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난데없이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를 공산주의자로 매도하는 색깔론이 횡행하고 있다. 유력 당권주자인 안철수 의원이 과거 범(汎)진보진영에 속해 있던 시절, 신 교수가 별세하자 그를 애도하며 한 말을 끄집어내 '안철수는 사상 정체성이 의심된다'는 공격 소재로 삼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신영복=공산주의자'라는 주장은 한 차례 반문도 없이 그저 상식처럼 전제되고 있다. 신 교수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을 펴낸 작가이자 지식인으로, 한국사회에서 폭넓은 존경을 받아왔고 과거 프레시안 고문을 맡기도 했다. 서예가이기도한 그의 글씨체, 일명 '신영복체'는 소주 '처음처럼'(롯데주류) 로고에 지금도 쓰이고 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안철수 의원과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김기현 의원은 7일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안 의원을 겨냥해 "안 후보는 2016년 국가 전복을 꾀한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고 특별 가석방된 신영복의 빈소를 찾아 ‘시대의 위대한 지식인께서 너무 일찍 저의 곁을 떠나셨다’, ‘선생님이 하신 말씀들 후대까지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고 애석해 했다"며 "안 후보는 지금도 공산주의 대부 신영복이 존경받는 지식인이라고 생각하는지 밝혀 달라"고 했다. 김 의원은 "안 후보의 과거 발언을 보면 그가 과연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 국민의힘 정체성에 맞는 후보인지 근본적으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안 의원이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했던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디 있느냐"는 발언에 대해 "최근 제주도에서 발각된 한길회 간첩단 사건 등 문재인 정권이 숨겨왔던 간첩단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금도 간첩이 없다고 생각하느냐"고 공세 소재로 삼기도 했다. 김 의원뿐 아니라 국민의힘 내 친윤계, 심지어 대통령실에서까지 '공산주의자' 운운하는 색깔론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하고 있다. 전날에는 친윤계 의원 공부모임으로 알려진 '국민공감' 간사 이철규 의원이 안 의원을 겨냥해 "공산주의자 신영복을 존경하는 사람!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한 사드배치에 반대한 사람!" 등의 글을 페이스북에 썼다. 같은날 오후 대통령실 브리핑에서는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로부터 "윤 대통령이 신영복 씨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아는 바가 없다"면서도 "안 의원이 신영복 씨에 대해 그렇게 얘기했는지가 본질 아니냐"며 사실상 친윤계의 색깔론 공세에 힘을 싣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이는 앞서 일부 언론에 '윤석열 대통령은 안 의원이 신 교수에 대해 존경의 뜻을 밝힌 사실을 최근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만약 대선 때 이를 미리 알았다면 안 의원과 후보단일화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요지의 대통령실 고위관계자 전언 인용보도(5일 TV조선)가 나온 것과 관련, 대통령실이 이를 부인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됐다. 문제는 안 의원을 공격하기 위해 과거 김문수 현 경제사회노동위원장 등 극우 성향 정치인들이나 하던 '신영복은 공산주의자'라는 주장이 상식처럼 '전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신 교수가 공산주의자라는 주장은 그가 1968년 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 선고를 받고 수감됐다는 것을 근거로 하고 있다. 통혁당 핵심 관계자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고 공산혁명을 도모하는 지하당을 만들었다는 사건의 골자 자체는 현재도 실체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박정희 정권이 고문을 동원한 무리한 수사를 했고 이 과정에서 무고하게 연루된 이들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대표적인 예로, 통혁당 사건으로 13년을 복역했던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한명숙 전 국무총리 배우자)는 2022년 1월 대법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신 교수도 본인은 통혁당 관계자들과 학교 선후배 사이였을 뿐 통혁당의 존재 자체도 알지 못했다고 생전 주장했다. 신 교수는 지난 2008년 8월 신문 인터뷰에서 자신은 통혁당에 가입한 적이 없다며 "통혁당은 정식으로 결성되지도 않았다. 서울시당 준비모임이 꾸려져 있었다는 얘기를 나중에야 들었다. 나는 학생운동 차원에서 대학선배가 주도한 모임에 적극 참여했는데, 그 선배 삼촌이 북한에도 갔다 온 모양이었다. 당시 <청맥>이란 잡지에 진보적 소장학자들이 글을 많이 썼는데, 나도 거기에 참여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학생운동 차원이었다"고 말했다. (2008년 8.28자 <한겨레> / ) 신 교수는 2006년 주간지에 게재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와의 생애사 인터뷰 형식의 글(한 교수가 신 교수의 구술을 평전 형식으로 풀어 서술함)에서도 "대학원을 마치고 숙명여대에 강사로 나가던 시절, 아마 1965년 2학기나 1966년 초에 <청맥>이라는 잡지의 예비 필자 모임인 새문화연구회 모임에 안병직 등 선배들을 따라나가게 되었는데, 여기서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의 김질락을 만나게 되었다"며 "김질락과 그의 후배 이진영 등은 신영복이 학생운동에 깊이 간여하고 있는 것을 알고 그를 유심히 관찰하면서 접근했고, 어느 날 김질락이 정색하고 혁명을 지지하느냐고 물어왔고, 신영복이 '그렇다'고 하자 그날부터 김질락, 이진영과는 따로 만나게 되었다. 이것이 나중에 통혁당 산하의 '민족해방전선'으로 발표된 모임"이라고 같은 취지의 증언을 했다. 한 교수에 따르면 "신영복은 최고 책임자로 발표된 김종태나 조국해방전선 책임자로 발표된 이문규 등 핵심 간부들은 사건이 날 때까지 만나본 적도 없다"며 "이문규야 학생운동 선배라서 이름 정도는 들어보았지만, 김종태에 대해서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신영복이 김질락과 만난 횟수는 <청맥> 잡지사에서 여러 사람이 같이 모인 것까지 합쳐 전부 10번 안팎일 것이고, 김질락의 집에서 이진영과 함께 따로 만난 것은 5번 정도라 하니 참으로 비싼 징역을 산 셈"이라고 한다. (<한겨레21> 609호. 2006.5.11 / ) 지난 2011년 뉴라이트 운동의 대부 안병직 서울대 교수는 <민주화운동과 민주주의-좌익운동을 중심으로>라는 증언록을 펴내 통혁당 사건은 용공조작이 아닌 실제 북한의 지령을 받은 무장혁명 기도였다는 주장을 했는데, 안병직의 증언록에 따르더라도 신영복은 통혁당 2인자 김질락의 후배로 김질락의 지도를 받고 박성준을 지도해 '경제복지회'라는 기독교 학생단체를 이끄는 역할을 했다는 점이 지적돼 있을 뿐 무기징역 선고 당시의 혐의대로 북한에 다녀왔다거나, 북한의 직접 지령을 받았다거나, 통혁당 핵심 간부로 활동했다는 주장은 없다. 신 교수는 2016년 1월 작고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선생님이 제게 써주신 '처음처럼'과 노무현 대통령에게 써주신 '우공이산'은 저의 정신이 되고 마음가짐이 됐다. 선생님께 소주 한잔 올린다"는 애도의 글을 썼다. 진보진영은 일제히 추모와 애도를 표했다. 진영을 넘어, 별세 당시 보수언론인 <동아일보>에도 추모의 염을 담은 글이 실렸다. "서울대 경제학과 재학 시절의 활동으로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됐다. 중앙정보부의 수사는 가혹했을 것이다. 신영복이 실제보다 더 깊이 연루된 것처럼 기소됐을 수 있다. (…) 신영복이 싫어서 소주 '처음처럼'은 마시지도 않는다는 사람도 없진 않지만 대체로 신영복의 정신세계는 이념을 뛰어넘어 사랑받았다. 세상을 바꾸는 데 냉철한 머리보다는 따뜻한 가슴이, 따뜻한 가슴보다는 실천하는 발이 중요하다는 식의 잠언(箴言)은 현대인에게 매력적이었다." (2016.1.18자 <동아> '횡설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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