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전 장애인의 죽음, 그 비극에 대한 무감각보다는 차라리 고통이 견딜만합디다."
22년 전 2001년 1월 22일, 지하철 역내에서 두 명의 장애인이 죽었다. 경기도 시흥시 서울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 설 명절을 맞아 가족을 만나러 '이동'하던 장애인 노부부였다. 둘은 엘리베이터가 없던 역내에서 추락 위험이 높은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했다. 그리고 그대로 추락해 사망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그때부터 시작됐다. 20일, 지난 11일간의 냉각기가 끝나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행동이 재개됐다. 전장연은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면담을 조건으로 지난 8일부터 지하철 탑승 시위를 중단했지만, 전장연 측 단독면담 요구에 오 시장이 합동면담 방식을 고수하면서 지난 19일 면담 협의가 최종 결렬됐다. 당일 이들은 면담 결렬에 따라 20일부터 지하철 행동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전날 19일 전장연과의 면담이 결렬되자 "전장연 시위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손실비용은 4450억 원"이라며 앞으로의 지하철 탑승 시위에도 '무관용·무정차' 대응을 지속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관련기사 ☞ "전장연으로 손실 4450억" 발생했다는 서울시, 교통약자의 '손실'은?)
이날 활동가들은 지하철 열차가 역내로 진입할 때마다 "장애인도 지하철 타고 싶다", "헌법 권리를 보장하라"라고 연호했다. 공사 측은 "즉시 퇴거하라", "열차 탑승을 거부한다"라며 응수했다. 박경석 대표 등 일부 활동가들은 보안관의 다리 밑을 기어가며 열차 진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삼각지역 승강장에는 곧 경찰 수십여 명이 투입됐다."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습니다. 민주국가의 원칙은 기본적으로 다수결이죠. 다수결의 원칙이란, 결국 좀 더 많은 사람이 뜻을 모으면 그 뜻에 따라 소수는 뭔가 할 수 없다는 얘기기도 합니다. 그럼 배제되는 사람들은 정책 결정 과정에 아무런 의견을 낼 수 없는 걸까요?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민주국가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모여 말하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요구는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국가가 의무를 다 하라는 것입니다." - 김재왕 희망법 변호사의 현장 발언 일부
이날 각 현장에서 전장연은 오이도추락참사로부터 '22년간 유예'돼온 장애인의 이동할 권리에 대해 강조했다. 2001년 오이도역 추락 참사 이후에도 지하철에서 죽음을 맞는 장애인은 계속 있었다. 2002년엔 발산역에서, 2006년엔 신연수역에서, 2008년엔 화서역에서 장애인이 리프트를 타다 죽었다. 오래 전의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5년 전 2017년엔 신길역에서도 리프트 추락참사로 장애인이 죽었다. 전장연을 비롯해 장애인 이동권을 주장하는 이들은 장애인들이 이용하는 각 이동 현장에 '안전한' 시설을 확보하고 '추가적인' 동선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리프트 추락참사는 물론, 지난해 4월 일어난 양천향교역 에스컬레이터 장애인 추락사와 같은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서울시는 이명박 시장 재임 당시와 박원순 시장 재임 당시 각각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2023년 기준 서울시 내엔 아직 21곳의 역사가 엘리베이터 미설치 지역으로 남아있다. 전장연이 서울시와의 면담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핵심적인 이유다. 지난 2021년 12월엔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교통약자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 저상버스 및 광역이동지원센터 등 이동권 확보를 위한 국비지원이 법률에 명시됐지만, 기재부가 운영비 지원을 의무가 아닌 선택 사항으로 남겨두면서 이동권을 위한 실질적 예산 반영은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다. 2022년 12월 국회 예결위에서 통과된 장애인 권리예산은 요구안의 0.8%에 불과했다. 전장연이 기재부와의 면담을 촉구하는 핵심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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