사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드러난 현장의 사실을 들어보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예를 들어 유족이 현장에서 사고로 희생된 가족을 바로 눈앞에 보고 있는데, 거기다 대고 실종신고를 하라고 하면서 시신을 이송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또 유족이 사고 관련 질문을 하면, 정보공개신청을 하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고 하는데,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현장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셋째, 경찰지도부에 대한 보고와 지시는 그 핼러윈 행사일 이전에 있었는지가 중요하다. 사전에 그 행사에 대한 보고가 있었고, 그에 따른 적절한 지시가 있었는지를 조사해야 한다. 보고와 지시가 없었다면 직무 유기가 아닐까? 경찰지도부나 용산구청장, 서울시장, 행정안전부장관 등 관계자들의 잘못은 사전에 사고대처 매뉴얼과 그 작동시스템을 만들어 놓지 못한 데에 있다고 본다. 매년 핼러윈 행사 때마다 약 200명의 안전요원이 배치됐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못했다면 당연히 그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이들보다 더 상층부의 책임은 이것을 미리 감독하지 못한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적절한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모든 것을 중앙에서 관리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먼저 바꿔야 한다. 개헌을 통해 지방분권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그에 따라 당연히 경찰조직도 분산해야 한다. 여기서는 독일의 분산된 경찰시스템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중앙집권적 경찰시스템의 문제점과 개혁방안을 생각해보겠다.1) 단일한 거대조직의 문제 : 독일에서는 연방과 16개 주(州)에 경찰조직이 분산되어 있다
2021년 6월까지 한국의 경찰조직은 검찰조직과 유사했다. 약 13만 명이 넘는 경찰이 1명의 경찰청장 아래 상명하복의 단일 조직으로 일원화되어 있었다. 그래서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수사에 압력을 행사하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이에 대한 고민에서 논의와 입법을 통해 2021년 7월 1일부터 전국에 '자치경찰제'를 도입했다. 자치경찰제란 지방분권의 차원에서 광역자치단체에 경찰권을 부여한 것으로, 광역자치단체가 경찰의 설치·유지·운영에 관한 책임을 지는 제도다. 자치경찰은 국가경찰(중앙경찰)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국가 전체가 아닌 광역 단위에서 해당 지역과 주민의 치안과 복리를 위해 활동하는 경찰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의 자치경찰제는 무늬만 자치를 띤 불완전한 형태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치경찰에 대한 주요 인사권을 여전히 경찰청장과 중앙정부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독일의 전체 경찰은 2020년 기준 33만 명이 넘지만, 연방(중앙)과 주(州) 단위(우리의 광역단위)로 조직과 인사권이 분산되어 있다. 인구수를 감안하더라도 독일의 경찰 수가 우리보다 월등히 많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대다수 경찰관이 늘 격무에 시달린다고 하면서 왜 인력을 늘리지 않는지 모르겠다.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거나 예산을 늘려서 경찰 인력을 보강하면, 청년 일자리도 늘어나고 시민의 안전도 강화되는 것이 아닐까? 독일 연방에는 연방경찰(Bundespolizei), 연방수사청과 연방의회 경찰이 있다. 16개 주(州)에는 주 경찰(Landespolizei), 주 수사청, 주 의회 경찰, 게마인데(Gemeinde) 경찰 등이 존재한다. 16개 주는 모두 자체 경찰법을 가지고 있고, 인원, 충원 방식, 경찰복이나 경찰 차량의 색깔까지도 스스로 결정한다. 주 단위 경찰도 다시 지역별로 분산되어 있다. 전체 경찰을 하나의 조직으로 유지하는 것은 그 조직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데는 편리하고 유용하다. 하지만 시민들에 대한 서비스를 생각한다면 바람직한 형태가 아니다. 옥상옥에 해당하는 수많은 상부의 지시를 거쳐야 서비스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와 같은 현장에서 상부의 지시가 없으면 대처를 할 수 없는 경찰이 말이 되는가? 시민의 입장에서는 눈앞의 경찰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누구의 지시에 따른 것인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단일한 경찰조직 형태는 통치권자의 입맛에 맞는 것이고, 독일의 분산된 경찰조직 형태는 시민의 편리함에 맞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2) 경찰에 대한 소수의 인사권 문제 : 독일에서 경찰 인사권은 연방내무부장관과 16개 주 내무부장관에 분산되어 있다
한국에서 경찰에 대한 인사권은 극히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다. 중앙에는 국가경찰위원회를 설치하고, 광역에는 시·도자치경찰위원회를 두어 경찰인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포장하고 있지만 모두 '눈 가리고 아웅'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경찰위원회 7명의 위원을 행정안전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어 있고, 중앙에서 시·도경찰청장에 대한 인사권을 여전히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시·도자치경찰위원회 7명의 위원은 시·도의회 등 여러 주체가 추천하고 시·도지사가 임명하여 인사권을 다소 분산한 듯 보이지만, 주요 결정은 여전히 중앙에서 독점하고 있다. 그 이유는 경찰법 제28조 2항에는 "시·도경찰청장은 경찰청장이 시·도자치경찰위원회와 협의하여 추천한 사람 중에서 행정안전부 장관의 제청으로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임용한다"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정부의 경찰권이 광역자치단체에 분산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이처럼 단일화된 경찰의 중앙조직과 인사권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광역자치단체에 자치경찰제를 도입하는 것은 형식적 자치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독일에서는 인사, 조직 등 경찰에 대한 모든 권한은 주 정부(흔히 지방정부라고 하는데, '지역정부'란 말을 사용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나을 것 같다)에 있다. 이는 우리의 중앙집권제와 달리 지방분권이 강한 연방제를 시행하고 있는 데서 연유한다. 독일의 주 정부는 하나의 독립 국가와 비슷한 권한과 위상을 갖는다. 특히 주 정부의 중요한 권한은 내무와 교육 분야에서 자치권을 갖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경찰조직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곳은 연방 차원에서는 연방내무부이고, 주 차원에서는 16개 주 내무부이다. 즉, 독일의 경찰은 모두 17개 자율조직으로 분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3) 독일에서 경찰의 승진, 인사이동은 공개모집을 통해 이루어진다
한국의 경찰은 직급이 올라갈수록 인사 적체의 문제가 심각하여 승진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경찰지도부에 해당하는 총경 이상 간부직은 전체의 0.5%도 되지 않는다. 거대한 경찰조직을 이처럼 운영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독일 라인란트-팔츠주 경찰 사례를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알아보겠다. 라인란트-팔츠주의 면적은 우리나라 경상북도와 유사하며, 인구는 약 410만 명이다. 주 의회에서 과반을 확보한 측에서 주 총리를 선출하고 내각을 구성하여 집권한다. 주(州)가 하나의 국가처럼 입법/행정/사법권을 가지고 있다. 주 경찰은 주 내무부 산하에 속하며, 전체 인원은 약 9300명이다. 주 내무부의 경찰국 내 대외협력과 소속의 리타 비러(Dr. Rita Wirrer) 박사와 미하엘 퇴네스(Michael Thönnes) 과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경찰국은 주 내무부의 9개 부서 가운데 하나이다. 퇴네스 과장은 자료를 준비하여 기본법(헌법) 30, 70, 83조에 따라 경찰 관련 업무는 주(州) 소관이며, 주 경찰법 95조에 따라 경찰조직은 주 내무부 산하에 놓인다고 알려주었다. 주(州)의 경찰조직은 지역을 다섯 군데로 나누어 5개의 지역경찰청, 주 수사청, 지원경찰청(기술, 병참, 타격대), 주 경찰대학 등 8개의 경찰본부로 구성된다. 설명을 들으며 놀라웠던 사실은 주 경찰청장(우리의 광역시·도경찰청장)이 따로 없다는 점이었다. 전체 경찰조직을 굳이 한 사람 밑에 둘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또한 인상적인 점은 우리와는 달라 보이는 승진이나 인사이동 시스템이었다. 모든 경찰관은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일을 할 수 있다. 자기 의사에 반하여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사이동이나 승진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하는 곳에 빈자리가 나와야 하고, 공개적 지원과정을 통해서 결정된다. 비러 박사의 경우에도 똑같은 과정을 거쳐 현재의 자리에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원래 마인츠 출신인 그는 라인란트-팔츠주 경찰에서 일하다가 학위가 있어 한동안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 있는 경찰대학에서 근무했다. 이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었지만 기다려야 했고, 현재의 자리가 공석이 되자 공개 응모를 통해 들어왔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대부분 경찰이 다른 직무나 이동을 원하지 않으면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대한 해답은 승진의 자격조건에 있었다. 예를 들어 순찰 경찰이 나중에 진급하려면 반드시 다른 직무도 경험해야 자격을 갖추게 되는 식이다. 그래서 자신의 경력관리를 위해 다른 자리가 비면 지원하게 되는 것이다. 상관에게 잘 보여 진급하는 것이 아니라 자격을 갖추고 공개모집에 지원하여 발탁되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은 앞서 살펴보았던 독일의 판사나 검사의 이동이나 승진제도와 같은 것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경찰이나 공무원이 고위직이나 하위직을 가리지 않고 모두 자신의 직무가 있다는 점이다. 특히 고위공무원이라고 해서 아래 사람이 해온 일에 대해 도장만 찍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자기 업무가 있었다. 이번 방문에서 만나본 주 법무부, 주 내무부, 주 총리실의 고위공무원들은 모두 조직도에 자신의 고유업무가 나열되어 있었다. 대외협력업무는 단지 그 직무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공직자 모두가 자신의 권한과 책임이 명확해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었다. 우리나라 공무원의 직무설계를 다시 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순간이었다. 그밖에 라인란트-팔츠주 정부는 경찰을 충원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대학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리타 박사는 교육생은 학업 동안에도 한 달에 1000유로씩 받는다고 자랑스럽게 알려주었다. 모든 경찰에게 대학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은 주의 시민에게 좀 더 나은 경찰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직업교육을 통해 경찰을 채용하는 주(州)도 있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각각의 주 정부가 결정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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